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타임-69화 (69/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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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여섯번째 꿈

자르고는 자신보다 늦게 움직이기 시작했음에도 먼저 나르샤의 옆에 도착한 승한을 향해 시뻘건 눈을 번뜩이며 손을 휘둘렀다. 그리고 승한이 검 끝을 천장을 향해 올렸다.

자르고의 손끝이 승한의 몸에 닿는 그 순간.

서걱-!

“크아아아아악-!”

자르고의 팔이 베어져 어깨와 함께 바닥에 떨어졌다. 오른쪽 팔에서 느껴지는 허전함과 고통에 자르고가 비명을 질렀다.

단순히 자르고를 밀어내기 위해 휘둘렀던 검이 팔을 잘라내자 승한은 스스로도 당황했다.

아니, 사실은 알고 있었다.

굳이 방패가 아니라 검을 휘두른 이유는 어딘가 모르게 벨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어서였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느낌은 아직까지도 승한의 손 끝에 남아있었다. 지금까지는 완전히 베어내지 못했던 마족들의 피부를 마치 무처럼 손쉽게 베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절로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승한은 한쪽 팔을 잃고 뒷걸음질 치며 물러난 자르고를 향해 다가갔다.

“이, 인간 네 놈…….”

“종족의 어르신이라며? 놈이 뭐야, 말은 곱게 써야지.”

“닥쳐라! 이건 우리들의 문제다! 어디서 나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네놈은 빠져!”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나르샤님과 같이 나까지 죽이려 했잖아? 근데 이젠 안 될 것 같으니까 빠지라고? 너무 이기적인 것 아니야? 그리고…….”

화악-.

승한의 몸에서 [광휘]의 빛이 이글거렸다. 자르고는 남아있는 한쪽 팔로 그 빛이 눈에 들어오는 것을 막으며 다시금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이게 성화의 빛이라며? 그럼 나도 제3자라고 말할 순 없지.”

“인간이 어떻게… 성화의 빛을…….”

“그 말, 아까 전에도 했다.”

파앗-.

승한이 다시금 자르고를 향해 달려들었다.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승한을 향해 자르고는 한쪽 팔을 가엽게 휘두르며 소리쳤다.

“막아! 막아라!”

애처로운 명령이었으나 다른 마족들은 그 명령에 충실히 따랐다. 중상을 입은 마족들까지도 자르고를 지키고자 승한의 앞을 막아섰다.

방금 전이었다면 아마 방패를 들어 밀어버렸을 것이다. 마족들의 피부가 워낙 단단해서 단숨에 베어버릴 수 없으니, 힘으로 밀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승한은 이번에도 방패를 내리고 검을 들었다. 검에 [강화]와 [광휘]를 두르고, 있는 힘껏 횡으로 휘둘렀다.

촤아아아악-!

그리고 마족들의 목이 연달아 베어졌다. 지금까지 힘겹게 하나씩 상처를 내 오던 승한이 단숨에 연달아 목을 베어내자 마족들이 깜짝 놀랐다.

‘된다!’

승한은 무언가 해냈다는데 짜릿한 쾌감을 느끼며 검을 쥔 손을 부르르 떨었다. 아직까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단단하게 느껴졌던 마족들의 피부가 훨씬 무르게 느껴졌다.

‘왜지?’

그 순간, 승한의 시선이 손에 들고 있던 검끝으로 향했다. 그리고 검에 그려져 있는 익숙한 문양을 보는 순간, 승한의 입가가 긴 호선을 그렸다.

‘수호신!’

승한의 검에 그려진 문양은 다름 아닌 [수호신]의 문양이었다. 지금껏 승한의 몸과 방패에만 그려지던 [수호신]의 문양이 검에도 그려지며 검의 힘을 훨씬 더 강하게 이끌어 낸 것이었다.

‘왜 이제 와서?’

승한은 [수호신]의 힘을 어느 특정한 한 부위에 정하지 않고 온 몸과 방패에까지 퍼뜨렸다. 그리고 그것은 [광휘]와 [강화]역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수호신]은 다른 모든 곳에는 힘이 미치면서도 ‘검’이라는 도구에는 문양도 그려지지 않았고, 힘도 미치지 않았다. 승한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으나, 방어적인 능력이기에 무기에 효력을 발휘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하고 넘어갔다.

헌데 계속해서 수호신의 힘을 사용하던 중, 바로 방금 전 그 문양과 힘이 검에게까지 미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 지금까지 베어내기가 힘들었던 마족들의 피부를 베는게 훨씬 수월해졌다.

‘뭐, 나로서는 나쁜 일은 아니지만.’

승한은 씩 웃으며 남아있는 마족들을 바라봤다. 녀석들은 감히 승한에게 덤벼들지 못하고 조금씩 떨어져 승한을 노려보고 있었다.

“안 덤벼?”

그렇게 말하며, 승한이 마족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

풀썩-.

목 없는 시체 한 구가 바닥에 힘없이 쓰러졌다. 떨어진 목은 공처럼 굴러가더니 벽에 부딪히고서야 멈췄다.

마족들의 피는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붉었다. 혹은 그들의 피부색보다 붉었다. 승한은 사람을 학살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눈살을 찌푸리며 하나 남은 마족을 바라봤다.

“이제 너 혼자 남았는데.”

“으…….”

자르고는 처음의 그 기세등등한 모습은 간데없고 살기 위해 눈알을 좌우로 굴렸다. 아무래도 기회를 틈타 어디론가 도망치려는 것 같았는데, 그러지도 못했다.

승한이 몸에 두르고 있는 [광휘]의 빛. 그들이 부르는 성화의 빛은 자르고의 몸에 쏟아져 그의 몸을 옭아맸다. 이전부터 그 빛을 받으며 겁을 먹었던 자르고였지만, 함께 있는 다른 마족들의 힘을 믿고 조금이나마 두려움을 떨쳐내던 중이었다.

헌데 함께 있던 마족들이 더 이상 남지 않고, 그들 모두를 죽인 승한이 자신을 향해 검을 겨누고 있자 더 이상 움직이기도 쉽지 않았다. 자르고는 하나 남은 팔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오, 오지…….”

푸욱-.

승한의 검 끝이 자르고의 목을 찔렀다. 이어가던 말이 끊어지고, 눈이 한없이 커졌다. 승한은 그대로 검을 휘둘러 자르고의 목을 쳐냈다.

뎅겅-.

자르고의 목이 베어져 땅 위를 굴렀다. 승한은 떨어진 목이 역겨워 시선을 떼고는 몸을 돌려 나르샤를 바라봤다. 자칼과 가렝은 그녀의 옆에 꼭 붙어있었다.

“끝났습니다.”

“어떻게…….”

“크음…….”

우습게도 나르샤와 자칼, 가렝 모두가 똑같이 놀란 표정이었다. 그들은 승한이 홀로 그 많은 마족들을 베어내는 모습을 보며 믿기 어렵다는 듯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이제 우리 종족은 이렇게 우리 셋밖에 남지 않은 건가?”

자칼은 죽어버린 동족들의 시체를 보며 허무한 중얼거림을 흘렸다. 남아있던 종족들이 모두 죽어 좀비 거인으로 변하거나 배덕한 배신자들은 모두 승한의 손에 죽어버렸으니 남은 종족은 나르샤와 자칼, 가렝, 이렇게 셋뿐이었다.

“어디 다치신 곳은 없습니까?”

승한이 나르샤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녀의 몸을 살피며 물었다. 자칼이나 가렝이야 어떻게 되든 사실 상관 없었고, 승한은 나르샤가 혹시라도 잘못되진 않았을까 걱정되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나르샤는 작은 생채기 하나도 나지 않은 상태였다. 승한이 대부분의 마족들을 상대했고, 자칼과 가렝이 그녀에게로 달려드는 다른 마족들을 막아주었다. 혹시라도 자르고처럼 승한을 무시하고 나르샤를 공격하려는 마족들은 승한이 빠르게 움직여 제거했다.

“인간, 어떻게 네가 성화의 빛을 가지고 있는 거지?”

자르고는 가까이 다가온 승한에게 물었다. 경계의 눈초리보다는 믿기 어려운 장면을 본 것 같은 눈초리였다.

하지만 승한은 어떻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성화’라고 부르는 힘은 승한의 능력 중 하나인 [광휘]일 뿐이었다. 그 능력을 어떻게 얻었냐고 대답한다면 4스테이지를 통과하고 얻은 능력일 뿐이었다.

과연 그 힘을 누가 준 것인지, 그리고 그 힘이 나르샤를 비롯한 마족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는 승한도 알지 못했다.

“잘… 모르고 계시는가 보군요.”

나르샤는 그런 승한의 속마음을 정확히 읽어냈다. 정곡을 찔린 승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모릅니다. 저도 제가 어떻게 이 힘을 얻었는지, 누가 저에게 이 힘을 줬는지 알지 못합니다. 다만 알고 있는 거라곤 이 힘이 마족들을 비롯한 악(惡)에게 치명적인 힘이라는 것뿐입니다.”

“알고 있는 건 그게 전부입니까?”

“네.”

승한의 대답은 진실이었다. 그리고 나르샤 역시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군요. 사실 그 힘을 완전한 성화라고 부르긴 어려워요. 정확히는 성화가 내뿜는 빛이라고 봐야겠죠.”

“들었습니다. 성화의 빛이라고 하더군요.”

“네. 하지만 빛뿐이라고 하더라도 그 힘은 저희 마족들에게 치명적이죠.”

“대체 성화가 뭐기에 그런 겁니까? 비치는 빛 뿐만으로도 치명적이라니…….”

승한은 이참에 [광휘]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었다. 악(惡)에게 상극이 되는 능력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그 힘의 근본이 무엇인지 알아두면 그래도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어차피 제한시간도 없고…….’

승한의 물음에 나르샤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선뜻 대답해주기가 어려운 이야기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잠시 후, 그녀는 입을 열었다.

“알았어요. 당신도 그 힘을 가지고 있다면… 알려 드리는 게 맞겠죠.”

“나르샤님!”

자칼과 가렝이 깜짝 놀라 소리쳤지만 그녀는 이미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손을 들어 올리는 그녀의 모습에 자칼과 가렝이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성화(聖火)는 이름과는 달리 위험한 불이에요. 실존하는지 정체를 확인할 수 없는 천사라는 자들에게는 일용할 양식이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저희 마족들에게는 닿는 것만으로도 존재가 지워지는 위험한 불이죠.”

저희 일족은 성화를 가진 마족을 지키고, 보호하는 일족이에요. 말했다시피 성화란 저희 마족들에게는 극히 위험한 힘. 그 힘이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따라서 마족들에겐 치명적일 수 있으니까요.”

“그 성화를 가진 마족이 바로 나르샤님입니까?”

“네.”

나르샤의 눈이 한 차례 흔들렸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말을 이어갔다.

“저는 생에 단 한 번, 몸을 성화로 불사르고 죽을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난 마족이에요.”

“……죽어요?”

“네. 그게 저에게 주어진 운명이에요. 그 힘을 타고난 대신, 전 몸에 지니고 있는 성화로 인해 다른 마족들에 비해 터무니 없이 약한 몸을 가지고 있죠.”

충격적인 이야기에 승한은 멍하니 눈을 깜박였다.

‘성화를 피우라는 이야기가… 나르샤를 살리라는 이야기가 아니었어?’

승한은 성화를 피우라는 스테이지의 내용에 나르샤를 살려서 성화를 피우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곧, 나르샤가 스스로의 죽음을 택하고 성화의 힘을 이끌어 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르샤는 자신의 죽음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이야기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아포피스의 꼬리에서 성화를 피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 말은 즉, 스스로의 몸을 불사르겠다는 뜻이었다.

자칼과 가렝 역시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지 않은 듯 놀라기보다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르샤에 대한 충성이 강한 그들은 나르샤가 죽어야만 한다는 사실이 힘들 수밖에 없었다.

“꼭… 그래야만 합니까?”

승한은 질문을 해 놓고도 아차 했다. 나르샤가 성화를 피우지 않는 이상, 승한은 스테이지를 통과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승한은 그녀가 성화를 피우도록 강요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네. 그게 제 운명이에요. 성화를 태우지 않으면 이미 자르고가 해 놓은 일로 인해 아포피스는 부활할 거고, 저희 일족은 물론 마족이라는 종족 자체가 사라질지도 몰라요.”

그녀는 조금 울먹이며 강하게 말했다.

“저는, 죽어야만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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