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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호위
화천성 1천 병사들.
반면, 구양성의 병사들은 대부분 밖으로 나가 고작 300도 채 되지 않았다. 성문은 진작 뚫렸고, 남은 건 구양성의 공녀인 은가람을 인질로 잡고 구양성을 차지하는 것뿐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 된 거지?’
화천성 장군 강무훈의 수하이자 호위병인 무극소는 전장을 살피며 눈살을 찌푸렸다. 작금의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단순히 그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저 녀석 때문이야.’
무극소는 멀리서 병사들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곽영을 바라봤다. 그는 곽영의 몸 안에 승한이 들어가 있다는 사실은 모르고, 그의 실력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일취월장했거나 알려져 있던 곽영의 실력이 거짓이라고 생각했다.
곽영은 놀랍게도 홀로 모든 병사들을 막아냈다. 부서진 성문을 대신해 성을 지키고, 열 명 남짓밖에 남지 않은 구양성 병사들과 함께 공녀인 은가람을 지켜냈다.
모르는 이가 본다면 희대의 영웅이라 생각될 법도 했다. 그 정도로 곽영의 활약은 대단했고, 그 활약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막아! 아니, 죽여어어-!”
“공녀를 사로잡아!”
“미친, 저런 녀석을 어떻게 잡으라는 거야!”
곽영, 아니 승한을 둘러싼 병사들. 그들은 하나같이 검을 들고 있었지만 방패를 앞으로 내세운 승한을 어찌 하지는 못했다. 단단한 방패를 앞으로 내밀고 달려드는데 검을 휘둘렀다가는 그대로 검과 함께 몸이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었다.
승한의 방패는 나무에 철판을 덧씌운 방패였다. 단단하기로는 그리 단단한 편이라고 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앞서 궁수들의 화살이 수도 없이 박혀있어 멀쩡한 상태도 아니었다.
하지만 승한은 한 손에 들고 있는 방패를 온 힘을 다해 [강화]했다. 그 때문에 승한의 방패는 통짜 철로 만들어진 방패들보다 더욱 단단한 강도를 가질 수 있었다.
콰드득-.
“허억, 허억.”
승한은 눈앞에 있는 병사 하나를 방패로 찍어 누르며 숨을 몰아쉬었다. 가능하면 밀어붙이지만, 여차할 경우 이런 식으로 방패를 무기로서 사용할 수도 있었다.
한 눈에 봐도 승한은 정상이 아니었다. 온 몸에 피를 흘리고 있을뿐더러, 조금 전부터는 조금씩 상처도 나고 있었다. 오른쪽 어깨에 메고 있는 공녀 은가람을 보호하고자 날아오는 검을 대신 맞은 상처였다.
“괘, 괜찮으세요?”
“허억, 헉.”
가장 가까이 있는 은가람은 승한의 상태를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숨을 몰아쉬는 모습이 한 눈에 봐도 위태로웠다. 얼마나 가쁘게 숨을 쉬었으면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였다.
그래도 괜찮았다.
아무리 힘들어도 움직이는 데는 큰 무리가 없었다. 숨을 한 번 들이쉬면 다시 움직일 체력이 생겨났다. 능력을 사용해서 몸에 피로가 누적되는 것만 아니라면 얼마든지 더 움직일 수 있었다.
“괜찮습니다. 그보다 잘 매달려 있기나 하십시오. 공녀님을 보호하느라 생긴 상처가 꽤 쓰립니다.”
“죄, 죄송해요.”
수분이 없이 거칠어진 목소리에 은가람이 입을 다물었다. 승한은 다시금 방패를 앞으로 내세우며 입안에 바싹 마른 침을 꿀떡 삼켰다.
공녀인 은가람을 대하는 승한의 말투에는 부드러움이 없었다. 수도 없이 병사들을 베고, 방패로 내려찍으며 죽이다 보니 어느새 목소리에 살기가 묻어나왔다. 더군다나 공녀를 향한 존경심이나 충성심도 없으니 말투가 험악한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얼마나 더 가야 하지?’
지금 당장 움직일 힘은 있었지만 그게 언제까지 갈지는 알 수 없었다. [강화]와 [광휘]를 사용하고 있는 승한의 힘과 체력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승한의 체력은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승한의 능력 중 체력과 관련이 있는 능력은 첫 번째 능력인 [강인함]뿐이었다. 5레벨의 [강인함]이라면 [강화]와 [광휘]를 사용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줄 알았는데, [강화]를 비롯한 [광휘]의 레벨이 함께 올라가면서 무리가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아직 움직일 만해.’
“후우우우.”
길게 숨을 내쉬며 눈을 번뜩였다.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는 멀지 않았다. 말발굽 소리도 마찬가지였다. 돌아온 지원군과 합류하기만 하면, 조금은 쉴 수 있는 시간이 있을 것이다.
‘아니, 어차피 그 때면 스테이지가 끝나겠군.’
조금이라도 희망적인 생각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승한은 오른쪽 어깨에 메고 있는 은가람을 더욱 꽉 잡았다.
“다시 갑니다.”
“네, 네!”
두꺼운 목을 잡는 얇고 부드러운 손이 느껴졌다. 승한은 다시 앞으로 전진했다.
그그그그그-.
방패 위를 긁는 소리. 병사들의 검이 방패를 두드렸지만, 흠집을 내는 게 전부였다. 가끔씩 방패 안쪽으로 밀려 들어오는 검들이 있었는데, 그럴 때면 방패를 휘둘렀다.
쉬이이익-.
뒤쪽에서도 검은 있었다. 승한은 완전히 포위된 상태라 앞과 양 옆은 물론이고 뒤까지, 사방을 신경 써야 했다.
사악-.
피한다고 피했지만 승한의 팔뚝이 살짝 베어졌다. 갑옷을 뚫고 들어온 검은 바로 내공을 사용할 수 있는 정예 병사의 검이었다.
그래도 은가람이 베이지 않는 게 어디인가? 주군의 딸이라는 데에 충성도나 희생 정신은 없었지만, 은가람이 무사해야 이 스테이지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지긋지긋하다고!”
승한은 방패를 들고 펄쩍 뛰어 올랐다. 남은 힘을 모두 끌어 올려, 크게 한 번 도약을 시도한 것이다.
콰앙-!
높게 도약한 승한이 방패를 아래로 내리찍으며 바닥에 착지했다. 승한의 무서움을 아는 병사들은 내려오는 승한을 피해 멀리 도망갔는데, 승한은 굳이 그런 병사들까지 상대하지 않았다.
‘피해주면 나야 좋지.’
잠시 벌어진 틈. 승한은 그 사이로 파고들었다. 한 번 크게 위협을 주니 알아서들 길을 터주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 순간, 사방에서 창칼이 날아들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승한은 방패를 위로 올려 그대로 몸을 아래로 숙였다. 은가람과 승한, 두 사람의 몸이 거북이처럼 단단하게 방패 안으로 숨어들었다.
깡, 까가가강-!
창칼이 방패 위를 두드린 뒤,
째재쟁-!
승한이 다시 위로 비상했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는데, 주변에 있던 병사들은 얼떨떨해 하면서도 더 이상 승한을 어쩌지 못했다.
막으면 쳐내고, 공격하면 막고 피했다. 자잘한 상처는 무시했다. 그러다 보니 더 이상 승한을 공격할 간 큰 병사들도 점차 줄어들었다.
쨍, 째쟁-!
어느새 창칼이 부딪히는 소리는 승한의 귀에 선명하게 들릴 정도로 가까워졌다. 그 어느 때에도 병장기 부딪히는 쇳소리가 이렇게 반갑게 들린 적은 없었다.
‘바로 앞!’
승한은 남은 시간을 체크했다.
[스테이지 5.2]
달성 조건 : 공녀 은가람을 호위하여 지원군과 합류하라.
제한시간 : 20분
남은시간 : 0 : 08 : 14
보상 : ???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남았다. 난이도 자체도 앞서 4스테이지와 비교해서 그렇게 높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강무훈이 조금 까다로운 상대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어려운 상대는 아니었다.
‘난이도가 올라간 게 아니라 내려갔다?’
이상한 일. 올라가도 모자랄 판에 내려가다니.
은가람이라는 공녀를 호위하면서 병사들 사이를 빠져 나가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방패라는 도구가 없다면 모를까, 방패가 있는 이상 승한은 병사들을 뚫고 나가는데 큰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방패를 앞으로 들고 힘으로 밀어붙이면 쭉쭉 밀렸다.
‘혹시…….’
자만에 가득한 생각이지만 승한이 그런 생각까지 할 정도였다.
‘보통보다 내가 훨씬 강한가?’
승한은 처음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의 리자드맨을 잡았다. 그렇게 벌어들인 타임 포인트를 통해 능력의 레벨을 꽤 많이 올렸고, 방패라는 장비까지 구매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승한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해질 수 있었다. 괴물과 싸우고 타임 포인트를 획득하면 강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지만, 얼마만큼 더 빠르게 강해지냐는 개인차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승한이 알기로 승한은 다른 헌터들에 비해서 꽤나 강한 편에 속했다. 물론 비교할 대상이 윤재나 주희 둘밖에는 없었지만, 그 둘과 비교해서도 승한이 가지고 있는 능력의 레벨은 그 두 사람보다 몇 단계는 높았던 것이다.
‘난이도가 쉬워진 게 아니야.’
만약 승한이 지금 당장 4스테이지를 진행한다면 어떻게 될까?
남색 문에 있는 뱀이 걸리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 녀석도 그리 어렵지 않게 쓰러뜨릴 수 있을 것이다. 머리를 들이밀었을 때 손쉽게 피하고, 그대로 검을 휘둘러 머리를 베어버리면 끝이었다.
반면 화천성 장군 강무훈은 훨씬 까다로운 상대였다. 기다란 언월도에 강기를 두르고 궁수들을 이용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은가람을 지키며 움직여야 하는 지금 상황은 패널티로 다가왔다.
만약, 강무훈이 은가람을 지켜야 하는 상황에서 등장했다면 훨씬 골치가 아팠을 것이다.
결국 승한은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내가 강해진 거다.’
키히히히힝-!
그 때, 병사들 사이를 헤치며 말 한 필이 달려왔다. 말에 타고 있는 장군은 거대한 창을 휘두르며 병사들의 목을 베어넘겼다.
“비켜, 비켜라!”
붉은색 갑옷을 입은 장군. 그는 바로 은가람이 있는 구양성의 장군이었다.
그가 휘두르는 창에는 작은 무색의 아지랑이가 피어올라 있었다. 강무훈과 같은 ‘강기’의 힘이었다.
승한에 이어 또 다른 강기상인의 고수의 등장. 병사들의 사기가 꺾이기에는 충분했다. 병사들은 감히 또 다른 장군에게 덤벼들지 못하고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그 때, 말을 타고 달리던 장군이 승한과 은가람을 발견했다. 그는 승한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고는 말에서 급히 내렸다.
“공녀님! 괜찮으십니까?”
“전 괜찮아요, 위진 장군.”
구양성 위진.
그는 구양성에서 가장 실력 있는 실력자였다. 화천성의 강무훈과 비교되는 그의 존재는 승한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승한은 위진의 등장에 어깨에 들쳐 메고 있던 은가람을 내려놓았다. 혼자라면 모를까 이렇게 다른 장군의 앞에서까지 공녀를 들고 있는 건 모양이 좋지 않을뿐더러 위진이 합류한 이상 더 이상 무리하게 은가람을 들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곽영 장군. 정말 수고했소. 지금까지 공녀님을 아주 잘 호위해 주었소.”
“별 말씀을. 그게 제 일입니다.”
진실된 대답이었다. 어차피 스테이지를 클리어 하려면 승한은 은가람을 호위할 수밖에 없었다.
위진은 제법 놀란 눈치였다. 그는 곽영이 일개 병사였을 때부터 장군 자리에 오를 때까지 내내 지켜봐 오던 사람이었다. 나이에 비해 제법 뛰어나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 실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혼자 이 많은 병사들 사이를 뚫고 오다니?’
위진은 과연 자신 혼자서 이렇게 오랫동안 은가람을 호위하고, 이 병사들 사이를 뚫고 나올 수 있었을까 싶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힘들 것 같았다.
“공녀님, 이제부터는 제가 보필하겠습니다.”
위진이 은가람을 자신의 쪽으로 끌어들였다. 지원군과 합류가 끝났다는 생각에 승한은 기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이상한데?’
그 때, 승한은 무언가 꺼리짐한 느낌을 받았다. 게다가 스테이지의 진행 상황이 아무래도 석연찮은 구석이 있었다.
제 발로 지원군이 찾아 올 거라면 왜 자신이 이 고생을 해서 병사들을 뚫고 있었단 말인가? 승한의 목표는 지원군과 합류하는 것이지, 위진 장군을 만나는 게 아니었다.
무엇보다…….
위진 장군이 은가람을 보는 눈빛은 곽영의 기억에 남아있는 위진의 눈빛이 아니었다.
“공녀님은 제가 호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