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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호위
째앵-!
“크윽!”
승한과 검을 부딪힌 병사가 강렬한 충격에 뒤로 물러났다. 어마어마한 힘과 검의 단단함에 충격을 입은 것이었다.
단단한 철제 검이 반쯤 부러져 있었다. 만약 다시 한 번 검을 부딪힌다면 그대로 검이 부러지고 목까지 베어질지도 모른다.
“이, 이게 대체…….”
승한과 검을 부딪힌 병사는 얼떨떨함에 놀라더니 곧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어느새 다가온 승한의 검이 그의 목을 베어낸 것이다. 한 손에 들고 있는 방패로는 궁수들의 화살을 신경쓰면서도, 그의 검은 쉬지 않았다.
“호오?”
승한의 싸움을 지켜보던 강무훈이 눈을 반짝이며 다가왔다. 지금까지 성문을 지키고 버티고 있다기에 제법 실력이 뛰어날 것이라 생각하긴 했지만, 이건 생각 이상이었다.
철컥-.
무거운 갑옷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강무훈이 언월도를 승한에게로 겨누었다. 그의 좌우로는 병사들이 도열해 있었는데, 혼자 싸울 생각은 아닌 듯했다.
“강기라… 구양성의 곽영이 강기상인(剛氣商人)을 이루었을 줄은 몰랐군. 듣던 것과는 많이 다른데?”
‘강기? 강기상인?’
뜻 모를 소리였다. 하지만 곧 승한은 강무훈이 말하는 강기와 강기상인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강기는 내공을 검에 둘러 단단한 바위도 벨 수 있는 힘을 낼 수 있는 힘이었다. 즉, 승한의 [강화]와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었다.
또한 강기상인은 강기를 사용할 수 있는 고수들의 경지를 뜻하는 것이었는데, 한 마디로 강기나 강기상인이나 승한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하긴, 겉으로 보기엔 비슷할지도 모르지.’
색이 없는 무형의 기운이 검을 감쌌다. 누군가 본다면 영락없이 강기처럼 보였을 것이다.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검에 둘러있는 기운은 강기, 혹은 검강 말고는 없으니 말이다.
승한은 굳이 강무훈의 오해를 풀어줄 생각이 없었다. 어쨌거나 승한은 강무훈을 죽이고, 그를 비롯한 병사들이 성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만 하면 그만이었다.
‘남은 시간은 16분.’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어서 빨리 시간이 갔으면 좋겠건만, 언제나 시간은 불공평했다.
‘차라리…….’
기다리는 것도 지쳤다. 승한은 더 이상 시간이 가기를 기다리길 포기했다.
“너만 죽이면, 다른 놈들도 조용해 지겠지?”
“글세. 그게 과연 그렇게 쉬울까?”
우우웅-.
승한의 말에 강무훈의 언월도가 일렁거렸다. 승한의 능력인 [강화]와 닮은 듯한 모습의 진짜 ‘강기’였다.
“어때, 쉬울 것 같나?”
“……그리 쉽지는 않을 것 같군.”
강기상인의 경지. 승한은 강무훈을 상대하기가 그리 쉽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강기상인의 경지에 오른 고수들에게 강기는 그저 뛰어난 무기일 뿐,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지 못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다른 병사들에게는 충분히 위협적이겠지만, 강기상인의 고수의 가장 큰 무기는 따로있었다.
그 경지에 도달하기까지 휘두른 무기에 대한 이해와 강인한 육체. 그것이 바로 강기상인에 도달한 고수들의 가장 큰 무기였다. 무엇보다 그들은 승한처럼 이미 인간을 초월한 육체를 가진 ‘진짜’ 고수들이었다.
‘제대로 싸우면 못 이길 것도 없지만…….’
문제는 단순히 이기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를 상대하는 사이, 다른 병사들이 승한을 지나쳐 성 안으로 들어가게 해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 승한은 강무훈 한 사람에게 발이 묶일 수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런 승한의 걱정은 기우였다. 강무훈의 병사들은 성문을 뚫을 생각보다는 승한을 죽일 생각부터 하는지 강무훈을 중심으로 승한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아, 맞다. 비겁한 거 좋아한다고 했지.”
강무훈은 승한과 일대일로 싸울 생각이 없었다. 장군이라면 그래도 정정당당 일대일 대결을 바랄 법도 한데, 강무훈은 그런 성격이 아니었다.
한 눈에 봐도 승한은 강했다. [강화]를 착각한 것뿐이지만 강기 비슷한 것도 사용할 수 있고, 지금까지 홀로 성문을 삼십 분이 넘게 막아서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체력과 독기였다.
강무훈이라고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그는 자신이 없었다. 때문에 강무훈은 홀로 승한을 상대할 생각이 없었다.
‘궁수들과 병사들, 그리고 내가 힘을 합치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
강무훈의 생각은 단순했다. 이미 승한은 궁수들의 화살을 신경쓰느라 신경이 많이 분산되어있고, 왼 손에 들고 있는 방패는 늘 그쪽을 향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즉, 손 하나가 묶여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런 와중에 다른 병사들이 승한의 시선을 끌고, 강무훈이 나선다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다. 강무훈의 병사들 역시 내공을 사용할 줄 아는 이들로 결코 만만치 않았다.
“죽여라!”
강무훈의 외침과 함께 병사들이 승한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다른 병사들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날렵한 움직임이었다.
쨍-!
승한의 검과 부딪힌 병사 하나의 검이 위로 들어 올려졌다. 무시무시한 힘에 깜짝 놀란 병사가 뒤로 주춤 물러나자, 다른 병사 하나가 승한을 옆에서 공격했다.
“저리 꺼져-!”
악에 받친 소리. 승한은 방패를 크게 휘둘렀다. 빠악, 소리와 함께 병사의 투구가 으깨지며 바닥에 쓰러졌다.
휘이이이익-.
그 순간, 화살이 날아왔다. 궁수들은 승한이 방패를 움직이는 틈을 노리고 있었다. 다행히 몸을 비틀어 화살 하나를 피하고, 다시 방패를 원래 위치로 가져왔다.
파바바박-.
방패가 점점 고슴도치가 되어갔다. 병사들을 향해 검을 휘두르고, 여차하면 발길질도 날렸다. 궁수들을 신경 써야 하기에 방패를 이용한 공격은 하기가 어려웠다.
후우우웅-!
그 순간, 승한은 병사들의 검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거대한 힘을 느꼈다. 승한은 반사적으로 검을 들어올려 위에서 내려찍어오는 언월도를 막아냈다.
쩌어엉-!
단숨에 승한의 몸을 투구 째 반으로 가를 생각이었는지, 언월도는 매섭고 묵직했다. 한 손으로 들고 있는 검과는 달리, 강무훈은 언월도를 양 손으로 휘둘렀다. 더군다나 위에서 아래로 내려친 체중 때문인지 힘도 훨씬 많이 실렸다.
더군다나 승한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다른 병사들을 신경 쓰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급작스럽게 반응을 한 것인데, 강무훈은 뜻밖에도 승한이 자신의 언월도를 쉽게 받아내자 적잖이 놀랐다.
‘이걸 막아?’
강무훈의 언월도에는 강기가 어려 있었다. 승한의 검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같은 강기가 부딪힌다면 무기의 힘이 언월도 쪽이 훨씬 위였다. 더군다나 승한은 자세가 불안정해 있던 상태.
그런 상태에서 막아냈다는 것은 즉, 승한의 힘이 강무훈보다 위라는 뜻이었다.
쨍-!
후욱-.
승한이 단숨에 간극을 좁혀오며 강무훈에게로 접근했다. 당황할 법도 하건만 강무훈은 이런 싸움을 수도 없이 해온 장군이었다.
후웅, 후우웅-.
단숨에 언월도를 휘둘러 승한의 접근을 막으며 뒤로 빠르게 물러났다. 굳이 맞서 싸울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미 거리가 좁혀진 이상, 강무훈까지 승한에게로 달려들면 불리해지는 쪽은 강무훈이었다.
“쳇.”
승한은 강무훈이 휘두른 언월도에 뒤로 다시 물러났다. 그러자 궁수들이 다시금 화살을 퍼부었다.
‘이래선 끝이 없겠어.’
아무리 언월도를 휘두른다 해도 따라가고자 한다면 따라갈 수는 있었다. 강무훈의 움직임이 제법 빠르긴 하지만 다리를 [강화]한다면 충분히 따라 붙을 수 있는 정도였다.
하지만 문제는 강무훈이 성문 바깥쪽으로 몸을 뺐다는 것이었다. 성문을 지켜야 하는 승한은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일단 강무훈, 저 녀석부터 어떻게 해야 해.’
강무훈만 죽일 수 있다면 궁수들의 화살쯤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방패로 막아내며 다른 병사들을 검으로 베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강무훈을 신경 써야 하는 이상, 승한은 병사들과 궁수들에게 온 신경을 집중할 수 없었다. 지금이야 강무훈이 병사들을 승한을 공격하도록 명령했다지만 언제 마음이 바뀔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괜한 불안감을 떠안고 있느니, 승한은 결정을 내렸다.
텅-!
화아아악-.
승한의 몸이 화사한 빛으로 물들었다. [광휘]와 함께 [강화]까지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온 몸에 퍼뜨렸다.
기이한 현상. [강화]는 강기와 비슷하다고 해도, [광휘]의 빛은 적어도 강무훈이 아는 지식에는 없는 현상이었다. 온 몸이 태양처럼 빛을 뿜다니, 그런 건 지금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이, 이건 대체…….”
놀라는 사이 어느새 승한의 몸은 강무훈을 향해 다가가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간극을 좁혀온 승한은 강무훈의 가슴을 향해 곧장 검을 찔러 넣었다.
푸욱-.
하지만 그런 승한의 생각은 예상과는 빗나갔다. 승한이 찌른 사람은 강무훈이 아닌, 그 옆에 있던 이름 모를 병사였다.
“이 새끼가…….”
강무훈이 옆에 있던 병사를 번쩍 들어 반사적으로 자신의 앞으로 가져온 것이다. 그 때문에 승한은 강무훈이 아닌, 강무훈이 앞으로 가져온 엄한 병사를 죽였다.
비겁한 걸 좋아한다고? 정말 딱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비겁하다고 해서 자신의 수하까지 방패 대용으로 사용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승한도 이 자리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을 죽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들이 먼저 승한을 공격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이 놈들도 네 적 아닌가? 쓰러뜨렸으면 기뻐해야지!”
후웅-.
강무훈은 승한을 향해 다시금 언월도의 날카로운 날을 휘둘렀다. 손잡이까지 모두 강기가 선명하게 어려 있는 모습이 아무래도 온 힘을 끌어 올린 듯했다.
그런데 그 순간.
‘뭐지?’
강무훈의 언월도에 있는 강기가 흐릿해졌다. 내공의 힘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몸이 돌처럼 굳어졌다.
공포. 강무훈의 가슴속에서 잊고 있던 감정이 피어올랐다. 처음 무인으로서 검을 잡고 자신보다 훨씬 강한 강자와 싸울 때 느꼈던 공포가 강무훈의 전신을 지배했다.
‘말도 안 돼!’
강무훈은 속으로 자기 스스로를 부정했다. 눈앞에 있는 서른도 되지 않은 앳된 장군, 곽영 따위에게 자신이 겁을 먹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강무훈은 곽영에게 겁을 먹을 만큼 녹록한 장군이 아니었다. 그는 화천성 최고의 장군이었고, 비겁함이라는 껍질을 가리고도 남을 무위를 가지고 있었다. 반면 구양성 장군 곽영은 나이에 비해서 뛰어나긴 하나, 이제 막 장군이라는 이름을 단 풋내기였다.
강무훈은 곽영에게 겁을 먹지 않았다. 강무훈이 겁을 먹은 사람은 바로 승한이라는 사람, 그리고 그의 몸에 빛나는 [광휘]의 빛이었다.
[광휘]는 비단 괴물들에게만 효력이 있는 게 아니었다. 괴물들에게 더 큰 효력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힘은 승한이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만물에 적용할 수 있었다.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해 사람을 위축하게 만들 수도, 생기를 불어넣을 수도 있었다. 그것은 사람뿐만이 아니라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에게 해당했다.
그리고 승한은 지금, 강기상인의 고수라고 할 수 있는 강무훈을 자신의 존재감으로 하여금 찍어 누르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3레벨에 오른 [광휘]의 힘이었다.
“으, 으으…….”
순간적으로 겁에 질린 강무훈이 반사적으로 언월도를 휘둘렀다. 언월도에 맺혀 있던 강기는 어느새 거의 흐릿해져 사라지기 직전이었다. 그가 이렇게 무기를 휘두르는 것도 한 평생 무기를 잡고 있었던 무인으로서의 본능이었을 뿐, 이미 집중력은 흐트러진 지 오래였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
승한은 전력을 다해 강무훈을 향해 검을 들어올렸다.
콰득-.
쭈아아아악-!
강무훈의 머리에 있는 투구가 찌그러지고, 베어졌다. 승한의 검은 강무훈이 입고 있는 갑옷과 함께 그의 몸은 찢듯이 베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