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타임-19화 (19/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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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또 다른 능력자

녀석의 눈을 마주친 순간, 승한의 몸이 돌처럼 굳었다. 새빨간 핏줄과 시커먼 동공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마치 하나의 먹잇감이나 마찬가지였다.

“후욱, 후우우-.”

우우우우웅-.

승한은 [광휘]의 힘을 끌어올렸다. 괴물들과는 정 반대의 상극인 힘을 끌어올리자, 거대 도마뱀으로부터 굳어졌던 몸이 조금이나마 풀렸다.

거대 도마뱀도 승한이 자신의 힘에 저항하자 의외인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승한은 알지 못했지만 거대 도마뱀의 눈빛은 보통 사람들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몸이 굳어버릴 힘을 가지고 있었다.

‘침착하자. 침착하면 살 수 있어.’

[광휘]의 힘은 단순히 괴물들의 힘을 약하게 만드는 것만이 아니었다. [광휘]는 [강화]보다 한 단계 더 상위의 힘으로, 승한의 능력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면서 동시에 심신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 덕분에 승한은 리자드맨들과의 싸움에서도 심적으로 지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수없이 피를 보며 육체적으로 지치기 이전에 정신적으로 지쳐버렸을 것이다.

쉬이이-.

크르-.

혀를 날름거리며 다가오던 녀석은 어느 순간 송곳니를 드러내며 울었다. 승한은 깊게 들이마셨던 숨을 짧게 끊어서 내뱉으며 가슴을 진정시켰다.

그러자 곧, 머리가 텅 비어지고 가슴이 식었다. 무섭다는 생각도 사라지고, 학준을 구해야겠다는 생각도 사라졌다. 오직 눈앞에 있는 거대 도마뱀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 하는 생각만 남게 되었다.

해 보는 거다!

어차피 도망친다고 해서 도망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윤재의 도움이 있다면 충분히 해 볼만 했다. 승한은 이참에 거대 도마뱀을 쓰러뜨릴 생각이었다.

윤재의 말대로 저런 녀석을 그냥 놓아두었다가는 어떤 피해가 생길지 알 수 없으니까.

‘타임 포인트도 제법 줄 거고…….’

지난 번 뼈 괴물을 죽이고 얻은 타임 포인트가 무려 300이었다. 다른 스컬레톤들은 10타임 포인트를 주었을 뿐인데, 그보다 무려 30배나 되는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그대로라면 거대 도마뱀을 죽이고 획득할 수 있는 타임 포인트는 1500포인트가 된다. 위험부담은 있겠지만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해 보자.’

카아아아악-!

거대 도마뱀은 승한이 다가오자 화가 난 모양이었다. 녀석은 입 안 가득 머금고 있던 체액을 내뱉으며 승한을 향해 거칠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쿵, 쿵, 쿵쿵쿵-.

한 걸음 움직일 때마다 땅이 울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커져가는 녀석의 몸집에 승한은 잔뜩 긴장했다.

“후우웁-.”

‘집중하자.’

승한은 자신의 힘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2레벨의 [강화]를 온 몸에 둘렀다. 그것도 최대한으로. 그러자 근육 하나하나가 꿈틀거리며, 승한의 힘을 한계 이상으로 만들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능력과는 달리, 1레벨에 불과한 [광휘]도 온 힘을 다하자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오죽하면 승한이 온 힘을 다해 끌어올린 [광휘]의 힘에 거대 도마뱀이 움찔할 정도였다.

‘할 수 있다.’

승한은 최면처럼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곤 꿈속에의 남색 문에서 만난 거대한 갈색 뱀을 떠올렸다.

생각해 보자. 그 녀석이나 눈앞에 있는 거대 도마뱀이나 뭐가 다른가? 덩치도 비슷하고, 생긴 모습도 뱀을 닮은 파충류 괴물이라는 점으로 비슷했다. 승한은 [광휘]의 힘이 없을 때에도 갈색 뱀을 쓰러뜨렸다.

그리고 [광휘]의 힘이 있는 지금, 승한은 그 때보다 한 단계 더 강해졌다. 아니, 단순히 한 단계라고 설명할 수 없었다. 능력 하나의 차이는 그렇게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더군다나 승한이 획득한 능력 [광휘]는 괴물들과의 싸움에서는 최고의 효율을 가지고 있었다.

주춤했던 거대 도마뱀이 다시금 승한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승한의 뒤쪽에서 거대한 불의 구체가 쏘아졌다.

쉬이이익-!

화륵, 퍼버벙-!

직경 1미터짜리의 거대한 불꽃이었다. 그것이 날아가 거대 도마뱀의 머리에 맞으며 폭발을 일으키자, 거대 도마뱀은 크게 주춤거렸다. 목숨을 앗아갈 정도의 타격은 아니더라도 적지 않은 충격임에는 분명했다.

“허억, 허억. 지금입니다!”

보통 사람 머리만한 크기의 불의 구체를 쏘아내던 윤재였는데, 이번엔 조금 힘을 과하게 쓴 모양이었다. 하긴, 거대 도마뱀의 덩치를 생각해 보면 머리만한 불의 구체는 간지러울 테니까.

승한은 짤막하게 윤재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거대 도마뱀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피부가 새까맣게 타들어간 거대 도마뱀은 연신 괴로워하더니 얼굴을 크게 흔들고는 눈앞을 바라봤다.

그리고 녀석이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승한이 다가가 있은 후였다.

서걱-.

위에서 길게 내려친 승한의 검이 거대 도마뱀의 이마를 베고 지나갔다. 생각보다 민첩한 움직임에 승한이 깜짝 놀랐다.

베긴 베었다. 하지만 깊지 않았다. 얼굴의 피부 가죽을 얇고 길게 벤 정도.

‘아쉽다.’

거대 도마뱀은 머리를 크게 흔들더니 승한을 노려봤다. 윤재가 만들어준 가장 소중한 기회를 날려버렸다는 생각에 낙담하긴 했지만, 승한은 자신감을 얻었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지도.”

[광휘]의 힘 때문일까?

무섭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처음만 해도 그 거대한 덩치에 위압감이 느껴졌는데, 지금은 리자드맨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게 느껴졌다.

승한은 더 이상 거대 도마뱀에게 시간을 주지 않았다. 지그시 지면을 밟아 앞으로 나아갔다. 2레벨의 [민첩함]과 더불어 [강화]의 힘까지 더해지자, 승한의 몸은 총알이라도 된 것처럼 빨라졌다.

“뭐, 뭐야 저게?”

그 모습에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던 윤재가 깜짝 놀랐다. 승한의 움직임이 자신과는 다르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래도 승한이 저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쉬이이익-.

승한의 검이 단번에 거대 도마뱀을 향해 쏘아졌다. 움직이던 힘에 더해, [강화]와 [광휘]가 둘러진 검이 폭발적인 위력을 뿜어냈다.

하지만 거대 도마뱀도 바보는 아니었다. 윤재가 날린 불의 구체에 당황하긴 했지만 녀석은 본능적으로 승한이 날린 검으로부터 자신의 급소를 보호했다. 거대 도마뱀은 앞발을 크게 휘둘러 승한을 공격했다.

사악-.

승한의 검이 거대 도마뱀의 앞발을 크게 베었다. 완전히 베어내진 못했지만 거대 도마뱀의 앞발이 베어져 덜렁거렸다.

카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면서도 녀석은 승한을 향한 분노를 멈추지 않았다. 몸을 뒤로 둘리며 꼬리를 휘둘러 승한을 공격한 것이다.

옆으로 피하기는 이미 늦었다. 승한은 높게 몸을 띄웠다. 온 힘을 다리에 집중해 뛰어 오르자, 3미터 가랑 뛰어 오를 수 있었다.

푸욱-.

승한의 검이 거대 도마뱀의 몸에 박혔다. 중간에 뼈가 걸렸는지 다 들어가지 않았는데, 그래도 이 정도면 손잡이 삼기엔 충분했다.

크르르르르-.

거대 도마뱀은 자신의 몸 위로 올라온 승한을 떨어뜨리기 위해 몸을 흔들었다. 마치 이전에 뼈 괴물의 몸 위에 올라 탔을 때와 같았다.

하지만 달라진 게 있었다. 괴물도 달라졌지만, 승한은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힘도, 깡도, 그리고 경험도. 승한은 절대 검을 잡은 손을 놓지 않을 것이다.

콰콰쾅-!

그 순간, 다시 한 번 윤재가 날린 불의 구체가 거대 도마뱀을 강타했다. 처음 날린 구체보다는 조금 작아졌지만 충분히 위력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다.

잠시 거대 도마뱀이 휘청거렸다. 그 틈을 타 승한은 거대 도마뱀의 몸에 박혀 있는 검을 뽑아 몸 위로 더 올라갔다.

등이 꽤 넓직했다. 승한은 단숨에 거대 도마뱀의 등 위를 달려 목 위로 향했다. 워낙 정신이 없을 때 일어난 일이었지만, 거대 도마뱀은 목덜미 위에 있는 승한의 존재에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캬아아아-!

끔찍한 비명소리였다. 승한을 향한 진한 분노가 표출된 울음소리였다.

꼬리를 휘둘러 승한을 떼어내려 했지만, 그보다는 승한이 한 발 더 빨랐다.

쉬이이익-!

퍼억-.

승한의 검이 거대 도마뱀의 목에 박혔다. 반쯤 베어가던 중이었는데, 깨끗하게 베어내기는 힘든 모양이었다.

‘단단하다.’

리자드맨들은 단숨에 허리를 베어버릴 수도 있었는데, 거대 도마뱀의 목은 훨씬 더 단단했다. 단숨에 베어내지 못하고 절반가량 베는데서 그친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승한의 검 끝에 맺혀있던 [광휘]의 힘이 거대 도마뱀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승한은 검 끝에 걸려 있던 단단한 느낌이 점차 물러진다는 생각에 다시 한 번 크게 힘을 주었다.

뎅겅-.

쿵-.

거대 도마뱀의 목이 떨어졌다. 잠시 꿈틀거리며 발버둥 치던 몸이 옆으로 크게 기울어졌다.

[1500타임 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후우우우.”

타임 포인트의 획득 메시지가 머릿속에 떠오르자 승한은 안도감에 한숨을 내쉬었다. 몸에 잔뜩 들어갔던 힘이 풀리고, 긴장감이 사라졌다.

큰 위기는 없었다. 윤재의 도움이 생각보다 훨씬 컸다. 사실상 두 번의 구체를 쏘아낸 게 전부였지만, 하나하나의 위력이 상당했다.

처음 승한이 거대 도마뱀에게 안전하게 접근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불의 구체 덕분이었다. 윤재의 공격은 거대 도마뱀의 시야를 가리고, 그 뒤에는 시선을 분산시켰다.

만약 윤재의 활약이 아니었다면 승한은 처음 거대 도마뱀에게 접근하는 것부터 애를 먹었을 것이다.

‘1500포인트라. 진짜 많이도 주는군.’

총 서른 배의 포인트. 예상하긴 했지만 설마하니 이 정도 양의 포인트를 한꺼번에 얻을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이전에 가지고 있던 포인트까지 다 더하면 벌써 3000포인트가 훌쩍 넘어가, 4000포인트에 가까웠다.

‘능력을 꽤 올릴 수 있겠어.’

레벨 하나를 올릴 때마다 소모하는 타임 포인트가 두 배씩 올라가니 레벨을 올리기가 부담스럽긴 할 것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능력의 레벨을 몇 개씩 올리고 장비를 더 맞출 수 있을 것이다.

“수고하셨습니다.”

승한은 윤재를 향해 다가가 손을 뻗었다. 힘을 꽤 많이 사용했는지 윤재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윤재는 승한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그 역시 거대 도마뱀을 쓰러뜨렸다는 생각에 긴장이 풀린 모양이었다.

“아, 저야말로요. 어디 다치신 데는 없습니까?”

“네. 다행히요.”

다친 곳은 없었다. 물론, 아주 멀쩡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가장 큰 건 역시나 무리하게 힘을 사용한 일종의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온 몸에 [강화]와 [광휘]를 두르고 크게 움직였더니 근육 하나하나가 욱신거리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남는 장사지.’

획득한 타임 포인트로 [강인함]의 레벨을 올리면 아마 이런 부작용도 훨씬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만 되면 모든 힘을 끌어 올린 상태에서 더 오래 싸울 수 있을 테니, 훨씬 강해질 수 있었다.

“진짜… 대단하시네요. 저런 녀석을 상대로, 몸 위에 올라가서 싸울 생각을 하시다니.”

윤재는 승한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깜짝깜짝 놀랐다. 하지만 리자드맨과 싸우는 모습보다 방금 전 거대 도마뱀과 싸우는 모습이 훨씬 더 위험천만해 보였다.

하지만 그런 승한의 싸움은 늘 최선의 결과를 만들었다. 겁이 없는 건지, 아니면 그만큼 뛰어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멀리서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언제 죽을지 모를 만큼 위험천만해 보이기까지 했다.

“뭐, 결과가 좋으니 되지 않았습니까?”

“하여간 요즘 세상은 결과만 좋으면 과정을 무시해서 문제라니까…….”

승한은 피식 웃으며 윤재를 바라봤다.

날카로워 보이는 인상과는 달리, 꽤나 순박한 모습이 있는 사람이었다. 당장 거대 도마뱀과 함께 싸우겠다고 한 것만 보면 그렇게 겁이 많은 편도 아니고, 심성이 무척 착했다.

좋은 사람이었다. 가능하면 좋은 인연으로 이어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니, 반드시 필요한 인연이었다. 당장 오늘만 하더라도 윤재와 함께 리자드맨들과 싸우며 꽤 편하지 않았던가? 거대 도마뱀을 쓰러뜨릴 수 있었던 것도 그의 덕분이 상당히 컸다.

“혹시…….”

말을 놓자고 제안하며 연락처를 교환하려던 승한은 목소리가 더 이상 나오지 않자 깜짝 놀랐다. 윤재 역시 이상한 느낌이 들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하지만 그밖에 몸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 직후, 주변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어쩐지, 시간이 흘러도 너무 많이 흘렀다 싶었다.

이제 다시 시간이 움직일 때인 모양이었다.

============================ 작품 후기 ============================

생각했던 반응보다 더 큰 반응을 얻었습니다. 하루만에 선호작이 1000 넘게 오를 줄이야.. 전작의 호응이 생각보다 큰 모양입니다.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하기도 합니다. 적은 편수에서 너무 갑작스러운 큰 반응이 오히려 독이 되지 않을까, 하는. 배부른 소리일지도 모르지만 그것 때문에 쉬지 않고 글을 써야 할 것 같다는 조급함이 듭니다.

(어서 빨리 30편 정도는 만들어야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쿠폰 좀 주시면 안 될까요? 금요일날에 집에서 글만 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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