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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마족
[백검]의 검격이 마족 세 마리의 허리를 길게 베어냈다. 피를 뿌리며 바닥에 쓰러진 마족은 모두 죽지는 않았는지 타임 포인트는 주지 않았지만, 더 이상 싸울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승한은 한 번으로 멈추지 않았다. 공격의 범위가 닿는 곳에 있는 마족들을 향해 연거푸 [백검]의 검격을 날려댔다. 그렇게 세 마리의 마족이 더 쓰러질 쯤, 마족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형! 엄호 부탁해요!”
“오케이!”
지이이잉-.
승한의 방패와 갑옷에 [수호신]의 문양이 떠올랐다. 검에는 [강화]의 빛이 머금어졌다. 성화는 마지막을 위해 아껴두었다.
승한의 몸이 [귀신]을 이용해 미끄러지듯 떠올랐다. 승한은 달려 들어오는 마족들을 보며 [백검]을 이용해 검을 휘둘러 검격을 날렸다.
촤아아악-!
전방에 있는 마족 두 마리의 목이 베어졌다. [백검]의 검격은 검과 가까이 있는 상대에게 더욱 큰 타격을 입힐 수 있었다. 거리가 있는 마족은 허리를 반쯤 베어내는 정도였지만, 거리만 가깝다면 완전히 베어낼 수도 있었다.
[1250타임 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1250타임 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검은 거미들이 250타임 포인트를 주었다면, 마족들은 정확히 그 5배인 1250타임 포인트를 주었다. 한 마리 한 마리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타임 포인트를 주었는데, 승한은 들어오는 타임 포인트를 신경쓸 여력이 없었다.
‘빨라!’
마족들의 진짜 능력은 방어력이 아니었다. 잘 베어지지 않는 방어력은 덤이고, 진짜는 움직임이었다. 승한이 6스테이지에서 만난 마족들과 같이 빠른 움직임과 날카로운 손톱을 이용한 매서운 공격이 특징이었다.
사방에서 달려든 마족들이 순식간에 승한의 옆과 등 뒤를 점했다. 앞을 신경 쓰다 보면 옆과 뒤가 빌 수밖에 없었다.
승한은 계속해서 앞에서 달려드는 마족들을 [백검]을 이용해 베어내며 옆과 뒤에서 달려드는 마족을 향해 돌아섰다. 몸을 반대로 회전하며 방패를 크게 휘둘렀는데, 그 사이에 마족 하나의 손이 승한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피잇-.
피가 나지는 않았지만 살갗이 조금 벗겨졌다. 스친 정도이긴 했지만 [수호신]의 방어력이 승한의 몸을 완전히 지켜주지는 못한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승한은 눈을 번뜩이며 [귀신]을 이용해 위로 매끄럽게 뛰어올랐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 승한을 둘러 싸고 있던 마족들이 한 눈에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 승한의 [백검]이 범위를 공격했다.
콰과과과과과-!
승한의 검격이 수십, 수백 갈래로 쪼개어져 전방 5미터 내를 휘갈겼다. 그 범위 안에 있던 마족들은 갈갈이 베어지고 토막이나 사방으로 흩어졌다. 원래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위력적인 일격이었다.
쉼 없이 승한의 머릿속으로 타임 포인트 획득 메시지가 떠올랐다. 하지만 처음과는 달리 마족들을 상대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졌다. 시간이 갈수록 마족들이 승한의 [백검]을 눈치 채고는 기민하게 대처했기 때문이었다.
승한의 [백검]은 마치 길이가 길게 늘어난 검과 같았다. 아무리 멀로 검격을 뿌릴 수 있다고 해도, 그 범위는 어디까지나 검이 휘둘러지는 궤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더군다나 검격이 날아가는 속도는 마족들이 보고 충분히 반응할 수 있을 정도였다. 처음에는 무형의 기운이 검격이 되어서 쏘아진다는 사실을 몰랐기에 당했을 뿐이지, 몇 번 동료들이 당하는 모습을 봐서인지 이제는 그렇게 쉽게 당해주지 않았다.
그렇게 마족들이 거리를 좁히며 다시금 승한을 덮쳐올 때쯤.
“형, 지금!”
“오케이!”
화아아악-!
하늘에서 화염의 비가 쏟아졌다. 다수의 괴물들과의 싸움에서 최적의 효과를 보여주는 윤재의 능력, 여우비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여우비와는 사뭇 달랐다. 지금껏 윤재가 사용하던 여우비는 보통의 불과 같은 붉은색이었다면, 이 순간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는 여우비는 새하얀 흰색이었다.
콰아아아아아-.
하늘에서 떨어진 무수히 많은 흰색의 백염(白炎)은 마족들의 위로 쏟아졌다. 마족들은 승한을 노리다 발고 하늘에서 쏟아진 백염을 피해 움직였으나, 반응이 늦은 마족들은 백염에 머리가 타 죽거나 심한 화상을 입었다.
이전과는 사뭇 다른 화력이었다. 마족들의 방어력을 뚫는 정도로도 모자라, 절반 가량의 마족들이 단숨에 목숨을 잃을 정도의 위력. 하지만 윤재의 백염은 승한에게는 조금의 피해도 주지 않았다.
백염(白炎). 그것이 바로 윤재의 6스테이지 능력이었다.
그것은 어떤 하나의 공격 능력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윤재가 사용하는 모든 능력에 적용이 가능한, 이른바 공격 버프 능력에 가까웠다.
모든 불을 흰색의 백염으로 바꾸는 능력. 신성한 힘이 더해진 백염은 마족은 물론, 악(惡)을 품고 있는 모든 괴물들에게 치명적인 불이었다. 어찌 보면 성화에 가까운 불꽃이었는데, 그것은 넓은 범위에 비해 살상력이 부족한 윤재에게는 꼭 맞는 능력이었다.
오십여 마리의 마족들이 쓰러지는데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승한은 [수호신]을 두른 방패로 몸을 보호하며 [백검]을 휘둘러 마족들을 죽이며 시선을 끌었고, 마족들이 모여들면 윤재가 백염을 두른 여우비를 뿌렸다. 반대로 마족들이 한데 모이지 않고 사방으로 흩어지면 승한이 [백검]을 이용해 공격했다.
마족들은 흩어지지도, 한데 뭉치지도 못했다. 5분 정도가 되어 모든 마족들이 정리되었다.
마족들을 정리한 승한은 잠시 획득한 타임 포인트를 점검했다. 워낙에 정신없이 베어대다 보니 얼마나 많은 타임 포인트를 획득했는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보유 타임 포인트 : 43935p]
“……많이도 벌었군.”
한 무리의 마족들을 잡았을 뿐인데, 무려 4만 타임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었다. 물론 기존에 가지고 있던 타임 포인트가 5000이 넘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많은 타임 포인트를 획득했음은 분명했다.
남아있는 마족들이 없음을 확인한 윤재가 주작을 타고 아래로 내려왔다. 승한은 [귀신]을 이용해 주작의 위로 올라갔다.
“지난번과 비슷한 속도인데?”
“그러게요. 주희가 없어서 걱정했는데, 다행이에요.”
승한은 확신했다. 마족들의 수준은 승한이 6스테이지에서 만난 마족들보다 한참 낮았다.
6스테이지에서 만난 마족들은 승한의 검에 쉽게 베어지지 않았다. 움직임도 훨씬 빠르고, 단단한 팔과 손톱, 근력을 이용한 공격은 승한의 간담을 순간순간 서늘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 나타난 마족들은 6스테이지에서 만난 ‘진짜’ 마족들과는 수준이 한 수 정도 떨어졌다. 방어력과 움직임, 근력, 싸움에 대한 감각까지. 진짜 마족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렇다 해도 위협적이긴 하지만.’
승한은 볼에 생긴 작은 생채기를 어루만졌다.
[수호신]을 사용하고 있었음에도 상처를 입었다는 것부터가 마족들이 그리 약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했다. 더군다나 움직임도 제법 빠르고 기민해서 다른 헌터들은 아마 꽤나 애를 먹을 것이다.
‘그나저나 왜 이번엔 [수호신]의 문양이 검에 그려지지 않지?’
승한은 새하얀 검신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스테이지 속에서 승한은 [수호신]의 문양을 검에 그릴 수 있었다. 그 덕분에 검이 더욱 단단해지고, 그 효과는 곧장 살상력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막상 방금 전 마족들과의 싸움에서 [수호신]의 문양을 검에 그리려고 하자, 이상하게도 몸과 갑옷, 방패와는 달리 검에는 [수호신]의 문양이 그려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스테이지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던 모양이었다.
‘단순히 스테이지와 현실, 그 차이인 건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아직까지 명확히 어떤 차이인지는 감이 잡히질 않았다. 승한은 그 문제는 나중에 차차 생각하기로 했다. 언젠가 [수호신]의 문양이 검에 그려질 때가 있다면, 그 때 가서 어떤 차이인지 알아보면 될 일이었다.
‘타임 포인트를 더 모아서 [불굴의 육체]에 투자해야 하나?’
마족 한 마리에 1250타임 포인트를 주었다. [불굴의 육체]에 필요한 타임 포인트가 128000이었지만, 이 속도로 타임 포인트를 모은다면 금방 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승한은 성화를 다루기 위해서 [불굴의 육체]의 레벨을 서둘러 올릴 필요성을 느꼈다. 더불어 성화의 레벨을 함께 올리는 것이 승한의 힘을 더더욱 비약적으로 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불굴의 육체]외에도 타임 포인트가 필요한 능력은 많았다. 대표적으로 두 개가 바로 [강화]와 [백검]이었다.
[강화]의 레벨은 7레벨이었다. 5레벨에 머물러 있는 [수호신]과는 달리, 3개의 레벨만 더 올리면 10레벨을 달성할 수 있었다. 공격력이 더 필요하지는 않지만 [강화]의 두 번째 능력도 탐이 나긴 했다.
또한 [백검]은 이제 겨우 3레벨인 상태로, 6400타임 포인트를 투자하면 다음 레벨로 올릴 수 있었다. 지금 당장만 해도 [백검]을 이용해 마족들과의 싸움에서 득을 많이 본 만큼, [백검]에 타임 포인트를 투자하는 것도 고려를 해 볼 일이었다.
승한은 고민 끝에 타임 포인트를 모으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지금 당장 마족들을 상대하는데 힘들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승한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건 오랫동안 싸울 수 있는 지구력이었다. 그리고 승한의 힘과 체력의 근간은 바로 1스테이지의 두 번째 능력은 [불굴의 육체]였다.
앞으로 필요한 85000타임 포인트. 방금 전과 전투를 두 번 정도 더 하거나, 아니면 두 배의 마족들을 모아서 사냥하면 될 것이다.
윤재의 주작이 비산2동과 비산1동의 경계를 돌았다. 주작은 덩치가 커진 만큼 이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하늘을 날며 불길을 땅 아래로 뿌려댔다. 이 정도 속도면 남쪽 끝까지 횡단하는데에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 같았다.
마족들은 거미들에 비해 감이 뛰어난 편이라, 일찍부터 멀리서 마족들이 모여들었다. 거기에 승한은 다시금 성화를 피워 몸에 둘렀다. 그 기운에 이끌려 마족들이 곳곳에서 모여들기 시작했다.
“휘유. 많은데?”
윤재는 주작의 밑으로 가득 모여든 마족들을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거미들처럼 덩치가 커서 개미떼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 수가 족히 세 자리 단위를 헤아린다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형도 조심해요. 하늘이라고 방심하지 말고요. 저 놈들이면 건물 사이로 뛰어들어서 형을 바로 공격할 수도 있으니까요.”
“걱정 마. 불 장벽의 레벨이 벌써 7레벨이다.
윤재의 호언장담에 승한이 빙긋 웃었다. 윤재의 능력들도 대부분 레벨이 꽤나 높아진 상태였다. 특히 윤재가 가장 자주 사용하는 여우비는 벌써 9레벨까지 올라가 있어서 다음 레벨에 두 번째 능력을 각성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그렇게 되면 윤재의 성장에 더욱 불이 붙겠지. 생각보다 마족들의 상대가 어렵지 않았고, 윤재의 서포트가 눈이 부셔서 두 명이서도 충분히 호계동까지 정리가 가능할 것 같았다. 무엇보다 주작의 이동 속도가 이전보다 훨씬 빠른 덕분이었다.
“그럼 다시 시작을…….”
그렇게 승한이 막 마족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뛰어 내리려던 때였다.
주작을 향해 높게 뛰어오른 마족 하나가 손을 뻗어 주작의 날개를 찢었다. 다른 마족들보다 월등히 큰 덩치를 가진 그 마족은 이마에 하나의 뿔이 더 나있었다.
============================ 작품 후기 ============================
오늘 집들이를 했습니다. 이사한지도 꽤 됐고, 원룸일 뿐이지만 고시텔을 나와서 집을 구했다는 이유로 친구들과 아는 형들이 찾아와서 축하해 줬습니다.
얹혀살던 친구 집이 빠지고 나서 고시텔을 들어갔다가 나올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전작부터 사랑해주셨던 독자님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엿한 내 집이 아니더라도, 보증금을 넣고 들어간 말끔한 원룸. 제 꿈을 시작할 수 있게끔 발판을 마련하게 도와준 독자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