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타임-45화 (45/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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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붉은 거미

‘[광휘] 때문인가?’

[광휘]는 거미들은 물론, 모든 괴물들에게 상극이 되는 힘이었다. 그 힘에 상처를 입은 부위가 상처가 회복이 잘되지 않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조금은 희망이 생겼다. 승한은 어떻게 해서든 거대 거미의 목을 떨어뜨릴 생각이었다.

샤아아악-.

파란 거미의 다리가 승한을 향해 뻗어왔다. 이번엔 하나가 아닌, 무려 네 개였다.

촤아아악-.

꾸웅-!

승한이 방패를 들어 파란 거미의 다리를 막아냈다. 파란 거미는 승한이 방패를 이리저리 움직여 자신의 다리를 막아내자 다리 끝에 있는 몸을 움직여 승한에게 빠르게 다가왔다.

초록 거미 하나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녀석의 움직임은 생각보다 빠르지 않았다. 승한이 파란 거미를 비롯한 다른 거미들과 싸우는 사이, 승한의 뒤를 덮쳤다.

사악-.

승한의 몸이 빠르게 반 바퀴 돌아가 그대로 검을 휘둘러 초록 거미의 몸을 베어냈다. 초록 거미는 파란 거미에 비해 덩치가 그렇게 큰 편이 아니었는데, 승한의 검에 단번에 베어져 몸이 반쯤 베어져 너덜거렸다.

추아아악-!

퍼펑-!

반으로 베어진 초록 거미의 몸에서 독이 뿜어져 나왔다. 초록색 안개로 된 독안개는 주변에 있는 다른 거미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지금까지 만난 다른 어느 거미들보다도 훨씬 끔찍한 독이었다.

“콜록!”

초록 거미가 죽으면서 뿜어낸 독 안개에 승한이 기침을 토했다. 순간적으로 폐부를 찌르는 느낌이 들었다. [수호신]의 가호가 없었다면 그대로 피를 토했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젠장. 이젠 자폭이냐?’

독 안개 때문에 눈앞도 흐릿해지고 속도 메스꺼웠다. 하긴, 어느 정도 독에 내성이 있을 거미들도 픽픽 쓰러지고 있는 마당에 이 정도 피해면 양호하다고 볼 수 있었다.

승한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초록 거미의 자폭으로 독을 들여 마시긴 했지만, 그 덕분에 승한은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잔챙이들은 다 정리를 해 줬으니…….’

승한의 주위에 있던 거미들을 돌아봤다.

노란 거미와 주황 거미, 붉은 거미까지. 대부분의 거미들이 휘청거리거나 바닥에 쓰러졌다. 초록 거미의 독 안개는 꽤 범위가 넓게 퍼졌는데, 승한을 중심으로 모여들었던 거미들이 그 독에 휩쓸린 것이다.

덕분에 멀쩡히 서 있는 거미는 파란 거미와 노란 거미 몇 마리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종종 승한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거미도 있었는데, 그 수는 몇 마리도 되지 않았다.

꾸르르륵-.

그 순간, 승한은 섬뜩한 소리에 몸을 뒤로 움직였다. 거대 거미의 몸에서 뻗어 나온 다리 하나가 승한을 찔러온 것이다.

파악-.

거대 거미의 다리가 바닥을 뚫었다. 다른 거미들과는 달리, 거대 거미의 다리는 뾰족한 편이었다. 그 때문에 마치 창처럼 발을 사용할 수 있었다.

“젠장! 이젠 별의 별게 다 나오네!”

평소 욕을 잘 쓰지 않던 승한이었지만 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거대 거미가 다른 거미들의 시체를 씹어 먹으며 승한을 향해 다리로 공격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온 몸에 있는 눈은 머리를 땅에 처박고도 승한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다 알 수 있는 모양이었다. 즉, 몸을 뒤로 돌리고 있다고 해도 거대 거미에게는 약점이 없었다.

쿵, 쿠쿠쿵-.

파바바박-.

승한은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거대 거미의 다리를 베어냈다. 다행히 검으로 베어낸 거대 거미의 다리는 그렇게 빠른 속도로 회복되지는 않았다. 거미들의 시체를 씹어 먹던 거대 거미도 자신의 다리가 잘 회복되지 않자 고개를 들고 승한을 향해 달려들었다.

끄어어어어-!

온 몸이 저릴 정도로 거대하고 섬뜩한 울음소리였다. 거대 거미는 승한을 찍어 누를 듯 달려들었다. 다른 거미였다면 달려드는 순간 머리를 베어나 몸을 통째로 베어버렸겠지만, 거대 거미의 덩치는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승한이 뒤로 몸을 피하려던 순간.

콰콰콰콰콰-!

하늘에서 거대한 불의 비가 떨어졌다. 눈에 익은 불의 비는 바로 여우비였다.

“윤재 형!”

반가운 마음에 승한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 보니 이전보다 훨씬 덩치가 커진 주작이 날개를 펄럭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로는 윤재와 주희가 올라타고 있었다. 윤재는 대답 대신 또 다른 능력을 준비하더니 다시금 거대 거미를 향해 쏘아냈다.

화르르륵-.

퍼퍼퍼펑-!

족히 3미터는 넘는 거대한 불의 구체가 거대 거미의 몸 위를 두드리며 터져나갔다. 그 충격에 거대 거미가 잠시나마 휘청거렸지만, 이내 빠른 속도로 상처가 회복되었다.

추아아악-.

거대 거미의 다리가 하늘 위를 날고 있던 주작을 향해 뻗어나갔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주작은 날아다니던 몸을 휘청거리며 옆으로 몸을 기울였다.

쉬이이익-.

서걱-.

그리고 그 순간, 승한이 몸을 날려 거대 거미의 다리 하나를 베어냈다. 승한은 물론, 주작을 비롯한 윤재와 주희까지도 보고 있었던 거대 거미였지만 공격과 신경이 분산되자 이전처럼 승한을 집중적으로 노릴 수는 없었다.

쿵-.

바닥에 떨어진 다리 하나가 꿈틀거렸다. 털 대신 수많은 눈으로 이루어진 다리가 꿈틀거리는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역겹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승한에게는 드디어 다리를 하나 베어버렸다는 생각에 희망이 생겼다.

“승한아! 괜찮냐?”

“빨리 오셨네요?”

“빠르긴. 너 없으니까 오래 걸리더라. 주황 거미는 또 어찌나 안 죽던지.”

주작을 이끌고 내려온 윤재는 승한에게로 다가왔다. 주작의 날개가 살짝 떨어져 나가있었는데, 아무래도 거대 거미의 공격을 완전하게 피하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저 녀석이 보스냐?”

“네.”

“흰색이라며? 왜 남색이야?”

윤재는 승한에게 이미 보스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였다. 흰색에 거대한 거미라고 말이다.

헌데 막상 와서 보니 생김새는 그렇다 쳐도 색이 완전히 달랐다. 마치 검은 거미가 다른 거미들을 잡아먹고 색이 변한 것처럼 말이다.

“뻔하죠. 저 녀석도 다른 거미들을 잡아먹고 색이 변한 겁니다.”

“보스도? 이거야 원, 같은 종족끼리 너무들 하네. 하긴, 괴물이니 그런 거야 상관 없는 건가?”

“잡담할 시간 없는 것 같은데요?”

쿵쿵쿵-.

승한은 회복을 끝내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거대 거미를 바라보며 말했다. 윤재 역시 길게 이야기 할 생각은 없었던지 다시 주작을 위로 올리기 시작했다.

“‘대지의 가호’, ‘단죄의 빛’.”

승한의 몸에 두 가지 빛이 더해졌다. 이전보다 능력의 레벨이 훨씬 올랐는지 주희의 능력은 승한에게 훨씬 더 큰 힘을 실어주었다. 아무래도 집중적으로 두 가지 능력의 레벨을 올린 모양이었다.

‘이 정도면…….’

주희가 걸어준 두 가지 버프의 힘에 승한은 검과 방패를 쥔 손에 힘을 실었다. 방어력은 물론, ‘단죄의 빛’은 승한의 검에 더욱 힘을 실어줄 것이다. 무엇보다 ‘대지의 가호’는 승한이 거대 거미에게 더욱 적극적으로 달려들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형! 지원 부탁드려요. 주희씨도 버프가 끊이지 않도록 계속 신경 써주시고요.”

“그래.”

“알았어요.”

승한이 거대 거미를 향해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거대 거미의 다리가 승한을 노리고, 동시에 윤재와 주희가 타고 있는 주작을 노렸다. 처음에는 승한 한 명만을 신경 쓰면 됐지만, 이제는 새로 나타난 윤재의 공격까지도 신경 써야 했다.

다른 게 있다면 승한을 노리는 다리의 수가 훨씬 많았다. 더 위협적이라거나 하는 이유보다는 승한이 몸에 두른 [광휘]의 빛 때문이었다. 윤재가 날린 여우비나 불의 구체는 금방 치유가 되지만 승한이 베어낸 다리 한쪽은 아직까지도 회복이 되지 않고 있었다.

사아아아악-.

승한이 아슬아슬하게 다리를 빗겨내며 검으로 거대 거미의 다리를 길게 베어냈다. 거대 거미도 고통은 느끼는지 몸을 휘청거리며 온 몸의 눈을 찡그렸다.

화아아악-.

위쪽에서 불의 구체가 떨어졌다. 여우비는 아니었다. 여우비는 광범위한 다수의 적에게 타격을 입히는 능력이었지, 한 명의 대상을 공격하기에는 썩 적합하지 않았다.

윤재는 불의 구 여러 개를 한꺼번에 만들어 순식간에 쏘아냈다. 그 크기는 윤재가 힘을 쏟아 붓는 정도에 따라 더더욱 커지고 열기가 더해졌는데, 윤재는 거대 거미에게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냈다.

콰콰쾅-!

크오오오-!

고통스러운 울음소리와 함께 거대 거미가 다시 한 번 휘청거렸다. 승한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타닥-.

승한의 몸이 위로 날아올랐다. 단숨에 거대 거미의 목을 베어버리기 위함이었다.

휘청거리던 거대 거미의 눈이 승한에게로 모아졌다. 그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 마주하지 말아야 할 무언가를 마주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광휘]의 힘을 다시 한 번 끌어낸 순간, 승한은 뻣뻣해진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거대 거미의 눈이 흔들리는 게 보이고, 승한의 검이 녀석의 머리를 베었다.

사아악-!

휘이익-, 쿵-.

거대 거미의 머리가 떨어져 바닥에 떨어졌다. 목을 베어낸 승한은 거대 거미의 머리와 함께 바닥에 착지했다.

분명 쓰러뜨렸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불안감은 더욱 고조되었다. 알 수 없는 기분에 대해 생각이 미칠 즈음, 승한은 불안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타임 포인트 획득 메시지가 없다.’

괴물을 죽였다면 타임 포인트를 획득해야 한다. 지금까지 승한은 거미들을 죽일 때마다 매번 타임 포인트 메시지를 받아왔다. 그것은 스컬레톤과 리자드맨의 보스를 쓰러뜨렸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설마?’

승한은 바닥에 쓰러진 거대 거미의 머리를 바라봤다. 분명 거미의 머리는 떨어져 있었고, 거대 거미의 몸통과 분리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다리 한짝이 떨어진 것과 같았다.

스스스스-.

거대 거미의 머리가 녹아내렸다. 머리가 잘려 나간 몸통의 단면이 꿈틀거렸다. [광휘]의 빛 때문인지 그 꿈틀거림이 조금 느렸지만, 확실한 건 다시금 재생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미친.”

승한의 입에서 욕설이 흘러나왔다. 다시금 재생하는 머리의 단면을 보며 한숨이 푹 나왔다.

“이건 너무하잖아?”

머리를 베면 끝일 것이라 생각했다. 아무리 생명력이 질기다 해도, 머리가 베어지고 재생할 것이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다행이라면 머리가 베어진 만큼 행동이 굼떠졌다는 점이었다. 원래라면 금세 회복이 되었어야 할 부위가 [광휘] 때문에 회복이 더뎠다.

충격적인 모습이긴 하지만 승한은 다시 움직였다. 머리를 베어도 다시 재생 한다면 머리가 아닌, 몸을 난도질해야 한다. 죽지 않는다면 죽을 때까지 베고, 또 베면 그만이었다.

‘죽지 않을 리가 없어.’

어떻게든 죽일 수 있는 방법은 있을 것이다. 아무리 다른 거미들의 힘을 흡수했다고 해도, 계속해서 베다 보면 베어질 게 분명했다.

‘목이 안 된다면… 몸을!’

승한은 거대 거미의 다리 밑으로 몸을 파고들었다.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파고들어 배를 향해 뛰었다. 검을 곧은 자세로 쥐고, 반달 모양으로 검을 크게 휘둘렀다.

촤악-!

거대 거미의 배 밑이 크게 베어졌다. 덩치에 비해서 큰 상처라고 보긴 힘들었다. 하지만 승한의 공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턱-.

사사사사삭-.

거대 거미의 배를 손으로 잡고, 승한이 배를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꾸르르륵-.

승한의 검에 베어졌던 거대 거미의 머리가 재생되고, 거대 거미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늦어서 죄송합니다.

조금 힘든 일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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