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타임-24화 (24/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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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헌터(Hunter)

안양 시청.

강동훈 소령의 연락을 받고 승한이 발길을 돌린 곳이었다.

걸어서 가기에는 꽤나 먼 거리였다. 언제나처럼 대중교통을 이용하려고 해도 거리에는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을뿐더러, 다니는 버스도 극히 드물었다.

꽤 오랫동안 버스를 기다린 끝에 승한은 겨우 버스를 이용할 수 있었다. 뛰어가도 되기야 하겠지만 능력을 이런 데에 무작정 사용하고 싶지는 않았다.

삼십분씩이나 걸려서 겨우 탄 버스 안은 제법 한적했다. 타고 있는 사람은 고작 다섯 명, 승한까지 더하면 여섯 명밖에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중 한 명은 승한이 익히 아는 얼굴이었다.

“윤재 형?”

“어?”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고 있던 윤재는 승한을 발견하고는 귀에 꽂고 있던 이어폰을 뺐다. 승한은 반가운 마음에 윤재의 옆자리에 앉았다.

“형은 여기까지 무슨 일이세요?”

“이 근처에 있는 대학교에 다녀서. 집에서 계속 할 것도 없고, 학교나 한 번 찾아가 봤지.”

“누가 나오긴 했어요?”

“아니. 학과 문이 다 닫혀있더라고. 헛걸음 하고 돌아가려는데 마침 강동훈 소령님에게 연락을 받아서 말이야.”

윤재도 승한과 같은 처지였다. 학교를 갔지만 다른 학생들은 등교를 하지 않았고, 심지어 교수들이나 조교도 출근을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리자드맨들은 둘째 날에 이미 진압이 된 상태였다. 지난 번 스컬레톤의 등장 때에는 목요일이 되면서 다시 세상이 원래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엔 그런 게 조금 더 긴 모양이었다.

아니, 어쩌면 이런 상태가 계속 유지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괴물들이 나타나는 주기는 정해져 있었다. 매 주 일요일, 오전 11시. 이게 바로 괴물들이 세상에 나타나는 날과 시간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직까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했다. 언제 어디서 괴물이 다시 나타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겁을 먹고 있었다. 거리에 사람이 거의 돌아다니지 않는 이유는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형도 연락을 받았으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다들 연락을 받았다는 거겠죠?”

“아마도. 그나저나 부대가 아니라 시청으로 오라니, 의외네.”

윤재의 말에는 승한도 공감했다. 하긴, 군부대를 제외하고 정부와 가장 큰 관련이 있는 장소가 시청이니 크게 이상할 것도 없긴 했다.

버스는 차도 몇 대 다니지 않는 길을 빠르게 달렸다. 내리는 사람도, 타는 사람도 없으니 다른 때보다 훨씬 빨랐다. 오죽하면 버스로 삼십 분은 가야 할 거리를 십오 분 만에 도착했다.

“여기도 사람이 없기는 마찬가지네요.”

“그래도 다른 데보다는 꽤 있는데?”

무엇보다 시청 주변에는 꽤 많은 군인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이만한 수의 군인들이라면 괴물들이 나타나더라도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그 때문일까? 시청 근처에는 다른 곳보다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승한과 윤재는 시청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군인들이 승한과 윤재를 제지하며 나섰다.

“죄송합니다만 지금은 민간인들의 출입이 자제되어 있습니다. 돌아가 주십시오.”

군인은 시청 앞마당조차 들어가지 못하도록 승한과 윤재를 제지했다. 초대 받은 입장으로서는 황당한 일이었지만 승한은 최대한 차분히 대답했다.

“연락을 받고 왔는데요. 시청으로 오라고요.”

“어느 분께 말입니까?”

“강동훈 소령님이십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성함을 말씀해 주십시오.”

“김승한, 김윤재입니다.”

승한의 대답에 군인은 잠시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무전기를 들었다. 아무래도 미리 언질을 받은 게 있는 듯,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러웠다.

잠시 후, 확인이 끝났는지 군인이 승한과 윤재를 향해 경례하며 길을 비켰다.

“충! 확인 끝났습니다. 두 분께서는 곧장 회의실로 가시면 됩니다.”

“회의실로요?”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회의실로 오라고 한 걸까? 승한은 의아했지만 그걸 묻지는 않았다. 여기 있는 군인에게 물어봤자 정확한 대답이 나올 것 같지도 않았고, 어차피 가 보면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승한과 윤재는 시청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회의실은 가장 높은 층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계단을 타고 직접 올라갔다.

시청 안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근래 들어 어딜 가서도 제대로 된 사람 냄새를 맡지 못했던 승한과 윤재는 시청이 꽤나 낯설게 느껴졌다. 마치 이곳만 괴물이 나타나기 전과 같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회의실 문 앞에는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군인 한 명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그는 바로 승한과 윤재를 이곳까지 초대한 강동훈 소령이었다.

그는 무슨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더니 승한과 윤재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는 고개를 들었다. 갑작스레 웃으며 반가운 표정을 지은 강동훈 소령이 승한과 윤재를 향해 다가왔다.

“아, 오셨습니까?”

승한은 강동훈 소령이 내민 손을 맞잡았다. 손을 꽉 잡으며 위아래로 손을 흔든 강동훈 소령이 집무실 안쪽을 가리켰다.

“들어가시죠. 시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시장님께서요?”

“네. 다른 분들은 벌써 와 계십니다. 아, 회의실이라고 이상하게 생각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접대실이 워낙 비좁아서 장소를 바꾼 것뿐이니까요.”

아무래도 승한과 윤재가 가장 늦은 모양. 일찍 온다고 온 건데, 거리상으로 멀리 떨어져 있기도 했고 차가 없는 만큼 자주 다니지 않는 버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가장 늦을 줄은 몰랐네.’

정해진 시간도 없었는데, 괜히 지각이라도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승한은 강동훈 소령과 잡은 손을 놓고는 회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끼릭-.

문을 열고 들어가자, 꽤나 깨끗한 디자인의 회의실 안이 보였다. 가장 앞으로는 큰 스크린 하나가 내려와 있었고, 고급스러운 책상과 의자가 디귿자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상석에 서 있는 사람은 바로 안양시 시장인 이경안이었다. 자글자글한 주름을 간직한 그는 나이가 꽤 있는 편이었는데, 그래도 시장이라는 위엄 때문인지 인상이 꽤 힘이 있어보였다.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꽤 많았다. 그나마도 자리가 부족해 소파가 아닌 의자를 가져와서 앉아있는 사람도 있었다. 승한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 깜짝 놀랐다.

‘이 사람들이 다 능력자들?’

정황상 승한과 윤재를 이 자리에 불렀다면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가 능력자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모아놓고 보니 많다고 생각할 수 있었는데, 안양시 전체에만 60만이 넘는 사람이 있는 걸 생각하면 그렇게 많은 수도 아니었다.

“김승한씨, 그리고 김윤재씨입니까?”

“아, 네. 맞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승한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남는 자리를 찾아 앉았다. 워낙 띄엄띄엄 자리가 나 있었기에 승한과 윤재는 따로 떨어져 앉을 수밖에 없었다.

강동훈 소령은 승한과 윤재를 따라 회의실에 들어왔다. 꽤나 넓은 회의실 자리가 가득 찼다. 강동훈 소령을 비롯한 몇몇 군인들이 안으로 들어왔는데, 하나같이 무궁화를 달고 있었다.

“이것으로 다들 모이신 겁니까?”

이경안 시장이 강동훈 소령을 보며 물었다. 잠시 인원수를 체크하던 강동훈 소령이 간결하고 힘있게 대답했다.

“네! 안양시 내에서 확인된 분들로 쉰다섯 명, 확인한 인원 모두 참석하셨습니다. 안타깝지만 확인된 분들 중 열여섯 분은 참여를 거부하셨습니다.”

“그렇군요.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지요. 대신 여기 모여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릴 수밖에요.”

승한은 자리에 앉아 다른 사람들을 둘러봤다.

강동훈 소령의 말대로라면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만 하더라도 쉰다섯 명이었다. 근래 들어 자기 스스로를 특별한 사람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있던 승한은 자신과 같은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많은 건 아닌가?’

안양시 내에서 쉰다섯 명. 생각해 보면 그리 많은 수도 아니었다. 승한이 알기로 안양시 내에 살고 있는 시민들의 수가 60만이 넘어가는데, 불참한 인원까지 생각해도 능력자들의 수는 1만 명 중 한 명 꼴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수치상으로 보면 0.01퍼센트. 결코 많은 수는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터무니없이 적은 수였다.

‘이 정도 비율이면… 서울에는 천 명 정도 되려나?’

천만 인구의 서울인 만큼 능력자들의 수는 훨씬 많을 것이다. 그들을 한데 모으려면 이런 회의실이 아닌, 큰 강당을 빌려야 할 터였다.

물론 안양시 내의 능력자들이 특별하게 더 많은 걸 수도, 적은 걸 수도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평균적으로 생각해 볼 때, 결코 많다고 할 수는 없었다.

“일단 이 자리에 함께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을 이해합니다. 지금부터 저희가 여러분을 초대한 목적과 개요를 설명하겠습니다. 혹시 궁금한 점 있으시다면 서슴없이 손을 들고 말씀해 주십시오.”

이경안 시장은 형식적인 인사로 서두를 열었다. 그는 헛기침으로 목을 푼 뒤 말을 이었다.

“다들 아시겠지만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은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아니, 아주 많이 다른 특별한 분들입니다. 불을 쏘는 마법 같은 일이나 순식간에 수백 미터를 주파할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가진 분들, 사람의 상처를 순식간에 치료할 수 있는 분들까지. 그런 특별한 능력을 가진 분들이 바로 여러분입니다.”

이경안 회장은 잠시 말을 끊고는 능력자들을 바라봤다. 굳이 다른 제스쳐를 취하지 않아도 이미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그에게로 집중되어 있었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괴물들의 출현은 인명의 피해를 넘어서, 사회의 마비를 가져왔습니다. 시민들은 언제 어디서 괴물이 나타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때문에 저희는 군대를 동원하는 한 편, 괴물들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여러분의 존재를 조만간 대대적으로 공개할 생각입니다.”

능력자들에 대한 정보는 비밀인 듯 아닌 듯 퍼져나가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그 정보가 정부 내 고위층 내에서 돌고 있었지만, 작정하고 알리고자 한다면 정보가 퍼져나가는 건 순식간이었다. 현대 사회에는 ‘뉴스’라는 쉽고 편리한 정보 유통 수단이 있었으니 말이다.

승한은 내심 정부가 능력자들의 공개를 결정했다는 데에 놀랐다. 가능한 꽁꽁 숨겨둘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우리가 과연 시민들의 불안을 줄여 줄 수 있을까?’

정부에서는 어떻게 판단했을지 몰라도 승한은 그럴 것이라는 확신을 갖지 못했다.

아무리 능력자들이 괴물을 잡을 수 있는 능력이 있고, 괴물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할 수 있다고 해도 과연 이들의 존재 여부가 시민들의 불안을 감소시켜 줄지, 아니면 증폭시킬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오히려 괴물과 더불어 또 다른 불안감을 가져올 수도 있었다.

물론 거기에 대해서는 승한 혼자만의 생각보다는 정부의 판단이 더 옳을 것이다. 능력자의 존재를 단순히 ‘이런 사람들 도 있다’라기보다는 ‘이들이 괴물을 막아줄 수 있다’라는 쪽으로 인식을 심어준다면 정부가 원하는 시민의 안정을 가져오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몇 가지를 더 이야기 하던 이경안 시장은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말과 함께 자리에서 퇴장했다. 박수가 이어지고, 그 다음으로는 강동훈 소령이 앞으로 나섰다.

“반갑습니다. 강동훈 소령입니다. 자리에 계신 분들 중에서는 이미 안면이 있으신 분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도 많이 보이는군요.”

형식적인 인사말. 진짜 하고자 하는 말은 그 다음에 이어졌다.

“저희는 여러분들을 ‘헌터(Hunter)’라고 부르기로 결정했습니다. 괴물들의 사냥꾼이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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