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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타임-62화 (6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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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여섯번째 꿈

멀리서 봤을 땐 구분이 잘 되지 않았지만, 가까이서 보니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이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괴물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어디까지나 그들은 겉으로 보기에 보통 사람과 큰 차이가 없어 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가까이서 그 이면을 보니, 분명 사람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뿔이 있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지.’

아니, 어쩌면 있을 수도 있었다. 세상에 사람은 많고, 그 중 돌연변이를 일으킨 사람도 많으니까. 손가락이 여섯 개라거나, 네 개이거나, 다리가 하나 더 달리거나, 심지어 머리가 두 개인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하나가 아니고 둘, 셋이라면?

승한의 앞에 있는 사람 세 명이 바로 그러했다. 그들의 피부색은 흰색이나 검은색, 황갈색이 아닌 붉은색이었다. 살이 조금 탔다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도 선명한 붉은색이라 보통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사람이 아니면 대체 뭐지?’

승한이 놀라서 말이 없자, 그들이 먼저 승한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몸에 묻어 있던 피는 갑옷을 바꾸느라 사라졌지만, 얼굴에 묻어 있던 검은 피를 보면 승한이 뱀들을 처리했다는 것쯤은 금방 알 수 있었다.

“당신이… 저것들을 다 죽였습니까?”

가장 앞쪽에 있던 여인이 물었다. 머리에 손가락 길이의 두 개의 작은 뿔을 가지고 있고, 피부가 붉다고는 하나 그것을 제외하면 눈이 부실 만큼 아름다운 미인이었다. 허리까지 늘어지는 기다란 검은 머리나 선명한 이목구비, 그리고 한 번도 본적 없던 붉은빛이 감도는 보석 같은 눈까지, 승한은 그녀를 보면서 무언가에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여인의 말은 분명히 한국말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영어도 아니었고, 또한 다른 나라의 언어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승한이 사는 세상에는 없는 또 다른 언어. 하지만 승한은 그들의 말을 정확하게 듣고,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스테이지와 승한에게 능력을 준 시스템이 승한의 머릿속에 직접적으로 입력하는 정보와 같은 개념이었다.

승한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일단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저들이 적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아직까지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려면 2분가량이 남아있었고, 다음으로 승한이 취할 행동은 그 시간이 지난 뒤에 결정될 것이었다.

“맞습니다.”

“당신, 인간이군요.”

여인은 승한을 조금 경계했다. 하긴, 승한이 벌여 놓은 일만 하더라도 승한이 보통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승한이 적인지 아군인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하는 만큼 경계는 당연했다.

‘역시, 단순히 특이한 사람들만은 아니야.’

승한은 눈앞에 있는 여인과 두 명의 다른 남자를 어쩌면 조금 특이한 사람들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승한을 보고 인간이라고 말하는 걸 보면, 역시나 그들이 보통 사람은 아닌 모양이었다.

“맞습니다.”

“인간이 여기엔 왜 있는 거죠?”

“글쎄요.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고 하면 믿겠습니까?”

승한은 변명거리를 생각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말했다. 스테이지의 시작과 함께 이곳에 나타나게 된 것을 달리 설명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서였다.

그리고 그 대답에 여인과 다른 두 남자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승한이 자신들을 가지고 장난을 친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내.

“그 말, 진짜로군요.”

“네?”

“거짓말은 아니에요. 그리고 당신은 우리를 해칠 생각도 없고요. 그렇죠?”

후자는 당연히 아니었지만, 전자를 진짜로 믿는 건 의외였다. 정말로 하늘에서 떨어진 건 아니었지만 승한은 거짓말을 할 생각이 없이 대답한 것이었다.

‘내 속마음이라도 읽은 건가?’

그냥 감으로 찍은 건지, 아니면 승한의 생각이나 마음을 읽은 건지는 알 수 없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승한은 싱긋 웃으며 다른 말을 하기보다는 어서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남은 시간은 30초.’

“당신, 무얼 기다리고 있는 건가요?”

여인이 다시 승한을 경계했다. 자신들을 해칠 생각이 없음을 알고 있다고 해도, 승한이 수상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승한은 여인이 자신이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아차리자 깜짝 놀랐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리 강해보이진 않았지만, 이것으로 분명해졌다. 여인은 승한의 마음을 읽거나, 감정을 읽어내고 있었다.

“그걸 어떻게…….”

“먼저 대답해 주세요. 당신, 뭘 기다리고 있죠?”

루비처럼 붉은 눈동자가 승한을 곧게 응시했다. 승한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며 그 눈에 빨려 들어갈 듯 시선을 마주했다.

그리고 30초가 흐르고.

“저는…….”

[6.1스테이지를 완료하였습니다.]

승한의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

“허억!”

경직된 몸이 움직이며 승한이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킨 승한은 깜짝 놀라 주변을 둘러봤다.

“……집?”

스테이지를 시작하기 전, 나른하고 편안하다는 느낌에 깜박 잠이 들었던 게 떠올랐다. 그리고 나서 꿈이라고 생각했던 게 바로 새로운 스테이지의 시작이었다.

문득 꿈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화요일, 스테이지가 시작되는 날은 아니긴 했다. 게다가 스테이지가 미처 다 끝나기도 전에 일어나버렸다.

하지만…….

“꿈일 리가 없지.”

승한은 스테이지에서 뱀 괴물과 한 시간 가까이 싸웠다. 녀석들과 싸웠던 기억과 감각은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뱀들의 구역질나는 피 냄새가 아직까지 코 끝에 느껴질 정도였다.

그 생생한 기억과 감각이 단순한 꿈이라고?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승한이 스테이지에서 구입한 검과 방패, 갑옷이 그대로 승한에게 귀속되어 있었다. 단순한 꿈이 아니라는 결정적인 증거였다.

‘그렇다면 스테이지가 중간에 끊겼다는 뜻인데…….’

실패일까?

덜컥 그런 생각이 들어 두려움이 들었다. 아직까지 스테이지를 실패해 본 적이 없었던 승한이라 스테이지를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지도 알지 못했다. 승한이 알고 있는 사실은 스테이지를 실패해도 죽지 않는다는 것과, 능력을 얻지 못한다는 것뿐이었다.

‘아니. 난 실패하지 않았어.’

스테이지의 달성 조건은 1시간 동안 살아남는 것이었다. 승한은 분명하게 살아남는데 성공했다. 오히려 살아남는데서 그치지 않고 나타난 뱀 괴물들을 모조리 죽이기까지 했다.

무엇보다 마지막 순간, 승한의 머릿속에는 분명한 스테이지의 성공 메시지가 입력되었다. 아직까지도 그 메시지는 승한의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그렇다면 왜?’

스테이지를 완료했다면 능력이 주어져야 할 터. 그런데 승한은 아무런 능력을 얻지 못한 상태였다.

혼란이 들어 승한은 급히 스마트폰을 켰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벌서 4시 반에 가까웠다. 대충 한 시간 정도쯤 잠들어 있었던 모양이었다.

뚜루루루-.

승한은 가장 가까운 헌터라고 할 수 있는 윤재에게 전화를 걸었다. 바쁜 일은 없었는지 윤재는 금방 전화를 받았다.

-왜, 무슨 일이야?

“형, 혹시 주무시진 않았죠?”

-응. 아직 잘 시간 아니잖아. 지금은 그냥 동생이랑 같이 있어. 갑자기 그건 왜?

승한은 방금 전 상황을 짤막하게 설명했다. 방금 전 나른함에 침대에서 잠이 들었고, 그 뒤에 스테이지를 진행했다는 것과 스테이지를 완료했음에도 능력을 얻지 못했다는 것까지. 이야기를 듣는 내내 윤재는 깜짝깜짝 놀랐다.

-……뭐지? 지금까지와는 많이 다른데?

“혹시 형도 같은 일을 겪지 않았을까 해서 전화했어요. 아직 안 주무셨다고 했죠? 어쩌면 형도 오늘 밤에 잠이 들면 같은 일을 겪을지도 몰라요.”

-이것 참, 난 긴장하면 제대로 못 자는데… 오늘도 편히 자기는 글렀네.

통화음 너머로 들려오는 윤재의 목소리가 썼다. 아무래도 승한이 겪은 현상을 좋게 보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아마도 그 역시 괴물이 꼭 일요일에만 나타나지 않을지 모른다는, 승한과 같은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다음 스테이지는 내일 시작할지도 모르겠는데?

“내일이요?”

-그래. 6.1스테이지가 끝나면서 잠에서 깨어났다고 했지? 스테이지를 실패한 게 아니라면 아마도 내일 다시 잠에 들 때, 다음 스테이지가 시작될 것 같다.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단순히 스테이지의 성공과 실패만을 생각했던 승한은 윤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만 돌아서 생각하면 떠올릴 수 있는 생각을, 당황한 나머지 생각해 내지 못한 것이다.

-일단 나도 오늘은 일찍 자고 일어나서 내일 연락해 줄게. 이거 정말 긴장해야겠는데. 뱀 괴물이 수도 없이 나타났다고? 나 같은 녀석은 그런 가운데서 싸우면 맥없이 죽는다고.

“약한 소리 마세요. 형은 불의 방벽을 쳐서 몸을 보호하고 여우비를 떨어뜨리면 그만이잖아요? 아니지, 아예 주작을 타고 올라가서 뱀들이 닿지 않는 곳으로 도망친 상태로 1시간을 버틸 수도 있을 거고요.”

승한은 약한 소리를 하는 윤재의 말에 피식 웃었다. 다른 헌터들은 몰라도, 윤재라면 훌륭히 다음 스테이지를 통과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뭐, 내 스테이지와 네 스테이지가 같으리라는 법은 없으니까. 너나 주희와 이야기를 나눠 봐도 스테이지 내용이 같은 적은 처음 한 번 외에는 없었고.

“하긴, 그러네요.”

-주희에게도 연락해 줘라. 걔도 이야기는 들어야 당황하지 않고 잘 넘기지. 아니, 가능하면 안석환을 통해서 다른 헌터들에게도 알리도록 해. 뭐, 낮잠을 잔 헌터가 너 한 명만은 아니겠지만.

“알았어요, 형.”

윤재와의 통화로 조금은 속이 편안해졌다. 답답하게 막혀있던 문제가 풀린 듯한 느낌이었다.

‘내일 다시 스테이지가 진행될 거라고?’

아직 확실하진 않지만 가능성은 충분했다. 화요일부터 스테이지가 진행된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었다.

‘굳이 왜?’

승한은 마지막에 만난 붉은색 눈을 가진 여인을 떠올렸다. 특이한 피부색과 뿔만큼이나 인상적이었던 눈이었다. 오늘 진행한 스테이지는 단순히 이야기의 전반부, 아니 그 시작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꽤나 골치 아플지도 모르겠어.’

문득 승한의 머릿속에 4스테이지가 떠올랐다.

빨간색부터 보라색까지, 총 일곱 개의 문으로 이루어진 스테이지였다. 보라색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난이도가 올라갔는데, 달리 생각하면 그것은 7개로 나누어진 스테이지로 볼 수도 있었다.

그것과 비슷하다면 아마도 앞으로 점점 난이도는 올라갈 것이다. 하긴, 이대로 쉽게 스테이지가 끝난다면 그것도 이상했다.

‘아직 다음 스테이지의 내용도 알지 못하니…….’

오늘 바로 스테이지를 진행하고 끝마쳤으니 윤재의 말대로라면 아마 오늘 밤은 스테이지를 진행하지 않고 단잠에 빠져들 것이다. 그리고 아마 낮잠을 자지 않은 대부분의 헌터들은 오늘 밤, 승한과 같이 여섯 번째 스테이지를 시작하겠지.

그 과정에서 처음부터 탈락하는 헌터들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얼마 전, 호계동에서 죽은 이주호, 박향근, 차상민과 같은 전철을 밟게 될 확률이 높았다.

능력을 얻지 못한 헌터는 뒤처지고, 약해지고, 괴물들로부터 죽게 된다. 헌터들도 이번 괴물과의 싸움으로 그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헌터들 중 사망자의 대부분은 5스테이지의 능력을 얻지 못한 헌터들이었으니 말이다.

“남은 한 주 동안은 좀 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승한은 머리를 흔들며 슬슬 어두워지고 있는 하늘을 바라봤다.

“다시 바빠지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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