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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붉은 거미
“잡지 못했다고요?”
-네. 보스를 잡을 수 있다는 확신이 서지 않아 보스를 피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되도록 다른 곳에 있는 괴물들을 잡은 후, 타임 포인트를 충분히 획득한 뒤에 잡을 생각입니다.
현명한 판단이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듯이, 안석환은 자신과 그 주변 헌터들의 능력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직 보스를 잡기에는 확실한 전력이 아니라 판단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승한이 기억하는 안석화는 헌터들 중에서도 수위를 다툴 만큼 제법 강한 인물이었다. 능력의 레벨도 상당하고, 능력 자체의 성격도 괴물과의 싸움에 특화되어 있었다.
그런 안석환이 도망쳤다?
“대체 어떤 녀석입니까?”
-거미입니다. 거미인데…….
안석환은 잠시 말을 끊더니 이었다.
-덩치가 어마어마합니다. 길이만 해도 십 미터는 넘고, 높이로 보면 오 미터는 됩니다. 무엇보다 색이 흰색입니다.
“흰색이요?”
-네.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 녀석일지 알 수 없어서 최대한 만전을 가할 생각입니다. 혹시라도 마주치게 되면 조심하십시오.
덩치가 상당하다는 건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생긴 모습이 다를 것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직접 보지 못하고 설명으로 전해 듣기만 하니 감이 잡히지 않았다.
‘서둘러야겠군.’
승한은 윤재를 바라봤다. 윤재와 주희 역시도 능력의 레벨을 올린 상태였다. 회복 능력에 타임 포인트를 투자한 덕분인지 주희의 능력은 윤재의 체력과 정신력을 금방 회복시켜 주었다.
승한과 윤재, 주희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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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한과 윤재, 주희는 안양2동과 안양3동, 안양 4동에 있는 괴물들을 정리해 나갔다. 주희는 윤재와 승한의 회복에 전념하고, 두 가지 버프를 지속적으로 걸어주었고, 윤재는 주작을 통한 이동과 여우비를 통한 대량 학살에 힘을 실었다.
여우비의 위력은 능력의 레벨을 올리자 더욱 강해졌다. 안양3동에 있는 거미들을 상대할 때는 검은 거미들 대부분을 쓸어버릴 정도였다.
그리고 지금, 안양 5동에 있는 거미들을 모았다.
‘이상해.’
승한은 [광휘]의 빛에 이끌려 몰려든 거미들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
붉은 거미가 다섯에, 검은 거미가 스물이 조금 넘었다. 이게 바로 안양5동에 있는 모든 거미들을 끌어 모은 결과였다.
“진짜 이게 전분가?”
“그런가 보네요.”
“안양2동부터 수가 갑자기 확 줄더니, 더 줄었군.”
안양2동에서 발견된 괴물은 총 쉰 마리 정도였다. 이전과 비교해서 절반 정도로 뚝 줄어든 결과였다.
그 때는 그냥 그러려니 했다. 특별히 그 근방에 거미들이 적게 있었나보다, 했다. 하지만 안양 3동과 4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더 줄어있었다.
결국 안양 5동에 와서는 붉은 거미와 검은 거미를 합쳐 서른 마리도 되지 않았다. 괴물의 수가 적으면 환영할 일이지만,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뭔가 있어.’
수가 적어서 힘의 소모가 큰 여우비를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윤재가 위에서 다른 능력을 사용해 지원하고, 승한이 뛰어 내려가 거미들을 정리했다.
안양 2동과 3, 4, 5동을 모두 합쳐도 안양 1동에 있던 거미들과 수 가 비슷했다. 애초부터 거미들이 적게 등장한 게 아니라면, 어딘가로 사라졌다는 뜻이었다.
혹시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기라도 한 걸까? 그렇다면 오히려 더 큰일이었다. 특히 호계 지역으로 넘어갔다면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김승한씨, 주황색 거미가 출현했습니다.
안석환의 보고.
승한이 깜짝 놀라 얼른 전음구를 꺼냈다.
“주황색 거미라고요?”
-네. 주황색만이 아니라 노란색 거미까지 출현했다는 보고입니다. 서울 지역에서는 초록색 거미까지 나타난 모양입니다.
“주황색과 노란색, 초록색……?”
안석환의 보고에 승한은 4스테이지를 떠올렸다.
빨간색부터 보라색까지, 점차 난이도를 올려가던 문들. 그리고 거미들의 색이 어딘가 연관이 있어보였다.
‘설마 이 녀석들도 보라색에 가까울수록 점점 더 강해지는 건가?’
붉은 거미는 검은 거미들이 서로를 먹고 강해져 생겨난 것이었다. 그렇다면 주황색 거미는 붉은 거미가 서로를 잡아먹고 생겨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란색은 주황색 거미가 서로를 잡아먹고, 노란색은 노란색 거미가 서로를 잡아먹은 것. 그렇게 생각하면 대체 노란색 이상의 거미가 얼마나 어려울지 생각하기가 어려웠다.
-호계동 지역의 박향근씨가 노란색 거미에게 잡아먹힌 모양입니다. 이주호씨와 차상민씨는 현재 거미들로부터 도주 중입니다.
“하필이면 또 그 지역에…….”
-그리고 무엇보다 거미들이 호계동에 몰려들고 있습니다. 특히 보스를 중심으로요.
“보스를 중심으로요?”
무언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붉은색 이상의 거미들도 그렇고, 현재 지역에 있는 거미들이 다른 지역으로 모여든다는 것도 그렇고, 이전까지와는 확연히 다른 현상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불안감이 들었다. 맡은바 구역은 안양6동을 지나치고 호계동으로 넘어갈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결정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승한은 윤재와 주희에게 안석환에게 받은 보고를 그대로 전했다.
“윤재형.”
“응?”
“주희씨와 함께 안양6동을 정리해 주실 수 있어요? 어차피 남은 거미들도 얼마 없을 거고, 형 능력도 제법 올라서 붉은 거미도 잡을 수 있을 거고요.”
“가능하긴 한데… 왜?”
“아무대로 먼저 호계동으로 가 봐야 할 것 같아서요. 정보대로라면 그쪽 지역에 있는 이주호씨와 차상민씨가 위험하기도 하고, 주황색 거미와 노란색 거미, 그리고 보스까지 있다고 하니까요.”
승한의 말에 윤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윤재도 혼자서 충분히 남은 한 동을 정리할 능력이 되었다. 승한이 있다면 붉은 거미를 보다 수월하게 잡을 수 있겠지만 큰 차이는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함께 다니는 걸 고집하는 건 낭비였다. 차라리 승한을 먼저 호계동으로 지원을 보내고, 윤재와 주희는 남은 안양6동을 정리하고 따라가는 게 훨씬 효율적이었다.
“그럼 그렇게 해라. 나랑 주희씨도 금방 따라갈게.”
“네. 그럼 수고해 주세요.”
승한은 윤재와 주희에게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타다닥-.
지면을 박차자 승한의 몸이 순식간에 움직였다. 호계동까지 그렇게 가까운 거리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승한의 다리는 그 정도 거리는 순식간에 도달할 수 있을 만큼 빨랐다.
[광휘]는 사용하지 않았다. 승한이 할 일은 거미들을 모아 쓰러뜨리는 게 아닌, 호계동에 지원을 가는 거였으니까.
그 때문일까?
중간에 마주친 거미들은 승한을 노리지 않았다.
‘어딜 가는 거지?’
거미들은 혼란스러워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더군다나 승한을 발견한 거미들도 있었는데, 전이라면 당장에 달려들어야 할 녀석들이 지금은 전혀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거미들은 두 갈래로 흩어지고 있었다. 그 중 꽤 많은 거미들이 승한이 이동하고 있던 호계동 쪽으로 움직였다.
‘역시 호계동으로 몰리고 있어.’
저들이 무엇에 이끌리고 있는 걸까?
답답함이 가슴에 밀려들었다. 승한은 거미들을 무시하고 호계동으로 향했다.
원래라면 승한이 있던 안양5동에서 호계동까지는 걸어서 30분가량이 걸리는 거리였다. 하지만 승한의 다리는 그 먼 거리를 단숨에 뛰어 금방 도달할 수 있었다.
승한은 호계동에 도착하기 직전에 전음구를 꺼냈다. 박향근이 죽었다고 했으니, 호계동 지역에 살아 있는 헌터는 이주호와 차상민뿐이었다.
“저 김승한입니다. 차상민씨, 연락 가능합니까?”
잠시 후, 대답이 들려왔다.
-가, 가능합니다.
“현재 김윤재씨와 이주희씨가 안양6동을 정리중이고 뒤늦게 합류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전 지금 호계동 지역에 지원 도착한 상태입니다. 지금 어디십니까?”
-여기 호계 도서관 안입니다. 지, 지금 노란색 거미와 보스를 피해 숨어 있습니다.
“노란색 거미요?”
역시나 호계동 쪽에 노란색 거미가 있는 모양이었다. 싸우지 않고 숨을 정도라면 꽤나 상대하기가 두려운 모양이었다.
“여기 지금 명학대교입니다. 그리 멀지 않으니 조금만 더 기다리십시오.”
-서둘러 주세요, 제발! 지금도 거미들이 도서관 안으로…… 흐악!
전음구 너머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말과 동시에 거미들이 도서관 안으로 들이닥친 모양이었다.
승한은 연락을 더 취하기보다는 서둘러 움직이기로 결정했다. 명학대교에서 호계 도서관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걸어가도 십 분 정도, 승한의 다리라면 1분도 걸리지 않아서 도착할 수 있었다.
“……저것들만 아니라면 말이지.”
승한의 눈에 거미들이 보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승한을 무시하던 거미들이 어느새 승한을 노려보고 있었다. 수가 스물 정도였는데 검은 거미가 반, 붉은 거미가 반이었다.
그리고 그 중 하나는 주황색 거미였다.
“주황색 거미라… 붉은 거미를 잡아먹은 놈인가?”
승한은 다른 놈들보다는 주황색 거미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검은 거미야 이젠 신경도 쓰이지 않았고, 능력의 레벨이 꽤나 올라 이제는 붉은 거미도 손쉬웠다. 하지만 주황색 거미는 아직까지 정보가 없었다.
“한 번 확인해 볼까?”
승한은 검에 [강화]의 힘을 둘렀다. 그리곤 [광휘]의 힘을 개방해 주황색 거미를 향해 집중시켰다.
승한은 다른 능력에 비해 [광휘]의 레벨을 많이 올리지 않았다. 당장 거미들을 상대하는데 [광휘]능력에 아쉬움이 없었고, 당장은 시선을 끄는 걸로도 충분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광휘]의 능력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특히 한 대상을 집중해서 힘을 끌어 올린다면, 거미 한 마리쯤 묶어놓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캬악-!
그 때, 주황색 거미를 비롯한 거미들이 승한을 향해 달려들었다. 주황색 거미는 [광휘]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 듯 성큼성큼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3레벨의 [광휘]로는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쉬이익-!
승한의 움직임이 급속도로 빨라졌다. 호계동까지 이동하면서도 보통 사람은 감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움직인 승한이었지만, 전투에 들어가자 그 빠르기는 배가 되었다.
꽈앙-!
빠르게 직선으로 움직이던 승한이 [수호신]을 사용한 채 방패로 거미들을 들이받았다. 단단한 방패에 [강화]와 [수호신]이 덧씌워지고, 빠른 움직임과 함께 [강인함]의 힘이 더해졌다.
콰직-.
승한의 앞을 덮쳐가던 거미의 몸이 그대로 으깨졌다. 승한은 다른 거미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대로 방패를 들고 밀어 붙인 후, 주황색 거미에게로 향했다.
주황색 거미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승한을 반겼다. 덩치가 다른 거미들보다 조금 큰 것도 같았는데, 녀석은 입 안에서 붉은 거미와 마찬가지로 거미줄을 뿜어냈다.
추아아악-!
거미줄이 넓게 퍼지지 않고 한데 뭉쳐져 승한에게로 쏘아졌다. 붉은 거미와는 확실히 다른 종류의 공격이었는데, 승한은 [광휘]를 검에 둘러 휘둘렀다.
사악-.
승한은 거미줄을 베었다고 생각했다. 붉은 거미의 거미줄처럼 거미줄이 녹아 내릴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거미줄은 완전히 녹지 않고, 승한의 검에 조금 달라붙었다. 녹아내리지 않은 거미줄은 곧이어 승한의 얼굴로 튀어 붙었다.
치이익-.
“윽.”
승한이 눈살을 찌푸렸다. 얼굴에 묻은 거미줄의 독성이 느껴진 것이었다.
[광휘]의 레벨이 부족한 탓이었다. 다행히 [강인함]과 [수호신]의 레벨이 높아 별다른 타격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