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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타임-50화 (5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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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변화

승한과 윤재, 주희가 있던 장소는 비산동이었다. 주작을 타고 날아가면 금천구까지는 십 분 정도밖에는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안석환씨. 지금 어디십니까?”

승한은 그나마 한 명, 바로 방금 전에 함께 구디역으로 가기로 했던 안석환을 떠올리고 연락을 넣었다. 거대 거미가 보라색까지 진화한 걸 확인한 이상, 한 손이라도 더 필요했다.

-김희철 소령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지금 이 시간부로는 헌터들은 개입하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개입한다 해도 별도의 보상은 없다고 합니다.

“그럼 가만히 있을 겁니까?”

-움직일 이유가 없습니다.

태도가 싹 바뀌었다. 하긴, 움직인다 하더라도 별다른 보상도 없다고 하니 움직일 이유가 없긴 하다.

사실 승한도 자기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이유가 없지는 않았다. 이대로 손 놓고 있을수록 점점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죽을 거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보스가 보라색까지 진화했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네. 박격포 이상의 준비를 하지 않은 군대가 보라색 거미를 막을 수는 없을 겁니다. 안석환씨. 잘 아시지 않습니까? 총을 든 군인들보다, 저희들이 괴물들을 더 잘 상대할 수 있습니다.”

안석환은 잠시 고민하는 듯 말이 없었다. 몇 초 후에 돌아온 대답은 승한에게 실망적인 말이었다.

-그렇다 해도 아무런 보상도 없는 상태에서 움직일 순 없습니다. 만약 모든 헌터들이 이런 때 아무런 보상 없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추후 헌터들의 보상 문제에 영향을 미칠 겁니다.

“하지만!”

-김승한씨가 어떻게 움직이든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제 선택은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승한은 한숨을 내쉬었다. 추후 정부와의 계약서를 수정할 때를 생각해 아무런 보상 없이 나설 수 없다는 말은 꼭 틀린 말도 아니었다. 만약 모든 헌터들이 이런 상황에서 아무런 대가 없이 나서게 된다면 정부는 헌터들을 대가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도구로 생각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그래도 이건… 아니야.’

안석환을 설득할 수 없음을 깨달은 승한은 결국 다른 헌터들에게도 연락을 넣는 걸 포기했다. 어차피 구로구에서 보스가 나타났다는 것쯤은 다들 알 테고, 굳이 연락을 하지 않더라도 지원을 올 사람은 오게 되어있었다.

‘올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시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도시는 휑했다. 사람들은 다들 대피소로 모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유령도시와 다름없다.

매주 일요일, 사람들은 대피소로 모여들었다. 헌터들을 비롯한 정부의 군대는 괴물들을 소탕하고, 하루가 지난 후부터 사람들을 원래 살던 집으로 돌려보내기로 되어있었다. 즉, 오늘 하루 동안 도시는 텅 빈 유령의 도시나 마찬가지였다.

쿵-쿵-.

금천구에 도착하자 묵직한 발소리가 미미하게 들려왔다. 바람소리와 같은 잡음이 섞여서 이전보다는 작게 들렸지만, 워낙 덩치가 큰 터라 분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더 가까워졌어.’

십 분 사이에 구로에서 금천구쪽으로 더 내려왔다. 승한이 기억하기로 금천구의 대피소는 체육관과 같은 실내가 아닌, 두 개의 학교가 붙어있는 공원이었다.

그리고 그곳은 보라색 거미가 있는 곳에서 주작을 타고 날아서 3분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냄새를 맡은 보라색 거미가 향하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혼자서 막아야 하나? 아니면…….’

잠시 고민하던 승한이 윤재에게 말했다.

“형, 대피소로 가요.”

“대피소로? 군대랑 합류하려고?”

“네. 저희들끼리 하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군대와 힘을 합치는 게 더 수월할 거예요. 어차피 정부에 도움을 요청하려고 해도 저희들을 중심으로 정부가 도움을 줄 것 같지도 않으니, 저희가 따라가는 수밖에요.”

승한의 말에 윤재는 고개를 끄덕였고, 주희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마음에 안 들어요. 사실 저야 어쩌든 상관없긴 하지만… 마치 저희가 을 같잖아요.”

승한과 윤재 역시 주희의 말에 동감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정부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사람 목숨을 사이에 두고 이렇게 저울질을 하는 건 승한도 썩 마음이 편하진 않았다.

윤재는 말없이 주작을 금천구의 대피소인 공원으로 돌렸다. 거대한 주작의 등장에 군인들은 주작을 향해 총구를 겨눴는데, 승한이 손을 들고 소리쳤다.

“멈추십시오!”

주작 위에 사람이 타고 있는 걸 확인한 군인들이 총구를 치워냈다. 승한과 윤재, 주희가 주작 위에서 내리고 군인들 사이로 다가갔다.

“이곳 책임자 분을 뵐 수 있겠습니까?”

“헌터 분들입니까?”

승한의 물음에 군인들 사이에서 가슴에 두 개의 무궁화를 달고 있는 사람이 나타났다.

“52향토보병사단 213보병연대 김현수 중령이라고 합니다.”

“안양시 소속 헌터 김승한이라고 합니다. 이쪽은 김윤재, 이주희씨입니다.”

김현수 중령은 승한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그 역시 헌터에 대한 정보는 알고 있었는데, 헌터라면 쉽게 대할 수 없는 귀한 인력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헌터분들의 일은 끝난 것으로 아는데…….”

“현재 보스가 내려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네. 정보는 확보해 뒀습니다. 덩치가 상당한 녀석이라고 하더군요.”

“현재 대피소에 주둔해 있는 군인들만으로는 보스를 못 막습니다. 헌터들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승한의 요청에 김현수 중령은 난감한 기색을 비췄다.

“죄송합니다. 그건 제 권한 밖의 일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만이라도 돕겠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이후의 활약에 대해서는 어떠한 보상도 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알고 계십니까?”

“네. 압니다.”

승한은 한숨을 푹 내쉬며 군인들을 둘러봤다.

“그렇다고 여기 계신 분들을 다 죽게 내버려 둘 수도 없지 않습니까?”

승한의 말에 김현수 중령을 비롯해 그 말을 들은 군인들이 몸을 떨었다. 절대로 장난으로 하는 말 같지는 않았던 것이다.

“……보스가 그 정도로 강합니까?”

“제가 상대한 보스는 지금 오는 녀석보다 약했습니다. 사실 제가 괴물을 총으로 쏴 보지 않아서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제 생각에는 보스에게 일반적인 총기는 먹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박격포도요?”

“네. 탱크나 미사일 정도가 아니면 안 통합니다.”

승한은 자신이 상대한 남색의 거대 거미에 대해서 설명했다. 거대 거미가 다른 거미들을 잡아먹을수록 점점 더 강해지면서 색이 보라색에 가까워진다는 것과, 그에 따른 회복 능력, 그리고 점점 더 커지는 덩치까지. 이야기를 듣고 있던 김현수 중령의 안색이 점점 더 딱딱해졌다.

“……그렇다면 정말 총기가 먹히지 않을지도 모르겠군요. 아무리 총을 쏴대도 곧장 회복을 할 테니까요.”

“요점은 핵입니다. 핵을 베지 않으면 그 녀석은 죽지 않습니다.”

“알겠습니다. 보스에 대한 정보는 다른 대원들에게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쿵-.

그 때, 승한의 감각에 대피소에 가까워진 보스의 걸음걸이가 느껴졌다. 그리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먼 거리도 아니었다.

지금 당장은 별 생각 없이 느릿하게 걸어 다니는 것뿐이지만 곧 사람들의 냄새를 맡게 되면 빠르게 달려들 게 뻔했다. 녀석이 마음 먹고 달려들기 시작하면 이 정도 거리는 1분도 되지 않아서 좁혀질 것이다.

‘온다.’

그렇게 잠시 후.

쿵쿵쿵-.

보라색 거미가 대피소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냄새를 맡았는지, 걸음걸이가 아까와는 확연히 달랐다.

“이, 이거…….”

“대체 얼마나 큰 거야?”

군인들도 보라색 거미의 발소리를 들었는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보라색 거미가 달려오는 모습이 시야에도 나타났다.

“미친!”

“뭐, 뭐야 저거!”

군인들은 혼란에 빠졌다. 보라색 거미의 덩치는 어지간한 작은 건물만 했다. 조금씩 덩치가 커지던 거대 거미가 보라색이 되면서 훨씬 더 거대해진 것이다.

이대로 달려온다면 막아내기는커녕, 대피소에 있는 사람들 전체가 깔아뭉개질 게 뻔했다. 총으로 쏜다고 해서 저리 매섭게 달려들던 녀석이 멈추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화아아악-!

그 순간, 승한의 몸에서 [광휘]의 빛이 빛나기 시작했다.

[25600타임 포인트를 소모하였습니다.]

[‘능력 - 광휘’의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승한은 가지고 있던 타임 포인트 중 일부를 [광휘]에 투자했다. 괴물들의 상대에 가장 필요한 능력이 바로 [광휘]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마음 같아선 [광휘]의 레벨을 하나 더 올리고 싶었지만 그럴 순 없었다. [광휘]를 9레벨로 올리기 위해서는 51200타임 포인트를 소모해야 하는데, 승한에게 남은 타임 포인트가 그만한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이미 타임 포인트를 어떻게 사용할지는 정해둔 상태였다. 승한은 남아있는 타임 포인트를 하나의 능력에 올인했다.

[6400타임 포인트를 소모하였습니다.]

[‘능력 - 민첩함’의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12800타임 포인트를 소모하였습니다.]

[‘능력 - 민첩함’의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25600타임 포인트를 소모하였습니다.]

[‘능력 - 민첩함’의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능력 - 민첩함’ 10레벨을 달성하였습니다.]

[‘능력 - 민첩함’이 ‘능력 - ’귀신‘으로 변화합니다.]

‘이름 한 번 특이하군.’

7레벨에 머물러 있던 능력인 [민첩함]은 다른 능력과는 달리 다음 레벨까지 필요한 타임 포인트 수치가 적었다. 승한이 가지고 있던 74000타임 포인트로는 [민첩함]의 레벨을 10까지 올릴 수 있었다.

역시나 [민첩함]역시도 10레벨을 달성하자 다른 능력으로 바뀌었다. [귀신]이라는 이름이 조금 특이했는데, 승한은 그 능력의 효과를 깨닫고는 헛웃음을 지었다.

‘뭐 이런 능력이 다 있어?’

승한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아무래도 남은 타임 포인트를 모두 [민첩함]에 투자한 건 꽤나 적절한 선택이었던 모양이었다.

사사삭-.

승한의 몸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아무리 빠르게 움직였다고 해도 갑자기 사라졌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마치 투명화가 된 것처럼 승한의 몸이 사라지더니 보라색 거미에게 가까운 곳에서 나타났다.

쿵-.

보라색 거미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녀석은 다시 모습을 나타낸 채 [광휘]로 몸을 밝히고 있는 승한을 내려다보았다.

그르르르-.

거미 주제에 녀석은 입에서 짐승의 울음소리를 흘렸다. 두드러기처럼 온 몸에 나 있는 짙은 보라색 점박이들이 꿈틀거렸다.

승한은 알 수 있었다.

녀석은 자신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감정은 승한 역시 비슷했다.

‘남색 거미와는… 전혀 다른 녀석이군.’

승한은 보라색 거미가 아닌, 그 안쪽에 있는 핵을 주시했다. 까닭은 알 수 없지만 [광휘]의 빛이 녀석의 몸속에 있는 핵을 환하게 밝혀 승한의 눈에 보여주었다.

저것을 베야한다. 다른 건 베어봤자 소용없었다. [광휘]의 레벨이 하나 더 올랐다고는 하나, 보라색 거미의 몸뚱이를 아무리 베어봤자 소용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베기 위해서는, 녀석의 몸을 난도질 하거나…….

‘단칼에 베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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