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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변화
승한은 뒤쪽에 있는 군인들을 힐끗 돌아봤다. 그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승한과 보라색 거미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일단 확인은 해 봐야겠지?’
승한은 잠시 검을 내리고 방패를 들었다. 그러곤 군인들을 비롯한 김현수 중령에게 말했다.
“쏘십시오!”
승한의 외침에 김현수 중령이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사격 개시!”
두두두두두두두-.
드르르르르르륵-.
군인들이 들고 있던 총을 쏘아내기 시작했다. 몇 명의 군인들은 타고 있던 박격포를 보라색 거미의 머리를 향해 조준해서 무작정 쏘아냈다.
백 명에 가까운 군인들이 쏘아내는 총이었다. 아무리 범위가 작다고 해도 초당 수천 발의 총알이 날아가 박히는데 멀쩡할 순 없었다. 더군다나 일반적인 기관총이 아닌, 박격포까지 두 대나 있었다.
그렇게 약 십 초 정도 화력이 집중되었다. 김현수 중령은 들고 있던 손을 내리며 소리쳤다.
“정지!”
박격포와 함께 군인들이 들고 있던 총을 내려놓았다. 한바탕 귀를 시끄럽게 울리던 소리가 잦아들고, 걸레짝처럼 넝마가 된 보라색 거미의 모습이 나타났다.
“뭐야, 쉽잖아?”
그 모습에 김현수 중령이 피식 웃었다. 회복 능력이 탁월하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설마하니 저런 모습이 되고서까지 재생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꾸르르륵-.
그리고 그런 김현수 중령의 생각은 몇 초 되지 않아 깨어졌다.
“……말도 안 돼.”
“말이 됩니다.”
윤재는 김현수 중령의 옆에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재생 속도로만 보면 보라색 거미는 남색 거미보다 훨씬 빨랐다. 보라색 거미는 화력이 집중되는 순간까지도 [광휘]의 빛을 뿜어내고 있는 승한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건 그 녀석보다 더 괴물이군.”
“이놈이나 저놈이나 똑같은 괴물인데, 더 괴물이 어디 있어요?”
주희가 입술을 삐죽이며 중얼거렸다. 다른 군인들에 비해 두 사람은 별로 당황한 모습이 아니었다. 이미 거대 거미의 회복력에 대해서는 한 번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승한이 아니었다면 진작 여기 있는 사람들은 죽었겠지.’
승한은 보라색 거미의 앞에서 녀석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보라색 거미는 승한에게 시선을 준 상태로 따로 움직이거나 하지 않고 있었다. 남색 거미와는 다른 반응이었다.
‘그런데 승한이는 왜 움직이지 않는 거지?’
윤재는 승한이 보라색 거미를 발견하는 즉시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총기는 안타깝게도 보라색 거미에게 큰 충격을 주지는 못했지만, 녀석의 움직임을 조금 막기에는 충분했다. 보라색 거미의 몸이 걸레처럼 다져진 건 분명했고, 회복이 되는 시간 동안 승한이 움직이고 그 뒤를 윤재가 밭쳐주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승한이 움직이지 않자 윤재도 먼저 나서서 움직이기가 애매했다. 그것은 주희 역시 마찬가지였다. 승한이 먼저 주도적으로 앞장서서 나서지 않는 이상, 윤재와 주희도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김현수 중령님.”
“네?”
“저 녀석, 여기 있는 부대만으로 잡을 수 있겠습니까?”
승한의 물음에 김현수 중령이 화들짝 놀랐다. 총알을 수천 발이나 얻어맞고 두 대의 박격포에 얻어맞고도 멀쩡히 회복하는 녀석을 잡으라니, 고개가 절로 저어졌다.
“아, 안 될 것 같습니다.”
“안 된다고요?”
쿠구구구-.
그 때, 보라색 거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녀석은 가장 앞장서 있는 승한을 향해 다리를 들어 몸을 짓눌러왔다. 승한은 검 대신 방패를 들어 강하게 휘둘렀다.
꽈직-!
승한이 휘두른 방패에 보라색 거미의 다리가 으깨졌다. 승한의 방패에는 검처럼 [광휘]의 빛이 머금어져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으깨진 보라색 거미의 다리는 총기에 얻어맞은 상처에 비해 회복이 눈에 띄게 더뎠다.
“그 헌터들의 도움 없이 이 녀석을 잡을 수 없다는 소리시죠?”
승한은 눈을 번뜩이며 김현수 중령을 흘겨봤다. 거대한 보라색 거미의 다리를 순수한 완력만으로 으깨버리는 모습에 김현수 중령은 물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모든 군인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 그럴 것 같습니다.”
“이번엔 넘어가겠습니다. 하지만 두 눈으로 보고 계신 만큼 분명히 명심해 두십시오. 다음번에는 이것들보다 훨씬 더 강한 녀석이 나올 겁니다.”
보라색 거미가 성을 내며 다시 다리를 뻗어왔다. 그 다리에 날카로운 가시가 돋아났는데, 가시의 끝에는 보라색의 맹독이 묻어나 있었다.
승한은 방패를 들어 보라색 거미의 다리를 막아냈다. 다른 몇 개의 다리가 승한을 집중적으로 노렸다. 아무리 승한이라 해도 그 가시에 찔려 독이 퍼지면 치명적일 수 있었다.
“보고, 판단해서 위에 그대로 보고하십시오. 헌터들의 도움 없이는 이놈들을 막기란 불가능하다고! 만약 헌터들을 방치한다면, 시민들만이 아니라 당신들 군인들도 죽은 목숨입니다.”
서걱-.
승한이 검을 들어 다리를 하나 베어냈다. 베어져 나간 다리가 뒤쪽으로 날아가 군인들이 있는 방향에 떨어졌다. 가까이 있던 군인이 거대한 다리를 보며 식겁해서 뒤로 물러났다.
‘그런 의도였냐?’
윤재는 그때서야 승한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승한이 바로 행동을 취하지 않은 이유. 그것은 바로 군인들에게 경고를 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이번에 나타난 괴물들과 싸워보지 않았다. 그 때문에 괴물이 얼마나 강한지 모르고 있었다. 그들이 싸워본 괴물은 리자드맨 정도의 수준이라, 총알 몇 대만 박아도 죽일 수 있었다.
하지만 거미들은 다르다. 녀석들의 덩치와 생명력은 리자드맨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보스는 질긴 재생력과 생명력으로 사실상 총기를 무시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만약 총기류가 제대로 먹히지 않는 모습조차 보지 못한 채 싸움이 끝나게 되면, 군대는 헌터들의 필요성을 제대로 자각하지 못할 것이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정도로 인식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승한은 군대가 먼저 총을 퍼부을 시간을 만들어주고, 보라색 거미에게 총과 박격포가 제대로 통하지 않음을 인식시켜 주었다. 그리고 행동은 그 다음이었다.
‘그럼 이제… 움직이겠지.’
역시나.
승한은 검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움직임이 이전과는 달랐다.
더욱 빠르고, 경쾌했다. 아니, 단순히 그것만이 아니었다. 움직임이 빨라진다는 정도를 벗어나, 움직일 수 없는 궤적과 공간을 그려나가고 있었다.
“뭐, 뭐야 저건?”
윤재는 승한의 움직임을 보고 헛웃음을 지었다.
승한은 분명 발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마치 미끄러지기라도 하듯 승한의 몸이 움직였다. 앞으로 나아가다가 다리를 피해 옆으로 휙 움직이고, 심지어는 땅과 길이 없는 허공으로 올라가기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움직임은 이전보다 훨씬 빨랐다. 윤재는 한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눈을 깜박여 봐도 자신의 눈에는 이상이 없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
서걱-.
촤아아악-.
승한은 허공을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검으로 보라색 거미의 다리부터 베어내기 시작했다. 여러 개의 다리를 휘둘러 승한을 공격하던 보라색 거미의 다리는 수십 조각으로 베어져 땅에 떨어져 나갔다.
재생은 바로 되지 못했다. 승한의 검에 맺힌 [광휘]의 힘이 보라색 거미의 재생을 막고 있었다. 다리를 모두 베어낸 승한은 보라색 거미의 배를 가르고, 그 안을 검으로 마구 헤집었다.
콰과과과과-.
그리고 그 위를 향해 윤재의 불길이 떨어졌다. 윤재는 한 점에 힘을 집중해 타격을 입히기보다는 광범위한 공격으로 움직임을 막기 위해 여우비를 쏟아냈다.
“이, 이게 뭐야?”
“헌터라는 능력자들이 있다고는 들었는데… 단순히 초능력 수준이 아닌데?”
군인들은 승한과 윤재가 싸우는 모습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초능력과 같은 힘을 가진 존재들이 나타났고, 그들을 헌터라고 부른다는 것쯤은 이미 뉴스에서 보도된 사실이라 알고는 있었다. 괴물들도 등장한 마당에 초능력자이 등장했다고 그 일이 아주 허황되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이 없었다.
하지만 막상 뉴스를 통해 이야기를 듣는 것과 눈으로 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무엇보다 능력자라고 해봤자 단순히 불이나 쏘고 힘이 좀 더 세겠거니 생각했던 이들은 승한과 윤재의 실력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헌터들의 수준이 이 정도였나?’
그리고 그런 이들 중에는 간부라고 할 수 있는 김현수 중령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역시 헌터들의 영입에 한 팔을 거든 사람이었는데, 그가 헌터들을 영입할 때까지만 해도 이 정도 수준의 헌터를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괴물들도 이렇게 강했었나?’
김현수 중령은 두 명의 헌터와 괴물 하나가 싸우는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통하지도 않는 총기류인데다가, 헌터들이 싸우고 있는데 거기에 총을 쏘아댈 수도 없었던 것이다.
무력했다. 총이 통하지 않는 적을 상대로 군대가 보여줄 수 있는 힘은 한없이 초라할 뿐이었다. 반면, 한 눈에 봐도 승한이 뿜어내는 밝은 빛의 힘이나 윤재가 쏘아내는 불은 보라색 거미에게 통하고 있었다.
‘헌터들의 가치에 대해 다시 재고할 필요는 있겠군.’
애초에 헌터들의 수준에 비해 몸값이 높게 측정된 감이 있었다. 헌데 그런 생각이 싹 날아가 버렸다. 아니, 괴물들과의 싸움에 한한다면 오히려 군대에 투입되는 예산을 헌터들에게 돌리는 게 맞을 정도였다.
파박-.
턱-.
그 때, 승한의 검에 베어져 떨어져 나온 보라색 거미의 살점이 또 다시 군인들의 앞으로 떨어졌다. 그렇게 떨어져 나온 자잘한 살점이 벌써 수십 개였다.
“으, 징그러.”
“이거 총으로 쏴 버릴까?”
“냅 둬. 어차피 살덩인데.”
“왠지 조금씩 움직이는 거 같아서…….”
“낙지도 썰어놓으면 움직이는데, 움직일 수도 있지.”
김현수 중령은 군인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는 주변을 둘러봤다. 사방에 흩어져 있는 살덩어리들이 꿈틀거리는 모습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함부로 다가가지 마라. 거미를 닮은 괴물인 만큼, 독성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니까.”
“알겠습니다!”
김현수 중령의 말에 떨어져 있던 살덩어리들에 관심을 가지던 군인들이 총구를 치웠다. 이미 떨어져 나온 살덩어리들에 관심을 가지느니, 혹시라도 모를 상황에 대비해 승한과 윤재에게 지원을 하는 게 나았다.
꾸물-.
꾸득, 꾸드득-.
군인들이 관심을 거둔 순간, 떨어져 있던 보라색 거미의 살덩어리들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꾸물거리며 벌레처럼 기어 다니더니, 점차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크기가 작은 살덩어리들은 서로 뭉치며 크기를 키워나갔다.
그리고 그것은 작은… 어린 팔뚝만한 크기의 거미로 변화했다. 여전히 색은 보라색이었는데, 거미라고 본다면 결코 작다고 볼 수 없었다.
“어, 어?”
“저게 뭐야!”
그리고 군인들이 그것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녀석들이 군인들에게 다가온 후였다. 김현수 중령은 깜짝 놀라 바로 눈앞까지 뛰어 오른 작은 거미를 향해 총을 쏘았다.
두두두두=.
반응이 빠른 군인들이 총구의 방향을 다시 바꾸었다. 수십 마리의 거미들은 군인들을 향해 뛰어올랐는데, 총에 얻어맞고도 다시 형태를 갖추더니 계속해서 덤벼들었다.
“으아아아아악-!”
============================ 작품 후기 ============================
여기서 문제.
'갑'은 누구일까요?
1. 승한을 비롯한 헌터들
2. 시민들
3. 정부
4. 괴물
5. 그냥 승한
정답은... 언젠가 이야기 속에서 나오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