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타임-30화 (3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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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호위

피가 튈 겨를도 없었다. 머리부터 세로로 양단된 그의 몸뚱이가 좌우로 갈라지며 바닥에 쓰러졌다. 피가 흐르고, 내장이 바닥에 흘러 내렸다. 아무리 전쟁터라지만 갑옷을 입은 사람이 이렇게 반으로 쩍 갈라져 내장을 쏟아내는 모습은 결코 보기 쉬운 게 아니었다.

“허억, 허억.”

쿵, 쿵, 쿵=.

승한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거세게 뛰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강화]와 [광휘]를 전력으로 사용한 탓에 그렇지 않아도 빠르게 소모했던 체력을 보다 빠르게 촉진시켰고, 반으로 베어져 바닥에 쓰러진 강무훈의 몸뚱이를 보자 속이 쏠린 탓이었다.

‘구역질 나와.’

자신이 한 일이었지만 정작 적응은 되지 않았다. 가장 깔끔하고, 위력적인 한 수였지만 그 결과는 내장을 쏟아내는 시체가 전부였다.

강무훈의 죽음에 병사들은 패닉에 빠졌다. 화천성 최고의 장군이자, 병사들을 이끌던 존재가 바로 그였다. 더군다나 방금 전까지만 해도 병사들을 지휘하던 이가 바로 강무훈이었다. 그런 그가 눈 깜짝할 사이에 죽어버렸으니, 남아 있는 병사들이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승한은 병사들이 패닉에 빠져 있는 사이, 다시 원래 있던 위치로 돌아왔다. 몇몇 병사들이 성 안으로 들어가러고 하기도 했는데, 승한은 그런 병사들부터 먼저 노렸다.

쨍, 캉-!

병사들은 승한에게 가로막혀 뒤로 물러나거나 목이 베였다. 그래도 내공을 가지고 있는 병사들답게 움직임이 민첩했고, 무엇보다 승한은 강무훈을 죽인 이후로 [강화]와 [광휘]를 꺼뜨리고 있었다.

‘앞으로 10분.’

한 명의 병사도 안으로 들여보내지 않았다. 적장도 베었고, 이제 10분만 버티면 된다.

다행히 체력은 꽤 빠졌지만 몸은 멀쩡했다. 리자드맨들과 싸울 때는 [강화]와 [광휘]를 너무 남발해서 숨이 차기보다는 몸이 먼저 녹초가 되었다. 하지만 승한은 이극소와 강무훈과의 싸움을 제외하면 되도록 힘을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만약 10분을 버티고 모든 게 끝난다면 지금부터 힘을 마구 사용해도 될 것이다. 그렇게만 되면 승한은 병사들을 절대로 안으로 들여보내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라는 것. 이건 어디까지나 5.1스테이지에 불과했다. 남아있는 스테이지가 무엇일지 아직 모르는 이상, 승한은 최대한 힘을 비축해둘 필요가 있었다.

“자, 장군님의 복수를 하라!”

“공녀를 빼앗아라!”

어디선가 터져 나온 외침.

승한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제 좀 쉬나 했는데, 장군이 없으니까 지들끼리 지랄이네.”

그래도 앞서 싸웠던 병사들과는 달리, 내공을 가진 병사들은 꽤나 잘 훈련이 된 정예인 모양이었다. 강무훈이라는 장군이 죽었다는데 크게 패닉에 빠지지 않고 자기들끼리 사기를 증진시키며 승한이 지키고 있는 성문을 뚫겠다고 나서는 것을 보면 말이다.

씨익-.

하지만 승한은 겁을 먹지 않았다. 낙담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여유롭게 미소를 지었다.

온 몸에 피를 뿌리고 웃는 그 모습은 병사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그래, 올 거면 와라.”

사람을 죽이는 공포? 더 이상 무서울 것도 없었다. 백 명을 죽이든, 백한 명을 죽이든 천하의 살인마라는 점은 변함이 없었다.

이제는 가슴에서 들끓던 죄책감도 조금씩 사라져갔다. 어차피 병사들의 상대는 처음부터 그렇게 힘들다고 느끼지도 않았다.

즉,

더 이상 무서울 것도 없었다.

**

사악-, 추아악-!

파바바박-.

두 명의 병사의 목을 동시에 베고, 궁수들이 날린 화살을 방패로 막아냈다. 몇 번씩이고 반복한 패턴이라 이제는 상당히 익숙해졌다.

“후욱, 후욱.”

“저거… 저거 진짜 괴물이잖아……?”

한 병사가 승한을 보고 방금 전 했던 말을 또 다시 반복했다. 하지만 무심코 나온 방금 전과는 달리, 그의 말에서는 진심이 느껴졌다.

벌써 성문 앞에는 시체가 산처럼 쌓여있었다. 몇 명의 병사들이 죽었는지 수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산처럼 쌓인 시체가 성처럼 탄탄하게 성문을 지키고 있는 듯했다. 도저히 그 모습을 보고 달려들 엄두가 나지 않았다.

가지고 온 화살도 다 떨어졌다. 승한 한 사람에게 막혀 이 많은 병사들이 성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우스운 일이었다.

‘이제… 좀… 지치는데.’

근 한 시간.

승한은 그 시간 동안 계속해서 싸웠다. 병사들의 검을 막고, 베고, 궁수들의 화살을 신경 쓰며 방패를 움직였다. 감각을 최대한 넓히고 언제든지 병사들과 검과 화살에 반응할 수 있도록 온 몸의 근육을 팽창시키고 있었다.

체력도 체력이지만 집중력의 소모가 엄청났다. 잠깐이라도 방심하는 사이 화살이든 눈먼 칼이든 맞을 수 있었다. 이곳은 전쟁터였으니까.

‘시간이…….’

승한은 계속해서 싸우느라 잊고 있던 시간을 확인했다. 그리고 남은 시간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두두두두두두두=.

와아아아아아아-!

[스테이지 5.1]

달성 조건 : 지원군이 올 때까지 성주의 딸을 호위하라.

제한시간 : -

남은시간 : 0 : 00 : 01

보상 : 5.2스테이지로의 이동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1시간이 흘렀다. 멀리서 들려오는 말발굽 소리와 함성소리, 그리고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까지.

분명했다.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지원군이 도착한 것이다. 승한에게 주어져 있던 1시간이라는 시간은 바로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의 시간이었다.

[5.1스테이지를 완료하였습니다.]

[5.2스테이지가 시작되었습니다.]

[스테이지 5.2]

달성 조건 : 공녀 은가람을 호위하여 지원군과 합류하라.

제한시간 : 20분

남은시간 : 20분

보상 : ???

다행히 5.3스테이지는 없는 모양이었다. 이번엔 남은 시간은 물론, 제한시간까지 걸려있었다.

즉, 그 시간 안에 은가람을 데리고 지원군과 합류하지 못하면 스테이지를 통과하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느리게만 느껴졌던 시간이 이제는 일분일초가 급박하게 느껴졌다.

‘은가람!’

승한은 언제 그랬냐는 듯 바로 몸을 뒤로 돌렸다. 승한을 상대하던 병사들은 승한이 몸을 돌리자 어리둥절해 하면서 갈피를 잡지 못했다.

몸을 돌려 성 안으로 들어가는 승한과 뒤쪽으로 쳐들어온 지원군. 어느 쪽이 우선인가 명령을 내릴 장군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은가람을 비롯한 몇 남지 않은 병사들은 성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 외곽에 나와 있었다. 그들은 멀리서 승한이 성문을 지키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멀리서 함성 소리를 듣고는 얼굴에 화색을 띄웠다.

“곽영 장군!”

승한이 다가오자 은가람은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지원군이 왔다는 사실에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에게나 승한에게나 아직 끝이 아니었다.

“어서 움직이셔야 합니다.”

“네?”

“저기 보십시오.”

때마침 적 병사들이 성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들은 승한과 은가람을 발견하더니 발을 재촉했다. 지원군이 온 이상, 화천성의 병사들은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자신들을 지휘할 장군도 없고, 성주의 딸인 은가람을 인질로 잡는 수밖에.

“저들은 공녀님들은 인질로 잡으려는 겁니다. 서둘러 지원군과 합류하셔야 합니다.”

“지, 지금 바로요?”

“네. 제가 호위하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한시가 급한 승한의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묻어났고, 은가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잘 부탁드려요.”

“제 옆으로 붙으십시오.”

승한은 은가람의 호위가 이전보다 훨씬 더 힘들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까지는 성문을 막아서며 무작정 달려드는 병사들을 베어넘기면 되었지만, 이제는 옆에 있는 은가람이 죽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저들이 생각이 있다면 은가람을 죽이려고 하지는 않겠지.’

적군 병사들은 은가람을 죽이는 게 아닌, 사로잡으려 할 것이다. 그래야 인질로서의 가치가 있을 테니까.

하지만 마냥 안일하게 생각할 수는 없었다.

이건 꿈이었다. 그리고 그 꿈에서 승한에게 주어지는 미션, 스테이지 무대였다. 과연 이곳에서 병사들이 승한의 생각처럼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짜여진 무대의 각본처럼 병사들은 은가람을 죽이려고 할지도 모른다. 되도록 승한은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은가람이 승한의 옆으로 바짝 붙었다. 다른 병사들이 승한과 은가람의 주위를 호위했다. 그래봤자 수는 이제 열 명 남짓밖에 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없는 것 보다는 낫겠지.’

병사들이 목숨을 바쳐 은가람을 호위하려 한다면 적어도 방패 대용으로라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승한은 그렇게 병사들이 쉽게 죽게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지만 말이다.

승한은 은가람의 등을 떠밀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갑시다.”

승한이 성 안으로 들어왔던 성문을 향해 다시 달려갔다. 은가람은 승한을 바짝 쫒았다. 그녀 역시 어릴 때부터 병사들이나 장군과 함께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아서 그런지 제법 잘 따라왔다.

우우우웅-.

승한의 검에 빛이 어렸다. [강화]와 [광휘]의 힘이 승한의 전신으로 뻗어나갔다.

어차피 남은 시간은 20분 남짓. 승한은 그 시간 동안 힘을 아낌없이 쏟아낼 생각이었다. 반드시 지원군이 있는 곳까지 은가람을 데리고 무사히 가야 한다.

“비켜---!”

승한은 아군 병사들을 뒤로 물리고 다가오는 적군 병사를 베었다. 승한의 검은 단숨에 적군 병사를 옆으로 쳐내고, 단숨에 검을 눕혀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투웅-.

몸이 날아들었고,

피잇-.

앞을 가로막고 있던 병사들의 몸에 선혈이 그어졌다.

촤아아아아악-!

승한은 순간적으로 빠르게 움직이면서 검으로 병사들의 몸을 베었다. 갑옷을 입은 병사들의 허리는 승한의 힘과 검의 날카로운 예기를 견디지 못하고 두부처럼 베어졌다.

물론 그 사이에는 [광휘]의 힘도 한몫 하고 있었다. 상대의 힘은 위축시키고, 승한의 힘은 반대로 한층 올라갔다. 온 힘을 끌어 올린 승한은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았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했다.

“과, 곽영 장군?”

“장군님!”

승한의 실력에 은가람이나 그 밑의 다른 병사들 모두가 깜짝 놀랐다. 이제 막 장군 자리에 앉은 젊은 무사 출신의 곽영이 이런 신위를 발휘하니 믿기 어려운 일이었던 것이다.

“놀랄 틈이 없습니다. 어서 움직이십시오.”

적군 병사들은 어느새 성문 안으로 우르르 들어와 승한과 은가람을 비롯한 병사들을 포위하고 있었다. 족히 백 명은 넘는 수였는데, 승한은 은가람을 자신의 옆으로 바짝 붙이며 생각했다.

‘다 죽일 필요는 없어.’

승한이 할 일은 도주.

굳이 이들 모두를 상대할 필요는 없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네, 네? 꺄악!”

승한은 은가람의 몸을 번쩍 들어 어깨에 짊어졌다. 검은 허리춤에 있는 검갑에 넣어두고, 방패를 앞으로 굳혔다. 지금은 공격보다는 방어가 우선이었다.

‘눈먼 칼에라도 맞으면 큰일이지.’

다른 병사들에게는 미안했다.

하지만…….

“꽉 잡으십시오.”

투웅-.

승한의 몸이 위로 떠올랐다. 방패를 단단히 앞으로 굳힌 채, 승한은 성문 앞에 있는 적군 병사들에게로 달려들었다.

다른 아군 병사들은 갑작스럽게 승한이 앞으로 튀어나가자 그 뒤를 따라붙었다. 하지만 승한의 움직임이 워낙 빨라 제대로 쫒아가기는 힘들었다.

“과, 곽영 장군! 다른 병사들이…….”

“저에겐 공녀님의 안위가 먼저입니다.”

곧이어 승한이 적군 병사들과 부딪혔다. 단단하게 방패를 들이밀고 있는 승한을 향해 적군 병사가 마찬가지로 방패를 굳혔다.

꽈앙-!

“으아아악-!”

승한과 부딪힌 병사가 충격에 뒤로 날아갔다. 강도로 보나 힘으로 보나, 승한과 병사는 차원이 달랐다. 검도 통하지 않고, 화살도, 방패도 통하지 않았다.

오른쪽 어깨에 들쳐 메고 있는 은가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성난 황소처럼 들이받는 승한을 적군 병사들은 그 누구도 막아내지 못했다. 설마하니 이런 식으로 적군 사이를 통과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휘이익-.

그 때, 승한의 몸이 날아올랐다. 눈앞에 가득한 병사들 틈에서 누군가의 어깨를 디딤 삼아 발 돋음 한 승한의 몸이 훌쩍 위로 올라갔다.

마치 하늘을 나는 것 같았다. 있는 힘껏 도약한 승한은 수십 명의 병사들을 넘어 성문 밖까지 날아갔다. 물론, 그 앞으로도 적군 병사들은 여전히 많이 남아있었다.

‘이제부터가 클라이막스군.’

적진 한 가운데.

포위망을 뚫으려면 어쩔 수 없긴 했지만, 막상 적진 한가운데로 들어오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지원군들과 적군 병사들이 싸우는 소리가 그리 멀지 않았다.

“다 비켜, 이 새끼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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