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타임-74화 (74/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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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새로운 능력, 그리고 성화

“……저건 또 뭐야?”

검은 인영들이 모아져 만들어진 뱀 인간은 다른 분신들과 마찬가지로 온 몸이 까만색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덩치가 훨씬 크다는 점과, 뱀이라는 모습이 아포피스와 더 닮아 있다는 점이었다.

승한은 멈추지 않고 검을 들고 뱀 인간을 향해 검을 찔러갔다. 눈코입도 없고, 몸속에 내장도 지니지 않은 녀석을 잡기 위해서는 몸을 반으로 베어버리는 게 정답이었다.

사악-.

승한의 검이 뱀 인간의 목을 베어가는 순간.

촤아아악-!

뱀 인간의 입에서 검은 독기가 뿜어졌다. 승한은 깜짝 놀라 방패를 들어 최대한 독을 방어했다. 다행히 몸 위로 검은 독을 뒤집어 쓰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숨 참으세요!”

하지만 독기는 이미 허공으로 퍼져나간 상태였다. 승한이 다급히 외쳤지만 한 발 늦은 상태였다. 숨을 쉬고 있던 나르샤의 폐부로 독기운이 번져나갔다.

“흐읍!”

승한은 녀석이 더 이상 독을 뿜어내지 못하도록 입을 베어버렸다. 그리고 그대로 곧장 동굴의 입구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괜찮으십니까?”

“하아… 전… 괜찮아요.”

“……목소리가 그리 괜찮아 보이진 않습니다만.”

숨을 제대로 쉬기가 어려운 모양이었다. [수호신]을 사용한 승한만 하더라도 조금 가슴이 답답해지게 만드는 독이었다. 제대로 뒤집어썼다면 [수호신]의 방어력을 뚫고 더 큰 피해를 입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즉사할 정도의 극독임에도 나르샤가 아직까지 숨이 붙어있는 이유는 그녀가 가진 능력 덕분이었다. 성화를 품은 그녀의 힘은 어지간한 독은 단숨에 태워버릴 수 있었다. 물론, 힘을 직접적으로 발휘한 게 아니라 그 힘이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대로 두면 위험해.’

나르샤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아직까지는 제대로 숨을 쉬고, 말도 할 수 있다지만 오래 시간을 끌수록 위험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해독을 해 줄 수도 없었다. 한 가지 가능성이 있다면 [광휘]를 나르샤의 몸에 불어넣어 아포피스의 독을 몰아내는 것뿐이었다.

“조금… 나은 것 같아요.”

“조금만, 정말 조금만 참으세요. 금방 도착할 수 있을…….”

쉬이익-.

퍼억-!

승한은 말을 다 잇지 못하고 몸을 비틀었다. 나르샤가 다치지 않게끔 몸을 움직인 것인데, 그 바람에 뒤쪽에서 날아온 창이 승한의 어깨에 박혔다.

다행히 관통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통증은 그대로 전해졌다. 어지간히 힘이 강한 듯 [수호신]의 방어력을 제법 뚫어냈다.

“크윽.”

승한은 자신의 어깨를 찌른 창의 주인을 보고는 눈을 찌푸렸다. 분명히 자신이 목을 베어냈던 뱀 인간이 목을 다시 재생시키고 뒤에서 창을 찔러온 것이다.

승한은 황급히 검으로 창을 쳐냈다. [광휘]와 [강화]를 모두 사용했음에도 창은 베어지지 않았다. 다른 분신들도 목이나 다른 부위는 약했지만, 송곳니를 비롯한 무기는 승한의 검으로 베어내기 어려울 정도로 단단했다.

“꺼져!”

퍼억-!

승한은 베어봤자 소용이 없음을 깨닫고 뱀 인간을 방패로 후려쳤다. 얼굴을 얻어맞은 뱀 인간은 승한에게서 멀리 떨어져 벽에 처박혔다.

“크윽.”

승한은 어깨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잠시 주춤했다. 이제 보니 작은 생채기가 나 있었다. 어깨가 완전히 꿰뚫리지 않은 것만 해도 어디인가 싶었지만 그 작은 상처 속으로 독이 들어갔다.

‘[수호신]도 만능은 아니군.’

조금만 더 주의했으면 이런 상처는 없었을 것이다. 나르샤가 다치지 않게끔 움직이면서도 자신은 어찌 되든 [수호신]이 지켜줄 것이라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빠르게 반응해서 움직였다면 이런 상처가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콰앙-!

서걱-, 촤아아악-!

승한은 방패로 사방에서 달려드는 아포피스의 분신들을 쳐내며 검으로 막을 막아서는 분신들을 베어냈다. 수십 마리의 분신들은 일제히 승한을 향해 날카로운 송곳을 찔러왔고, 나르샤를 지키기 위해 움직이는 승한의 몸에는 조금씩 상처들이 늘어났다.

“후우-. 여기가 이렇게 길었나?”

분신들의 송곳은 승한의 [수호신]을 뚫어낼 정도로 강했다. 아니, 그보다는 계속해서 공격을 허용하다 보니 [수호신]의 절대적인 방어가 점차 깎여 나가고 있다고 보는 게 더욱 정확했다.

[수호신]은 만능이 아니었다. ‘절대적인’방어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기준치 이하의 공격에 한해서일 뿐, 그 이상의 공격에는 상처를 입고 어느 정도 공격을 허용하면 승한의 힘을 깎아먹기도 하고 문양이 사라지기도 한다.

만약 승한이 뱀 인간의 독을 뒤집어썼으면 그대로 문양이 사라졌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승한이 [수호신]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 힘을 회복할 때까지 시간이 걸렸을 것이고, 분신들의 공격을 연거푸 허용하며 몸이 꼬치가 되었을 것이다.

‘어렵군.’

승한은 이대로 가다간 나르샤가 먼저 죽든, [수호신]이 뚫려서 아포피스의 분신에게 몸이 꼬치가 되던 둘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어느 쪽이든 최악. 어차피 스테이지에서 죽어봤자 현실에서 죽지는 않는다. 그것은 이미 다른 헌터들로 인해 확인이 된 일이었다.

문제는 스테이지를 실패하고, 능력을 얻지 못할 경우였다. 스테이지를 실패하고, 살아남은 헌터들은 보통 헌터들과는 달리 6스테이지도 진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즉, 한 번 실패하면 다음은 없었다.

‘그렇게 내버려 둘 순 없지.’

승한은 이를 악물고 힘을 끌어올렸다. [귀신]을 이용해 허공을 밟고, 한 순간에 방패를 앞으로 내민 채 하강했다.

콰앙-!

승한의 방패가 아포피스의 분신들을 찌그러뜨렸다. 뱀 인간과는 달리 다른 분신들은 베이거나 방패에 머리가 찌그러지면 재생하지 않고 다른 개체를 만들었다. 세 마리의 분신을 순식간에 방패로 찍어 눌렀지만, 사방에는 수백 마리의 분신들이 달려들고 있었다.

“어, 어쩌시려고요?”

“가만히 있어 보세요.”

승한은 방패로 나르샤와 함께 몸을 가리고 숙였다. 자신은 어떻게 되든 가장 먼저 나르샤의 몸을 보호했기에 혹시 땅 아래에서 공격을 허용할 각오까지 하며 나르샤의 몸을 감쌌다.

‘어차피 이대로 있으면 스테이지는 실패다.’

승한은 도박을 하기로 결정했다.

[51200타임 포인트를 소모하였습니다.]

[‘능력 - 광휘’의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능력 - 광휘’ 10레벨을 달성하였습니다.]

[‘능력 - 광휘’가 ‘능력 - ’성화‘로 변화합니다.]

**

다행히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승한은 [광휘]의 레벨이 올라가며 얻은 능력의 정체를 깨닫고 눈을 부릅떴다.

새하얀 나신을 가진 천사가 승한의 앞에 나타났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우글거리던 아포피스의 분신들도, 승한에게 안겨있던 나르샤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오직 승한의 앞에는 투명하리만치 새하얀 피부를 가진 아름다운 천사가 있을 뿐이었다.

“………….”

입이 열리지 않았다. 질문거리가 한 가득이었지만, 질문을 던질 수 없었다. 승한에게 허락된 것은 그저 바라보고 있는 것뿐이었다.

펄럭-.

동공 없는 새하얀 눈을 가진 천사가 날개를 펼쳤다. 눈이 부실 만큼 아름다운 모습이었지만 아름답다기보다는 경외감이 느낌이었다. 무한한 힘을 가진 존재에게 절로 고개가 숙여지던 때, 그녀가 승한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고개 숙일 필요 없습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말은 승한에게 분명히 전해졌다. 머릿속을 타고 흐르듯, 아니면 마음속에 직접 두드리듯.

가슴이 거세게 뛰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되질 않았다. 그 때, 승한의 머릿속에 나르샤를 비롯한 아포피스의 분신들이 떠올랐다.

‘이러고 있을 때가…….’

‘서두르지 마십시오.’

승한이 고개를 들어 천사를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그 미소가 너무나도 아름다워 순식간에 머릿속에 있던 모든 생각들이 백지처럼 사라졌다.

화악-!

그 순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았던 천사의 나신에 옷이 입혀지기 시작했다.

아니, 그것은 옷이라기보다는 불이었다. 새하얀 도화지에 붉은 불감을 칠하듯, 새하얗던 몸에 색이 입혀지며 불이 피어올랐다. 그것은 그녀에게 옷이면서도 한 몸이기도 했다.

새하얗던 나신에 붉은색 옷이 입혀지고, 새하얗던 눈동자가 붉은색으로 변했다. 마치 타오르는 불 같은 천사의 모습을 승한은 넋을 놓고 바라봤다.

‘성화…….’

그녀의 몸을 뒤덮고 있는 불의 정체는 승한에게도 매우 익숙했다. 그가 사용하는 힘의 근원이기도 하며, 바로 방금 전 손으로 만지고 몸으로 받아들였던 신성한 불꽃이기도 했다.

성화, 그것은 바로 눈앞에 있는 천사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그녀야말로 성화의 진짜 주인이자, 아포피스를 봉인한 천사였다.

‘이 힘을 가지고 당신은 무엇을 할 거죠?’

천사가 물었다. 승한은 어떤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입을 벙긋거렸다.

생각도 들지 않았다. 천사가 말하는 ‘힘’이란 바로 성화를 뜻하는 것이었다.

[광휘]가 10레벨에 도달하며, 승한은 성화를 손에 넣었다. 승한은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눈앞에 있는 천사에게 단죄를 받을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새하얗던 눈에 나타난 붉은색의 불같은 눈동자는 결코 자상한 여인의 것이 아니었다.

‘뭘… 해야 하지?’

생각나는 게 없었다.

힘을 얻고, 승한은 괴물들을 죽이는 것만 생각했다. 그렇게 해야 가족들을 지킬 수 있고, 돈을 벌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것을 위해 점점 더 강해지고자 더욱 큰 힘을 원했다.

성화는 그 과정에 얻게 된 힘의 일부일 뿐, 그 힘의 무게를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것이 어떤 힘인지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다만 승한이 생각하고 있는 ‘해야만 하는 일’은 현재로선 두 개뿐이었다.

‘나르샤를 구하고…….’

물론, 스테이지 완료를 위해서.

‘괴물을 잡는다.’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그런데 아무래도 그것으로 충분한 모양이었다. 붉은 천사는 승한을 빤히 바라보더니 방긋 웃었다.

‘그것이면 됐다.’

승한의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

승한의 몸에서 빛이 사라졌다. 순식간에 컴컴한 동굴 안이 어둠으로 물들고, 승한의 위를 아포피스의 분신들이 하나 둘 누르기 시작했다.

나르샤는 겁에 질렸다. 겨우 살아남았는데, 가장 가까웠던 마족이라고 할 수 있는 자칼과 가렝이 죽고 자신을 도와준 인간과 함께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괜히 자신 때문에 다 죽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퍼억-.

그 순간, 승한이 방패를 크게 젖혔다. 승한의 방패 위를 짓누르던 분신들이 사방으로 튕겨져 나갔다. 아무리 분신들이 많다고 한들, 승한의 괴력을 당해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몸을 보호하던 방패가 치워진 이상 분신들은 거리낄 게 없었다. 분신들과 함께 뱀 인간이 창을 들고 승한을 향해 빠르게 찔러왔다.

“안 돼!”

승한의 머리를 찔러오는 창에 깜짝 놀란 나르샤가 소리쳤다. 차마 볼 수 없어 나르샤는 눈을 질끈 감았다.

화악-!

치이이이이-.

이상한 소리였다. 살과 뼈가 꿰뚫리는 끔찍한 소리가 아니었다. 나르샤는 조금씩 눈을 뜨고 승한을 바라봤다.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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