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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반복
승한은 싸우지 않고 바로 앞쪽에 있는 건물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2미터 높이의 담 위로 훌쩍 올라가고는 어느새 챙겨든 돌멩이 하나를 리자드맨을 향해 있는 힘껏 던졌다.
빠악-!
케엑-!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던 리자드맨은 승한이 던진 돌멩이에 머리를 얻어맞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단숨에 머리가 깨질 정도의 충격이었는데, 리자드맨은 잠시 주춤하더니 머리를 흔드는 정도에서 그쳤다.
‘아직 투척용에 [강화]를 적용하기는 어려운데.’
승한은 돌멩이를 던지기 전, 돌멩이에 [강화]를 입혔다. 헌데 승한의 [강화]는 리자드맨의 머리에 도달하기 전, 승한의 손에서 멀어지며 사라져버렸다.
아무래도 승한의 능력으로는 떨어져 있는 물건까지 영향을 미치기가 어려운 모양이었다. 아쉽긴 했지만 조금만 더 능력의 레벨이 오르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임 포인트를 얻으면 [강화]에 투자를 좀 해야겠어.’
비단 [강화]뿐만이 아니더라도 레벨을 올릴 능력은 많았다. 이번에 새로 얻은 능력인 [광휘]도 리자드맨들을 비롯한 괴물들의 힘을 약화시킨다는 점에서 충분히 투자 가치가 있는 능력이었다.
[강인함]이나 [민첩함]이야 두말할 것도 없었다. 이 두 가지 능력은 승한이 가진 능력의 가장 근본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다른 능력이 강하더라도 검을 들고 싸워야 하는 이상, 기본적인 신체능력의 향상은 필수적이었다.
‘그러려면… 더 많은 포인트가 필요하겠지.’
승한은 돌멩이에 얻어맞은 리자드맨을 무시하고 자신에게 먼저 다가온 리자드맨을 상대했다. 찔러오는 검으로 응수하며, 왼 손으로 녀석의 배를 가격했다.
퍼억-!
카아악-!
가래 끊어지는 소리와 함께 리자드맨이 숨을 들이쉬었다. 그 틈을 타 곧장 검을 휘두르려 했지만, 뒤쪽에서 리자드맨 하나가 달려들고 있었다.
키아아악-!
“쳇.”
결국 승한은 몸을 돌려 다른 리자드맨의 창을 막아낼 수밖에 없었다. 녀석은 창이 통하지 않자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승한을 향해 고개를 들이밀었다.
“냄새 난다, 이 새끼야!”
우드드득-.
승한의 팔에 힘줄이 돋아났다. 끌어낼 수 있는 모든 힘을 끌어내고, 온 힘을 다해 팔에 있는 힘을 [강화]시킨 탓이었다.
까앙-,
촤아아아아악-!
승한의 검이 창을 쳐내고 리자드맨의 몸을 반으로 베어냈다. 힘도 힘이지만 팔과 함께 강화시킨 검은 리자드맨의 뼈라도 단숨에 베어버릴 수 있었다.
처음으로 승한이 2레벨 [강화]의 힘을 모두 끌어낸 순간이었다.
키아아아-!
남아있던 한 마리의 리자드맨이 승한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녀석의 운명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아직까지 승한은 검과 함께 팔을 온 힘을 다해 강화시킨 상태였으니까.
하나 남은 리자드맨을 처리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네 마리도 어렵지 않았는데, 하나가 뭐 대수일까. 승한은 리자드맨의 피가 묻은 검을 바닥에 툭툭 털어내며 중얼거렸다.
“이거… 엄청난데.”
승한은 온 몸에 힘이 넘치더니, 금세 다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순식간에 강해진 힘이 빠져나가며 상대적인 허탈감이 들었다.
“……남용하면 안 되겠군.”
[강화]는 분명 대단한 힘이었다. 근육 하나하나를 강화시켜 폭발적인 힘을 낼 수도 있고, 다리를 강화시켜 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도 있었다.
검과 같은 물건을 강화시키면 더 단단하고 더 날카로워지기도 한다. 사용할 수 있는 활용의 범위는 승한의 능력이나 활용도에 따라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그 힘을 남용하는 순간, 승한은 순식간에 힘에 부쳐 쓰러질지도 몰랐다. 그 이상은 승한의 몸이 버티지 못한다.
‘[강인함]의 레벨도 더 올려 두어야겠어.’
[강화]나 [광휘]의 사용에는 몸의 무리가 따른다. 그런 만큼 승한은 기본적인 몸의 내구성을 강화시켜 주는 [강인함]의 레벨을 올릴 필요성을 느꼈다.
점점 더 많은 포인트가 필요했다. 승한은 잠시 쉬었다가 움직일까 하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언제 다시 시간이 움직일지는 몰라도, 지난 번의 기억을 살려 보면 몇 시간 되지 않을 것이다.
길어야 2시간 정도. 그 시간 안에 다른 괴물들을 더 쓰러뜨리고, 최대한 많은 타임 포인트를 획득해야한다. 그리고 가능하면 근처에 있는 친구들까지 구할 수 있으면 좋고.
‘학준이 녀석 집이 이 근처니까… 충분히 갈 수 있어.’
승한이 살고 있는 안양 시 내에서 승한의 집과 학준의 집은 걸어서 십 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그리 멀지는 않았지만, 그 중간 사이에 리자드맨들이 꽤 여러 마리 흩어져 있었다.
리자드맨들은 금방 승한의 존재를 눈치 챘다. 소리를 듣고 온 건지, 아니면 후각이 뛰어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순식간에 다수의 리자드맨들이 몰려들었다.
“많이도 왔네.”
승한은 거리 곳곳에 있는 리자드맨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한 눈에 보이는 리자드맨들만 해도 다섯 마리.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하나 둘 리자드맨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녀석들은 승한을 집중적으로 노렸다. 거리에는 꽤 여러 사람들이 움직임을 멈추고 있었는데, 역시나 리자드맨들은 다른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어보였다.
‘하나, 둘 셋… 딱 열 마리인가? 많이도 왔군.’
다행히 리자드맨은 스컬레톤들보다는 수가 좀 더 적어보였다. 물론 스컬레톤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강했지만 말이다.
‘가능하겠지?’
이미 앞에서 리자드맨들과 싸우면서 녀석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는 알고 있었다. [강화]를 통해 힘으로 밀어붙여도 되고, 하나씩 끊어가며 장기전으로 싸워도 된다.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열 마리 정도는 어떻게든 상대가 가능할 것이다.
“응?”
그 때, 승한의 눈에 좌우 갈림길에서 나타나는 또 다른 리자드맨들이 보였다.
아무래도 근방에 있는 리자드맨들이 한꺼번에 몰려온 모양이었다. 원래 있던 리자드맨까지 수를 더하자 족히 스무 마리는 되었다.
“……곤란한데.”
무수히 많은 리자드맨들에 승한이 주춤했다. 열 마리까지는 어떻게 상대가 가능하겠지만 스무 마리는 조금 어려웠다.
아니, 싸우고자 한다면 못 할 것도 없었다. 힘을 아끼지 않고 능력을 사용한다면 당장은 문제가 없을 것이다. 스무 마리의 리자드맨들이라면 1천의 타임 포인트를 획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후는?
승한은 나중을 생각했다. 지금 당장이야 어떨지 몰라도 리자드맨들은 아마 전 세계적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아직 남아있는 리자드맨들이 많은 만큼, 힘을 아껴둘 필요성이 있었다.
‘도망가야 하나?’
승한이 주춤하자 리자드맨들이 슬금슬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승한은 결국 결심을 굳혔다.
“젠장. 일단 살고 봐야지.”
승한이 힘을 끌어 올리려던 그 순간.
키아아아악-!
멀리 있던 리자드맨 하나가 비명과 함께 피분수를 튀었다.
‘뭐지?’
승한은 힘을 끌어 올리던 것을 멈추었다. 승한을 경계하며 다가오던 리자드맨들이 시선을 뒤로 돌린 것이다.
시선이 분산된 틈을 타 공격할 수도 있지만 승한도 정신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자신 외에는 관심을 주지 않던 리자드맨들이 전혀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린 것이었다.
‘설마 나 말고도……?’
왜 그 생각을 못했을가?
승한은 자신 외에 능력을 가진 사람이 나타난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생각해 보면 승한에게 벌어진 일들이 다른 사람에게 일어나지 않았으리라는 법은 없었다. 가족들이나 가까운 친구들, 그리고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소와 같은 일상을 보내지만 승한과 같은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전 세계에 승한 혼자만이 이런 일을 겪는 것은 아닐 터. 그리고 그런 사람이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다면, 함께 힘을 합쳐 리자드맨들과 싸울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구지?’
캬아아아악-!
다시 한 번 리자드맨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순간, 승한의 정신이 퍼뜩 돌아왔다.
‘기회다.’
승한은 능력을 끌어올렸다. 다리를 강화시키고, 광휘를 이용해 리자드맨들의 움직임을 묶었다. 온 힘을 끌어 올린 건 아니었지만 결코 작은 힘도 아니었다.
쉬이이익-.
근처에 있던 차 한 대를 디딤 삼아 날아오른 승한이 빠르게 리자드맨들을 향해 파고들었다. 한 군데 모여 있던 리자드맨들은 뒤쪽으로 시선을 돌리다가 승한에게 뒤통수를 맞았다.
서걱-.
추아아악-!
빠르게 이동하며 길게 벤 검이 리자드맨 두 마리의 목을 베었다. 순식간에 피분수가 튀며 리자드맨 둘이 쓰러졌지만, 승한은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기회가 왔을 때, 최대한 수를 줄여야 한다!
승한은 거침없이 움직였다. 리자드맨들은 승한을 향해 창을 내질렀다. 한 군데 뭉쳐 있던 리자드맨들의 창은 허공을 가르고, 서로의 가슴을 찔렀다.
푸욱-.
캬아아아아오-!
아군이라고 할 수 있는 리자드맨이 자신의 가슴을 찌르자 리자드맨들은 당황하고, 분노했다. 이 모든 것이 승한이라는 미꾸라지 한 마리에 의해 벌어진 일이었다.
승한은 거침없이 검을 휘두르며 나아갔다. 순식간에 다섯 마리의 리자드맨들이 죽거나 상처를 입었다. 검을 휘두르면서도 승한은 멀리서 들려온 리자드맨들의 비명소리를 쫒아갔다.
‘누군가 있을 거야.’
자신과 같은 사람. 승한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지난 한 주 동안 누군가에게 말하지 못하고 앓아왔던 생각들과 고민들, 그리고 함께 싸울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대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한 블록을 거쳐, 소리가 들린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수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하지만 그들 중 승한처럼 숨 쉬고, 움직이고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청바지에 흰색 남방차림의 남자. 승한과 비슷한 또래, 혹은 조금 나이가 많아 보이는 얼굴이었다.
조금이지만 상처를 입은 듯 옆구리 쪽에서는 남자의 것으로 보이는 피가 흐르고 있었는데, 그의 주위에는 꽤 여러 마리의 리자드맨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승한은 두 번 생각하지 않았다. 그를 구해야 자신이 살 확률이 높아진다. 한 손 보다는 두 손이 훨씬 나을 게 뻔했다.
쉬이이익-!
승한은 남자를 둘러싸고 있는 리자드맨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여전히 [강화]와 함께 [광휘]를 발동시킨 상태인지라 승한의 움직임은 이전보다 훨씬 빨랐다.
사악-!
빠악-!
검으로 베고, 여의지 않을 때는 발로 차기도 했다. 열 마리가 넘는 리자드맨들에게 둘러 싸여 있던 남자는 승한의 도움 덕분에 한 숨 돌린 듯, 줄어든 숫자의 리자드맨들과 싸웠다.
‘뭐지?’
승한은 남자가 싸우는 모습을 언뜻 보고는 깜짝 놀랐다.
승한은 남자가 자신과 같은 능력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처럼 움직임이 빠르고 힘이 강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헌데 막상 남자가 싸우는 모습을 보니, 전혀 달랐다.
일단 손에 검이 없었다. 그 대신 전혀 다른, 무기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만한 물건이 들려있었다.
30센치 정도의 작은 몽둥이. 아니, 지팡이라고 해야 할까? 끝에가 살짝 구부러진 나무 지팡이였다.
하지만 그것을 휘두르거나 하지는 않았다. 작게 지팡이를 휘두르자, 리자드맨을 향해 불의 구체가 여러 개 쏘아졌다.
쾅, 콰콰쾅-!
불의 구체는 리자드맨의 몸에 부딪히며 폭발을 일으켰다. 리자드맨이 비명을 지르고, 다른 리자드맨 하나가 남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자 다시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리자드맨이 달려들던 바로 앞에 불의 장막이 생겨나 리자드맨이 휘두른 창을 막아낸 것이다. 비록 창을 완전히 막아내지 못하고 도중에 뚫리긴 했지만, 그 사이 남자는 리자드맨의 공격을 피하고 다시금 불의 구체를 쏘아냈다.
‘저게 대체 뭐지?’
사악-.
리자드맨 하나를 베어내던 승한은 남자가 싸우는 모습을 보고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게임으로 치자면 마치 마법사같은 느낌이었다.
‘사람마다 획득하는 능력이 다른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