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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호위
“뭐?”
승한의 말에 위진이 발끈했다. 같은 장군이지만 엄연히 말해 위진은 그보다 훨씬 오래 전에 장군이 된 사람이었다. 더군다나 실력이나 신망에서도 그는 곽영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그게 무슨 소리지, 곽영 장군? 내 실력을 믿지 못하겠다는 건가?”
“그건 아니지만…….”
위진 장군의 실력이야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구양성 최고 실력자를 믿지 못하면 누구를 믿을까? 하지만 승한은 위진이 은가람을 호위하는 것보다는 자신이 호위하는 게 훨씬 나을 것이라 생각했다.
‘실력도 내가 더 나을 거고…….’
강무훈과 비슷한 수준이라면 승한의 실력이 훨씬 나았다. 당장 위진은 방패를 사용하기보다는 말을 탄 상태로 기다란 창을 휘두르는 공격적인 성향의 장군이었다.
때문에 호위라는 측면에서는 위진보다는 승한이 나았다. 무엇보다 지금 곽영의 몸을 차지하고 있는 영혼은 곽영 본인이 아닌 승한이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승한은 위진보다 강하다.
“죄송합니다.”
“곽영! 네놈!”
위진의 호통이 승한에게 날아들었다. 이런 전시 상황에서 아군끼리 싸우는 게 우스울 따름이었다.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위진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승한은 은가람을 잘 호위했고, 크게 부상을 입은 것도 아니었다. 숨이 조금 거칠긴 하지만 그 정도는 문제 될 정도라고 볼 수 없었다.
승한이 호위를 계속하고, 위진이 그를 돕는다면 충분히 병사들 사이를 빠져나갈 수 있을 터. 그런데도 위진은 과도하게 흥분을 하고 있었다. 무시를 받아서라고 생각하기에는 석연찮은 모습이었다.
‘혹시…….’
퍼뜩 떠오른 생각에 승한은 은가람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쉬이이익-.
위진의 창이 승한의 가슴으로 향했다. 미리 대비하고 있던 승한은 서둘러 방패를 들었다. 강기상인의 고수인 위진의 창끝에는 강기가 맺혀있었는데, 그 위력에 승한의 방패에는 작은 홈이 파였다.
쩡-!
“큭.”
급하게 막아낸 터라 제대로 자세가 잡히지 않아 승한은 조금 충격을 받았다. 무엇보다 체력이 꽤 떨어져 있던 승한과는 달리, 위진은 말을 타고 달려온데다 싸움을 시작한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위진 장군!”
“곽영, 네놈…….”
기습이 먹히지 않자 위진은 조금 뒤로 거리를 벌렸다. 작정하고 싸우려는 듯, 그는 창과 검의 싸움에서 창이 유리한 거리를 잡고 있었다.
“퉷-.”
승한은 입안에 머금고 있던 마른 침을 뱉어냈다. 흙먼지를 얼마나 먹었는지 입안에 있던 텁텁한 모래들이 침과 함께 바닥에 떨어졌다.
“배신입니까?”
어쩐지 석연찮다 했다. 위진의 눈빛이나 이해가 가지 않던 행동 모두가 곽영의 기억속에 있는 위진과는 많이 달랐다. 대놓고 공녀인 은가람이 있는데 창을 찔러왔다는 것은 그가 이미 돌아섰다는 것을 의미했다.
“젠장. 틀어졌군.”
구양성 장군 위진.
그가 왜 화천성으로 돌아섰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배신했다는 것과 그에게 은가람을 넘겨주어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큰일 날 뻔했군.’
만약 위진에게 그대로 은가람을 넘겨 주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보나마나 스테이지 완료는 물 건너갔을 것이다. 위진은 화천성으로 돌아섰고, 은가람을 넘겨받은 위진은 그녀를 인질로 삼았을 것이다.
어쩐지 위진은 처음 이곳에 도착하고부터 화천성 병사들을 공격하려 하지 않았다. 말을 타고 달리며 곧장 승한과 함께 있는 은가람을 찾았다.
“위, 위진 장군. 왜…….”
“죄송합니다, 공녀님.”
“왜 저에게 사과하시는 거예요? 위진 장군! 설마 정말로 아버님을 배신하신 건가요?”
‘와… 진짜 같네, 정말.’
승한은 얼굴을 붉히며 언성을 높이는 은가람을 보며 절대 시스템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어쩌면 이곳이 진짜 현실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어쩐지 쉽다 했더니만.’
승한은 가장 큰 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했다. 위진의 배신을 알아차리거나, 아니면 공녀인 은가람을 끝까지 스스로 지키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이번 스테이지는 물건너 갔을 것이다. 그것은 승한이 얼마나 강하느냐의 문제가 아닌, 어떻게 판단하느냐의 문제였다.
“아저씨.”
승한이 씩 웃으며 검을 뽑았다. 위진은 강기상인의 고수로 방패만 들고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어려운 상대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말이다.
“아, 아저씨?”
“배신자의 말로라고 들어 봤소?”
“곽영, 네놈이 활약을 좀 했다고 뭐라도 되는 줄 아나 보구나.”
위진은 곽영이 자신을 아래로 깔보는 듯이 말하자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리 곽영이라는 사람이 대단한 일을 해냈다고는 해도 위진이 기억하는 곽영은 아직 풋내기였다. 서른도 되지 않은 나이에 장군이 되었다고 해도 실력만 놓고 본다면 위진보다 몇 수는 아래에 있는 사람이었다.
“후회하게 해주마.”
“무슨 까닭으로 화천성에 붙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저씨, 실수 하신 겁니다.”
위진에 대한 곽영의 존경심은 상당했다. 그는 곽영이 일반 병사로 있을 때부터 존경의 대상이었고, 우상이었다.
그런 위진이 화천성에 붙고 곽영의 주군인 성주를 배신했다는 사실을 인식했을 때, 승한은 자기도 모르게 속이 쓰린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승한이 아닌, 승한의 몸이라고 할 수 있는 곽영의 감정이었다.
“실수? 말이라도 잘도 지껄이는구나. 그럼 어디 벌이라도 내려 보거라!”
거리를 벌린 위진이 곧장 창을 내질렀다. 분위기를 살피던 병사들은 위진이 승한과 싸우기 시작하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더니 곧 승한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위진이 아무리 이름이 잘 알려진 장군이라고 해도, 그의 얼굴까지 아는 병사는 많지 않았다. 더군다나 내공을 다룰 수 있는 정예 병사들은 이미 위진의 배신에 대해서 언질을 받은 상태였다.
위진뿐만이 아니라 화천성의 다른 병사들까지 상대해야 하는 상태. 승한은 곧장 몸을 뒤로 빼며 은가람을 들쳐 업었다.
“꺄악-!”
“꽉 잡으십시오.”
쉬이익-.
승한의 몸이 날아들었다. 은가람이 아무리 가벼운 여인의 몸이라고는 하나, 사람 하나를 들고 있는 움직임이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위진의 창이 허공을 베었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고 승한을 향해 창을 찔러갔다.
수우웅-.
까앙-!
승한은 위진의 창을 향해 들고 있던 방패를 집어 던졌다. 어차피 은가람을 업고 있는 상태에서는 검이든 방패든 하나밖에는 사용할 수 없었다. 그 중 승한은 방패를 버리고 검을 선택한 것이다.
창과 방패가 부딪히며 위진의 창끝이 흔들리며 궤도가 틀어졌다. 위진은 흔들리는 창을 바로잡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놈이?”
그 사이, 승한은 높게 뛰어 올라 병사 하나의 어깨를 밟으며 뛰어 올랐다. 위진은 도망치는 승한과 은가람을 보며 눈을 붉혔다.
“거기 서라!”
위진이 멀어져가는 승한을 쫒았다. 강기상인의 고수인 위진은 힘뿐만 아니라 움직임도 보통 사람보다 훨씬 빨랐다. 하물며 은가람을 업고 병사들의 공격을 피하며 도주해야 하는 승한을 쫒지 못할 리가 없었다.
높게 도약해서 병사들의 포위를 빠져나간 승한은 그 뒤로 더 도망가지 않았다. 오히려 은가람을 잠시 내려놓고 곧장 몸을 돌렸다.
“잠시만 여기 계십시오.”
쉬이이이익-.
승한은 곧장 몸을 돌려 위진을 향해 내달렸다. 짧은 거리를 순식간에 좁혀오는 승한의 움직임에 위진이 깜짝 놀랐다.
“허억!”
쩡-!
승한의 몸에 [광휘]의 빛이 선명하게 아른거렸다. 승한이 지금까지 은가람을 무사히 지킬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광휘]의 힘으로 화천성의 병사들을 조금씩 위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헌데, 위진과의 싸움에서 승한은 그 힘을 최대로 끌어올렸다. 순간적으로 거대해진 승한의 존재감은 강기상인의 고수인 위진마저도 순간적으로 찍어 누를 정도였다.
‘이게 대체 무슨!’
금세 정신을 차리긴 했지만 이미 늦은 상태.
처음부터 승한이 [광휘]의 힘을 사용하고, 위진이 그 힘에 적응을 했다면 모를까 순간적으로 그 힘을 한계까지 발휘하니 몸이 굳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승한과 위진 정도의 실력자들의 싸움에서 그 ‘순간’이라는 시간은 승부를 결정짓기에 충분했다.
치이이이익-.
승한의 검이 위진의 몸을 투구와 갑옷 째 머리에서부터 베었다. 워낙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뒤쪽에 있는 병사들이 달리 무언가를 할 방도가 없었다.
위진을 베어낸 승한은 곧장 몸을 돌려 은가람에게로 다가갔다. 불과 십 초도 되지 않은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 은가람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승한을 바라봤다.
“곽영 장군……?”
은가람의 얼굴 위로 놀란 표정이 떠올랐다. 거의 경악에 가까운 얼굴이었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
위진이 누구던가? 명실부실 구양성 최고의 장군이 아니던가? 반면 곽영은 구양성에 있는 네 명의 장군들 중 나이도, 실력도 가장 떨어지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위진을 일수에 제압했다. 아니, 그냥 제압한 정도가 아니었다. 단칼에 몸을 두 동강 내버렸다. 그야말로 눈 깜짝 할 사이에 말이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곽영이 바뀌었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성문을 홀로 막아서며 화천성의 이극소와 강무훈을 비롯한 수백의 병사들을 홀로 막아선 모습은 아직까지도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가까이서 보아왔던 실력자인 위진이 일수에 당하는 모습은 가장 큰 충격이었다. 은가람은 진정 눈앞에 있는 곽영이 곽영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물론, 현재의 곽영은 곽영이 아닌 승한이었지만 말이다.
“갑시다, 공녀님.”
승한은 다시금 은가람을 들쳐 업었다. 몇 번씩 업었다 내려놓기를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허락을 구하지도 않고 아주 자연스러웠다.
쨍, 카카캉-.
히히히히히힝-.
‘가깝다.’
바로 앞으로 붉은색 갑옷을 입은 병사들과 검은색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뒤섞여 창칼을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지금껏 검은색 갑옷을 입은 화천성의 병사들만 보다가 구양성의 병사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지원궁과 가까워졌다! 승한의 발이 빨라졌다. 승한에게 업혀 있는 은가람도 드디어 자신의 병사들과 가까워졌다는 사실에 가슴이 들뜨는 모양이었다.
그 때, 은가람이 반가운 얼굴을 반견하고는 소리쳤다.
“아버님!”
은가람의 아버지, 은휘령이었다.
은휘령은 스스로도 뛰어난 무인이라 병사들의 앞에서 말을 타고 기다란 장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은가람의 목소리를 듣고는 고개를 번쩍 들고 승한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가람아!”
은휘령이 말머리를 돌렸다. 승한 역시 은휘령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막아서는 병사들이 있으면 베었고, 가능한 최대한 빨리 은휘령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병사들은 은휘령이 정리했다. 그가 타고 있는 명마(名馬)는 병사들을 짓밟고, 은휘령의 검은 강기를 두르고 병사들의 목을 베었다. 승한과 은휘령이 만나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승한은 은휘령과 만나자 은가람을 땅에 내려주었다. 은가람은 은휘령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고, 은휘령은 급하게 말에서 내렸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감동적인 딸과 아버지와의 재회였다. 이것으로 거짓 정보로 병사들을 밖으로 빼돌린 뒤, 구양성을 치겠다는 화천성의 작전은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잠시 은가람을 보듬어 주던 은휘령은 승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다른 병사들이나 장군들처럼 은휘령 역시 승한을 곽영 장군으로 보고 있었다.
“정말 잘 해 주었네, 곽영 장군. 자네가 가람이를 살리고, 우리 구양성을 살렸어.”
“제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아, 그리고… 위진 장군이…….”
“알고 있네. 그가 이곳에 당도했을 때, 화천성 병사들 틈으로 홀로 사라진 것을 보고 알았네. 위진 장군, 그는 예전부터 미심쩍은 인물이었지.”
승한은 자신이 왜 이런 것까지 은휘령에게 말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은 그저 스테이지만 완료하면 될 뿐인데 말이다.
그것은 곽영으로서의 몸이 시키는 반응이었다. 승한은 몰랐지만 그는 조금이지만 곽영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자신의 몸을 희생하면서까지 은가람이 다치지 않게 한 것이나, 구양성을 위해 은휘령에게 정보를 넘기는 것은 바로 곽영으로서의 행동이었다.
“수고했네, 곽영 장군.”
은휘령이 치하의 말을 꺼낸 순간.
[5.2스테이지를 완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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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이! 생각보다 좋아요!
더 플레이어처럼 잘 할 수 있을까 했는데.. 다행이네요. ㅎㅎ 성원에 감사합니다.
휴학도 하고, 한 해 동안 전업의 길을 갈지 고려해 보려고 합니다. 그런 만큼 가능한 하루 2연재를 고집할 생각입니다.
여러분들이 쿠폰만 많이 주신다면 가끔씩 3연재도... 쿨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