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타임-86화 (86/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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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마족

차재훈의 대답에 승한과 윤재가 깜짝 놀라 서로를 바라봤다. 윤재는 무언가 입을 벙긋거리려다 승한이 손을 들자 말을 멈췄다.

“성화를… 찾고 있었다고요?”

“네. 그런 것 같았습니다.”

“그건 왜 찾는다고 합니까? 특별한 이유는 못 들었나요?”

“네. 제가 들은 거라곤 저희와 같은 힘을 준 존재가, 저희들 중 누군가에게 그 힘을 줬을 거라고 했습니다. 아무래도 헌터들 중 누군가가 그 성화라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보스와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것도 신기했지만 승한은 다른 무엇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성화라는 능력을 찾고 있다는 점이 가장 의외였다.

‘하긴, 이 힘이 마족들에게 치명적인 힘이긴 하지.’

승한은 성화를 처음 얻었을 때를 떠올렸다.

나르샤라는 마족이 일생에 단 한 번 사용할 수 있는 힘이자, 본래는 천사라는 지고한 존재가 가지고 있던 힘. 또한 천사의 반대에 있는 악마들과 마족들에게 지독히도 치명적인 힘이었다.

그리고 그 성화의 힘을 두고 자칼과 가렝, 그리고 다른 마족들은 싸움을 벌였다. 나르샤는 악마들 중 하나인 아포피스를 봉인할 수 있는 성화의 힘을 가진 존재였으니 말이다.

그 만큼 마족들에게 있어서 성화는 잊을 수 없는 힘이었다. 담뱃불 하나 지질 정도의 작은 불길조차도 그들의 영혼을 태울 힘이 있으니 말이다.

‘6스테이지와 같은 세계에서 넘어온 마족인가?’

성화를 알고 있는 마족이라면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면 승한은 이참에 보스와 만나 몇 마디라도 이야기를 해 볼 생각이었다. 잘만 하면 그들이 어디에서 넘어온 것인지 알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보스 외에 남아있는 괴물들은요?”

“네 개의 뿔을 가진 괴물이 하나, 세 개의 뿔을 가진 괴물이 몇 마리 남아있습니다. 다른 괴물들은 다 정리가 된 상태고요.”

“네 개의 뿔을 가진 놈이라… 형, 괜찮겠어요?”

“괜찮아. 충분해.”

“저도 아직 도울 수 있습니다.”

상처를 많이 입었다고는 하나 차재훈은 분명 상당한 전력임에는 분명했다. 처음부터 네 개의 뿔을 가진 마족을 쓰러뜨렸을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으니, 타임 포인트를 소모해 능력의 레벨을 올린 지금은 아마 그보다 더 뛰어난 실력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윤재도 마찬가지. 불굴의 의지라는 능력을 얻고, 다른 능력들의 레벨을 전반적으로 올린 윤재는 이미 혼자서도 네 개의 뿔을 가진 마족을 손쉽게 상대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 녀석이 성화의 힘을 찾고 있었다고요?”

“네. 지금 당장은 아마 절 찾고 있겠지만요.”

“잘 됐군요. 굳이 저희가 찾아가지 않아도 되겠어요.”

“네? 그게 무슨…….”

승한의 말에 차재훈은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곧 승한의 몸에 둘러진 붉은색 불길에 깜짝 놀랐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불길에 불과했지만, 그 느낌은 결코 보통 불길과 같지 않았다.

“이, 이건…….”

“성화입니다. 보스가 찾고 있다던 힘이죠.”

“성화를 가진 인간이라는 게… 승한씨였습니까?”

차재훈은 무언가에 끌리기라도 한 것처럼 손을 가져갔다. 보통 불과는 확연히 다른 아름다운 느낌에 조금씩 손을 가져가 열기를 느끼려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성화의 불에서는 아무런 열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애초에 승한은 이 힘을 다른 사람에게 사용할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승한의 의지를 받은 성화는 마족이 아닌 그 누구에게도 열기를 전하지 않았다.

“대체 왜 괴물들이 승한씨를……?”

“그것까지는 저도 알 수 없죠. 이야기를 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불길한 기분을 느끼며 승한이 차재훈이 가리킨 마족들이 있는 방향을 바라봤다.

“아마 이제 곧 여기로 주위에 있는 괴물들이 몰려들 겁니다.”

“그렇겠죠. 그렇게 찾아다니던 성화의 힘이 바로 근처에서 나타났으니까요.”

꿀꺽-.

차재훈은 벌써부터 긴장이 되는지 마른 침을 삼키며 가슴을 진정시켰다. 아무리 승한과 윤재가 지원을 왔다지만 보스와 다시 싸워야 한다는 사실이 못내 두렵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잠시 시간이 지나자 승한이 입을 열었다.

“왔군요.”

타다닥-.

교회의 담장 위로 몇몇 인영들이 나타났다. 단숨에 뛰어 올라 담장 위로 올라간 그들은 사람과 흡사한 모습을 갖춘 세 개의 뿔을 가진 마족들이었다.

그들 사이에는 네 개의 뿔을 가진 마족이 있었는데, 녀석은 또렷한 눈동자로 승한을 바라봤다. 우두머리가 따로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성화의 힘 때문인지 바로 달려들지는 않았는데, 승한은 보스가 눈에 보이지 않아 바로 검을 뽑아들고 달려들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다.

‘보스는 어디에 있지?’

승한의 눈이 마족들 사이에 있는 보스를 찾았다. 하나의 뿔을 가진 마족은 바로 보이지 않았다. 겉으로 보이는 특징이 그것 하나뿐이라고 하니 찾기가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 때, 승한의 감각이 불길한 기운이 느껴졌다. 다른 마족들에게서 흔히 느껴지던 기분 나쁜 기운이었는데, 정도가 훨씬 심했다.

굳이 찾으려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3레벨에 이른 [불굴의 육체]는 보스의 썩은 기운을 바로 감지해 냈다. 승한은 눈살을 찌푸리며 검을 뽑았다.

‘보스는 보스군.’

승한은 고개를 들어 교회 건물 위쪽을 바라봤다. 담장을 넘어온 다른 마족들과는 달리, 녀석은 따로 움직였다. 그것이 혼자 움직여도 문제없다는 자신감 때문인지, 아니면 뒤를 노리려던 생각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외뿔 마족과 승한의 눈이 마주쳤다. 외뿔 마족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녀석은 가볍게 교회 건물 위에서 내려와 마족들 앞에 섰다.

“제 발로 찾아왔군.”

유리 긁는 목소리였다. 보통 사람의 목소리라 생각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승한을 놀라게 한 건 녀석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익숙한 억양과 언어, 그리고 그 언어를 듣고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마치 6스테이지에서 나르샤와 자칼, 가렝과 대화를 했던 것처럼 말이다.

“날 아냐?”

“알다마다. 성화를 가진 인간이지.”

“잘 아네. 날 찾았다던데, 왜지? 만나서 반갑다고 인사나 하려는 건 아닐 테고.”

“당연한 것 아닌가? 죽이기 위함이지.”

외뿔 마족은 피부와 대조되는 새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말 그대로 새하얀 웃음이었다. 보는이로 하여금 오금이 저리게 만들 법했다.

실제로 그 웃음을 몇 번 보았던 차재훈은 눈살을 찌푸리며 몸을 살짝 떨었다. 외뿔 마족의 시선이 차재훈에게로 향한 건 바로 그때였다.

“도망치는 것 하나만큼은 잘하더군.”

“내 능력이 그런 능력이라서 말이야. 이해해줘. 니들이 느려 빠진 게 내 책임은 아니잖아?”

“이번에야말로 도망치지 못할 거다. 아니지, 도망쳐도 문제될 건 없나? 성화를 가진 인간을 죽일 수만 있다면, 네놈 같은 버러지야 어디로 가든 상관없지.”

외뿔 마족은 이미 차재훈은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오직 승한을 죽이기만 하면 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승한은 녀석과 바로 싸울 생각이 없었다. 묻고 싶은 게 산더미였다.

“왜 날 죽이려 하는 거지? 아니지, 왜 성화를 가진 인간을 죽이려 하는 거지?”

“인간이 그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죄악. 그 힘을 가지고 계실 분은 따로 계시다. 뭐, 이런 말을 해 봤자 인간이 무얼 알겠는가만…….”

“나르샤를 말하는 건가?”

승한의 물음에 외뿔 마족의 표정에 변화가 생겼다. 금방이라도 손을 뻗으며 달려들 것 같던 외뿔 마족이 움직임을 멈췄다. 눈살을 찌푸리며 승한을 노려보며 그가 사납게 송곳니를 드러냈다.

“네놈이 그분의 이름을 어떻게 아는 거지?”

“진짠가 보군. 이것 참, 정말 그게 현실이었다니…….”

승한은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혹시나 해서 던져본 말이었는데, 외뿔 마족의 대답으로 설마 하던 일들이 확실해졌다.

스테이지라는 꿈속의 세상. 그곳은 단순한 꿈이 아니었다. 지구와는 전혀 다른 세상, 어쩌면 이 우주 속에 있는 또 다른 어떤 행성의 현실이었던 것이다.

‘그럼 지금까지 내가 죽인 사람들은…….’

승한의 머릿속에 5스테이지에서 자신이 죽인 수많은 사람들이 떠올랐다.

[수호신]의 능력을 얻기 위해 은가람을 호위하며, 승한은 셀 수 없이 많은 수의 사람들을 죽였다. 비록 그들이 먼저 승한과 은가람을 죽이기 위해 검을 빼어들었다고 해도, 직접 손으로 사람들을 베었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승한은 그렇게 적 병사들을 베어 넘기며 꿈일 뿐이라고 자위했다. 스테이지의 무대일 뿐, 현실이 아니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승한의 자기합리화에 불과했다. 외뿔 마족의 반응을 보면 나르샤라는 성화를 가진 마족은 분명 존재했다. 승한과 같은 성화를 가지고 있으며, 나르샤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마족. 그런 마족이 또 어디 있겠는가?

스테이지는 현실이었다.

1스테이지에서 만난 투견들과의 싸움, 2스테이지에서 만난 하이에나들, 3스테이지에서 만난 숲속의 괴물들, 4스테이지의 수많은 문들과 5스테이지의 병사들, 그리고 6스테이지에서 만난 나르샤를 비롯한 마족들까지.

승한의 머릿속에 스테이지의 과정들이 빠르게 스쳐갔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현실이라는 생각에 속이 메스꺼워졌다.

“대답하라! 네놈이 어떻게 그분의 이름을 아는 것이냐!”

외뿔 마족의 외침에 승한이 정신을 차렸다. 속이 울렁거렸지만 내색할 순 없었다.

그리고 승한은 스테이지의 모든 것들이 현실이라는 가정 하에 대답했다.

“내가 그녀의 목숨을 구했으니까. 아포피스를 봉인하기 위해 성화를 피워야 할 때, 그녀 대신 성화를 피운 게 바로 나다.”

한 눈에 봐도 나르샤와 외뿔 마족의 관계는 각별해보였다. 어쩌면 외뿔 마족이 모시고 있는 마족이 바로 나르샤일지도 모른다. 자칼과 가렝처럼 말이다.

물론 외뿔 마족이 승한의 말을 믿을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승한이 나르샤의 이름을 알고 부르고, 그녀의 은인이라는 점을 말하게 되면 외뿔 마족도 필시 동요할 것이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아포피스님을 봉인하기 위해 나르샤님이 성화를 피워? 그게 무슨 헛소리지?”

“헛소리라니?”

“나르샤님은 아포피스님을 봉인에서 깨우기 위해 바로 네놈, 성화를 가진 인간을 죽이고자 하신다는 말이다.”

외뿔 마족의 대답은 승한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나르샤가 아포피스를 봉인에서 깨우려 한다고?’

승한이 기억하는 나르샤는 자르고의 계략에 깨져가는 아포피스의 봉인을 바로잡으려 하던 마족이었다. 그녀는 스스로를 희생해 성화를 태워 아포피스를 봉인시키려 하고 있었다.

악마들 중 하나인 아포피스. 승한은 그와 직접 이야기를 해보고, 녀석을 직접 봉인시키기까지 했다. 그리고 나르샤는 자신을 희생하지 않고 아포피스를 봉인시켰다는 생각에 눈물을 흘렸다.

적어도 그 때 나르샤는 거짓이 아니었다. 진심으로 자신을 희생시킬 생각이었고, 한편으로는 죽어야만 한다는 생각에 슬퍼하고 두려워했다. 그리고 두려워 한 만큼 자신을 대신해 성화를 피워준 승한에게 고마워했다.

하지만 외뿔 마족은 지금, 나르샤가 아포피스의 봉인을 깨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성화를 피운 승한이 죽어야 했다.

그 말은 즉, 하나였다.

‘나르샤가 날 죽이려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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