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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하나의 길
“……저희를요?”
윤재가 당황해서 물었다. 승한은 이미 생각하고 있던 바라서 별로 당황하지 않았지만, 윤재는 달랐다.
“승한이만이 아니라, 저도요?”
“네. 윤재씨와 승한씨, 그리고 주희씨. 세 분 모두 용병 헌터로 고용하고 싶습니다.”
“주희까지…….”
함께했던 세 명 모두 주목을 받았다. 승한이라면 몰라도, 윤재는 자신과 주희까지 고용하겠다는 데에서 깜짝 놀랐다.
“승한씨야 두말할 것도 없고, 윤재씨와 주희씨도 충분히 다른 헌터들보다 뛰어납니다. 주희씨는 아직까지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지만, 헌터들 중 몇 안 되는 버프 계열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할 수 있습니다.”
“저는요?”
“윤재씨가 가진 능력은 광범위한 공격이 가능하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위력도 결코 약하다고 볼 수 없죠. 보스에게는 통하지 않았지만, 보통 괴물들을 한 번에 수십 마리씩 쓸어버리는 것만 봐도 충분히 대단한 능력입니다. 다른 헌터 분들의 경우, 그 정도 범위에 가하는 능력의 위력이 현처하게 떨어지더군요.”
김현수 중령은 어깨에 메고 온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냈다. USB에 들어있던 영상을 하나 틀자, 헌터들이 괴물들과 싸우는 모습이 나타났다.
“으음…….”
영상 속에서는 여러 헌터들이 괴물들과 싸우는 모습이 깔끔하게 편집되어 있었다. 그 중에는 승한이 싸우는 모습이 나타난 있는 영상도 있었다.
비록 화질이 썩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떤 사람이 어떻게 싸웠는지는 확인이 가능했다. 윤재와 주희, 영유 외에는 다른 헌터들이 싸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던 승한은 헌터들이 싸우는 영상을 유심히 지켜봤다.
‘능력의 형태가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데.’
기본적으로 승한처럼 검을 쓰는 헌터들이 가장 많았다. 윤재처럼 마법같은 능력도 많았고, 무언가를 소환해서 싸우는 헌터도 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리 강해 보이지는 않았다. 괜찮다 싶은 헌터가 윤재와 비슷한 수준이었는데, 그마저도 윤재에 비하면 조금 미치지 못했다. 보스를 잡는 부분에서는 여러 명의 헌터들이 뭉쳤다. 그나마도 초록색 이상의 보스는 드물었다.
‘남색과 보라색은 예외적인 경우였나?’
서울 지역에 남색의 보스가 나타나긴 했지만 총 다섯 명의 헌터가 힘을 합쳐서 잡을 수 있었다. 남색 거대 거미를 잡은 다섯 명의 헌터들은 확실히 다른 헌터들에 비해 실력이 훨씬 뛰어나 보였다.
그리고 한 명.
‘안석환.’
승한은 안석환의 이름으로 되어있는 영성을 확인했다. 영상 속에는 안석환이 싸우는 모습이 나타나 있었다.
‘특이한데?’
안석환의 능력은 제법 특이한 편이었다. 대부분 무기를 사용하는 반면, 안석환은 손에 검은 장갑 같은 걸 끼고 손바닥으로 거미를 쓸고 지나갔다.
때리는 게 아니었다. 어루만지듯, 가볍게 쓸고 지나갔다. 그러자 괴물이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고꾸라지며 죽어나갔다.
‘어떤 능력인 거지?’
영상만으로 봐서는 정확한 건 알 수 없었지만 제법 강하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승한과 마찬가지로 괴물들과 가까이 접근해서 싸우는데,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승한보다 훨씬 더 괴물들과 가까이 붙어서 싸우고 있었다.
물론, 특이한 점으로만 본다면 안석환이 독보적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안석환 외에도 특이한 능력을 사용하는 헌터는 많았다. 특이하지 않은 헌터가 반이라면, 특이한 헌터가 나머지 반이었다. 안석환은 그런 헌터들 중 한 명일 뿐이었다.
승한과 윤재는 다른 헌터들이 괴물들과 싸우는 모습은 꽤나 길게 지켜보았다. 말없이 삼십 분 정도 영상을 보고 있을 때, 김현수 중령이 입을 열었다.
“크흠. 이걸 다 보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텐데요?”
정신없이 영상을 들여다보던 승한과 윤재가 아차하며 노트북 화면에서 시선을 떼었다. 영상은 각 헌터별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김현수 중령이 가지고 있는 USB에만 수백 명에 달하는 헌터들의 영상이 들어있었다.
“아,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까진 없습니다. 어차피 보여드리려고 꺼낸 건 저니까요. 따로 파일을 드릴 수 없는 게 죄송할 따름입니다.”
김현수 중령은 노트북을 덮었다. 어차피 승한과 윤재도 더 이상 영상을 볼 필요는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헌터들의 수준이 이 정도구나, 라는 것만 봤으면 족했다.
“어떠셨습니까?”
김현수 중령의 물음에 윤재가 답했다.
“솔직히… 실망했습니다.”
“어떤 점에서요?”
“생각보다 뛰어난 헌터가 많이 없어서요.”
승한을 바로 옆에서 봐서 그럴까? 윤재는 영상에서 본 헌터들 중, 눈에 차는 사람이 없었다. 그나마 괜찮은 사람이라고 한다면 안석환 정도였다.
물론 삼십 분 동안 영상을 통해 확인한 헌터의 수는 서른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정도를 봤으면 대략 헌터들의 평균적인 수준은 짐작할 수 있었다.
윤재의 생각보다 헌터들의 수준은 그리 높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하긴, 그럴 수도 있군요. 승한씨 같은 분이 바로 옆에 있으니까요. 상대적으로 다른 헌터들이 뒤쳐져 보일 수밖에요.”
김현수 중령은 어깨를 으쓱이며 윤재를 바라봤다.
“아무튼 아셨겠죠? 윤재씨는 그저 그런 수준의 헌터가 아닙니다. 윤재씨는 윤재씨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뛰어난 헌터입니다.”
“그렇습니까?”
승한이 옆에 있어서 스스로가 그리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다고 생각한 윤재는 자신감을 얻었다. 주희도 몇 되지 않는 버프 계열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치가 있는 헌터였다.
“그럼, 승낙 하시는 겁니까?”
김현수 중령은 승한과 윤재가 당연히 승낙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승한과 윤재는 그 전부터 아무런 보상 없이 괴물과 싸웠던 이들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김현수 중령이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시간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생각이 필요하십니까?”
“네. 며칠만… 금요일 까지만 시간을 주십시오.”
덜컥 알겠다고 하기에는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정부와 더 깊게 얽히게 되면… 헌터 연합은 어떻게 되는 거지?’
안석환이 말한 헌터 연합은 어디까지나 정부와는 다른 독자적인 세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만약 김현수 중령의 제안을 덜컥 수락해 버리면 헌터 연합과는 초장부터 틀어지게 되는 것이다.
아직 헌터 연합에 대한 틀은 정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정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이 때에는 조금이라도 선택을 늦추는 게 나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금요일까지라고 하셨죠?”
김현수 중령은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헌터 용병의 확보는 토요일 오전까지였다. 금요일까지라면 시간적 여유는 있었다.
“그럼 연락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렇게 승한은 안석환이 제안한 헌터 연합과 김현수 중령이 제안한 정부의 용병, 두 가지 길 사이에 놓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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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거냐?”
김현수 중령과 헤어지고, 지하철을 타고 막 안양에 도착했을 때 윤재가 물었다. 그 역시 고민하고 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승한은 통해 무언가 답을 얻으려 했다. 그것은 당연히 어느 쪽 길을 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었다.
“안석환과 이야기를 해 봐야죠.”
“안석환과? 이미 들을 건 다 듣지 않았어?”
“굳이 어느 한 쪽을 택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잖아요? 헌터 연합과 정부가 제안한 용병을 동시에 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안석환을 비롯한 헌터들이 만들고자 하는 헌터 연합에 대한 성격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이건 제 생각인데… 아마도 안석환에게도 같은 제안이 들어갔을 거예요.”
“안석환에게도? 하긴.”
승한의 말에 윤재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안석환은 이번에 나타난 보스를 잡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헌터였고, 실력 면에서도 윤재보다 더 뛰어났다. 김현수 중령을 통해 볼 수 있었던 헌터들 중에서는 안석환이 제일 뛰어나기도 했다.
실력 위주로 용병을 뽑는 거라면 안석환은 당연하게도 그 후보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당장 오늘부터 접촉이 시도 되는 것이었다면 안석환도 마찬가지로 승한이 정부에게 제안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야기가 복잡해지네. 헌터 연합이 아니었다면 고민할 필요도 없을 텐데…….”
“그러게요.”
가슴이 무언가로 꽉 찬 것처럼 답답했다. 무언가 꼬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하루 사이에 너무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괴물들과의 싸움은 어렵긴 하지만 복잡하지는 않았다. 괴물이 보이면 죽이면 그만이었으니까.
하지만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단체와의 관계는 너무나도 복잡했다. 어떻게 행동해야 맞는 건지 정답이 정해지지 않은 만큼 더더욱 그랬다. 복잡함에 인상이 절로 찡그리며 주머니를 뒤졌다.
주머니에는 전음구와 스마트폰이 들어있었다. 김현수 중령에게 연락을 하려면 스마트폰을 꺼내면 될 것이고, 안석환에게 연락을 하려면 전음구를 꺼내면 될 것이다. 무엇을 꺼내느냐에 따라 앞으로가 달라질 것이다.
“당장 다음 스테이지부터 고민해야 할 시간에, 이게 무슨 일인지…….”
윤재는 중얼거림과 함께 한숨을 푹 내쉬었다. 슬슬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드는 계절인지라 쌀쌀한 날씨에 입김이 나왔다.
복잡한 일들에 잊고 있던 게 생각났다. 당장 승한만 하더라도 지금은 선두를 달리는 헌터였지만, 다음 번 스테이지를 통과하지 못하면 능력을 얻지 못한다. [수호신]만 놓고 보더라도 능력 하나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는데, 만약 다음 스테이지를 통과하지 못한다면 승한도 결국 그저 그런 헌터가 될 게 분명했다.
‘맞아. 다음 스테이지가 있었지.’
승한은 보라색 거미를 잡고 얻은 타임 포인트를 사용하지 않은 상태였다. 다음 능력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난 뒤 어디에 투자할지를 생각해 볼 생각이었다.
‘일단 다음 능력의 확보가 먼저겠지.’
아직 갈 길이 멀었다. [강인함]과 [민첩함], 두 개의 능력을 10레벨까지 올렸지만 다른 능력들은 이 두 개의 능력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타임 포인트를 요구하고 있었다.
특히 5스테이지의 능력인 [수호신]은 10레벨을 달성하기까지 꽤나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가능한 모든 능력을 10레벨까지 달성하려는 승한에게는 까마득히 먼 미래의 일이었다.
“잘 가라. 난 여기서 버스를 타야 돼.”
지하철에서 내려서 조금 걸어가던 윤재가 버스정류장 앞에서 멈췄다. 바로 역 근처에서 걸어가면 되는 승한은 윤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 들어가요, 형.”
“그래. 안석환에게 연락할 때 같이 불러주라. 나도 같이 이야기 좀 하게.”
윤재도 생각이 많은 모양이었다. 그 역시 승한과 마찬가지로 정부와 헌터 연합, 두 세력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그 역시 혼자서 이야기 하는 것보다는 승한과 함께 이야기 하는 게 마음이 편한 듯했다.
승한은 아직 안석환을 언제 볼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막연하게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다.
“그럼 내일 보겠네요.”
“내일?”
“네.”
승한은 그 자리에서 바로 전음구를 꺼냈다.
“복잡한 건 빨리 끝내버리는 게 낫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