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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타임-18화 (18/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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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또 다른 능력자

“왜 있잖습니까? 지난 번 스컬레톤같이 생긴 괴물들이 나왔을 때, 뼈 속에 온갖 내장을 가지고 있던 그 괴물이요. 뉴스를 보니까 수는 적지만 꽤 여러 마리 나타났다고 하던데…….”

윤재의 말에 승한의 표정이 굳었다.

잊고 있었다. 스컬레톤이 등장했을 때, 함께 나타났던 뼈 괴물의 존재를 말이다.

생각해 보면 윤재와 승한 사이에 있는 300타임 포인트의 격차는 승한이 쓰러뜨린 뼈 괴물에게서 있었다. 승한이 이렇게 강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어쩌면 녀석을 죽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반면, 아무래도 윤재는 그 뼈 괴물을 만나지 못한 모양이었다. 반면 승한은 뼈 괴물은 물론, 꿈속에서 뼈 괴물이 살아있을 때의 모습과도 싸워보았다.

때문에 녀석이 얼마나 까다로운 녀석인지 잘 알고 있었다. 솔직한 말로 한 단계 더 높은 괴물인 리자드맨보다도 뼈 괴물이 훨씬 더 까다로운 상대였다.

물론, [광휘]의 힘을 얻은 지금 싸운다면 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번에도 그 녀석이 나오진 않겠지.’

스컬레톤이 게임 속의 일반 몬스터라고 친다면 뼈 괴물은 일종의 보스 몬스터와 마찬가지였다. 이번엔 리자드맨이 일반 몬스터일 테니 다른 보스 몬스터가 있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승한과 윤재의 생각일 뿐이었다. 뼈 괴물이 특이한 경우도, 리자드맨들 외에는 다른 괴물이 나타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역시, 그럴 가능성은 적었다. 반복되는 패턴을 보이는 지금 현상에서 틀어진 건 더욱 강한 괴물이 나왔다는 것뿐이었으니까. 그 외에 다른 모든 건 다시 반복되고 있었다.

‘젠장. 이것들보다 더 강한 놈이 나오면…….’

뿌득-.

승한은 뼈 괴물과 스컬레톤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과연 녀석을 자신이 쓰러뜨릴 수 있을까?

아직 만나보진 않았지만 장담할 수 없었다. 일전에도 뼈 괴물을 쓰러뜨리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운이라고 볼 수 있었다. 녀석의 심장을 정확하게 타격하지 않았다면, 녀석의 숨이 끊어지는 게 조금만 더 늦었다면, 승한은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다.

“만나게 되면… 도망가야죠.”

“도망이요?”

“네. 상대하기 어려울 겁니다. 어차피 타임 포인트의 획득이야 다른 괴물들을 처리하면서도 충분히 얻을 수 있으니,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가요? 그래도 그런 녀석이 돌아다니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갈 것 같은데…….”

“지난번에 전 뉴스에 나온 뼈 괴물을 만나봤습니다.”

승한의 말에 윤재가 아, 하고 탄성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승한이 하려는 말을 이해한 덕분이었다.

승한의 말은 곧, 녀석을 잡으려다 반대로 당할 확률이 훨씬 높다는 뜻이었다. 물론 이번에도 똑같은 뼈 괴물이 나온다면 말이야 달라지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아무래도 없다고 봐야한다.

“그럼 녀석을 만나면 피하도록 하죠.”

“피해가 조금 있더라도… 그런 녀석이 나타나면, 군대에 맡길 수밖에요.”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위험을 감수하다 죽느니, 그 시간에 차라리 다른 리자드맨들을 사냥하는 게 올바른 선택이었으니까. 다른 이들의 피해가 있을 수 있다고 해도 말이다.

“그럼, 계속 움직이죠.”

**

리자드맨들은 승한과 윤재의 존재를 눈치 채고는 알아서 찾아와 주었다. 승한과 윤재는 여러 번 싸우다 보니 점점 더 서로 간에 호흡이 맞아 더욱 능숙하게 리자드맨들을 쓰러뜨릴 수 있었다.

그래도 계속해서 싸우다 보니 조금씩 지치긴 했다. 싸우고 쉬기를 반복하기를 수차례, 승한은 시간이 꽤 많이 지났음을 느꼈다.

‘저번에는 이것보다 더 짧았던 것 같은데…….’

시계가 없으니 알 길이 없었지만 적어도 이렇게 긴 시간은 아니었다. 단순히 기분 탓이라고 보기엔 차이가 꽤 컸다.

‘점점 멈춰 있는 시간이 길어지는 건가?’

이게 과연 좋은 일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시간이 멈춰 있는 동안에는 괴물들이 승한을 비롯한 능력자들을 노리니 오히려 더 위험하다고 볼 수도 있었다.

“시간이 꽤 많이 흐른 것 같네요.”

윤재 역시 그것을 아는 모양이었다. 승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의견에 동조했다.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리는게 아닌가 걱정입니다.”

“그러진 않을 겁니다.”

“왜요?”

“그냥… 느낌이 그래요.”

윤재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긴, 그건 절대 벌어져서는 안 될 일이었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몇 명의 사람들 외에 모두가 멈춰버린 세상. 그렇다면 멈춰버린 사람은 과연 사람으로 생각해야 할까? 심장도 뛰지 않고, 손짓하나 발짓하나 없는 그들을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나저나 이 비는 좀 신경 쓰이네요. 눈앞을 가리는데다가 허공에 떠 있은 채 움직이질 않으니…….”

윤재는 허공에 있는 빗물을 손으로 만졌다. 손에 닿은 빗물이 부서지며 윤재의 손에 묻어났다.

“신경 쓸 것 없지 않습니까? 어차피 크게 방해 되는 것도 없고요.”

“하긴. 제 능력이 불이긴 해도, 사실 이 비 때문에 방해 받는 건 없죠. 능력의 특성 때문인지 아니면 빗물이 내리지 않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요.”

“쉴 만큼 쉬었습니다. 다시 움직이죠.”

쉴 만큼 쉬었다는 말과는 다르게 승한과 윤재가 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기껏해야 오 분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승한이 다시 움직이기를 재촉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이 근처였지?’

언뜻 예전에 한 번 온 적이 있었던 학준의 집과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다시 시간이 움직이기 전에 가능하면 이 근처에 있는 괴물들은 정리를 해 두고 싶었다.

다행히 근방에 있는 리자드맨은 그리 많지 않았다. 승한은 일부러 리자드맨을 피하지 않고 돌아다녔는데, 열 마리 남짓하게밖에 만나질 못했다.

‘수가 적어.’

괴물의 수가 적으면 좋은 일이었는데, 승한은 오히려 불안감이 들었다.

‘뭐지?’

승한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온 몸이 저릴 정도로 따끔거리는 느낌이 전해졌다.

곧이어 승한은 불길함의 정체를 마주할 수 있었다.

“저, 저거…….”

윤재 역시 녀석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 입을 우물거렸다. 승한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을 다물어버렸다.

쉬이이이이-.

쿠웅-.

녀석의 몸집은 거대했다. 다른 리자드맨들 역시 2미터 정도의 덩치고 작은 편이 아니었지만, 녀석은 차원이 달랐다.

네 발로 다니는 녀석은 뱀과 도마뱀을 섞어놓은 듯한 얼굴이었다. 몸은 뱀보다는 도마뱀에 더 가까웠는데, 삼각형의 얼굴이나 이빨은 마치 뱀처럼 보였다.

족히 10미터는 됨직한 길이였다. 몸통도 뱀과는 달리 꽤나 두꺼워 훨씬 더 비대한 느낌을 주었다.

거대 도마뱀. 아니, 녀석을 단순히 도마뱀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뱀 같기도 했고, 도마뱀 같기도 했으니까. 여러 가지 종류의 동물을 섞어놓은 듯한 괴물이었다.

무엇보다 타들어 가는 것처럼 시커멓게 죽은 피부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흉악하게 느껴졌다.

“……끔찍하군요.”

멀리 보이는 녀석의 모습을 확인한 윤재가 천천히 뒷걸음질을 쳤다. 아파트 단지 안에 나 있는 길에는 꽤 여러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녀석은 사람들을 하나씩 깔아뭉개며 천천히 움직였다.

그 덩치와 위압감, 그리고 녀석에게서 풍기는 알 수 없는 음산한 기운에 윤재는 뒤로 물러나기로 결정했다.

“피하는 게… 좋겠죠?”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입을 피해를 생각하던 윤재였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저런 녀석을 직접 잡는다는 게 부담스러웠는지 피하기를 택했다.

승한 역시 다른 상황이었다면 주저없이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승한은 갈등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는…….’

익숙한 동네. 그리고 익숙한 건물이었다.

단 한 번 왔을 뿐이지만 아파트 단지 안쪽에 있는 작은 분수, 이 근처는 학준이 사는 곳이었다. 대학에 입학하고부터 승한을 곧잘 챙겨주고, 승한이 가장 친하게 생각하는 친구이기도 했다.

설마 집이 아니고 밖에 있겠냐마는, 저런 녀석이 돌아다니다가 학준이 죽기라도 한다면 승한은 자기 스스로가 원망스러울 것 같았다.

그래도 학준이라면 이런 주말부터 오전에 어디 밖엘 돌아다니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그 순간, 승한의 눈에 믿기지 않는 얼굴이 들어왔다.

“저, 저 녀석이……?”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고 있던, 거대 도마뱀 근처에 있는 멈춰있는 사람들 중 하나.

무척 익숙한 얼굴이었다. 츄리닝 차림의 편한 복장, 후드집업을 입고 어딘가로 하품을 쩍쩍 하며 걸어가고 있는 녀석은 분명 승한이 아는 학준이었다.

‘대체 왜 이 시간에 밖에 있는 거야?’

어디 시내로 나가는 건 아닌 것 같았다. 평소 잘 꾸며 입던 녀석인지라, 시내를 나가거나 서울 쪽에 놀러 갈 때면 셔츠는 무조건적으로 챙겨 입곤 했다. 저런 복장이라면 입이 심심해서 과자라도 사러 가거나, 어머니의 심부름을 나왔겠지.

하필이면, 이런 타이밍에.

뿌드드득-.

승한은 이를 갈았다. 그 소리가 제법 커서, 옆에 있던 윤재가 들을 정도였다. 갑작스러운 승한의 반응에 윤재가 의아해 하며 물었다.

“왜 그럽니까?”

“저기 있는 녀석…….”

승한은 거대 도마뱀 바로 옆에 있는 학준을 가리켰다. 눈치가 빠른 윤재는 어떤 상황인지 곧잘 눈치 채고는 표정을 굳혔다.

“제 친굽니다.”

“아…….”

“……죄송합니다. 여기까진가 봅니다.”

승한은 윤재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 의미는 당연히 더 이상 함께 싸우기가 힘들 것 같다는 뜻이었다.

잠시 갈등하긴 했지만, 승한은 결정했다.

이대로 두었다가 시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면 학준을 죽을 게 뻔했다. 아무리 학준이 육상부 출신에 다리가 빠르다고는 하지만, 저런 괴물로부터 무사히 도망칠 수 있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다 도망치지 못하고 걸리면?

그대로 죽는 것이다. 그런 꼴은 절대 못 본다. 못 봤다면 모를까, 눈에 띈 이상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러다 내가 죽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유인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승한도 자기 목숨 귀한줄은 안다. 저런 도마뱀과 정면으로 싸울 바에는, 조금씩 유인해서 멀리 보내버리는 게 나았다.

하지만 그런 일조차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 그런 위험부담이 큰 일에 오늘 처음 본 윤재가 동참할 리 없었다. 그것도 승한을 돕는 일도 아니고, 완전 제3자인 승한의 친구를 돕는 일인데 말이다.

“왜 여기까집니까?”

“네?”

“승한씨 혼자 하는 것보다는, 둘이 낫지 않겠습니까? 저런 녀석을 어떻게 혼자 잡습니까?”

말은 그렇게 해도 무섭기는 한지, 윤재는 제법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도 도와주겠다는 말만은 진심인 것 같았다.

“죽을지도 모릅니다.”

“어차피 승한씨 아니었으면 전 진작 죽었을 겁니다. 은혜라도 한 번 갚아야지, 목숨 빚을 지고 내 목숨 위험하다며 도망가면 그게 사람새낍니까?”

아무래도 방금 전 리자드맨들에게 공격당했을 때를 말하는 모양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리자드맨과 거대 도마뱀 괴물은 전혀 다른 괴물이었다.

물론, 도와주겠다면 말릴 생각은 없었다. 승한이 생각해도 한 사람보다는 둘이 훨씬 나았다. 윤재와 함께라면 그래도 살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저 녀석을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감사합니다.”

“뭘요.”

착한 건지, 멍청한 건지. 윤재는 환하게 웃으며 거대 도마뱀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덜덜 떨리는 모습이 뒤에서도 보였지만, 애써 용기를 내고 있었다.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가자, 폭포 옆에서 어슬렁거리던 거대 도마뱀이 승한과 윤재를 발견했다. 아무래도 기계처럼 굳어있는 다른 사람들보다는 살아 움직이는 승한과 윤재에게 먼저 시선이 가는 모양이었다.

크르르르-.

울음소리는 마치 늑대 같았다. 승한은 윤재를 뒤로 밀며 거대 도마뱀의 앞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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