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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붉은 거미
사악, 촤아아악-!
투웅=, 콰드득-.
키에에에엑-!
붉은 거미의 입에서 거미줄이 뿜어졌다. 검은 거미보다 훨씬 더 지독한 독성을 가진 거미줄은 대상을 맞추지 못하고 엄한 검은 거미 위로 쏟아졌다.
붉은 거미의 몸이 반으로 베어져 바닥에 쓰러졌다. 검은 거미들은 이리저리 움직이는 한 인간을 쫒아 발을 움직이고,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냈다. 하지만 그 인간은 어찌나 빠른지 거미의 앞발이 다가갔을 때는 이미 훌쩍 멀리 사라져 버린 후였다.
순식간에 또 다른 거미가 베어졌다. 거미들이 그 인간을 향해 빠르게 몰려들어 사방을 포위했다. 이때다 싶었는지 목덜미를 물었는데, 어찌나 단단한지 피 한 방울도 나지 않았다.
그렇게 인간의 주위로 수십 마리의 거미들이 뭉친 순간.
사사사사삭-.
촤아아악-!
승한의 검이 믿기 어려운 속도로 움직이며 십여 마리의 거미들의 목을 순식간에 베어버렸다.
‘진짜, 저 녀석은…….’
건물 옥상에서 승한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던 윤재는 고개를 저었다. 이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알면 알수록 승한이야말로 진짜 괴물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것 같았다.
리자드맨 때만 하더라도 그랬다. 승한은 과감하게 리자드맨들을 향해 파고들어 검을 휘두르며 빠르게 녀석들을 베어냈다. 지금이야 [수호신]이라는 능력으로 인해 안전하다지만 그 때는 지켜보는 윤재가 다 간이 떨릴 정도였다.
그리고 그런 위험천만한 싸움으로 인해 가장 효율적이고 빠른 움직임을 보여줄 수 있었다. 지금은 아예 [수호신]을 통한 절대적인 방어력을 기반으로 거미들을 주위로 끌어 모아 한꺼번에 학살하고 있었다.
손에 들고 있는 방패는 방어용이라기보다는 공격용에 가까웠다. 방패를 이용한 공격용 방패술이라도 배웠는지 승한은 오른손으로는 검을 휘두르고, 왼 손에 있는 방패로는 거미들의 머리를 찍어 터뜨렸다.
불과 1분. 그 사이에 승한은 수십 마리의 거미들을 베어버렸다. 한 번 거미들이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하면 검을 사방으로 휘둘러 몇 초 사이에 십여 마리의 거미들을 베어버리는 것이다.
일대 일의 싸움은 물론, [수호신]의 방어력을 이용한 대량 학살, 지치지 않는 체력과 기력까지. 윤재가 보기에 승한은 약점이 없는 그야말로 무적(無敵)에 가까웠다.
“진짜… 대단하네요.”
윤재를 회복시켜주던 주희는 얼이 다 빠졌는지 입을 벌리고 중얼거렸다. 자기도 모르게 나온 말이었는데, 윤재는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윤재와 함께 싸울 때는 알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그 때 승한은 윤재가 떨어뜨린 여우비로 인해 피해를 입은 거미들을 정리하는 정도밖에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혼자서 거미들과 싸우는 승한은 오히려 윤재의 도움이 전혀 필요가 없어보였다. 윤재는 승한이 시선을 끌어주고 거미들을 한데 모아 주어야 거미들을 학살할 수 있었는데, 승한은 혼자서 거미들을 끌어 모으고 그렇게 끌어 모은 거미들을 혼자서 학살할 수 있었다.
백 마리에 가까운 검은 거미들은 서로를 잡아먹기 시작하더니 붉은 거미로 변했다. 그렇게 백 마리에 가까웠던 검은 거미들이 수를 줄여가더니 몇 마리의 붉은 거미들로 변했다.
하지만 붉은 거미라고 해도 승한을 어찌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승한은 검은 거미들과 함께 붉은 거미들까지 베어버렸다. 백여 마리의 거미들이 순식간에 바닥에 쓰러지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5분 정도였다.
정리를 끝낸 승한은 건물의 벽을 밟고 옥상 위로 올라갔다. 한 걸음에 올라가기는 무리였지만 건물의 틈틈이 네온사인이 걸려 있어 그 틈을 발로 밟고 올라갈 수 있었다.
“끝났습니다.”
“너무 빨리 끝난 거 아니야?”
회복을 받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윤재가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윤재의 말에 동감한다는 듯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주희를 보며 승한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요?”
사실 승한도 이렇게 빨리 끝날 줄은 몰랐다. 충분히 거미들을 다 잡을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하긴 했지만 시간이 꽤 걸릴 줄 알았던 것이다.
매번 능력의 레벨이 오르다 보니 승한은 자기 자신의 힘에 대해서 제대로 자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싸움에서 승한은 자신의 힘을 마음껏 사용했다. 아무리 움직여도 지치지 않고, 머리가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몸이 빠르게 움직였다. 솔직히 말해서 직접 검을 휘두르며 움직이는 승한도 놀랄 정도였다.
‘타임 포인트도 어마어마하게 벌었군.’
검은 거미들은 싸우는 중간에도 몇 마리씩 죽어갔다. 다른 검은 거미들에게 먹혀 영양분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죽고 붉은 거미로 변한 검은 거미만 해도 수십, 새로 변한 붉은 거미가 열 마리 정도였다. 그렇게 그 자리에서 승한의 손에 죽은 검은 거미가 족히 쉰 마리에 붉은 거미가 열 마리가 넘었다.
[보유 타임 포인트 : 23185p]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엄청난 포인트였다. 붉은 거미는 한 마리에 무려 700타임 포인트를 주었는데, 녀석들을 잡으면서 얻은 포인트도 상당했다.
“우, 우와. 타임 포인트가…….”
주희는 획득한 타임 포인트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승한에게 버프를 걸어주면서 승한을 통해 벌어들인 타임 포인트가 상상보다 훨씬 많았기 때문이었다.
윤재 역시 승한이나 주희보다는 적었지만 획득한 타임 포인트가 결코 적지 않았다. 여우비를 쏟으면서 검은 거미들을 쓸어버린 덕분이었다.
[스테이지1 - 강인함]
* 분류 : 고유 지속
* 레벨 : 7
* 요구 타임 포인트 : 3200p
[스테이지2 - 민첩함]
* 분류 : 고유 지속
* 레벨 : 6
* 요구 타임 포인트 : 3200p
[스테이지 3 - 강화]
* 분류 : 엑티브
* 레벨 : 4
* 요구 타임 포인트 : 1600p
[스테이지 4 - 광휘]
* 분류 : 엑티브
* 레벨 : 3
* 요구 타임 포인트 : 1600p
[스테이지 5 - 수호신]
* 분류 : 엑티브
* 레벨 : 3
* 요구 타임 포인트 : 3200p
[보유 타임 포인트 : 23185p]
보유 타임 포인트가 지금까지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많았다. 이쯤 되니 승한은 어디에 포인트를 투자해야 할지 갑이 잡히지 않았다.
‘당장 부족한 게 없는데…….’
체력이 부족한 것도, 괴물의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방어력이나 살상력이 부족하지도 않았다.
무언가 더 필요하다면 새로운 능력이나 장비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시간이 멈춘 상태에서는 새로운 물품을 살 수 없었다. 능력의 레벨을 올릴 수는 있어도 말이다.
결국 승한은 5000타임 포인트를 남겨두고 타임 포인트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그 이상의 지출은 낭비였다.
[1600타임 포인트를 소모하였습니다.]
[‘능력 - 강화’의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3200타임 포인트를 소모하였습니다.]
[‘능력 - 강화’의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3200타임 포인트를 소모하였습니다.]
[‘능력 - 강인함’의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6400타임 포인트를 소모하였습니다.]
[‘능력 - 강인함’의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3200타임 포인트를 소모하였습니다.]
[‘능력 - 민첩함’의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보유 타임 포인트 : 5585p]
승한은 [광휘]와 [수호신]을 선택하지 않고 [강인함]의 레벨을 하나 더 올렸다. 어차피 [강인함]능력도 스스로의 몸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고, 방어력보다는 체력과 기력이 더 필요할 것이라 판단한 것이었다.
더 오래, 더 강하게.
승한이 생각한 싸움의 틀이었다. 그리고 그 틀에 몸을 끼워 맞추기 위해서는 다른 능력보다 [강인함]의 레벨이 압도적으로 높을 필요가 있었다.
‘다른 능력은 서서히 맞춰 나가야겠지.’
어차피 앞으로 괴물을 잡을 기회는 많이 남아있었다. 몰이사냥이 가능할 때 최대한 많은 괴물들을 잡아야 한다.
-김승한씨, 연락 가능합니까?
그 때, 안석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간이 멈추기 전까지 포함하면 벌써 세 번째 연락이었다.
승한은 주머니에 있는 전음구를 손에 쥐었다.
“가능합니다.”
-현재 진행 상황 보고 부탁드립니다.
“김승한, 김윤재, 이주희씨가 맡은 구역 비산1동과 비산2동, 안양 1동부터 6동까지 중 비산1동과 비산2동, 그리고 안양 1동 정리가 끝났습니다.”
-벌써 말입니까?
깜짝 놀란 목소리였다. 승한과 윤재, 주희가 맡은 동이 다른 동에 비해서 범위가 작은 여러 개의 동이라고는 하나, 무려 세 개의 동을 30분도 되지 않아 끝마쳤다는 건 분명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네. 그보다 무슨 일입니까?”
-다름이 아니라 지원 요청입니다. 호계동에 보스가 나타났다는 보고입니다.
“……보스가요?”
하필이면 호계동에? 승한이 눈살을 찌푸렸다. 가족들이 대피해 있는 지역에 하필이면 보스가 나타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보스가 나타난 지역은 대부분 대피소 인근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인구 밀집에 따라서 보스가 나타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럼 석수동과 평촌에도…….”
-석수동은 아닙니다. 평촌동에도 보스가 하나 나타났는데, 다행히 제가 맡은 평촌동 쪽은 보스를 상대할 여럭이 있습니다. 하지만 호계동은 조금 힘든 모양입니다.
당연했다. 그곳에 있는 세 명의 헌터는 그렇지 않아도 능력의 레벨이 낮은데다가 5스테이지의 능력도 얻지 못했다. 솔직한 말로 보스가 아니라 검은 거미들도 제대로 잡지 못할 게 분명했다.
“다른 지역의 상황은 어떻게 됩니까? 붉은 거미는요?”
승한은 안석환과 연락이 닿은 김에 다른 지역의 상태를 물었다. 안석환은 정부에서 특별히 역할을 맡긴 정보통으로, 싸움도 싸움이지만 다른 헌터들과의 지속적인 연락을 통한 연락망의 역할도 겸하고 있었다.
-호계동을 포함한 몇몇 지역이 상황이 썩 좋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여유가 남는 지역이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팀 단위를 이룬 헌터들만 해도 이제 겨우 동 하나를 해결한 게 전부인 모양입니다. 그건 이곳 평촌동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으로 활동하는 헌터의 경우, 동 하나를 해결하는데 적어도 한 시간 이상은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삼십 분에 동 하나. 그것도 팀 단위를 이룬 헌터들이 괴물들을 정리하는 속도였다. 승한이 생각한 것보다 조금 느린 속도였다.
‘우리가 빠르긴 빨랐군.’
승한의 [광휘]와 윤재의 주작 덕분이었다. 아마 이 정도 속도면 한 시간이 되지 않아서 맡은바 구역을 모두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다른 곳도 여유가 생겨날 것이다. 처음에야 힘들었겠지만 괴물을 쓰러뜨리고 얻은 타임 포인트로 능력의 레벨을 올렸을 테니 말이다.
“되도록 빠르게 맡은 지역을 정리하고 호계동으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혹시 보스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미리 대비를 할 수 있을 겁니다.”
사실 승한은 보스가 그렇게 무섭거나 하지는 않았다. 백여 마리의 거미들을 상대로도 큰 어려움이 없었으니 보스 한 마리쯤 홀로 상대할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만약의 경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붉은 거미라는 변수가 등장한 이상, 보스도 다른 때와는 차이가 있을 수 있었다. 안석환이 맡은바 지역에 이미 보스가 나타났다고 하니, 그에게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얻어내는 게 확실한 방법이었다.
-저희는 아직 보스를 잡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