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타임-64화 (64/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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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여섯번째 꿈

승한은 자칼을 향해 피식 웃어보인 뒤 그 뒤를 따라갔다. 기분이 나쁘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저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뻔히 보였다.

‘나르샤는 내 감정을 읽었다지만… 저 둘은 아니지.’

아직 승한에 대해 확실히 알지 못하는 자칼과 가렝은 승한을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나르샤는 승한의 합류에 더 안전해졌다고 생각하겠지만, 자칼과 가렝은 오히려 경계해야 될 대상이 늘어났을 뿐이었다.

승한은 자칼과 가렝이 신경 쓰지 않도록 조금 떨어진 곳에서 걸었다. 둘은 승한이 알아서 떨어져 걷자 조금씩 승한에 대한 경계를 풀었다.

“일부러 떨어져서 걷지 않으셔도 되요.”

“저 둘은 아닌 것 같아서요. 전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들이 뒤따라오지 않는다면, 전 이 거리를 유지한 채 계속해서 나르샤님을 따라 갈 테니까요.”

승한은 나르샤와 자칼, 가렝이 모두 안심할 수 있도록 말했다. 아직까지 ‘그들’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승한은 아는 척 말했다.

나르샤와 자칼, 가렝은 한참을 걸었다. 대체 언제부터 걷던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걷는 속도가 꽤나 빨랐다. 어지간한 사람은 따라가다가 지쳐 쓰러질 정도였다.

‘마족이라서 그런가? 지칠 줄을 모르네.’

보통 사람이 느리게 뛰어가는 속도로 벌써 두 시간이 넘게 이동하고 있었다. 승한은 그 동안 계속해서 그들의 뒤를 말 없이 따라갔다.

‘이대로 10시간 동안 계속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건가? 그것도 이상한데…….’

10시간 동안 이 속도로 이동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승한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불굴의 육체]덕분에 체력도 충분하고, [귀신]으로 인해서 움직이는데 크게 힘들거나 하지도 않았다. 보통 사람은 몰라도 승한은 지금도 걷는데 한결 여유가 있었다.

이대로 10시간 동안 이동한다? 오히려 졸릴 정도였다. 아마 다른 헌터들도 어지간하면 이 정도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분명 중간에 마주치겠지.’

승한은 나르샤가 말한 ‘그들’이 이동하는 중간에 마주치게 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6.2스테이지는 ‘그들’로부터 나르샤를 보호할 수 있느냐, 그것을 시험하는 것이었지 이대로 걷기만 하는 게 아니었다.

때문에 승한은 계속해서 주위를 경계해야했다. 혹시라도 잘못 되어서 나르샤가 죽기라도 한다면 큰일이었다.

‘문제는 그들이 누군가 하는 건데…….’

승한은 나르샤의 이름을 언급하고, 그녀를 보호하겠다는 말로 무언가를 알고 있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그것만으로도 의심쩍어 보이기엔 충분하지만, 나르샤의 능력으로 인해 다행히 나르샤와 동해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문제는 의심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여기서 만약 사실은 알고 있는 게 나르샤의 이름뿐이고, 누구로부터 지켜야 할지 알 수 없다고 말한다면? 지켜주겠다는 말은 허울뿐인 것이 되고, 의심은 더욱 커질 것이다.

‘복잡하게 됐네.’

차라리 자칼이나 가렝의 몸으로 들어가서 나르샤를 지키는 것이었다면 훨씬 편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 곽영의 몸으로 스테이지를 진행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긴, 곽영은 그나마 검이라도 다뤘지… 저 녀석들이 사용하는 건 무기가 아니라 몸뚱이 하나뿐이니.’

결국 승한은 정체도 모를 ‘그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나르샤가 대화 중에 언질이라도 해 준다면 모를까, 그 전까지는 꼼짝 없이 궁금증을 안고 따라갈 뿐이었다.

저벅-.

승한은 계속해서 나르샤와 자칼, 가렝의 뒤를 따랐다. 세 명의 마족은 아무런 말도 없었다. 사소한 잡담을 하는 시간마저 아까운 듯했다.

그렇게 한 시간에 이어 세 시간을 더 이동했을 때, 승한은 주위를 살피다 문득 뒤를 돌아봤다. 그리곤 다시 앞을 바라봤다. 무언가 차이를 느껴 자세히 살피니, 황무지의 색이 조금씩 검게 변하고 있었다.

‘검은색 땅으로 가고 있는 건가?’

목적지를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함은 더했다. 아무래도 세 명 모두 마족인지라 목적지가 보통 마을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왔군.”

자칼이 코를 킁킁거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가렝이 발걸음을 멈추며 물었다.

“그들입니까?”

“그래. 수가 많지는 않지만… 한 무리가 따라왔다는 건, 두 번째 무리도 멀지 않다는 뜻이겠지.”

“몇이나 됩니까?”

“냄새만이라 확실한 건 모르겠지만, 열 마리 쯤 되는 것 같다.”

“열 마리라… 적지는 않군요.”

“속도를 좀 더 올려야겠어.”

승한은 자칼과 가렝이 나누는 대화를 듣고는 가까이 다가왔다. 둘은 이때만큼은 승한이 반가운지 경계하는 기색보다는 투지를 불태웠다.

“인간, 넌 나르샤님을 지키겠다고 했지?”

“네.”

“그렇다면 실력을 보여라. 저놈들을 모두 죽이고, 네 실력을 입증해 보여야 할 것이야.”

자칼이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승한은 황무지 멀리에서도 보이지 않는 ‘그들’이 대체 누구인가 싶어 속으로 의문을 품었다.

‘대체 어디에 있다는…….’

그 순간, 승한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땅 밑?”

파악-!

황무지의 모래 바닥을 뚫고, 거대한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썩어 문드러진 검은색 손은 승한의 발을 잡으려다가 승한이 높이 뛰어오르는 바람에 헛손질을 하고 말았다.

손은 보통 사람의 손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거대했다. 웬만한 사람의 얼굴보다도 컸다. 그것은 곧 손뿐만이 아니라 얼굴과 함께 몸 전체를 드러냈다.

‘거인인가? 아니, 좀비?’

새카만 피부를 가진 좀비 거인들은 시체 썩은 냄새와 함께 역겨운 검붉은 내장을 드러내 놓고 있었다. 키는 3미터가 훌쩍 넘어갔고, 썩은 피부와는 달리 팔과 다리는 지나치게 두꺼웠다.

그런 좀비 거인이 총 열 마리였다. 아무래도 나르샤와 자칼, 가렝이 말하던 ‘그들’이 바로 이 녀석들인 모양이었다. 적대적인 다른 마족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예상치도 못하게 반가운 놈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익숙하군.”

승한은 녀석들에게서 지금까지 만난 괴물들과 같은 향기를 맡았다. 그것은 누군가 알려준 것이 아닌, 승한의 본능이 알려준 자극이었다.

오히려 익숙한 적이기에 반가운 마음과 함께 미지의 적에 대한 불안감이 사라졌다. 승한은 검과 방패를 꺼내들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쐐애애애액-.

서서걱-.

승한의 몸이 귀신처럼 허공에 떠오르더니 순식간에 거인 좀비의 목을 베어갔다. 부식된 몸뚱이는 전혀 단단하지 않아서 [강화]를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그 순간.

퍼엉-!

좀비 거인의 몸이 조금 부풀더니 그대로 폭발했다. 뜨거운 열기와 함께 고약한 악취가 퍼져 나왔는데, 승한은 급하게 방패로 그것을 막으며 뒤로 물러났다.

‘자폭인가?’

악취와 열기가 꽤나 매서웠다. 급하게 [수호신]을 사용해서 방어해 내긴 했지만, 초록색 거미를 연상하게 아는 녀석이었다.

물론, 초록 거미보다는 위협적이지 않았다. 움직임도 그리 빠르지 않고, 폭발의 위력도 그리 강한 편이 아니었다. [수호신]과 함께 [불굴의 육체]를 가지고 있는 승한에게는 큰 타격을 주기 어러웠다.

‘가렝과 자칼은……?’

다행히 가렝과 자칼도 잘해내고 있었다. 폭발의 범위가 아주 넓은 것도 아니고, 반응이 즉발 적이지도 않아서 손으로 머리를 날리고 뒤로 빠지는 식으로 싸웠다.

둘의 몸놀림이 보통 민첩한 게 아니었다. 승한만큼은 아니더라도 웬만한 헌터들과 견주어서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그 정도만 해도 10마리의 좀비 거인을 처리하기에는 충분했다.

순식간에 10마리의 좀비 거인을 다 쓰러뜨렸다. 승한이 처리한 게 5마리였고, 가렝과 자칼이 함께 5마리를 쓰러뜨렸다. 자칼과 가렝은 나르샤를 보호하느라 적극적으로 싸우지 못한 탓에 승한보다 활약이 적었다.

“한 번 몰려오니 끝도 없이 오는군.”

“네?”

한 무리 좀비 거인들을 쓰러뜨린 승한이 가렝을 돌아봤다. 분명 싸움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아직까지 그들은 꺼내든 손톱을 집어넣지 않고 있었다.

“준비해라. 이번엔 몇 놈일지 모르니.”

**

펑, 퍼펑-!

사아악-.

승한은 방패를 바꾸고 갑옷을 맞추기를 잘 했다고 생각했다. 좀비 거인들이 터져 나가며 생기는 폭발로부터 몸을 지키려고 지금까지 계속 [수호신]을 사용하고 있었으면 꽤나 지쳤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대체 몇 놈이나 있는 거야!”

승한은 나르샤와 가렝, 자칼의 뒤를 쫒는 좀비 거인들을 향해 다시금 검을 휘둘렀다. 자칼이 나르샤를 등에 업고, 가렝이 그들을 호위하기 위해 바로 옆에 붙어있었다. 승한은 뒤 쫒아 오는 좀비 거인들을 향해 쉴 세 없이 검을 휘둘렀다.

벌써 몇 마리나 되는 좀비 거인들을 베었을까? 수는 진작에 세는 걸 포기했다. 그 대신, 시간을 확인해 보니 벌써 세 시간이 지나있었다.

퍼엉-!

다시금 좀비 거인의 몸이 터져 나갔다. 이제는 그들을 상대하는 게 익숙해진 터라 승한은 [귀신]을 이용해 여유롭게 뒤로 물러났다. 다행히 터지는 속도가 느려서 피하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그어어어-.

하지만 그 뒤를 다시금 좀비 거인이 뒤따랐다. 녀석들은 썩어버린 몸뚱이와는 어울리지 않게 제법 민첩했다. 특히나 중간 중간 땅 밑에서 갑작스럽게 솟구치는 녀석들이 있어서 그런 경우도 신경을 써야했다.

‘일단 땅 위에 있는 녀석들부터…….’

승한의 눈이 반짝 빛났다. 땅 위를 밟은 다리에 힘이 들어가고, 승한의 몸이 [귀신]을 이용해 좌에서 우로 훑고 지나갔다.

사악-.

달려오던 좀비 거인들 십여 머리가 순식간에 머리가 베어졌다. 잠시 후,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는 바람에 그 뒤를 따라오던 좀비 거인 무리들이 잠시 주춤했다.

그 사이, 승한은 나르샤와 자칼, 가렝에게로 합류했다.

“아직 도착하려면 멀었습니까?”

“……거의 다 왔다.”

자칼은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그러곤 바로 앞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저기 보이는군.”

“저기라면…….”

승한은 자칼의 시선을 따라 바로 앞인 전방을 확인했다. 멀리 보이는 곳으로 거대한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뱀의 머리가 보였다.

‘저게 뭐지?’

거리가 꽤 되는 것 같은데도 어마어마한 크기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동굴처럼 입 안은 텅 비어있었는데, 아직 도착하려면 꽤 가야 할 것 같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동굴. 아무래도 나르샤와 가렝, 자칼이 향하던 곳이 바로 그곳이었던 모양이었다.

그그그그그-.

그 때, 뱀의 머리 앞으로 황무지의 땅을 뚫고 다시금 수많은 좀비 거인들이 나타났다. 나르샤를 업고 앞장서 가던 자칼이 걸음을 멈추고 인상을 찌푸렸다.

“저것들은 죽어서도 난리로군.”

승한은 자칼의 중얼거림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좀비라면 당연히 죽은 존재였는데, 의아한 점은 그것보다는 자칼이 좀비 거인들에 대해서 뭔가를 알고 있는 듯이 말한다는 점이었다.

‘살아 있을 때 알고 있던 자들인가? 아니, 그렇게 보기에는…….’

자칼과 가렝이 죽인 좀비 거인들의 수는 승한에게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결코 적지 않았다. 좀비 거인이 결코 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마족이라는 자칼과 가렝의 실력도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만약 살아생전에 알고 있던 자들이라면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좀비 거인들을 학살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이 많은 수의 거인들을 일일이 알고 있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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