소설리스트

헌터타임-91화 (9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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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나르샤

‘아니, 아닌가?’

승한은 나르샤의 눈을 보고는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말을 하는 내내 나르샤의 눈빛이 흔들렸다. 확고한 생각이 있다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내뱉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승한은 그녀가 괴로워하고 있다고 느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확고해 보였던 눈동자는 구원을 바라는 눈빛으로 변했다. 승한은 그녀의 눈빛을 보고는 옆에 있는 외뿔 마족을 바라봤다.

‘저 녀석 때문인가?’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있는 걸까?

좀 더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대화는 일단 여기서 마무리해야 할 것 같았다. 이 이상으로 대화를 해 봤자, 방금 전과 같은 맥락의 대화만 되풀이 할 뿐이었다.

좀 더 깊은 속마음을 듣기 위해서는 외뿔 마족을 비롯해 다른 마족들을 모두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승한은 대화를 멈추고 검과 방패를 들었다.

“좋아요. 대화는 여기까지만 하죠.”

“정말 저를 죽이려고 하시는 거죠?”

“네. 그래야 아포피스를 봉인하고 있는 성화의 힘이 사라질 테니까요.”

“제가 대악마를 봉인하고 있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인 줄은 몰랐는데, 이거 좀 뿌듯한데요.”

승한은 씩 웃으며 외뿔 마족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럼 조금 뒤에 다시 이야기하죠.”

“네?”

촤악-!

승한의 [백검]이 좌우를 향해 뻗어가며 마족들을 베어갔다. 나르샤를 베지 않기 위해 바로 앞에 있는 외뿔 마족은 공격하지 않았는데, 그 검격에 수많은 마족들이 목숨을 잃고 쓰러졌다.

단숨에 수십 마리의 마족들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마족들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외뿔 마족도 승한을 향해 달려들었다.

콰과과과-.

그 순간, 윤재가 쏘아낸 불바다가 땅 아래를 뒤덮었다. 순식간에 백염의 불길에 휘말린 마족들이 타들어갔다. 두 개의 뿔을 가진 마족들은 대부분 불길에 휘말려 죽었고, 세 개 이상의 뿔을 가진 마족들은 간신히 피해내기도 했지만, 역시나 피해가 컸다.

순식간에 승한의 [백검]과 윤재의 불바다에 수많은 마족들이 목숨을 잃었다. 남은 마족들 중 대부분은 세 개 이상의 뿔을 가진 마족들. 그 중에는 네 개의 뿔을 가진 마족도 둘이나 포함되어 있었다.

‘역시, 진짜 보스는 나르샤였어.’

외뿔 마족 하나와 네 개의 뿔을 가진 마족 둘. 지금까지 만난 마족들 중 가장 큰 전력이었다. 더군다나 세 개의 뿔을 가진 마족들도 족히 수십이었다.

이만한 전력이 한 군데 몰려있으니 노량진에 있는 헌터들이 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승한은 외뿔 마족을 제외한 다른 마족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생각보다 수가 너무 많은데…….’

외뿔 마족을 승한이 맡는다고 해도 다른 마족들을 윤재가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은 없었다. 네 개의 뿔을 가진 마족이 둘이나 되는데다가 세 개의 뿔을 가진 마족들도 꽤나 많았다. 아무리 윤재라도 이들 모두를 감당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었다.

‘그럼…….’

승한은 외뿔 마족에게서 시선을 떼고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바로 세 개의 뿔을 가진 마족들이 있는 방향이었다.

“어디를!”

외뿔 마족이 승한을 쫒아 움직였지만 이미 승한의 검음 움직이기 시작한 후였다.

사아아아악-.

촤아아악-!

촤악, 촤악, 촥-!

[백검]의 검격이 무자비하게 쏘아졌다. 다른 마족들보다는 먼저 세 개의 뿔을 가진 마족들을 처리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두 개의 뿔을 가진 마족과는 달리, 세 개 이상의 뿔을 가진 마족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승한의 검이 휘둘러지는 방향을 미리 눈치 채고, 빠르게 움직여 공격을 피해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당하는 마족들은 있어서 하나 둘 죽는 마족들이 생겨났다.

그러던 중, 외뿔 마족이 승한을 따라잡았다. 외뿔 마족은 검을 휘두르고 있는 승한의 등 뒤를 향해 손을 뻗어 단숨에 목을 꿰뚫으려 했다.

그 순간이었다.

쿠구구구-,

“크읍!”

어떤 힘이 외뿔 마족의 몸을 강하게 짓눌렀다. 승햔을 향해 달려들던 외뿔 마족은 잠시 휘청거리더니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올림포스]의 힘이 외뿔 마족의 몸을 짓누른 것이다. 비록 완전히 몸을 구속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잠깐이라도 시간을 번 것으로 충분했다.

구구구구-.

거대한 힘이 사방을 짓눌렀다. 마치 거대한 산이 위에서 떨어진 듯, 마족들을 일제히 움직임을 멈췄다. 외뿔 마족은 그래도 조금씩이나마 움직일 수 있었지만, 세 개의 뿔을 가진 마족들은 아예 움직이지조차 못했다.

[올림포스]의 힘을 유지하고 있는 그 짧은 순간.

솨아아아아악-!

승한의 [백검]이 성화의 힘을 품고 날아갔다. 세 개의 뿔을 가진 마족들은 물론, 네 개의 뿔을 가진 마족도 [올림포스]의 힘에 짓눌려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대로 승한의 검격에 얻어맞을 수밖에 없었다.

서걱, 서걱-,

화르르르륵-.

마족들의 몸이 반으로 베어지고, 네 개의 뿔을 가진 마족은 반쯤 베어진 허리에서 타오르는 성화의 불길에 고통스러워했다. 네 개의 뿔을 가진 마족 하나는 겨우 승한의 공격을 피해냈는데, 녀석을 제외한 대부분의 마족은 이번 한 번의 공격에 당하고 말았다.

머릿속에 울리는 타임 포인트 획득 메시지에 승한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순간 머리 핑 돌며 속이 울렁거렸다.

‘갑자기 힘을 너무 많이 썼나?’

승한은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쉬지 않고 싸워왔다. 되도록 힘을 아끼고자 세 개 이하의 뿔을 가진 마족을 제외하고는 성화를 사용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지금까지 쉬지 않고 싸워온 피로감과 모든 마족들에게 성화의 힘과 함께 [올림포스]의 힘을 사용한 것은 너무 힘을 급격히 사용하는 일이었다.

‘이것도 성화에 못지않아. 가능하면 남발하는 일은 없어야겠어.’

[올림포스]역시 성화와 마찬가지로 능력을 사용하는데 힘이 꽤나 많이 들었다. 물론 3레벨의 [불굴의 육체]덕분에 사용은 할 수 있었지만, 이번 한 번에 성화와 함께 너무 큰 힘을 사용하고 말았다.

“뭐, 덕분에 수는 꽤 많이 줄어들었지만 말이야.”

주위에 있던 마족들 중 대부분이 죽었다. 살아남은 마족은 외뿔 마족과 네 개의 뿔을 가진 마족 하나, 세 개의 뿔을 가진 마족 몇 마리 정도. 애초에 있던 마족들 중 살아남은 마족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물론 살아남은 마족 가운데에는 나르샤도 있었다. 애초에 승한이 나르샤가 죽지 않도록 조절했기 때문이었다. 살아남은 세 개의 뿔을 가진 마족들은 바로 나르샤의 근처에 있던 마족들이었다.

“……이 힘은 뭐죠? 언제 이렇게 강해진 건가요?”

나르샤는 승한을 보며 놀라 물었다. 그녀는 막상 승한의 힘을 바로 앞에서 마주하자 깜짝 놀랐다.

그녀는 승한이 성화라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있었다. 때문에 승한에게서 가장 조심해야 할 힘을 성화라고 생각하고, 다른 능력에 대해서는 일정 부분 무시하고 있었던 게 사실이었다.

당장 그녀가 승한을 처음 마주했을 때만 하더라도 승한은 외뿔 마족 하나를 겨우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아니, [백검]과 성화를 얻지 못했을 때의 승한은 외뿔 마족 하나를 감당하기도 어려웠다. 무엇보다 그 당시 승한은 성화를 제대로 다루기 어려웠던 상태였다.

하지만 승한은 마족들을 사냥하면서 [불굴의 육체]의 레벨을 올리고, 성화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무엇보다 6스테이지의 능력인 [백검]과 [증폭], [올림포스]라는 능력을 얻게 됨으로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강해진 상태였다.

그녀는 외뿔 마족 하나와 다른 마족들이 함께라면 충분히 승한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랬기에 외뿔 마족 둘을 두 개의 지역으로 나눈 것이었다.

하지만 단 하나, 그녀가 간과하고 있던 사실이 있었다.

승한이 성장하는 속도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다는 것이었다.

“자, 그럼 아까 못 했던 이야기를 다시 나눠 볼까요?”

“누구 마음대로 나르샤님과 이야기를 나눈다는 거지?”

그 때, 외뿔 마족 하나가 승한의 앞으로 다가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올림포스]의 힘에 짓눌려 있던 그는 힘이 사라지자 승한의 앞에서 으르렁거렸다.

승한은 외뿔 마족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방금 전 공격에서 외뿔 마족까지 함께 처리하고 싶었는데, 역시나 다른 마족들처럼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다시 한 번 [올림포스]와 성화를 사용해야 하나? 아니, 그건 너무 부담이 큰데…….’

외뿔 마족은 다른 마족들과는 달리 성화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잡기가 힘들었다. 제 아무리 [증폭]의 힘을 검에 두른다 해도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올림포스]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성화의 힘은 반드시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승한은 점점 자신의 몸에 무리가 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급한 대로 방금 전에 얻은 타임 포인트로 [불굴의 육체]의 레벨을 올리고 싶었는데, 너무 함부로 타임 포인트를 소모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더라도 [불굴의 육체]를 4레벨로 올리기 위해서는 40만이 넘는 타임 포인트가 필요했는데, 승한에게는 그만한 타임 포인트가 있지 않았다.

‘급한 대로 이대로 싸운다.’

그래도 질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미 앞서 외뿔 마족 하나와 싸우면서 외뿔 마족의 움직임에는 적응이 된 상태였다. 움직임만 제대로 보고 따라갈 수 있다면 정면 대결에서는 승한이 훨씬 우세했다.

무엇보다 단 한 번만 [올림포스]의 힘을 사용해서 움직임을 묶고, 성화의 힘을 이용해 머리를 베어내면 한 순간에 끝낼 수도 있었다. 승한은 움직이지 않고 조금씩 쉬며 힘이 회복되기를 기다렸다.

콰득-.

그 때, 외뿔 마족의 모습에 조금씩 변화가 찾아왔다.

이마의 정 중앙에 나 있던 뿔의 양 옆으로 각각 하나의 뿔이 돋아났다. 그렇게 외뿔 마족은 총 세 개의 뿔을 가진 마족이 되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또 다시 그 옆으로 각각 하나의 뿔이, 총 두 개의 뿔이 더 돋아났다. 이마에 나 있던 거대한 뿔을 중심으로 네 개의 뿔이 더 돋아난 것이다.

다섯 개의 뿔. 지금껏 하나의 뿔을 가지고 있던 외뿔 마족이 이제는 다섯 개의 뿔을 가진 마족이 되었다. 나르샤는 승한을 보며 입을 열었다.

“베에모는 저희 일족 최강이에요. 승한씨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베에모를 이길 순 없을 거예요.”

“……아, 이거 진짜 너무하네.”

다섯 개의 뿔을 가진 마족, 베에모.

승한은 녀석이 전에 만났던 외뿔 마족과 같이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다섯 개의 뿔을 가진 마족은 처음인데다가, 녀석의 몸에서 풍기는 느낌이 제법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승한의 몸속에 있는 성화의 힘이 거세게 타올랐다. 승한은 그 느낌에 다섯 개의 뿔을 가진 베에모가 어떻게 저런 힘을 가질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성화의 힘을 몸에 심은 건가?’

마족이 성화의 힘을 가진다? 그것은 나르샤를 제외하고는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성화란 마족들에게 힘이 아닌, 독이라고 할 수 있는 기운이었으니 말이다.

‘아니, 성화가 아니야.’

승한은 베에모의 몸속에 있는 힘이 성화와 닮으면서도 다르다고 느꼈다. 성화와 닮았으면서도 정 반대 되는 성질의 힘, 마치 성화에 악마들의 힘을 섞어 가공한 듯한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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