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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호위
“난 화천성 장군 이극소다. 이름이 뭐지?”
“김승한.”
이극소가 던진 질문에 승한이 무심코 대답했다. 승한이 몸을 빌린 장군의 이름은 곽영이었는데, 무심코 원래의 이름이 나온 것이다.
“김승한? 특이한 이름이군. 구양성 장군은 곽영이라고 들었는데.”
“이름이 중요한가?”
“하긴. 어차피 네놈이나 그놈이나 내 손에 뒤질건데.”
비릿하게 웃으며 이극소가 창을 휘둘러왔다. 워낙에 갑작스러운 기습이었는데, 장신의 몸과 기다란 창은 순식간에 간극을 좁혀왔다.
빠르고 강렬한 창끝이 승한의 복부로 향했다. 리자드맨의 창보다 훨씬 위력적인 일격이었다.
쩡-!
급작스럽게 검으로 창을 쳐낸 승한이 깜짝 놀랐다. 이극소가 날린 창에 실린 힘이 생각보다 강했던 것이다.
‘이것 봐라?’
보통 녀석이 아니었다. 다른 병사들과 같은 수준으로 볼 수 없었다. 이극소 역시 헌터들과 같은 능력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인지 힘이 보통이 아니었다.
‘아니, 달라. 무언가 다른 힘이…….’
그 순간, 승한의 머릿속에 이 세계의 지식이 떠올랐다.
‘내공(內功)?’
인간이 인간의 범주를 벗어나기 위한 힘. 이 세계의 사람들은 그 힘을 사용하고 있었다.
헌터들의 능력과는 다른 힘이었다. 무언가 특수한 힘이 개입한 헌터들의 능력과는 달리, 내공은 인간이 본래 가지고 있던 힘을 보다 극대화 시킨 것이었다.
승한이 차지하고 있는 몸의 주인, 곽영도 본래 내공의 힘을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승한은 그 힘을 사용할 방법을 알 도리가 없었다. 몸과는 달리, 승한의 본능과 기억은 곽영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해도…….’
쩡-!
승한의 검이 이극소의 창을 강하게 쳐냈다. 바위도 부술 듯 강렬한 창끝이 하늘로 떠올랐다.
승한의 검에는 어느새 새하얀 아지랑이가 피어올라 있었다. 꽤나 선명한 그 기운은 바로 4레벨에 이른 [강화]였다.
비록 내공의 힘은 사용할 수 없지만, 승한은 곽영의 몸을 차지하면서도 본래 가지고 있던 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능력은 어중간한 내공을 사용하는 이극소와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가, 강기(剛氣)?”
“아니야, 임마.”
승한의 검이 이극소의 창대를 베어냈다. 그리고 검 끝이 그의 가슴에 박히는 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푸욱-.
“커억!”
심장을 파고드는 차가운 금속의 느낌에 이극소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2미터 장신의 거구였지만 심장이 검에 찔린 이상 목숨을 부지할 순 없었다.
털썩-.
바닥에 쓰러진 이극소가 잠시나마 생명의 끈을 붙잡고 승한을 노려봤다.
“가, 강기상인… 이라…….”
이극소는 말을 다 잇지 못하고 숨이 끊어졌다. 승한은 여전히 손끝에서 느껴지는 섬뜩함에 눈살을 찌푸리고는 적군 병사들을 바라봤다.
장군인 이극소가 죽었음에도 병사들을 물러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극소가 말한 대로 이 성을 뚫지 못하면 병사들이 모두 죽거나, 혹은 큰 벌을 받게 되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시스템의 일종일지도 모르지.’
승한이 지금까지 꾼 꿈속 스테이지는 세세한 시스템으로 짜여 있었다. 어떤 미션을 완료하기 위한 과정과 결과, 그리고 그를 위한 장치까지 말이다. 병사들이 승한의 기백에 물러나지 않는 것도, 중간에 이극소라는 장군이 나타난 것도 모두 그 장치 중 일부일지도 모른다.
“결론은 어찌되었든… 난 싸울 수밖에 없다는 거지.”
승한은 다가오는 병사들을 향해 성큼 다가갔다. 결코 병사들은 성 안으로 들여보내서는 안 된다.
성문의 넓이는 5미터 가량이었다. 그리 넓지 않은 좁은 문이었지만, 혼자서 이 넓이를 모두 막아내려면 꽤나 빠듯할 것이다. 지금이야 병사들이 위축되어서 한꺼번에 달려들지 않았지만…….
와아아아아-!
‘온다.’
이제부터는 아니었다. 병사들은 승한을 죽이고자, 그리고 성을 빼앗고자 달려들고 있었다.
이미 앞서의 전투로 인해서인지 성문을 걸레짝이 되어버린 지 오래였다. 승한은 검을 고쳐잡으며 병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사아악-!
추아아아악-!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빠르게 검을 들고 움직이자 달려들던 병사들이 한꺼번에 베어졌다. 아차 하는 사이에 벌어진 일에 피가 분수처럼 튀었다.
시작이다.
“으아아아아아-!”
비명인지 함성인지 모를, 병사들의 외침이 승한을 파도처럼 휩쓸었다.
**
촤악-.
사아악-!
다시 한 번, 병사 하나의 목이 베어져 승한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머리를 보호하고 있던 붉은색 투구는 이미 보호구라는 의미보다는 피로부터 머리가 젖지 않기 위한 용도로 쓰이고 있었다.
‘얼마나 죽였지?’
손끝으로 목을 떨어뜨리는 감각도 이제 제법 익숙했다. 결코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던 토악질 나오던 감각도, 수십이 넘어가니 익숙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손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익숙해지는 것과, 사람을 죽이고 있다는 감정이 익숙해지는 건 엄연히 달랐다. 승한의 검은 이미 병사들의 목을 수도 없이 베었고, 그로인해 승한은 육체적이기보다는 정신적으로 지치고 있었다.
“이런 괴물 같은!”
어느 병사의 외침에 승한의 눈이 번뜩였다. 새빨갛게 변한 충혈 된 흰자위가 자신을 바라보자 병사는 주춤 뒤로 물러났다.
“괴물… 이라고?”
꾸우우욱-.
승한의 몸에서 빛이 뿜어졌다. 본능적으로 [광휘]의 힘을 끌어 올린 것이다.
비록 괴물은 아니지만 승한의 [광휘]는 이미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1레벨과 3레벨, 두 단계일 뿐이지만 그 두 단계의 차이는 어마어마해서 괴물이 아닌 승한을 마주하는 적들까지도 위협할 정도였다.
사악-.
승한은 단숨에 뛰어올라 자신을 ‘괴물’이라고 부른 병사의 목을 베었다. 머릿속에는 이미 다른 생각들은 없고, 대상 없는 분노가 가득차 있었다.
얼마나 더 죽여야 할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쉴 틈도 없었다. 병사들은 승한에게 쉴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피에 젖은 모습이 꽤나 지쳐보였는지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쓰러뜨릴 수 있다고 생각한 모습이었다.
정작 승한이 몸에 뒤집어 쓴 피 중에서는 승한의 피는 한 방울도 없었는데 말이다.
그 때, 승한이 지쳤다고 판단한 병사들이 일제히 승한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중에는 승한을 무시하고 성문 안으로 들어오려는 이들도 있었는데, 승한은 바로 그런 이들부터 노렸다.
“으아아아악-!”
“저, 저리 가!”
“살려 줘!”
승한은 목숨을 구걸하는 사람들도 죽였다. 어차피 지금 죽이지 않으면 다시 자신을 공격하거나 성 안으로 들어가려는 녀석들이었다. 즉, 병사들은 승한에게 있어서 바로 ‘적’이었다.
[스테이지 5.1]
달성 조건 : 지원군이 올 때까지 성주의 딸을 호위하라.
제한시간 : -
남은시간 : 0: 24: 44
보상 : 5.2스테이지로의 이동
승한은 잠깐의 틈을 이용해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앞으로 25분 정도. 그 시간만 더 버티면 다음 스테이지가 시작된다.
‘조금만 더…….’
승한은 이를 악물고 병사들을 죽였다. 처음과는 달리 승한의 검은 훨씬 더 매서워졌다. 가장 처음, 사람을 죽인다는 생각에서는 살인이라는 행위에 망설임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사라져 버린 것이다.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승한이 지금 이 상황을 꿈이라고 인식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아니, 그것은 인식이 아니었다. 승한 스스로가 지금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최면을 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머리로는 꿈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승한의 감정은 눈앞에 있는 병사들을 오롯한 한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후욱, 후욱.”
쉬지 않고 삼십 분을 넘게 움직였다. 조금씩 체력이 빠져 나가는 게 느껴졌다. 아무리 [강인함]의 레벨이 높아져서 체력이 좋아졌다고 해도, 승한의 체력은 무한하지 않았다.
“무능한 새끼들! 뒤로 꺼져라!”
그 때, 검은색 갑옷을 입은 한 무리가 승한의 앞으로 다가왔다. 똑같은 검은색 갑옷이었지만 앞서 싸웠던 병사들과는 갑옷의 형태가 달랐다. 조금 더 화려한 모양의 장식이 가슴에 달려있고, 무엇보다 갑옷이 훨씬 더 두꺼웠다.
아마 갑옷의 재질도 다를 터. 한 눈에 봐도 앞서 싸웠던 다른 병사들보다 무장 상태부터가 달랐다.
‘이극소와 비슷한 느낌이군.’
병사들의 장군이었던 이극소와 비슷한 느낌이 눈앞에 있는 병사들의 몸에서 느껴졌다. ‘내공’이라는 힘이었는데, 이극소만큼은 아니더라도 그들 모두에게서 그런 힘이 느껴졌다.
그런 병사들이 대체 몇일까? 수를 헤아리기가 어려웠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들만 해도 수십은 되었다.
‘지원군인가?’
오라는 아군 지원군은 안 오고, 오히려 적군 지원군이 오다니.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 닥쳐왔다. 그것도 일반 병사들도 아니고, 조금이나 내공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정예 병사였다.
승한은 앞으로의 싸움이 이전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검을 살짝 아래로 내리고, 왼 손에 들고 있는 방패를 단단히 굳혔다. 이제부터는 죽이는 싸움이 아닌, 지키고 방어하는 싸움을 해야 할 것이다.
“고작 한 명에게 쩔쩔매다니, 그러고도 너희가 화천성의 병사들이냐!”
‘또 다른 장군인가?’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에 승한의 감이 경고했다.
조심하라고. 녀석은 이극소보다 위험한 녀석이라고.
대체 어떤 녀석인지는 아직 잘 모른다. 검을 맞대고, 싸워보기 전까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병사들을 이끄는 장군이라면 이극소보다 윗줄의 실력을 가지고 있음은 확실했다.
“젠장. 산 넘어 산이군.”
시간을 살펴보니 대략 20분 정도가 남아있었다.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한 게 바로 방금 전 같은데, 이제는 왜 이렇게 시간이 오래 남았나 싶었다.
‘버틸 수 있을까?’
체력도 체력이지만 문제는 성문을 뚫리지 않는 것이었다. 승한의 기억속에 구양성에 있는 아군 병사들 중에서는 내공을 사용할 수 있는 병사들이 남아있지 않았다. 대다수 병사들은 밖에 나가있는 상태였고, 성 내부에 있는 병사들은 허수아비들뿐이었다.
즉, 눈앞에 있는 병사들을 막아 낼만한 병사들이 더 이상 성 내부에는 없다는 뜻. 결국 이 자리를 막아낼 사람은 승한뿐이었다.
쿵-!
날카로운 날을 가진 거대한 언월도(偃月刀)가 땅에 부딪혔다. 승한은 자신의 눈앞에 선 장군을 보며 핏빛 눈을 번뜩였다.
“거 눈빛 한 번 사납군. 구양성의 곽영인가? 이름은 들었는데, 이 정도 실력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군.”
대화를 할 생각인가? 그런 거라면 환영이었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승한은 말 없이 그를 노려보기만 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언제든 검을 들고 응수할 수 있도록 대비했다.
“난 화천성 강무훈이라고 한다. 아, 내가 이름을 밝힌다고 해서 너와 정정당당히 일대일로 싸우고 싶다거나 하는 건 아니야.”
“……?”
“난 아무래도 비겁한 걸 좋아하거든.”
진득한 웃음기.
승한은 그 웃음에서 불길한 무언가를 느꼈다.
‘설마!’
불길한 느낌에 승한은 방패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그 순간, 섬뜩한 예기가 승한의 방패 위를 때려 박았다.
파바바바박-!
여러 개의 화살이 날아왔다. 조금만 늦게 방패를 들었어도 그대로 몸에 박혔을 것이다. 언제 자신의 감이 이렇게 좋아졌나 싶으면서도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는 생각에 입술이 곱씹혔다.
‘활!’
승한은 성문 밖에서 승한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는 궁수들을 보며 속으로 앓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당장 승한에게 멀리서 날아오는 화살에 대한 대비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승한이 아무런 제약도 없는 상태였다면 방패를 들고 몸을 가린 상태에서 단순에 돌진해 궁수들을 때려눕힐 수도 있었다. 승한의 다리라면 이 정도 거리를 단숨에 좁히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문제는 성을 지켜야 한다는 것.
승한은 성문을 지켜야 하는 입장이었다. 만약 승한이 이 자리를 벗어나 궁수들을 노린다면, 병사들의 일부는 승한을 노리고 다른 일부는 성 안으로 들어갈 것이다. 승한이 맡은 임무는 공녀인 은가람을 호위하는 것이었으니, 결코 그녀가 죽게 해서는 안 된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셈. 승한은 결국 궁수들이 날리는 화살을 방패로 막으면서 다른 병사들까지 신경 쓸 수밖에 없어졌다.
쉬이이이익-!
승한을 향해 단단한 검이 날아왔다. 승한은 왼 손으로는 방패를 굳힌 채 검을 휘둘렀다.
우웅, 우우우웅-.
승한의 검에 [강화]의 빛이 어렸다. 새하얀 아지랑이와 같은 빛이었는데, [강화]의 레벨이 4레벨까지 오르면서 눈에 띄게 변한 것이다.
1시간이 넘도록 쉼 없이 싸워야 하기 때문에 지금껏 아껴두었던 힘이었다. 이극소와의 싸움을 제외하고 병사들과의 싸움에서는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승한에게는 여유가 없었다.
============================ 작품 후기 ============================
다들 오늘 12시에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