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타임-77화 (77/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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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새로운 능력, 그리고 성화

승한은 산을 내려가서 집을 가던 중, 스마트폰을 통해 안석환의 연락을 받았다. 근처로 오겠다는 말에 승한은 홀로 안석환을 만났다.

안석환은 멋들어진 차를 타고 승한을 마중 나왔다. 간단하게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를 하자는 말에 승한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집으로 돌아가면 밥을 혼자 먹어야 하는데, 사 주겠다면 환영할 일이었다.

안석환이 승한을 데리고 간 곳은 안양에서 유명한 게장 집이었다. 점심 특선 메뉴로 게장 몇 마리와 함께 밥과 찌개가 나오고, 승한은 막 수저를 들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여기까지 다 오시고.”

“저도 안양 사람인데 여기까지라뇨. 차 끌고 오면 그리 멀지도 않습니다.”

안석환은 잔잔하게 웃으며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안석환은 헌터 연합을 만들어낸 주축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승한은 그런 그가 자신을 단 둘이 보자고 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헌터 연합 때문입니까?”

“뭐, 비슷합니다.”

“그거라면 가입하겠다고 말씀 드리고, 서명도 하지 않았습니까? 물론 형식적인 것뿐이지만요.”

“하하, 오해하지 마십시오. 승한씨에게 해가 가는 일로 찾아온 건 아니니까요. 일 이야기는 먼저 먹고 할까요?”

안석환의 제안에 승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승한도 괜히 일 이야기로 답답해하며 밥을 먹기는 싫었다.

안석환은 역시나 재치 있는 사람이었다. 순식간에 화재를 전환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쉼 없이 입을 열었다.승한이 어색하지 않게 말이다.

안석환이 잘 아는 맛집이라던 게장집도 음식이 꽤 훌륭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순식간에 식사가 끝나고, 시간이 지나갔다.

“아 참, 그 이야기는 들으셨습니까? 이번에 화안기업이 괴물의 사체를 이용한 새로운 에너지 기술을 개발했다는 거요.”

“알죠. 깜작 놀랐습니다. 저희가 잡던 괴물의 사체가 난제로 남아있던 새로운 에너지 개발의 핵심이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괴물의 작은 핵 하나가 가지는 값어치는 상당했다. 그 핵을 이용한 에너지 추출이나 새로운 발명품은 이후 세계를 움직일 혁명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런 기술을 처음으로 만들어낸 화안기업은 그렇지 않아서 한국에서 제일가는 기업이었다. 그리고 이번 일로 인해 어쩌면 세계 제일의 기업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오고가고 있었다.

“승한씨. 저희 헌터 연합을 밀어주고 있는 기업이 어디인지 아십니까?”

“화안기업… 아닙니까?”

“네. 전에 말씀 드렸었죠. 기억하고 계시다니 이야기가 편하겠군요.”

안석환은 잠시 말을 멈추고 품에서 담패를 꺼내 입에 물었다. 승한은 담배를 피우지 않고, 담배 냄새도 싫어하는 편이었지만 자신보다 나이도 많고 식사까지 대접한 안석환에게 담배를 나가서 피우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안석환은 담배를 입에 물고 품에서 라이터를 꺼냈다. 그리곤 손 위에 올려두었다.

“불 안 붙이십니까?”

“잘 보십시오.”

파앙-!

화르르륵-.

안석환의 손 위에 있던 라이터가 터지며 손바닥 위로 불길이 솟아올랐다. 꽤나 큰 불길에 담배 끝을 가져간 안석환이 불을 붙여 담배를 한 모금 길게 빨았다.

“흐읍, 하아.”

“……그게 안석환씨 능력입니까?”

“4스테이지 능력입니다.”

“불 계열의 능력이라… 윤재형과 비슷하군요.”

“승한씨. 제가 왜 라이터를 꺼내서 불을 피웠다고 생각하십니까?”

안석환의 물음에 승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거야 불을 피우기 위해서가 아닌가?

‘아니, 윤재 형은 그런 게 필요 없었지.’

윤재의 능력은 아무 것도 없는 허공에 불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었다. 굳이 무언가가 필요하다면 불을 유지시킬 수 있는 산소라고 할 수 있었는데, 라이터 같이 태울 만한 매개체는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안석환은 굳이 번거롭게 라이터를 꺼내 불을 피웠다. 그것은 분명 윤재와는 다른 능력의 사용이었다.

“……설명이 필요하겠군요.”

“제 4스테이지의 능력은 에너지의 성질을 바꾸는 겁니다.”

“성질을 바꾼다라… 라이터에 있는 기름을 불로 바꾼 것처럼 말입니까?”

“네. 불만이 아니라 이런 것도 가능합니다.”

휘이이잉-.

갑작스레 안석환의 손 위에서 타오르던 불이 사라지면 강렬한 바람이 불었다. 안석환이 불 에너지를 바람으로 바꾼 것이다.

신기한 능력이었다. 만약 안석환이 다른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면 이 능력으로 힘을 다른 성질로 바꾸는 것도 가능했다. 위력이 강하기보다는 활용 범위가 넓은 능력이었다.

“그리고 이 능력이 바로 화안기업에서 발표한 괴물의 사체를 이용한 에너지 기술의 핵심입니다.”

“……안석환씨 능력이요?”

“네. 괴물의 핵에 있는 에너지를 다른 에너지로 바꾸는 거죠. 승한씨, 혹시 패시브 능력과 엑티브 능력의 차이를 아십니까?”

“네. 힘을 사용하는 능력과 그렇지 않은 능력의 차이 아닙니까?”

승한은 바로 방금 전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힘을 사용하는 능력과 사용하지 않는 능력의 차이. 아무래도 안석환은 진작부터 그 차이를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맞습니다. 제가 가진 4스테이지의 능력은 패시브에 속하는 능력입니다. 굳이 힘을 사용하지 않아도 조건만 맞으면 능력을 사용할 수 있죠.”

“그래서요?”

“괴물의 핵을 모아놓고, 그 힘을 석유로 바꿀 수도 있죠. 방법은 많습니다. 그리고 화안기업에서는 이런 제 능력을 토대로 연구를 거듭해 비슷한 기술을 개발한 상태죠. 뭐, 저처럼 전투에 써먹을 수는 없겠지만 말이죠.”

“화안기업과 계약을 하신 겁니까?”

“화안기업을 일군 회장 안철환. 그가 제 아버지 되십니다.”

안석환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승한이 깜짝 놀랐다. 화안기업이라는 거대 기업의 회장이 안석환의 아버지라니, 덤덤하게 이야기 할 말이 아니었다.

“……정말입니까?”

“거짓말 할 이유가 없죠. 뭐, 아버지는 절 그리 아끼시지 않지만요. 저희 집안이 워낙 콩가루라서 아들이 한 둘이 아니거든요.”

그 순간, 안석환의 안광이 번뜩였다가 빛이 사라졌다. 다시 원래의 사근사근한 표정으로 돌아오는 데에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사실 헌터 연맹을 만든 이유도, 화안기업이 헌터 연맹을 지원하는 이유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오히려 화안기업은 헌터 연맹의 헌터들에게 더 큰 보상을 약속하고, 기업의 이윤을 챙기려 하고 있습니다.”

“헌터 연합을 만들 때부터 화안기업은 괴물의 사체를 이용한 에너지 기술을 알고 있었던 거군요.”

“그럼요. 그 기술의 핵심이 제 능력이니까요. 참 신기한 일 아닙니까? 화안기업의 자손인 제가, 화안기업을 몇 단계씩 도약시킬 기술의 핵심을 가진 헌터로 각성하다니 말입니다.”

그 말대로 참 신기한 운명이었다. 어찌 보면 화안기업의 입장에서는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일지도 모른다. 세계 에너지 사업을 휘어잡을 기회가 말이다.

“……그 이야기를 저에게 하는 이유가 뭡니까?”

하지만 승한은 화안기업이나 안철환 회장, 안석환과의 관계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사실대로 말해서 승한은 화안기업의 자제라고 할 수 있는 안석환과 이렇게 단 둘이 마주앉아 식사를 하는 자리가 불편하기까지 했다.

“아, 이야기가 잠깐 샜군요. 이거 죄송합니아. 이 이야기만 나오면 감정 절제가 잘 안 되어서요.”

“괜찮습니다.”

“뭐,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건 하나뿐입니다. 아니, 부탁이라고 해야겠군요.”

부탁이라는 말에 승한이 귀를 쫑긋 세웠다. 안석환은 예의 그 사람 좋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한국 정부에 승한씨가 잡은 괴물들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해 주시면 합니다.”

**

매 주 일요일에 괴물들이 나타나고, 정부와 헌터가 힘을 합쳐 괴물들을 처리하고 난 뒤 세상은 다시 이전처럼 돌아가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금 괴물이 나타날지 모를 일요일이 가까워진 토요일이 되자 사람들은 다시금 혼란에 빠졌다.

이전처럼 패닉에 빠져 범죄를 저지르거나, 식량을 비축해 집에 틀어박히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오히려 정부와 헌터들에게 자신들을 보호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일요일 아침.

이미 사람들은 대부분 정해진 대피소로 대피한 상태였다. 헌터들의 수가 이전보다 줄어서 승한과 윤재, 주희가 맡은 구역은 호계동까지로 넓혀졌다.

승한은 이전과 같이 비산2동의 아파트 단지에서 대기했다. 승한은 전음구를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괴물의 사체에 대한 소유권이라…….’

승한의 머릿속에는 헌터 연합과 화안기업, 그리고 안석환의 제안이 계속해서 맴돌고 있었다.

‘불가능하진 않겠지.’

헌터들은 각 구역을 맡아 괴물들을 사냥했고, 그 구역에서 잡은 괴물들은 어찌 보면 헌터들이 잡은 헌터들의 소유물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지금까지는 헌터들이 괴물의 사체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기에 상관이 없었지만 만약 헌터들이 사냥한 괴물에 대한 사체의 소유권을 주장한다면 정부로서도 난감할 것이다.

아직까지는 괴물의 사체에 대한 처분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였다. 대부분의 시체는 매각되거나 매각하지 못한 대량의 시체들은 쓰레기장 같은 곳에 처박혀 있었다.

물론 정부도 호락호락하게 사체를 넘기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괴물의 사체가 돈이, 그것도 새로운 에너지원의 주 재료가 된다는 사실을 아는 이상 소유권을 주장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괴물을 잡은 건 헌터였지, 정부가 아니었다.

“윤재형과 주희는 아직인가?”

승한은 시계탑을 보며 중얼거렸다. 9시 반, 예상보다 일찍 오긴 했지만 두 사람이 꽤 늦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도시는 텅 비어있었고, 윤재와 주희가 슬슬 올 시간이 되었다.

승한은 잠시 눈을 감고 능력을 점검했다. 이미 승한의 몸과 머리에는 능력의 사용 방법이 각인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싸우지 않은 만큼 미리 감각을 벼려놓는 것이 나을 것이다.

잠시 후, 아파트 단지 안으로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승한은 반가운 마음에 걸어가 인사했다.

“형, 어서 와요.”

“미안. 늦었다. 가족들이 대피소 가는 것까지 확인하고 오느라.”

“아직 10시밖에 안 됐는데요. 그나저나 주희는요?”

“연락 안 해봤어?”

“네. 그저께부터 연락이 안 되던데요?”

승한과 윤재, 주희가 가장 마지막으로 만났던 때는 강동훈 소령과의 자리에서였다. 정부의 용병 정책에 뽑혔을 때, 계약서를 작성하면서 함께 만난 것이다.

“주희도 스테이지는 다 통과 했다고 했죠?”

“그래. 이번엔 그래도 스테이지에서 떨어진 헌터들이 많이 없는 모양이더라. 난이도가 알아서 조정이 되어서인가?”

“아무래도 그렇겠죠.”

“조금만 기다리면 주희도 올 거야. 정 급하면 연락 해 보던지.”

“알아서 오겠죠.”

승한은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시간은 한 시간이나 남아있었다. 주희가 직접 나서서 싸우는 헌터도 아니고, 버프와 회복만 걸어주면 되는 이상 미리 준비를 할 것도 없었다.

시간이 지나 30분이 더 흘렀다. 이미 서로의 능력에 대해서 아는 만큼 승한과 윤재는 이번 괴물들의 출현을 그리 무서워 하지 않았다. 특히 승한은 자기 스스로의 능력을 믿었고, 윤재는 자기 자신의 능력과 함께 옆에 있는 승한을 믿었다.

“……좀 늦는데요?”

“그러게. 이제 30분밖에 안 남았는데…….”

“연락해 볼게요.”

기다리다 못한 승한이 불안함에 스마트포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연락처에 저장되어 있는 주희의 번호로 전화를 걸자, 곧 통화음 너머로 예상치 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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