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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마족
[보유 타임 포인트 : 213135p]
절로 흐뭇해지는 타임 포인트였다. 세 개의 뿔을 가진 마족을 네 마리나 죽이고 네 개의 뿔을 가진 마족을 잡은 덕분이었다.
그밖에도 다른 일반 마족들을 백 단위에 가깝게 죽였다. 그 덕분에 지금까지는 상상도 하지 못한 어마어마한 타임 포인트를 일거에 획득할 수 있었다.
‘잘하면 [수호신]을 다음 능력으로 올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획득한 타임 포인트의 양이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한 차례를 거듭할수록 괴물의 수준이 올라가면서 동시에 획득할 수 있는 타임 포인트가 비약적으로 올라갔는데, 그런 만큼 첫 번째 능력들은 레벨을 올리기가 크게 어렵지 않아졌다.
‘[백검]을 10레벨까지 올리는 건 무리겠고… 목표는 [수호신]과 [강화]를 10레벨까지 올리고, [불굴의 육체]를 3레벨까지 올리는 게 되겠어.’
승한은 목표를 조금 높게 잡았다. 그리고 그 중 첫 걸음은 역시 [강화]였다.
[12800타임 포인트를 소모하였습니다.]
[‘능력 - 강화’의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25600타임 포인트를 소모하였습니다.]
[‘능력 - 강화’의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51200타임 포인트를 소모하였습니다.]
[‘능력 - 강화’의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능력 - 강화’ 10레벨을 달성하였습니다.]
[‘능력 - 강화’가 ‘능력 - ’증폭‘으로 변화합니다.]
“[증폭]?”
승한의 머릿속에 새로운 능력에 대한 지식이 들어왔다. 승한은 새로운 능력인 [증폭]에 대해 이해하더니 중얼거렸다.
“……역시 두 번째 능력은 하나같이 전부 사기라니까.”
[증폭]은 [강화]와 비슷하면서도 그 상위의 능력이라고 볼 수 있었다.
[강화]는 승한이 원하는 사물, 몸과 같은 기능을 더욱 단단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주는 힘이었다. 그 힘을 통해 승한은 몸과 검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고, 힘줄 하나하나를 강화해 힘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강화]의 다음 능력인 [증폭]은 [강화]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강화]가 단순히 힘을 더해주고, 사물을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능력이라면 [증폭]은 있는 그대로의 힘 자체를 이끌어내는 힘이었다. 즉, 한 순간 힘을 소모하는 것으로 한계 이상의 힘을 낼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승한이 가진 능력의 힘을 더욱 이끌어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 [수호신]의 방어력이 더욱 단단해지고, [백검]의 범위나 위력이 더욱 강해진다. 심지어 성화의 불길까지도 더욱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힘과 방어력과 같은 능력만이 아닌, 승한이 가진 모든 능력을 몇 단계씩 끌어 올리는 능력. 그것이 바로 [강화]의 다음 능력인 [증폭]이었다.
승한은 다음으로 [수호신]과 [백검]의 레벨을 올리는데 타임 포인트를 투자했다. [수호신]의 레벨을 2개, [백검]의 레벨을 3개 더 올리자 [수호신]의 레벨이 8, [백검]의, 레벨이 6까지 상승했다.
[보유 타임 포인트 : 1935p]
‘바닥까지 싹싹 긁었군.’
비어버린 타임 포인트를 생각하니 마음이 휑했지만 어차피 금방 다시 모을 수 있을 것이다. 능력의 레벨을 모두 올린 승한은 윤재가 있는 자리로 뛰어갔다.
“형, 좀 괜찮아요?”
승한이 도착하자 윤재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괜찮아. 걱정할 것 없어.”
빈 말이 아니라 윤재는 정말로 괜찮아보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힘들어 보이는 기색이 역력했는데, 지금은 얼굴색이 많이 돌아와 있었다.
“두 번째로 올린 능력이 [강인함]이 될 줄은 몰랐다. 뭐, 1스테이지 능력인 만큼 타임 포인트가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투자 했어요?”
“그래. 근데 두 번째 능력은 너와는 조금 다르던데? 네가 얻은 [강인함]의 두 번째 능력은 [불굴의 육체]라고 했지?”
“네. 형은요?”
“난 [불굴의 의지]라는 능력인데? 몸이 확 단단해지거나 그런 느낌은 없는데… 대신 능력의 사용이 좀 더 편안해진 느낌이야.”
[불굴의 의지]라면 [불굴의 육체]와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이었다. [불굴의 육체]가 직접적인 힘과 방어력, 근접 전투에 필요한 능력이라면 [불굴의 의지]는 윤재처럼 능력의 사용에 중점을 두고 있는 헌터에게 더욱 필요한 능력이었다.
지금껏 윤재가 [강인함]에 타임 포인트를 투자하지 않았던 건 소모하는 타임 포인트에 비해서 효율이 적었기 때문이었다. 승한은 맷집이나 근력과 같은 힘이 검을 휘두르거나 하는 근접 전투에 필수적이었지만 윤재에게 [강인함]은 그저 능력을 사용하는데 필요한 힘을 보충하는 용도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능력을 사용하는데 힘이 부족함을 느낀 윤재는 마족들을 잡고 얻은 타임 포인트를 [강인함]에 투자했다. 1스테이지의 능력인 [강인함]은 다른 능력들에 비해 투자해야 할 타임 포인트가 비교적 적어서 금방 10레벨까지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결과, 두 번째 능력은 승한이 가진 능력과는 다른 능력이 나왔다. 직접적인 전투에 필요한 능력이 아닌, 능력을 사용하는데 필요한 힘을 중점으로 한 능력이 말이다.
“어쩐지 [강인함]만 모든 헌터들이 공통되게 주어졌다 했더니, 두 번째 능력부터 차별이 있었네요.”
“그러게 말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투자를 할 걸 그랬어. 아주 날아갈 것 같아.”
완전히 힘이 회복된 건 아니더라도 능력을 사용하기에 무리는 없어보였다. 윤재는 다시금 손을 뻗어 허공에 주작을 불러냈다.
주작 없이 움직여야 하나 걱정했던 승한은 다행히 윤재가 능력을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되자 반색했다. 주작의 기동력이 있는 것과 없는 것에는 그 정도로 큰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괜찮겠냐? 지금처럼 계속 해도. 위험하지 않겠어?”
“이 정도 속도는 나와야 해요.”
“……아니, 내 말은 내가 위험할 것 같다고. 너야 괜찮겠지만.”
“형도 힘이 떨어지지만 않았어도 위험할 일은 없지 않았어요? 네 개의 뿔이 가진 녀석이 강하긴 해도, 형 능력이면 충분히 몸 정도는 보호할 수 있잖아요?”
“보호할 수는 있지. 하지만 이기긴 힘들 것 같더라. 승한이 너니까 이겼지.”
네 개의 뿔을 가진 마족은 확실히 강했다. 괜히 보통 마족의 30배나 되는 타임 포인트를 주는 게 아니었다.
녀석의 능력은 확실히 보통 헌터들의 수준을 상회했다. 세 개의 뿔을 가진 마족 정도는 보통 헌터들도 감당할 수 있겠지만, 네 개의 뿔을 가진 녀석은 윤재라고 해도 일대일로 승산을 장담하기 어려웠다.
적어도 윤재와 같은 실력을 가진 헌터 둘은 있어야 안전하게 잡을 수 있었다. 그 정도면 괴물들의 보스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분명한 건, 보스는 아니야.’
승한은 분명히 보았다.
세 개의 뿔을 가진 마족의 머리 위로, 하나의 뿔이 더 생겨나는 것을. 그리고 그와 동시에 녀석에게 자아가 생겨나고, 힘이 훨씬 강해졌다.
지금까지 만난 보스들은 다른 괴물을 잡아먹을지언정 보통 괴물들이 진화한 형태는 아니었다. 당장 거대 거미만 하더라도 색은 같더라도 다른 거미들과 덩치에서부터 확연히 구분되었다.
그런 걸 보면 세 개의 뿔을 가진 마족이나 네 개의 뿔을 가진 마족은 두 개의 뿔을 가진 보통 마족들이 진화한 형태라고 볼 수 있었다. 다른 거미들을 잡아먹고 진화한 붉은 거미처럼 말이다.
승한은 자신이 알아낸 사실을 서둘러 안석환에게 보고했다. 세 개의 뿔과 네 개의 뿔을 가진 마족이 나타났다는 사실보다도, 그들이 원래는 두 개의 뿔을 가진 마족들이 진화한 형태라는 것을 서둘러 알릴 필요성이 있었다.
-여러 개의 뿔을 가진 괴물들이 원래는 두 개의 뿔을 가진 녀석이었다는 말씀입니까?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뿔이 세 개였다가 네 개로 진화한 녀석도 있으니, 두 개에서 세 개로 진화한 녀석도 있을 수 있지 않습니까?”
-으음, 그렇군요. 전투 중에 갑자기 뿔이 생겨났다는 말이죠?
“네. 두 개는 몰라도, 세 개의 뿔을 가진 괴물을 상대할 때는 주의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갑자기 뿔이 하나 더 생겨나서 강해질 수도 있으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럼 다른 헌터들에게 그렇게 알리…….
말을 잇던 안석환의 목소리가 끊어졌다. 승한은 무슨 일인가 싶어 말했다.
“왜 그러십니까?”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렇게 일 분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아무래도 보스가 나타난 것 같습니다.
“네? 보스가요?”
-네. 보스가 나타난 지역은 이번에도 석수동입니다. 차재훈씨와 이소영씨가 조우했는데, 차재훈씨는 목숨을 건졌고 이소영씨는 죽은 모양입니다.
“으음… 보스를 잡은 겁니까?”
-아닙니다. 차재훈씨도 간신히 도망친 모양입니다. 방금 전, 지원 부탁이 들어왔습니다. 도저히 그 혼자서는 잡을 방법이 없다고…….
“그 정도로 강하답니까?”
-네. 자신과 같은 헌터가 두 명은 더 필요할 것 같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시간 내에 그만한 지원을 보낼 여력이 되는 곳은 현실적으로 힘듭니다.
“저보고 지원을 가 달라는 소리군요.”
-네. 맞습니다. 승한씨와 윤재씨가 맡으신 구역이 넓다는 것은 알지만, 가능한 서둘러 주시면 좋겠습니다.
승한과 윤재, 두 사람이 맡은 구역은 안양시에 있는 헌터들 중 가장 넓은 범위에 해당했다. 주희가 없는데 그녀가 원래 배정받았던 구역이 그대로 남아있었고, 차상민, 이주호, 박향근이 맡았던 호계동 지역까지 그대로 승한과 윤재의 구역으로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에 따른 보상은 그대로 승한과 윤재의 몫이었지만 그래도 두 명밖에 되지 않는 인원에 비해 범위가 넓다는 점은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윤재가 가진 능력으로 인해 기동력이 확보된 만큼, 승한과 윤재만큼 빠르게 괴물들을 정리할 수 있는 헌터 팀도 없었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지원을 가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아, 참! 이번 괴물의 보스는 조금 특이하게 뿔이 하나라고 합니다.
“……뿔이 하나라고요?”
의외의 정보였다. 보스라면 뿔이 다섯 개쯤은 되는 녀석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더 적었다.
‘하긴, 오히려 하나라니까 더 보스 같네.’
만약 뿔이 다섯 개였다면 여섯 개를 가진 녀석도 있지 않았을까 의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뿔이 하나뿐인 마족이라면 다른 마족들과 판이하게 구분되는 특징임에는 분명했다.
“알겠습니다. 기억해 두겠습니다.”
-그럼 건투를 빕니다. 저도 서두르겠습니다.
안석환과의 연락은 거기에서 끊어졌다. 승한이 대화를 마치고 전음구를 주머니에 넣자, 윤재가 물었다.
“보스가 어디 나타났데?”
“석수동에요. 이소영 헌터가 당한 모양이에요.”
“이소영씨가?”
“아는 사이에요?”
“인사 정도는 하는 사이지. 몇 번 안면을 트기도 했었고. 석수동과 우리 집은 그렇게 멀지 않거든.”
이렇게 보면 윤재가 아는 헌터가 꽤 많은 것 같았다. 먼저 안석환과 안면을 튼 사람도 윤재였고, 그밖에 다른 헌터들과도 꽤나 교류를 활발히 하고 있었다.
“뿔이 하나라고?”
“네. 아무래도 일반 괴물들 중에서는 뿔이 네 개인 녀석이 끝인 모양이에요. 하긴, 다섯 개 여섯 개씩 달고 있는 놈은 상상이 안 되긴 하네요.”
“그 놈은 또 얼마나 강하려나… 뿔이 네 개인 놈만 하더라도 지긋지긋한데.”
윤재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렇게 걱정하는 말투가 아니었다. 입밖으로 꺼낸 말과는 달리, 승한이라면 충분히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아무래도 속도를 더 높여야 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