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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타임-70화 (7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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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여섯번째 꿈

따라오는 마족들은 모두 죽었다. 사건의 주범이라고 할 수 있는 자르고를 비롯한 배덕의 마족들은 모두 승한에게 죽었고, 더 이상 쫒아오는 마족은 남아있지 않았다.

동굴은 꽤나 길었다. 아니, 동굴이 아니었다. 그곳은 아포피스의 몸속이었다. 머리만 해도 수백 미터였으니, 전체 몸길이가 얼마나 될지 짐작하기도 어려웠다.

걸음을 옮기는 승한의 머릿속에는 나르샤의 한 마디가 계속해서 맴돌았다. 그만큼 나르샤의 강렬한 한 마디는 승한의 머릿속에 강하게 자리 잡았다.

‘죽어야만 한다고?’

틀린 말은 아니었다. 성화를 피우지 않으면 아포피스라는 악마는 부활할 테고, 성화를 피우기 위해서는 나르샤가 죽어야만 하니까.

하지만 그 한마디를 승한은 인정하기가 싫었다. 반드시 죽어야만 하는 앞날을 저리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나르샤가 가엾게 느껴졌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승한은 그 희생을 말릴 생각은 없었다. 승한이 사용하는 [광휘]의 힘이 성화의 빛과 비슷한 힘이라고는 해도 승한이 스스로 성화를 사용할 수는 없으니 나르샤의 희생은 반드시 필요했다.

‘혹시라도… [광휘]가 10레벨에 도달하면, 성화의 힘을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헌터들의 능력은 10레벨에 도달하면 새로운 능력으로 변화한다. [강인함]과 [민첩함]이 그러했다.

[광휘]의 레벨은 벌써 8레벨. 다음 레벨에 필요한 타임 포인트는 5만이 넘어갔다. 하지만 아마 다음 번 괴물들과의 싸움으로 [광휘]의 레벨을 10레벨까지 올릴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게 진짜라면…….’

벌써부터 안타까움이 들었다. 자신의 능력이 조금만 더 뛰어났다면, 자신이 가진 능력이 [광휘]가 아닌 성화였다면 나르샤가 죽지 않아도 될 텐데 하는 생각이었다.

승한을 비롯한 넷은 아무런 말 없이 이동했다. 곧 죽을 거라는 생각에서인지 나르샤는 아무런 말이 없었고, 가렝과 자칼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도 나르샤를 아끼는 만큼 마음이 아플 것이다.

“얼마나 더 가야 합니까?”

한 시간째 이어지는 침묵에 승한이 물었다. 침묵을 깨뜨릴 의도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나르샤가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다 왔어요.”

마침 나르샤가 손을 들어 앞을 가리켰다.

“저기에요.”

나르샤가 가리킨 곳에는 제단이 하나 만들어져 있었다. 거대한 뿔을 가진 악마의 손에는 횃불히 하나 들려 있었는데, 불씨가 많이 약해져 금방이라도 꺼질 듯 위태로웠다.

“누구냐!”

그리고 그 제단 앞으로는 두 명의 마족이 대기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자르고가 대기시켜 놓은 마족들인 모양이었다.

승한은 무덤덤하게 검을 꺼내 빠르게 움직였다. 순식간에 승한의 검이 마족 한 명의 목을 찔러갔고, 다른 한 명의 머리를 자칼과 가렝의 손톱이 꿰뚫었다.

풀썩-.

제단에 붉은색 피가 튀었다. 대기하고 있던 두 명의 마족이 쓰러지자 승한은 시선을 횃불로 향했다.

“이게… 성화입니까?”

“네.”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다르네요.”

“저도 조금 놀랐어요. 예전엔 이러지 않았는데… 원래는 승한씨가 보여줬던 것처럼 밝은 빛을 뿜는 불이었어요. 지금은 불길도 많이 약해지고, 빛도 약해졌네요.”

화륵-.

성화의 불길이 한 번 치솟았다가 잠잠해졌다. 마치 꺼져가기 직전의 불길처럼 매우 위태로워 보였는데, 승한은 이 불이 진짜 성화가 맞는지조차 의심스러웠다.

“진짜 성화가 맞긴 맞는 겁니까?”

“네, 확실해요. 겉으로 보기엔 다 꺼져가는 불과 다름없지만… 전 알 수 있어요.”

성화를 타고난 나르샤였다. 그녀는 아무리 다 꺼져가는 성화라 해도 그것이 보통 불과 다르다는 것을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성화는 지금 다 꺼져가는 중이었다. 아포피스를 봉인하는 매개체로 사용될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진 불이지만, 그 힘은 이제 곧 사라질 운명이었다. 그리고 그 꺼져가는 성화를 다시 되살려 놓는 게 바로 나르샤의 역할이었다.

“비켜주세요. 잘못해서 성화에 말려들면 자칼과 가렝이 위험해요.”

그렇게 말하며 나르샤는 성화를 향해 성큼 다가갔다. 덜덜 떨리는 발걸음과 손끝은 절대 무덤덤하지 않았다. 자칼과 가렝은 차마 그녀를 쳐다볼 수 없는지 질끈 눈을 감거나 고개를 돌렸다.

“잠깐만요.”

그 때, 승한이 나르샤의 손을 잡으며 만류했다. 나르샤는 승한을 돌아봤다.

“왜 그러죠? 시간 없어요. 이러다 성화가 꺼지면, 그 때는 다시 성화를 피워도 아무 소용없게 되요.”

“아직 꺼지려면 시간이 좀 남지 않았습니까? 성화가 모닥불도 아니고, 아무리 불길이 약해도 그렇게 금방 꺼지진 않겠죠. 그냥 잠깐 확인해 보고 싶은 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승한은 나르샤를 옆으로 밀어내고 성화를 향해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그 힘은 나르샤뿐만 아니라 승한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확실히… [광휘]와 비슷하긴 해.’

겉으로는 다 꺼져가는 불길에 불과했지만 절대 평범한 불은 아니었다. 나무나 기름처럼 탈 것이 없는 상태에서 횃불 위에서 무한한 시간 동안 계속해서 열기를 지속해온 불이 평범한 불일 리 없었다.

더군다나 그 느낌은 승한이 사용하는 [광휘]와 상당히 닮아있었다. 승한의 [광휘]는 단순히 빛일 뿐이지만 그것은 좀 더 나아가, 빛을 뿜어내는 성화의 불길이었다.

물론 지금 성화의 불길이 보여주는 빛은 1레벨의 [광휘]만도 못하지만 말이다.

‘금방이라도 꺼질 것처럼… 위태롭다.’

승한은 손을 뻗어 성화의 불길을 손으로 어루만졌다. 그것은 머리를 움직이고 한 행동이 아닌, 무언가에 이끌린 듯한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지금 뭐 하시는……!”

승한의 행동에 깜짝 놀란 나르샤는 뒤이어 나타난 모습에 다시 한 번 연거푸 놀랐다.

대악마인 아포피스를 봉인했을 정도의 힘을 가진 성화였다. 보통 마족는 살짝 닿는 것만으로도 온 몸이 재가 되어 흩어질 것이다. 나르샤 역시 그건 다르지 않았다. 다만 나르샤는 재가 되기보다는 같은 성화의 불길이 되어 하나가 될 뿐이었다.

하지만 성화의 불길에 가져간 승한의 손은 이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마치 이렇게 될 것을 알기라도 한 듯 승한은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따뜻하군.’

뜨겁다거나, 위협적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다만 승한은 그 힘이 자신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화는 승한에게 해릴 끼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한 번 크게 타올랐다가 다시 크기를 줄였다.

승한의 양 손이 더욱 작게 변한 성화를 감싸 안았다. 다 죽어가는 불길을 보는 승한의 눈동자가 밝게 빛났다.

“타올라라.”

화아아악-.

승한의 두 손에 [광휘]의 빛이 발현되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밝아진 힘은 성화에 반응해 한계를 모르고 점점 더 밝아졌다.

그리고 그 순간.

“이, 이게!”

“성화가…….”

화르르륵-.

꺼져가던 성화의 불길이 다시금 치솟았다. 지금까지 치솟았다가 다시 크기를 줄여가던 성화의 불이 승한의 손에서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

보고도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성화는 본래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는 힘이었다. 아무리 승한이 그 힘의 일부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성화를 피우는 건 다른 이야기였다.

‘할 수 있다.’

성화에 손을 가져가 [광휘]를 이용해 성화의 불을 키우는 승한의 눈이 점차 황금색으로 반짝여가는 성화를 바라봤다. 점차 승한의 팔을 감싸 안을 정도로 커져가는 성화는 곧 승한을 완전히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사실 승한도 확신은 없었다. 승한이 확신한 건, 성화의 불꽃이 자신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뿐이었다.

승한은 [광휘]를 이용하면 성화를 다시 피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단순히 빛뿐이었지만, 없던 성화를 만들어 내는 것도 아니고 이미 있는 성화를 되살리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는 예감이었다.

그리고 승한의 그 예감은 맞아떨어졌다.

자르고는 아포피스를 되살리기 위해 성화의 불을 꺼뜨리기 위한 수작을 걸어놓았다. 그것은 일종의 저주였고, 성화는 그 저주 때문에 점차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승한의 [광휘]는 성화와 만나 성화의 힘을 되살리고, 그 저주를 깨드렸다. 한 번 저주가 사라진 성화의 불은 승한의 [광휘]와 만나 원래의 힘을 찾아갔다.

화아아악-!

“어, 어?”

갑작스럽게 성화의 불이 크게 솟아올랐다. 승한의 팔을 감쌌던 성화의 불꽃은 점차 커져가더니 승한의 몸 전체를 뒤덮었다.

‘뜨겁진 않은데…….’

승한은 자신의 몸을 뒤덮은 성화의 불길을 보며 손을 들었다. 성화의 불길이 승한의 의지를 따라 움직이며 횃불 위로 옮겨붙었다.

한 번 붙기 시작한 성화의 불은 쉴 세 없이 커져갔다. 곧이어 거대한 횃불 위로 불길이 가득 찼다. 하지만 승한의 몸에 붙어있는 성화의 불은 여전히 꺼지지 않고 남아있었다.

그리고 이내, 승한의 몸 속으로 성화의 힘이 모두 스며든 순간이었다.

[‘성화’의 힘이 당신의 몸에 녹아듭니다.]

[‘능력 - 광휘’의 레벨이 한 단계 상승합니다.]

[특정한 힘이 개입해 다음 레벨에 요구되는 타임 포인트가 상승하지 않습니다.]

“어?”

승한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머릿속으로 들어온 정보는 황급히 능력을 확인하게 만들었다.

[스테이지 4 - 광휘]

* 분류 : 엑티브

* 레벨 : 9

* 요구 타임 포인트 : 51200p

능력을 확인한 승한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8레벨이었던 [광휘]의 레벨이 9레벨로 올라가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원래라면 9레벨로 올라간 [광휘]를 다음 10레벨로 올리기 위해서는 51200타임 포인트의 두 배가 소모되는 게 당연했다. 그것이 지금까지 능력의 레벨을 올리면서 통용되는 공식이었다.

헌데 지금 이 순간, 승한의 머릿속에 떠오른 [광휘]에 대한 정보는 그 공식을 깨뜨리고 있었다. 여전히 8레벨처럼 51200타임 포인트를 소모해서 [광휘]의 레벨을 10레벨로 올릴 수 있는 것이었다.

‘성화 때문인가?’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이유라고 한다면 그것밖에는 없었다. 성화의 힘이 몸속으로 녹아들며, 승한은 어떤 힘이 솟아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결과 [광휘]의 레벨이 올랐다.

무엇보다 반가운 건 다음 레벨에 요구되는 타임 포인트가 줄었다는 점이었다. 어차피 [광휘]의 레벨을 10레벨까지 올려야 하는 상황에서 다음 레벨에 필요한 타임 포인트가 절반으로 줄었다면 단순히 레벨 하나의 차이라고 볼 수 없었다.

‘단순히 생각해도 이거 하나로 10만 타임 포인트 이상은 번 셈이군.’

현실에까지 이 효과가 적용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그렇다면 대박이라고 할만 했다. 요구하는 타임 포인트의 수치가 비약적으로 상승한 지금, 능력의 레벨 하나가 얼마나 큰 차이인지는 승한이 몸소 느끼고 있었다.

‘만약 [광휘]의 다음 능력에서도 이 타임 포인트의 계수가 똑같이 적용되면… 단순히 10만 타임 포인트 정도가 아니겠지.’

아직까지는 큰 체감을 얻지 못하고 있었지만 이 효과는 뒤로 갈수록 점점 더 큰 보상으로 다가올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보상이군. 스테이지 안에서 새로운 능력 외에 추가적인 보상도 기대할 수 있었나?’

승한은 타오르는 성화를 바라봤다. 지금 당장은 [광휘]로 인해 꺼져가는 성화를 살리는 정도에 불과했지만, 어쩌면 [광휘]의 레벨을 한 단계 높이면 저 성화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승한이 가지고 있는 타임 포인트는 6만 정도. 이 타임 포인트를 모두 투자하게 되면, [광휘]를 다음 레벨로 올릴 수 있게 된다.

“성화가… 살아났어요.”

나르샤는 황금빛으로 이글거리는 성화를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승한이 성화를 다시 살려낸 덕분에 그녀는 자신을 희생할 필요가 없었다.

“고마워요. 고마워요. 정말, 정말 고마워요…….”

나르샤가 결국 눈물을 흘렸다. 승한은 괜히 뿌듯해져서 환하게 웃었다.

[6.3스테이지를 완료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모르고 있는 사실이 있었다.

아직, 스테이지는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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