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타임-35화 (35/223)

0035 / 0223 ----------------------------------------------

8. 수호신(守護神)

“알겠습니다. 그래도 가능하면 맡은 지역을 정리한 후, 호계동으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세 헌터가 능력을 확보하지 못했다면 그 지역에 있는 괴물들을 깨끗이 정리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으니까요. 더군다나 보스의 등장도 신경 써야 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건투를 빕니다.

거기서 통화가 끊어졌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온 강동훈 소령의 목소리는 숨죽이고 있던 윤재와 주희에게도 들렸다. 때문에 두 사람은 강동훈 소령과의 통화 내용은 따로 묻지 않았다.

시간을 확인해 보자 어느덧 10시 40분이었다. 이제 곧 시간이 멈추고, 괴물이 모습을 보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괴물이 나타나는 순간을 보는 건 처음인데.’

가게나 집 안에 있다가 괴물이 나타난 것을 확인한 이전과는 달리, 지금은 거리 한복판에 나와있었다. 그렇다면 괴물이 처음 나타나는 순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째깍-.

시간이 흘렀다. 다시 10분이 지나고, 마지막 10분을 남겨두었다. 그 10분은 그 어느 때보다도 느리게 흘렀다.

승한과 윤재, 주희는 말없이 시계탑의 초침을 바라봤다. 시간이 다가올수록 심장이 빠르게 뛰고, 긴장이 고조되었다.

“준비하십시오.”

10시 59분.

스릉-.

승한이 검을 뽑았다. 왼 손에 잡고 있는 방패는 언제든지 괴물이 나타나면 몸을 보호할 수 있게끔 단단히 굳혔다.

‘난 강하다.’

스스로 최면을 걸었다. 자신감을 얻기 위해서였다.

6레벨의 [강인함]을 비롯해 각각의 레벨이 4레벨에 도달했다. [수호신]능력의 레벨은 2레벨밖에 되지 않았지만 5스테이지의 능력이라는 걸 감안하면 5스테이지 능력이 2레벨에 도달한 헌터는 아마 몇 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승한은 헌터들 중에서는 상위권이라 자부할 수 있었다. 그건 확실하다.

‘난… 헌터다.’

헌터(Hunter). 사냥꾼.

지금부터 나타나는 괴물은 어디까지나 사냥감일 뿐이었다. 사냥감에게 겁을 먹어서는 안 된다. 사슴을 보고 겁을 먹는 사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자신감과 함께 두려움이 사라졌다. 스스로를 다독이고, 자신감을 찾았다. 한 번 찾아온 자신감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승한의 가슴속 깊이 묻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

초침이 멈췄다.

‘소리가 사라졌다.’

승한은 주변에서 들리던 소리가 완전히 사라졌음을 깨닫고 눈을 번뜩였다.

아무리 사람들이 모두 떠난 도시라고 해도, 소리는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소리 역시 상대적인 것이라 큰 소리 앞에서는 작은 목소리는 묻히기 마련이었고, 불이 다 꺼진 조용한 밤중에는 작은 소리도 크게 들리기 마련이었다.

때문에 아무리 텅 빈 도시라 해도 작은 소리는 들릴 수밖에 없었다. 바람이 불며 나무가 흔들리는 소리나 시계 초침 소리까지, 조용한 도시 안에는 평소에는 잘 듣지 못하던 작은 소리가 지속적으로 들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이 순간, 그 작은 소리마저도 사라졌다. 이 세상에 존재하던 모든 소리와 함께 작은 움직임, 바람까지도 모두 멈춰버렸다.

정지한 시간. 승한은 서둘러 오른쪽 주머니에 있던 영상구를 꺼내 가슴에 달았다.

“형, 들려요?”

승한의 말에 윤재가 깜짝 놀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전음구를 통해 윤재에게 말을 전했는데, 아무래도 전음구는 시간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게 확실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짧은 준비를 마쳤을 때였다.

쩍-.

쩌저적-.

공간이 일그러졌다. 새하얀 균열이 생기며, 아무 것도 없던 허공이 좌우로 갈라지며 틈이 생겼다.

승한은 그 모습을 눈을 크게 뜨고 지켜봤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이상 현상이었다. 공간이 갈라지다니, 시간이 멈추는 것만큼이나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쩌저저적-.

그렇게 일그러진 공간은 하나가 아니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만 하더라도 열 개가 넘는 공간이 군데군데에서 일그러지고, 벌어지고 있었다. 점점 벌어지는 공간이 커지며 사람 한 명은 충분히 나오고도 남을 만큼 크기를 키웠다.

쩌저적-.

그리고 그것은 이내 5미터가 넘는 크기로 변했다.

까가가각-.

소름 끼치는 소리가 공간 너머에서 들려왔다. 무언가를 긁는 듯한 소리였다.

‘뭐가 나오는 거지?’

일그러진 공간 하나에 한 마리의 괴물이 나올까? 아니면 여러 마리의 괴물이 동시에 나올까? 가능한 적은 수의 괴물이 나왔으면 했다.

끼이이익-.

찰박-.

거대한 발이 밖으로 나왔다. 촘촘히 털이 나 있는 발은 보통 사람의 발보다 훨씬 컸다. 더군다나 얇은 껍질 같은 게 둘러싸여 있어서 그런지 단단해 보였다.

끼기기긱-.

앞발이 먼저 나온 괴물은 곧 몸통을 드러냈다. 2미터에 가까운 높이에 시커먼 몸은 얼마나 긴지 계속해서 나왔다. 다리는 하나가 아니고 여러 개였는데, 좌우로 3개씩 나 있었다.

‘거미?’

괴물의 모습을 보고 승한이 떠올린 건 바로 거미라는 곤충이었다. 다른 게 있다면 단단한 껍질이 있다는 것과 말도 안 되게 큰 덩치였다.

웬만큼 큰 침대보다도 큰 덩치였다. 리자드맨도 보통 사람보다 크기는 했지만 저 정도 덩치는 아니었다.

‘점점 커지네.’

승한은 일그러진 공간을 비집고 나온 거미들을 바라봤다. 검은색 몸과 털, 그리고 이마에 있는 여섯 개의 눈은 흉측하다 못해 징그럽기까지 했다.

“거미? 우웩.”

거미들의 등장에 주희는 헛구역질 시늉을 했다. 게임도 좋아하고 운동도 좋아하는 털털한 성격의 그녀였지만 벌레를 싫어하는 건 남녀노소 가릴 게 아니었다.

윤재는 어느새 손에 불을 띄워 올리고 있었다. 그는 이전보다 훨씬 더 뜨거운 불을 모으고 있었는데, 능력의 레벨이 꽤나 오른 모양이었다.

“시작합시다.”

승한의 말에 주희가 준비를 시작했다. 그녀의 손에 흰색의 빛이 맺히기 시작했다. 곧 그 힘은 승한과 윤재에게로 전해지더니 두 사람의 몸을 완전히 감쌌다.

[대지의 가호를 받았습니다. 힘이 사라질 때까지 해로운 힘에 대한 피해를 흡수합니다.]

[단죄의 빛을 받았습니다. 악(惡)에게 추가 피해를 입힙니다.]

두 가지 종류의 이로운 힘이 승한과 윤재의 몸을 감쌌다. 승한은 머릿속으로 떠오른 메시지에 미소를 머금었다.

‘단죄의 빛이라… 이게 이번에 새로 얻은 능력인가?’

승한이 기억하기로 주희가 걸어줄 수 있는 이로운 능력은 [대지의 가호] 하나뿐이었다. 그 외의 능력으로는 [강인함]과 회복 능력 하나, 그리고 괴물에게 타격을 주는 공격 계열 능력이 하나였다.

때문에 승한은 주희가 걸어주는 [대지의 가호]라는 능력 하나를 기대했다. 다른 능력이 반드시 다른 헌터들에게 걸어줄 수 있는 버프 계열의 능력이라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추가 피해 능력이라… 나쁘지 않네.’

방어적인 버프 능력에 이어 이번엔 추가 피해를 입히는 능력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으로는 [광휘]와 느낌이 비슷했는데, 괴물의 힘을 감소시키는 [광휘]와는 달리 [단죄의 빛]은 괴물에게 좀 더 직접적인 피해를 줄 수 있었다.

윤재는 아직 새로 얻은 능력을 보여주지 않았다. 직접적인 전투가 시작하기 전이라 그런 모양이었다.

‘곧 볼 수 있겠지.’

끼기기긱-.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때, 벌어졌던 공간이 닫히며 모든 거미들이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 승한이 [광휘]를 사용했다.

휘이이잉-.

승한의 몸에서 [광휘]의 빛이 찬란하게 빛났다. 그 순간, 거미들의 몸이 움츠러들더니 모든 시선이 승한에게로 집중되었다.

승한의 [광휘]는 모든 괴물들에게 있어서 상극이 되는 힘이었다. 괴물들은 승한의 힘에 움츠러들면서도 그 힘을 증오했다.

만약 스컬레톤이나 리자드맨과 같은 약한 괴물이라면 승한의 [광휘]에 몸이 묶여 움직이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거미는 스컬레톤이나 리자드맨보다 훨씬 상위의 괴물이었다.

거미들은 승한의 [광휘]에 겁을 먹으면서도 그 감정을 증오로 승화시켰다. 벌어진 공간 속에서 나타났던 거미들이 순식간에 승한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빨라!’

거미들은 덩치에 비해 얇은 다리를 빠르게 움직여 승한에게로 달려들었다. 어디에서부터 달려온 건지 아파트 단지 곳곳에서 거미들이 몰려들었다.

그렇게 몰려든 수가 족히 스물.

애초에 도발을 목적으로 사용한 힘이었다. 승한은 당황하지 않고 몸을 움직였다. 한 번 시선이 끌리자 힘을 비축할 생각으로 [강화]와 [광휘]의 힘은 잠시 아껴두었다.

까가가가각-.

단단한 껍질 때문인지 거미들이 움직이면서 소름 끼치는 소리를 냈다. 승한은 윤재와 주희를 두고 거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쉬이이익-.

어차피 거미들의 목표는 승한이었다. 윤재와 주희 역시 목표라고 할 수 있었지만 우선순위는 아니었다. 거미들은 [광휘]의 빛을 뿜었던 승한을 가장 먼저 죽이고자 했다.

철컥-.

쉬이이익-.

검을 역수로 쥔 승한은 그대로 뛰어올라 거미의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 상태로 거미의 여섯 개의 눈을 향해 검을 강하게 찔러넣었다.

까드드득-.

푹-.

키에에에에엑-!

승한의 검이 거미의 머리에 반쯤 박혔다. 하지만 다른 때와는 달리, 그렇게 깔끔하지는 않았다.

‘단단하다.’

검끝에서 느껴지는 저항감이 상당했다. 가장 처음 껍질을 뚫을 때도 그렇고, 그 속도 제법 단단해서 검이 깊게 박히지 않았다.

승한의 검이 눈에 박혀 비명을 지르던 거미가 몸을 크게 흔들었다. 승한은 검을 꽉 움켜쥐며 버티다가 다른 거미가 자신을 노리자 검을 빼고 몸을 날렸다.

후웅-.

거미의 머리를 밟고 도약한 승한의 몸이 위로 크게 떠올랐다. 다행히 도약 능력은 없는지 거미들은 땅에서 승한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안 되겠어.’

최대한 힘을 아낄 생각이었다. 4레벨의 [강화]와 [광휘]는 압도적인 힘을 낼 수 있지만, 그만큼 힘을 빠르게 소모했다. 시간이 얼마나 오래 멈춰 있을지 알 수 없는 만큼 처음부터 사용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강화]와 [광휘], 그리고 [수호신]까지 아껴두고 싸우려고 한다면 승한이 가진 능력 다섯 개 중 세 개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승한이 다른 헌터들에 비해 많은 타임 포인트를 획득해서 강해졌다고 해도, 정작 그 타임 포인트를 투자한 능력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괴물들과 제대로 싸울 수 없었다.

우우우웅-.

공중으로 도약한 승한의 검이 떨리며 아지랑이를 뿜었다. [강화]의 빛이었는다.

4레벨에 오른 [강화]의 힘은 1레벨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단순히 물건의 강도를 높여주는데서 그쳤던 1레벨과는 달리, 4레벨에 이른 [강화]는 검의 예기는 물론, 알 수 없는 추가적인 힘까지 부여되었다. 5스테이지에서 만났던 이극소와 강무훈, 위진이 괜히 승한의 [강화]를 강기와 착각한 게 아니었다.

서-걱-.

땅으로 내래오던 승한이 그대로 거미를 향해 검을 내려쳤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만 해도 검에서 느껴졌던 단단한 느낌은 사라지고 부드럽게 거미의 머리가 잘려나갔다.

[175타임 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첫 거미 괴물을 잡자, 승한의 머릿속으로 타임 포인트 획득 메시지가 떠올랐다. 리자드맨보다 무려 3배나 되는 타임 포인트였는데, 승한의 기대에는 조금 못 미쳤다.

‘250포인트는 아니군.’

처음 스컬레톤을 처치하고 얻은 10타임 포인트와 리자드맨을 처치하고 얻은 50타임 포인트 때문에 승한은 이번엔 한 마리에 250타임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매번 5배의 타임 포인트를 주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175타임 포인트. 이 정도만 해도 나쁘진 않았다. 그래도 지난번보다 3배는 넘었다.

‘지난번보다 더 많이 잡으면 돼.’

끼기기긱-.

거미들이 승한을 중심으로 빠르게 몰려들었다. 무리 스무 마리에 이르는 거대한 거미들이 승한을 짓누르다시피했다.

그 위로 윤재가 만들어낸 거대한 불의 구체가 떨어졌다. 이미 윤재, 주희와 이야기를 맞춰 놓은 작전이었다. 승한이 괴물들의 시선을 끌면 윤재가 압도적인 화력으로 괴물들을 잡는 것으로 말이다.

왜냐하면 승한은 그 불길 속에서 살아남을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화아악-!

승한의 가슴에 황금색의 방패 문양이 떠올랐다.

다섯 번째 능력, 수호신(守護神)의 문양이었다.

============================ 작품 후기 ============================

쿠폰... 많이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3편 투척!

이러다 머리에 과부화가 오는게 아닐지...ㅎㅎ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