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타임-37화 (37/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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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붉은 거미

“……징그럽군.”

거리 군데군데에 거대한 검은색 거미들이 퍼져 있었다. 승한은 검과 방패를 꽉 움켜쥐었다.

다행히 크게 흔들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생각보다 안정감이 있었다. 다행히 주희의 걱정대로 떨어지거나 할 일은 없을 듯했다.

무엇보다 빨랐다. 단순히 달리는 게 아니고 날아다니는데다가, 이동속도도 승한이 뛰어다니는 것보다 배는 빨랐다. 이 속도면 동 하나를 도는데 걸리는 시간이 비약적으로 줄어들 것이다.

한 번 위로 날아올랐던 주작은 다시 아래로 떨어졌다. 땅에서 10여 미터 떨어진 곳까지 내려가자, 승한은 [광휘]의 빛을 밝혔다.

우우우우우-.

그 순간, 주작의 열기와 승한이 뿜어낸 [광휘]의 빛이 거미들의 시선을 끌어 모았다. 특히나 [광휘]는 꽤 멀리 있는 거미들까지 눈치를 채고 몰려들 정도여서 단번에 수십 마리의 거미들이 몰려들었다.

“……너무 많은데?”

순식간에 비산2동에 있는 거미들 중 절반가량이 모여들었다. 방금 전보다 훨씬 많은 수였는데, 족히 쉰 마리는 넘어보였다.

“괜찮아요. 더 모아도 되요.”

“정말 괜찮겠어?”

“네. 형과 주희씨는 여기 계세요. 아, 그리고 여우비로 지원 부탁드려요. 주희씨도 버프가 끊이지 않도록 계속 신경 써주시고요.”

승한은 [수호신]을 믿었다. 또한 윤재의 능력인 여우비는 거미들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더 높은 효율을 끌어낼 수 있었다.

대지의 가호라는 주희의 능력과 함께 [수호신]이 있다면 웬만한 피해는 대부분 막아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 거미들이 여우비에 피해를 받으며 정신이 없을 때, 승한은 [수호신]과 대지의 가호를 믿고 마음껏 날뛸 수 있었다.

‘어차피 수가 몇 마리든 상관없어.’

까가가가각-.

거미들이 승한과 윤재, 주희가 타고 있는 주작의 밑을 따라다녔다. 내려오기만 하면 단번에 덮칠 생각인 듯, 계속해서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렇게 거미들을 한데 모은 후.

“그럼, 서포팅 잘 부탁합니다.”

휘익-.

승한이 그대로 몸을 날려 아래로 떨어졌다. 거미들은 떨어지는 승한을 보며 눈을 번뜩였다.

거미의 입이 벌어졌다. 입 속으로는 송곳니처럼 날카로운 게 보였다. 촘촘히 털이 나 있는 발이 다가오고, 이빨이 승한의 몸을 물었다.

콰득-.

바닥에 착지한 승한의 다리를 거미가 물어뜯었다. 공중에서 땅에 착지하는 순간이라 승한은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까드드득-.

거미는 승한의 다리에서 피 맛이 느껴지지 않자 어금니를 더욱 꽉 깨물었다. 하지만 역시나 피는 나지 않았고, 심지어 피부에서 느껴져야 할 말랑말랑한 느낌조차도 없었다.

사아악-.

촤아아악-.

승한의 검이 거미들 사이로 날아들었다. 덩치가 워낙 커서 몸쪽을 공격해 봤자 단칼에 숨통을 끊기는 힘들었다. 승한은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거미들을 죽이기 위해 녀석들의 머리만을 노렸다.

[175타임 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175타임 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175타임 포인트를…….]

줄줄이 떠오르는 메시지.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한 마리의 괴물이 쓰러졌다.

[강화]에 이어 [광휘]로 괴물들의 힘과 물리적 충격에 대한 내성을 감소시키고, 주희의 ‘단죄의 빛’이 검에 씌워진 덕분이었다.

‘이거 생각보다 쓸 만한데?’

악(惡)에 대한 추가 피해를 입힌다는 간단한 설명의 능력이지만 그 효과는 상당했다. 승한의 [강화]만큼은 아니더라도 살상력이 훨씬 높아진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단죄의 빛은 본인 혼자만이 아닌, 주희가 원하는 대상자 여럿에게 걸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강화]와 차별화가 되었다. 더군다나 [강화]와 중첩이 된다는 점이 훨씬 매력적이었다.

물론 그렇다 해도 [강화]를 쓰지 않고서 거미들을 사냥하기는 쉽지 않았다. [강화]가 없는 상태에서 거미들을 베었다가는 검에 저항이 심하게 느껴져서 결과적으로 검이 무뎌지기 때문이었다.

거미들을 보다 쉽고 빠르게 제거하기 위해서 [강화]는 필수적이었다. 다행히 [강인함]의 레벨이 한 단계 더 올랐기 때문인지 조금 능력을 사용하는 정도는 별로 부담스럽지 않았다.

키아아악-!

거미들은 승한을 향해 이빨을 들이밀고, 두꺼운 발을 내밀었다. 몸으로 깔아뭉개려고도 했다.

승한은 되도록 거미들의 공격을 피해내면서도 거미의 목을 벨 수 있을 때는 과감하게 움직였다. 그럴 때면 조금 물리는 정도는 감수할 수 있었다. 같이 공격한다면 [수호신]이 있는 승한이 절대적으로 유리했으니까.

그렇게 승한이 열 마리 정도의 거미를 죽인 순간.

화아아악-!

쐐애애액-.

하늘에서 여우비가 떨어졌다. 뜨거운 용암 불과 같은 비는 승한을 중심으로 모여 있던 거미들을 단숨에 덮쳤다. 이전보다 열기도, 범위도 훨씬 넓어져 있었다.

캬아아아악-!

꾸득, 꾸득-.

거미들이 비명을 질렀다. 단단한 껍질이 타들어가고, 녹고, 말라 비틀어졌다. 끈질기게 살아남는 거미들도 있었는데, 그런 녀석들은 승한이 검으로 베어 죽였다.

화아아악-.

다시 한 번 여우비가 쏟아졌다. 수가 많다 보니 한 번으로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두 번 정도 사용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지 윤재는 별로 지친 기색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50마리의 거미들이 쓰러졌다. 비산2동에 있는 거미들의 대부분이었다.

거미들이 정리가 되자, 윤재와 주희가 땅 아래로 내려왔다. 여우비가 꺼지자 승한은 [수호신]을 꺼뜨리며 다시 주작 위로 뛰어 올라갔다.

“빠르네요.”

“그러게. 나도 이 정도 속도는 예상 못했는데.”

생각 이상으로 괴물들을 잡는 속도가 빨랐다. 아무리 윤재가 불러낸 주작이 있다고 해도, 동 하나를 도는데 십 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 속도면 남은 곳을 다 도는 데 한 시간이면 충분하겠는데?”

“가능한 그거보다 줄여야죠.”

“줄여? 어떻게?”

“다음번에는 이거보다 더 많은 괴물을 몰아 잡습니다. 가능한 많이요.”

“이거보다 더?”

윤재는 땅 아래에 죽어있는 거미들의 시체를 보며 물었다. 저 정도만 하더라도 충분히 많은 수라고 생각했는데, 승한은 이보다 더 많은 수의 괴물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네. 충분히 가능해요. 지금까지 획득한 타임 포인트를 사용해서 능력의 레벨을 올릴 수도 있으니까요.”

“음, 그건 그렇긴 하네.”

지금까지 승한과 윤재, 주희가 획득한 타임 포인트만 해도 족히 5천 포인트에 가까웠다. 그 포인트를 투자한다면 능력의 레벨을 상당히 많이 올릴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각 능력을 두 단계 이상 레벨을 올리면 점점 더 능력의 레벨을 올리기가 힘들겠지만 그 정도야 감수할 만했다. 지금 당장만 해도 거미들을 잡기가 그리 어렵지 않은데, 능력의 레벨이 더 오른다면 훨씬 더 수월할 것이다.

결국 승한과 윤재, 주희는 빠르게 획득한 타임 포인트를 가지고 능력의 레벨을 올리기로 결정했다. 가지고 있는 바 타임 포인트를 확인한 승한은 깜짝 놀랐다.

[보유 타임 포인트 : 6360p]

대체 얼마나 많은 괴물들을 잡은 걸까? 아무리 많은 괴물들을 잡았다고 해도, 순식간에 이만한 타임 포인트를 얻었다고 생각하니 역시 몰이사냥이 좋긴 좋은 모양이었다.

‘일단… [수호신]에는 하나 투자를 해야겠지.’

거미들의 공격은 그렇다 쳐도, 윤재는 분명 여우비에 타임 포인트를 투자할 것이다. 지금 당장은 몰라도 여우비 능력의 레벨이 오르면 지금보다 불길이 더 강해질 텐데, 그 불길 속에서 버티려면 [수호신]의 레벨도 함께 올라갈 필요가 있었다.

[1600타임 포인트를 소모하였습니다.]

[‘능력 - 수호신’의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다음으로 [수호신]을 4레벨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총 3200타임 포인트가 필요했다. 두 번 볼 것도 없이 승한은 다른 능력으로 시선을 거뒀다. 두 배라는 상승폭을 생각해 보면 6360타임 포인트도 그렇게 아주 많은 건 아닌 듯했다.

‘일단 [민첩함]에도 하나.’

다른 능력들은 다음 레벨에 올리기까지 최소 1600타임 포인트가 필요했다. 하지만 딱 하나, 4레벨에 머물러 있는 [민첩함] 능력은 다음 레벨에 도달하기 위한 타임 포인트가 800포인트밖에 되지 않았다.

[민첩함]까지 올리고 나니 [수호신]을 제외한 모든 능력이 다음 레벨에 필요한 타임 포인트가 1600포인트가 되었다. 남은 타임 포인트는 3960포인트로, 두 가지 능력을 하나씩 올릴 수 있었다.

‘제법 타임 포인트를 많이 벌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올릴 수 있는 레벨은 네 개 뿐인가?’

남은 기회는 두 번.

승한은 그 중 하나를 [민첩함]에 투자했다.

‘지금 당장은 살상력보다는 빠른 움직임이 먼저니까.’

방어력도, 공격력도 문제가 없었다. 승한은 단칼에 거미들을 죽일 수 있었고, 아무리 공격을 당해도 멀쩡했다. 지금 승한에게 필요한 건 체력과 빠른 움직임, 두 가지였다.

‘하나는 [강인함].’

결국 모든 결정을 마쳤다.

1600포인트는 [민첩함]에, 1600포인트는 [강인함]에 투자했다. 가장 기본이 되는 두 가지 능력에 과감하게 포인트를 투자한 것이다. 이 두 가지 능력은 승한의 체력과 빠른 움직임의 발판이 될 것이다.

그렇게 남은 포인트가 760포인트. 이전같으면 꽤 많이 남았다고 생각할 법도 한데, 이제 와서 보니 별로 많은 포인트도 아니었다. 이제 승한이 가진 능력들 중 가장 적은 타임 포인트를 요구하는 능력이 1600타임 포인트였고, 그 다음이 3200타임 포인트였다.

‘능력을 두 번씩만 더 올리면 금방 요구 타임 포인트가 1만도 넘겠군.’

갈수록 괴물들 잡고 얻어내는 타임 포인트가 높아지지만, 그에 못지않게 요구하는 타임 포인트도 많아졌다. 승한은 이번 기회에 최대한 많은 거미들을 잡고 많은 타임 포인트를 획득할 생각이었다.

‘적어도 이번에 2만 타임 포인트는 획득해야해.’

타임 포인트를 능력에 투자하면서도 승한과 윤재, 주희가 타고 있던 주작은 다음 동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낮게 날고 있던 터라 거미들이 주작과 함께 승한을 발견했다. 은은하게 [광휘]의 빛이 흘러나온 것이다.

수많은 거미들이 따라붙었다. 승한은 좀 더 빨라지고, 강해진 몸을 느꼈다. 무엇보다 체력적으로 좀 더 많이,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광휘]에도 투자를 할 걸 그랬나?’

만약 [광휘]에 포인트를 투자하면 더 멀리 있는 거미들까지 불러 모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아니야. 그럼 아예 겁 먹고 도망갈지도…….’

승한은 괜한 도박은 피하기로 했다. 가능한 [광휘]는 늦게 능력을 올리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지금 당장 도발 역할이 가능한데 괜히 능력의 레벨을 올렸다가 거미들의 반응이 달라진다면 낭패였다.

십, 이십, 삼십.

거미들의 수가 점점 더 많아졌다. 비산2동 하늘을 돌며 주작의 아래에는 점점 더 많은 거미들이 따라붙었다. 종래에는 그 수가 족히 백은 되었다.

“이, 이거 너무 많은 거 아니에요?”

거미들의 숫자를 확인한 주희가 기겁했다. 그녀 역시 이번에 얻은 타임 포인트로 꽤 많은 능력의 레벨을 올렸지만, 아직까지 저만한 수의 거미들을 한꺼번에 잡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겠는 모양이었다.

동 단위 하나에 있는 거미들 모두가 몰려들었다. 아니, 사실상 그 주변에 있는 거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수가 징그럽게 많았다.

“아니, 딱 좋아요.”

반면, 승한은 자신이 있었다.

수가 몇이든 승한에게는 피해를 주지 못한다. 3레벨에 도달한 [수호신]은 윤재의 여우비의 레벨이 올랐다 하더라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었고, 그 패턴을 반복하다 보면 백이든 이백이든 거미들 정도는 충분히 쓸어버릴 수도 있었다. 더군다나 [강인함]의 레벨도 올라서 체력적으로 여유가 되어서 승한이 직접 움직이며 거미들을 쓰러뜨려도 된다.

그런데 그 순간, 승한의 눈이 전혀 다르게 생긴 거미를 포착했다.

“……붉은 거미?”

============================ 작품 후기 ============================

한편은 여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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