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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마족
승한은 윤재가 타고 있는 주작의 위로 훌쩍 뛰어올랐다. 굳이 [귀신]을 사용하지 않아도 [불굴의 육체]가 3레벨까지 오르고 나자, 5미터 정도는 가볍게 뛰어오를 수 있었다.
“뿔을 세 개씩 가진 놈들이 많아진 것 같은데?”
“확실히 많아졌어요. 처음엔 백 마리 중에서 두 마리 정도였는데, 이제 열 마리는 되는 것 같아요.”
“다른 헌터들은 괜찮을까?”
“다른 헌터들도 이 녀석들을 잡으면서 능력의 레벨이 오른 만큼 괜찮을 거예요. 그리고 사실 위험한 놈은 네 개의 뿔을 가진 녀석이지, 세 개 정도는 다른 헌터들도 어렵지 않을 걸요?”
“하긴.”
윤재는 주작을 호계동 방향으로 이끌며 물었다.
“호계동에 보스가 있을지도 모르겠어.”
지금껏 호계동에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보스가 나타났었다. 한 번씩 괴물이 나타날 때마다 보스의 수는 줄어들었지만, 바로 지난번까지 호계동에는 보스가 항상 등장하곤 했다.
때문에 윤재는 호계동에 보스가 있으리라는 사실을 가정하고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두었다. 하지만 반대로 승한은 윤재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럴 것 같진 않아요.”
“왜?”
“지난번에는 석수동에 보스가 나타나지는 않았잖아요? 호계동에 보스가 자주 나타나긴 했어도, 꼭 여기 보스가 나타난다는 보장은 없어요. 그리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전 여기 보스가 있을 것 같진 않아요.”
“다른 이유는 없고?”
“네. 사실 그냥 감이에요.”
감이라고는 하지만 [불굴의 육체]가 3레벨에 오른 승한의 감이었다. 신체적인 능력 외에 오감을 비롯한 직감까지 날카롭게 강화해주는 [불굴의 육체]가 3레벨까지 오른 만큼, 승한의 직감은 마냥 무시할 수 있을 게 아니었다.
그리고 실제로 지금까지 승한의 감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만큼 윤재도 승한의 이런 말을 꽤 신빙성 있게 받아들였다.
“그렇다면 우리야 좋지.”
“보스는 없어도, 좀 짜증나는 녀석이 있네요.”
“뭐?”
승한은 그렇게 말하며 주작의 아래로 뛰어내렸다. 몸에 미약하게 성화를 두르고 있던 덕분에 주작의 아래로는 승한의 힘을 느낀 마족들이 잔뜩 모여들어 있었는데, 그 중 승한은 네 개의 뿔을 가진 마족을 발견했다.
쐐애애애액-!
6레벨의 [백검]이 쏘아졌다. 처음에 비해 훨씬 범위가 넓어지고, 위력도 강해진 [백검]이었다. 더군다나 [불굴의 육체]의 레벨이 3레벨까지 오르면서 검을 잡은 힘이 한층 더 강해져 이전보다 위력이 훨씬 강해져 있었다.
콰과과과과-.
네 개의 뿔을 가진 마족은 승한의 [백검]을 피해냈다. 지척에서 휘두른 검도 아니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날아온 검격도 피하지 못할 만큼 녀석은 둔하진 않았다.
물론, 다른 마족들은 예외였다.
촤아아아악-.
승한이 날린 검격에 마족들이 베어져 픽픽 쓰러졌다. 드문드문 피한 마족들도 있었지만 승한이 검을 휘두른 자리에 있던 마족들은 대부분 베어졌다.
[불굴의 육체]로 인해 승한의 감각은 처음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예민해져 있었다. 승한은 수많은 마족들 사이에 있는 네 개의 뿔을 가진 마족을 찾아내 먼저 공격에 나선 것이다.
카악-!
네 개의 뿔을 가진 마족은 다른 마족들과는 달랐다. 자아가 없고, 고통도 모르는 것 같은 다른 마족들과는 달리 알 수 없는 언어로 말하고 비명도 질렀다. 무엇보다 눈동자가 또렷하다는 점에서 괴물이라기보다는 진짜 마족같았다.
화륵-.
승한은 단숨에 성화를 일으켜 검에 둘렀다. 이전에는 제대로 다루기가 힘들었던 힘이었다. 하지만 [불굴의 육체]의 레벨이 오른 만큼, 이 정도쯤 성화를 사용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다.
성화의 힘이 갑자기 강해져서일까? 네 개의 뿔을 가진 마족은 잠시 주춤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내 다시 날카로운 어금니를 드러내며 손을 뻗어왔다.
“자아를 가지고 있든 그렇지 않든…….”
화악-!
승한의 검에 맺힌 성화의 불길이 더욱 거세졌다. 그 때서야 녀석은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는지 움직임을 멈췄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승한의 검과 검에 맺혀 있는 성화의 불길은 이미 마족의 바로 앞에 다가와 있었다.
승한의 검이 마족의 가슴에 박히고, 성화의 불길이 몸을 불태웠다.
네 개의 뿔을 가진 마족은 한 마리뿐이었다. 그 뒤로는 윤재가 계속해서 능력을 퍼부었고, 금방 마족들이 정리되었다. 호계동이 좁은 지역은 아니었지만, 정리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지난번보다 훨씬 빠르긴 하네. 비산동부터 호계동까지 정리하는데 두 시간도 안 걸린 것 같은데?”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죠. 시계가 멈춰 있으니까요.”
“대충 그 정도 된 것 같다, 이거지. 그나저나 네 말대로 역시 이번엔 호계동에 보스가 나타나지 않은 건가?”
호계동 지역을 전부 돌며 마족들을 끌어 모았지만 보스로 보이는 마족은 보이지 않았다. 네 개의 뿔을 가진 마족은 있었지만, 안석환에게 보고를 들은 외뿔 마족은 없었던 것이다.
“이번엔 확실히 보스의 수가 전보다 적은 것 같아요. 안석환에게 보고를 받은 바로는 안양 쪽에 나타난 보스가 석수동에 있는 녀석 하나뿐이라고 하더라고요.”
정부는 괴물들이 나타나는 수와 보스의 출현 지역에 대해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정보는 기본적으로 괴물과 가장 처음 싸워야 하는 헌터들에게 제공되었다.
괴물들은 인구밀도가 높은 경기권과 서울 지역에 가장 많이 나타나는 편이었다. 보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의 보스들은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나타났다. 지방을 통틀어 보스가 나타났던 적은 가장 처음 스컬레톤이 나타났을 때를 제외하고는 없었다.
그리고 보스의 수는 스컬레톤과 리자드맨, 거미, 매번 괴물이 나타날 때마다 줄어들었다. 물론 그에 비례할 만큼 훨씬 더 강해졌지만, 기본적으로 수가 줄어든다는 점은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안양 지역에 한 마리. 그렇다면 서울 지역에도 아마 몇 마리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전국적으로 따져도 아마 열 마리 정도가 나타난 정도이리라.
“석수동에 있는 보스를 잡고 나면, 서울로 가야겠어요.”
“서울까지?”
“네. 그나마 서울은 헌터들이 많은 편이지만… 그래도 보스를 잡을 수 있을 만큼 실력이 뛰어난 헌터는 많이 없을 거예요. 당장 차재훈씨만 하더라도 안양시를 넘어, 서울 지역에서도 이름이 알려져 있는 헌터인데 당할 정도면 안 봐도 뻔하죠.”
“하긴, 그건 그렇겠네.”
윤재도 승한의 말에는 동감했다. 만약 다른 헌터들이 보스를 잡기가 힘들고, 승한이 수월하게 보스를 잡아낸다면 여유가 있는 승한이 나서는 게 나을 것이다.
호계동에서 석수동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몇 분 걸리지 않았다. 마족들을 유인하면서 움직이지 않고 주작이 전속력으로 날아가자 웬만한 현대 과학으로 만들어진 이동수단은 명함도 내밀지 못할 정도였다.
승한은 주작을 타고 이동하던 중, 전음구를 꺼내 차재훈에게 연락했다.
“차재훈씨. 지금 연락 가능하십니까?”
-…….
대답이 없었다. 승한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몇 번 더 이름을 불러 봤지만 여전히 메아리는 돌아오지 않았다.
‘설마?’
승한의 머릿속에 거미들에게 죽어버린 차상민과 이주호, 박향근이 떠올랐다. 그 때도 지금과 같이 전음구를 통해 연락을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물론 단정 지을 순 없었다. 차재훈이 전음구를 꺼내기가 어려울 만큼 긴박한 상황일 수도 있고, 싸우던 도중 전음구를 잃어버렸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물론 어쨌건 급박한 상황이라는 건 변함이 없었다.
“차재훈에게 마지막으로 연락이 온 곳이 석수역이라고 했지?”
“네.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만요.”
“일단 안양천을 따라서 움직일까? 괴물이면 몰라도, 차재훈씨가 네 힘에 반응해서 우리에게 오지는 못할 거 아니야?”
“어차피 남은 괴물도 거의 없는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차재훈씨와 이소영씨가 보스가 나타나기 전에 꽤나 많이 정리를 한 것 같아요.”
석수동 곳곳에는 마족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주먹을 사용하는 차재훈의 능력인지 머리가 날아가거나 배에 큰 구멍이 뚫려 있었는데, 머리가 남아있는 마족들 중에는 세 개의 뿔을 가진 마족이 꽤 많이 보였다.
“……여긴 특히 세 개의 뿔을 가진 놈들이 많은 것 같은데요?”
“그러게. 고생 좀 했겠어. 차재훈씨가 제법 실력이 있다고 알려져 있긴 했었는데, 소문보다 더 대단한 모양이야.”
승한은 윤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많은 마족들을 쓰러뜨린 게 과연 차재훈 혼자서 한 일일지, 아니면 이소영이 죽기 전에 만든 작품일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의 실력이 제법이라는 건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문제는 그가 살아 있기나 하느냐는 거죠.”
“글세… 그건 확신을 못 하겠네.”
그렇게 승한과 윤재가 안양천을 따라 주작을 타고 움직이려 할 때였다.
-저, 살아 있습니다!
차재훈의 목소리가 승한의 머릿속에 올렸다. 전음구를 이용해 연락을 한 것이다.
승한은 서둘러 주머니에 전음구를 꺼내 답했다. 차재훈의 목소리가 꽤나 다급하게 느껴졌다.
“지금 어디십니까?
-지금 석수역 바로 옆에 있는 은상교회 안에 숨어있습니다. 겨우, 겨우 도망쳤습니다.
“은상교회요? 알겠습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석수역 옆에 있는 교회라면 방금 전 승한과 윤재가 지나쳐 온 곳이었다. 윤재는 승한의 말을 듣고는 곧장 주작의 이동 방향을 바꿨다.
잠시 후, 은상 교회 위로 향한 주작이 땅 아래로 내려앉았다. 근처에는 마족들이 보이지 않았는데, 시체조차 보이지 않는 걸 보면 차재훈이 쓰러뜨리기보다는 정말로 정신 없이 도망쳐 온 모양이었다.
은상교회 앞에 나타난 주작을 확인한 차재훈이 교회 안쪽에서 창문을 부수고 뛰쳐나왔다. 승한은 차재훈의 몰골을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괜찮으십니까?”
“그런대로 움직일 만 합니다.”
차재훈의 몸에는 작은 생채기들이 무수히 나 있었고, 어깨와 허리에 작다고 할 수 없는 구멍이 뚫려있었다. 무엇보다 오른쪽 귀 아랫부분이 떨어져 나가서 피가 끈적끈적하게 굳어있었는데, 자칫 잘못했으면 머리가 날아갈 뻔한 상처였다.
“괴물들은 어디 있습니까?”
“여기서 꽤 떨어져 있습니다. 안양천을 따라서 내려가면 보이는 아파트 단지쪽에서 처음 녀석을 만났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차재훈은 살짝 몸을 떨었다. 아무래도 보스와 마주하고 싸웠던 때가 꽤나 두려운 기억으로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어떤 녀석입니까?”
“뿔이 하나밖에 없는 녀석이었습니다.”
“그건 압니다. 안석환씨에게 전해 들었거든요. 요점은 얼마나 강한지, 어떤 능력을 사용하는지나… 다른 괴물들은 얼마나 남아있는지, 이런 것까지 세세히 알려 주십시오.”
“따로 사용하는 능력 같은 건 없습니다. 그냥 강합니다. 다른 괴물들보다 훨씬요. 굳이 하나 특이한 점은 꼽자면… 우리들처럼 말을 할 줄 압니다.”
“말을요?”
“네. 처음 듣는 언어인데, 이상하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게 그 녀석의 능력이라면 능력이죠.”
승한은 스테이지 속에서 만난 마족들이 알 수 없는 언어로 말을 걸었던 게 생각났다. 아무래도 그와 비슷한 능력, 혹은 현상인 듯했다.
네 개의 뿔을 가진 마족은 무언가 말을 해도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는데, 차재훈의 말대로라면 보스와는 어쩌면 대화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딱히 나눌 말도 없었지만 말이다.
“그 외에는요?”
“그 외에는… 계속해서 저에게 걸었던 말이 있었습니다. 그 녀석이 저와 대화를 할 생각이 없었다면 아마 전 지금쯤 살아있지 못했겠죠.”
“말을 걸어요? 뭐라고요?”
“그게…….”
차재훈은 아리송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성화를 가진 인간이 어디 있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