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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마족
“그래야겠네. 석수동이라… 차라리 이렇게 될 거였으면 아예 호계동에서 시작할 걸 그랬네.”
승한과 윤재는 비산동에서부터 안양동을 거쳐 호계동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보스가 나타났다는 지역은 석수동으로 호계동과는 정 반대 방향이었다.
이 길대로 가게 되면 호계동까지 내려갔다가 왔던 길을 돌아와야 한다. 주작을 타고 움직이면 이동 시간을 그리 오래 걸리지 않겠지만, 그대로 번거롭기는 마찬가지였다.
“차라리 지난번처럼 너만 먼저 보스를 잡으러 갈래?”
“형은요? 불 네 개를 가진 놈이 나타나면 어떻게 하려고요?”
“하긴… 지난번과는 달리, 어렵긴 하겠네.”
거미들이 나타났을 때 승한이 윤재를 두고 호계동으로 갈 수 있었던 이유는 주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회복과 방어 능력을 겸비한 그녀와 함께라면 적어도 위험할 일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주희가 없는 지금, 윤재를 혼자 남겨두고 떠나기는 불안했다. 윤재도 충분히 실력이 뛰어나고, 네 개의 뿔을 가진 마족을 감당할 수준이 된다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럼 속도를 한참 더 높여야겠네. 상대해보니 어때? 네 개의 뿔을 가진 괴물, 몇 놈까지 상대할 수 있겠어?”
“사실… 제대로만 싸우면 몇 놈이든 상관없어요.”
네 개의 뿔을 가진 마족은 분명 움직임도 빠르고, 피부도 단단했다. 하지만 승한의 검이 통하지 않는 것도 아닐뿐더러, 이제는 [강화]가 [증폭]이라는 두 번째 능력으로 각성했고, [수호신], [백검]등의 레벨이 훨씬 더 올라갔다.
무엇보다 승한은 성화가 가진 힘을 믿었다. 당장 네 개의 뿔을 가진 마족을 상대로 성화를 사용하자, 녀석은 맥없이 힘을 잃고 죽었다. 그 때에는 힘을 조절하고자 성화를 조금 사용했을 뿐이었는데, 만약 힘을 아끼지 않고 성화를 부린다면 그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마족을 압도할 수 있을 것이다.
“몇 놈이든 상관없어? 허, 이거 진짜 대단하네.”
“말이 그렇다는 거죠. 성화를 남발하면 금방 힘이 빠질 걸요?”
“그래도 세 마리까지는 무난하지 않겠어? 그리고 이제 [불굴의 육체]레벨도 올랐을 거 아냐?”
“뭐… 그렇긴 하죠.”
승한은 아직까지 자신이 성화를 얼마나 다룰 수 있을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불굴의 육체]가 2레벨로 오르면서, 이전보다 힘과 체력이 훨씬 좋아졌다는 느낌이 들긴 했다. 단 하나의 레벨 차이이긴 하지만 128000타임 포인트나 소모해서 올린 레벨인 만큼 그 효과를 톡톡히 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아직까지 성화를 완전히 다룰 수 있을 정도는 아닐 것이다. 승한의 예상으로는 대략 3레벨 정도 되면 1레벨의 성화를 제대로 다룰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뭐, 2레벨이 되고부터는 빌빌거리진 않지만.’
[불굴의 육체]가 2레벨이 되고부터는 성화를 간단하게 다루는 정도는 별 무리가 없어졌다. 1레벨 때에는 마족들을 끌어 모으느라 성화를 사용하면서도 몸에 무리가 간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말이다.
아마도 [백검]에 성화를 묻혀 날리는 것도 이제는 어느 정도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그 기술이 있다면, 보스도 충분히 잡을 수 있다.
“어서 움직이죠.”
**
“허억. 허억.”
차재훈은 석수동에 있는 한 건물 안으로 숨어들었다. 바깥에 있는 마족들에게서 몸을 숨기고, 피가 묻은 손으로 땀을 닦아냈다.
“젠장.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녀석들이……”
바깥에 돌아다니는 마족들 중 대부분은 차재훈이 충분히 처리가 가능한 녀석들이었다.
차재훈은 실력이 뛰어난 헌터였다. 윤재와 비교해서도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강력한 한 마리의 마족과의 싸움이라면 차재훈이 윤재보다 더 나을 것이다.
세 개의 뿔을 가진 마족은 물론, 네 개의 뿔을 가진 마족도 쓰러뜨릴 만큼 그는 실력이 있었다. 어쩌면 안양시 내에서 승한과 안석환을 제외하면 그가 가장 실력이 뛰어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그는, 파트너라고 할 수 있었던 헌터 이소영의 죽음을 방관하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그 자리에 계속 있었다면, 차재훈도 죽었을 것이다.
‘그런 녀석을 우리 둘이서 어떻게 하란 말이야?’
하나의 뿔을 가진 마족.
차재훈은 처음 녀석을 봤을 때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겉으로 보이는 모습 때문에 무시했다. 뿔의 수가 많을수록 점점 더 강해지는 마족들의 성격상 한 개의 뿔을 가진 마족은 가장 약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 대, 소영이가 한 말을 들었다면…….’
한 개의 뿔을 가진 마족을 발견했을 때, 이소영은 불길하다며 도망가자고 했다. 그 때 그녀는 꽤나 겁을 집어먹은 상태였다.
하지만 차재훈은 자신이 있었다. 설령 네 개의 뿔을 가진 마족보다 더 강한 마족이라고 해도, 설령 보스라고 해도 지지 않을 자신이 말이다.
그래서 정면으로 도전했다. 하지만 뿔이 하나뿐인 외뿔 마족은 혼자가 아니었을 뿐더러, 네 개의 뿔을 가진 마족보다 훨씬 강했다.
결국 이소영은 죽었고, 차재훈은 능력을 사용해 겨우 도망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어깨에 큰 상처를 입었고, 지금은 겨우겨우 숨어있는 상태였다.
그런 차재훈이 기대를 걸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
‘김승한 헌터가 지원을 온다고 했지?’
안양 지역, 어쩌면 전국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날지도 모른다고 평가받는 헌터, 김승한. 그가 금방 지원을 오기로 되어있었다.
승한에 대한 이야기는 차재훈도 몇 번씩이고 들어본 바가 있었다. 그가 얼마나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안양뿐만이 아니라 서울 지역에까지 소문이 파다했다.
어쩌면 그와 힘을 합쳐 외뿔 마족을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해서든 그가 올 때까지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터벅-.
그 때, 차재훈이 숨어 있는 건물 안으로 두 개의 뿔을 가진 마족이 들어왔다. 속으로는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녀석이라고 생각하며 차재훈은 건물 위로 더욱 숨어들었다.
터벅, 터벅-.
그 때, 하나 둘 마족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그 중에는 세 개의 뿔을 가진 마족도 몇 마리 섞여있었다. 처음에는 한 마리도 보기 힘들었던 녀석이 이제는 제법 숫자가 되었다.
‘몇 놈이나 되는 거지?’
차재훈은 몸을 웅크려 숨은 채 건물 안으로 들어온 세 개의 뿔을 가진 마족들의 수를 세었다. 하나, 둘 세어보자 두 개의 뿔을 가진 마족이 스물이었고, 세 개의 뿔을 가진 마족이 다섯이었다.
‘왜 저렇게 많아진 거지?’
그 때, 차재훈의 머릿속에 안석환이 전해준 정보가 떠올랐다.
‘뿔의 개수가 늘어난다고 했던가?’
두 개의 뿔을 가진 마족이 세 개의 뿔을 가진 마족으로 변하고, 세 개의 뿔을 가진 마족이 네 개의 뿔을 가진 마족으로 변한다. 어쩌면 시간이 갈수록 마족들의 수준이 한 차례씩 올라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때, 네 개의 뿔을 가진 마족이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외뿔 마족을 제외해도 네 개의 뿔을 가진 마족은 차재훈도 쉽게 볼 수 없는 상대였다.
“……좆 됐다.”
그 순간, 마족들의 시선이 일제히 차재훈에게로 향했다. 들켰다는 생각에 그가 막 뒤를 돌았다.
“아, 진짜 자비 없네.”
익숙하고 두려운 녀석이었다. 차재훈의 뒤에 있던 마족은 단 하나의 뿔을 가지고 있었다.
이소영을 죽이고, 차재훈이 겁에 질려 도망치게 만든 마족들의 보스. 기껏 간신히 도망쳤건만, 녀석은 다시금 차재훈의 앞으로 나타나 있었다.
“묻겠다.”
외뿔 마족은 차재훈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곤 차재훈과 이소영에게 방금 전부터 해오던 질문을 계속해서 반복했다.
“성화를 가진 인간은 어디에 있지?”
**
승한과 윤재는 그 뒤로도 계속해서 2개 동에 있는 마족들을 계속해서 몰아서 사냥했다. 안양3동과 4동을 정리하고, 안양5동과 6동까지를 모두 정리했을 때 승한은 모아두었던 타임 포인트를 모두 정상했다.
[256000타임 포인트를 소모하였습니다.]
[‘능력 - 불굴의 육체’의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승한은 다른 무엇보다 [불굴의 육체]의 레벨을 올려 성화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강화]는 이미 10레벨을 달성했고, [수호신]을 올려 방어력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어차피 [불굴의 육체]의 레벨이 올라가면 기본적인 방어력은 확보하게 된다.
“확실히… 2레벨과 3레벨은 차이가 큰데?”
1레벨의 [불굴의 육체]와 2레벨은 체감 상 큰 차이가 있었다. 검에 실리는 힘도 다르고, 체력과 힘의 운영도 모두가 달랐다. 그리고 2레벨과 3레벨은 더욱 큰 차이가 있었다.
소모하는 타임 포인트에 비례해서 능력의 차이가 크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 차이가 있을지는 몰랐다.
‘그나저나 세 개의 뿔을 가진 마족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 같은데…….’
네 개의 뿔을 가진 마족은 그 뒤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세 개의 뿔을 가진 마족들의 수는 점차 뒤로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게 보였다.
중간 중간 싸우다 보면 두 개의 뿔을 가진 마족의 이마에 뿔이 하나씩 생겨나는 게 보이기까지 했다. 마족들이 점차 진화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속도가 생각보다 훨씬 빨랐다.
‘덕분에 타임 포인트 획득 속도는 더 빨라졌지만.’
세 개의 뿔을 가진 마족들은 1만이 넘는 타임 포인트를 주었다. 덕분에 승한은 빠르게 타임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었고, [불굴의 육체]를 3레벨까지 올릴 수 있었다.
‘[수호신]의 발동 조건은 특정 상황이나… 특정한 마음가짐인 건가?’
승한은 마족들과 싸우면서 계속해서 [수호신]의 문양을 검에 그리려고 노력했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지금까지 두 차례 동안 [수호신]의 문양이 검에 그려졌던 때를 떠올렸다.
공통점을 찾으라고 한다면 하나뿐이었다. 누군가를 지키려 검을 휘두른 순간, [수호신]의 문양이 검에 그려졌다.
‘하긴, 애초에 [수호신]은 나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능력. 나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방패나 몸에 문양이 그려지는 거야 당연하겠지. 하지만 검은…….’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검을 휘둘렀을 때, [수호신]의 문양은 그려지지 않았다. 반면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검을 휘둘렀을 때 [수호신]의 문양이 나타났다.
지금껏 몸과 갑옷, 방패에 문양이 그려진 이유는 자기 스스로라도 몸을 ‘지키지’위해 힘을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즉, [수호신]의 문양은 지키고자 하는 의지에 반응해 나타나는 힘이었다.
‘마인드의 차이로 나타나는 힘이라…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사용할 수도 있겠어.’
[수호신]의 문양이 검에 나타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는 꽤나 큰 차이가 있었다. 단순한 방어 능력이었던 힘이 살상력에도 힘을 발휘하는 것인 만큼, 능력의 효율이 두 배 정도는 차이가 났다.
물론 실제로 지킬 사람이 없는데 누군가를 지키겠다며 힘을 사용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부터 승한이 검을 휘두르면서 차차 생각을 바꿔나가면 될 문제였다.
잠시 타임 포인트를 사용하고 나자 윤재가 땅 아래로 내려왔다. 주위에 타고 있는 백염의 불꽃들은 쓰러져 있는 마족들의 시체를 태우며 이글거렸다.
“안 지치냐?”
“이 정도로는요.”
“그래? 그럼 바로 호계동으로 가면 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