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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네 번째 꿈
그것은 집이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집. 거리가 꽤 되어서 제대로 확인은 못했지만, 꽤나 커 보였다.
육안으로 제대로 확인이 되고, 꽤 거리가 가까워 질 즈음에는 어떻게 생긴 오두막인지까지 또렷이 확인할 수 있었다. 하나의 층으로 되어있는 오두막이었지만, 어지간한 단독주택보다 훨씬 컸다.
“이런 황무지에 나무로 만든 오두막이라…….”
이상한 냄새가 풍겼다. 이런 황무지에 누가 저런 오두막을 지어 놓는단 말인가?
물론 생각해 보면 빨간색 문부터 파란색 문까지, 모든 것들이 작위적이었다. 누군가가 승한을 안배해 놓은 것처럼 짜여져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작위적인 느낌은 처음이었다. 수상한 냄새가 코끝을 강렬히 자극했다.
하지만 어쩌겠나?
승한이 선택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일단 들어가고 보자.’
분주히 발걸음을 재촉한 승한은 결국 오두막의 문을 열었다. 깔끔하게 잘 지어진 오두막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거짓말처럼 황무지의 뜨거운 열기가 사라지고 시원한 바람이 승한의 몸을 감쌌다.
“후아, 살 것 같다.”
털썩-.
승한은 오두막의 문을 닫고 그 자리에 드러누웠다. 얼마나 덥고 힘들었던지, 이곳이 천국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에어컨이라도 틀어 놓은 것 같군.’
아무리 그늘이 있는 집이라고 해도 밖이 이렇게 더운데 이 정도까지 시원할 수 있을까?
불가능했다. 에어컨을 쉼 없이 틀어놓지 않고서는, 이런 황무지 속에서 이 정도로 시원한 집은 있을 수 없었다.
생각은 나중에. 승한은 우선 오두막 안의 시원한 공기를 만끽했다. 샤워라도 한 것처럼 흐르던 땀이 서서히 마를 때쯤, 승한이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넓긴 엄청 넓네.”
겉으로 봤을 때만 해도 꽤 넓다 싶었는데, 막상 안으로 들어와서 보니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오두막은 여러 개의 방이 아닌, 하나의 큰 거실이 전부였다. 높은 천장과 50평은 될 듯 넓직한 거실은 농구라도 해도 될 것 같았다.
넓은 오두막은 초라할 만큼 텅 비어있었다. 딱 하나, 중앙에는 탁자가 하나 놓여 있었는데 시원한 물과 음료, 그리고 먹음직해 보이는 음식들이 가득 쌓여있었다.
“이상한 곳인데.”
오두막이 왜 이렇게 시원한지는 알 수 없었다. 아무리 넓고, 천장이 높다고 해도 이 정도로 시원하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승한은 거실의 중앙으로 다가갔다. 그렇지 않아도 더위에 갈증이 나던 차였다. 배고픔은 느끼지 않아도 더위에 따른 갈증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쪼르르르-.
과일을 갈아 만든 듯 상큼한 향의 음료수가 컵 안에 채워졌다. 컵을 들고 음료를 목 안으로 넘기자, 파인애플과 같은 단 맛이 느껴졌다.
“크, 시원하다.”
목을 축인 승한은 탁자 위에 있는 음식들을 바라봤다. 훈제한 오리와 샐러드, 화채까지. 종류는 다양했고, 하나같이 승한이 좋아하거나 먹고 싶었던 음식들이었다.
식기까지 준비되어 있어 먹기만 하면 되었다.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부른 것도 아니었다. 마침 더위에 목마르던 참이었으니, 얼음이 동동 떠 있는 화채가 먹음직해 보였다.
승한은 음식들에 눈길을 주다가 고개를 돌렸다. 지금 한가로이 맛있는 음식들을 입 안에 넣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음료 한 잔이면 몰라도, 한 눈에 봐도 수상한 음식들까지 먹고 있기는 꺼림직 했다.
“진짜 아무 것도 없네.”
밖은 허허벌판이었다. 주위를 둘러 봐도 이 오두막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즉, 이 오두막 안에서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 오두막이야말로 승한이 남색 문 안에서 찾은 유일한 단서였다.
“대체 여기서 뭘 해야 한다는 거지?”
단서는 없었다. 승한은 처음 오두막 안으로 들어오면 괴물들이 가득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황무지에서 힘을 빼놓고, 괴물을과 싸우게 하다니. 생각만 해도 가혹했다.
하지만 오히려 오두막 안에서는 괴물이 아닌, 시원한 공기와 음료가 승한을 반기고 있었다. 막상 땀을 식히고 쉴 수 있으니 좋긴 했지만 금방 갑갑함이 밀려들었다.
“짜증나 죽겠군.”
승한은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남색 문 안쪽으로 들어와 황무지를 헤매고 4시간이나 지났다. 미로에서 보낸 시간도 만만치 않았지만, 이곳 황무지도 그에 못지 않게 시간을 잡아먹고 있었다.
‘쉬어가는 곳이라도 되나?’
혹시 아직 황무지를 더 뒤져야 하는 걸까?
그렇다면 얼마나 더?
승한은 이곳 오두막의 쓰임새를 생각했다. 어쩌면 이곳 오두막은 뜨거운 황무지를 걷다 잠시 쉬어가는 쉼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길 나가야 하나?’
다시 나가서 쉴 세 없이 황무지를 걸어야 하는 걸까?
승한은 여기서 선택의 기로에 섰다. 어느 게 정답일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사실대로 말해 가능하면 오두막을 나가고 싶지 않은 게 사실이었다. 밖으로 나가서 뜨거운 황무지를 돌아다녀 봤자 또 무언가를 발견할 것 같지도 않았고, 오두막이 큰 단서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아니, 어쩌면 여기가…….’
승한은 퍼뜩 떠오른 생각에 고개를 돌렸다.
시원한 방 안과 탁자 위의 음료, 승한이 좋아하는 음식들.
이 모든 것이 어딘가 모르게 승한을 이 자리에 머무르게 만드는 느낌이었다.
함정.
이 두 글자가 승한의 머릿속에 떠오른 순간이었다.
**
혹시나 싶은 마음에 승한은 곧장 오두막을 나갔다. 만약, 승한의 생각이 맞다면 계속해서 오두막에 머무는 건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오두막 밖으로 나가자 다시금 뜨거운 햇빛이 승한의 머리를 익히기 시작했다. 방금 전 그 시원한 공기가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순간적으로 다시 들어갈까, 싶었다. 하지만 이미 내친걸음, 되돌아가는 건 바보짓이었다.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안락하게 시간을 보낼 이유는 없었다.
드드드드드-.
그 순간, 승한의 눈앞에 믿기 어려운 광경이 펼쳐졌다.
지진처럼 조금씩 울리기 시작한 땅은 곧 푹 꺼지기 시작했다.
그것도 정확히 오두막을 중심으로 말이다.
“미, 미친!”
승한은 깜짝 놀라 달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오두막을 집어삼킨 구멍은 점차 범위를 승한이 있는 곳까지 넓혔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순식간에 오두막을 집어삼킨 구멍은 지름이 수십 미터에 이르렀다. 더 이상 커지지 않는 구멍 속으로 모래가 빨려 들어갔다.
쏴아아아아-.
승한은 뜀박질을 멈추고 숨을 고르며 거대한 구멍을 내려다보았다. 계속해서 모래가 구멍 안으로 쏟아지고 있었는데,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싱크 홀인가?”
가끔 잠실 쪽에 생기곤 한다는 싱크 홀과 닮았다. 한국뿐만이 아니라 싱크 홀은 해외에서도 종종 생기곤 했는데, 하수구 뚜껑만한 크기도 있었지만 크기가 이보다 더 큰 것도 있었다.
‘큰일 날 뻔했군.’
승한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만약 조금만 더 오두막에서 시간을 끌었다면?
자신은 저 구멍 속에 빠졌을 것이고, 미션이고 뭐고 죽었을 것이다. 이 깊은 구멍 아래로 떨어진다면 살아남을 가능성은 없었다.
“젠장. 대체 뭐 하자는 거야?”
아무 것도 없는 황무지를 걷게 하더니, 나타나는 게 함정이라고?
그것도 지금까지 나왔던 보통 함정과는 달랐다. 시원한 공기와 음료, 음식을 동반한 달콤한 함정이었다. 지금까지 그냥 독이 나왔다면 이번엔 독을 감추기 위해 독이 든 사과가 나온 셈이다.
구분이 더 어려워졌다. 만약 승한의 감이 조금만 늦었다면 이미 저 구멍 속으로 떨어지고 있었을 것이다.
‘대체 이 구멍은 어떻게 생긴 건지.’
침이 꿀꺽 넘어갔다. 빨간색부터 파란색까지 문을 통과하면서 몇 번씩 죽을 뻔한 위기를 넘겼지만, 이 번과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앞에서는 죽을 위기를 넘기면 그 단계가 통과되고 다음 문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남색 문은 이게 과정의 일부라는 듯, 밖으로 나가는 남색 문이 나타나지 않았다.
“다음 번엔 또 뭐가 나오려고…….”
구구구구구-.
그 때, 구멍 안쪽에서 무언가 소리가 들려왔다. 불길한 예감이 엄습하며 승한의 등을 쭈뼛 세웠다.
‘뭐지?’
무언가가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승한의 다리가 움찔거렸다.
도망가야 한다.
아니, 맞서 싸워야 한다.
두 가지 상반된 생각이 승한의 의식 속에서 맴돌았다. 어떤 판단을 해야 할지 몰라 승한은 갈팡거렸다.
아니, 잠깐.
싸운다고?
‘무엇과?’
승한은 본능적으로 저 아래에서 무언가가 올라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살아있는 무언가, 그리고 녀석은 승한을 아주 맛있는 먹잇감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그 눈빛과 생각이 느껴졌다. 호흡이 가빠지고, 두려움에 몸이 떨렸다.
‘안 돼.’
싸워도 이길 수 없다.
승한은 지금까지 만난 적들을 떠올렸다. 스컬레톤이야 그렇다 쳐도 뼈 괴물과 피와 살점을 가지고 있는 괴물은 상당히 어려운 괴물이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어렵지도 않았다. 오히려 귀여운 편이었다.
바로 이 뒤에 승한의 앞에 나타날 녀석에 비하면 말이다.
구구구구-.
지면이 흔들리며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이미 도망가기는 늦었다는 생각에 승한은 결국 검과 방패를 들었다.
이미 녀석은 승한을 발견했고, 승한을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오두막을 나오려면 좀 더 일찍 나왔어야 했다. 아니면 애초에 오두막을 발견하지 말던가, 들어가지 말아야 했다.
오두막은 녀석의 소굴. 그리고 이곳 남색 문의 함정이었다.
“덤벼 이 새끼야!”
두려움을 떨쳐보려는 노력과 함께 승한이 고함을 질렀다. 그 직후, 수십 미터 지름의 구멍 벽을 타고 거대한 뱀이 기어 올라왔다.
쉬이이익-.
갈색 비늘을 가진 뱀.
대체 몇 미터나 될까? 구멍 안에서 모습을 꺼낸 몸만 하더라도 벌써 십 미터는 훌쩍 넘어보였다. 몸의 굵기만 하더라도 족히 1미터는 되어보였다.
‘저건… 너무 크잖아…….’
이 구멍을 만들어낸 녀석이었다. 이 황무지의 주인이었고, 먹이를 기다리는 포식자이자 사냥꾼이었다.
승한은 자기도 모르게 녀석에게서 뒷걸음질 쳤다. 갈색 뱀은 승한을 향해 기다란 혀를 날름거리면서도, 길고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냈다. 저런 송곳니로 어떻게 이런 구멍을 팔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이 구멍을 녀석이 만든 게 아닐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거야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이 구멍과 황무지가 녀석의 것이라는 사실이다.
‘저걸… 어떻게 잡으라고?’
남색 문.
어쩌면 최고의 난이도의 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각오 단단히 했고, 어지간한 수준의 난이도는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이건, 앞의 파란색 문과 비교해도 너무 높은 난이도였다.
깊고 거대한 구멍 안에서 밖으로 나온 뱀의 크기는 얼핏 잡아도 20미터 이상. 덩치로 보면 승한의 수십 배는 되었다.
쉬이이익-.
뱀이 고개를 들어 승한을 바라봤다. 먹이를 노린다기 보다는, 먹음직한 음식을 감상하는 듯했다.
뱀과 눈을 마주친 승한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고양이 앞의 쥐… 아니, 뱀 앞의 쥐였다. 승한 스스로가 느끼기에도 자신이 초라한 먹잇감처럼 느껴졌다.
‘아니, 아니야.’
승한은 이를 악물었다.
벌써부터 포기하기는 일렀다. 어떻게든 통과할 것이다. 녀석을 죽이고, 이곳을 빠져나갈 것이다.
뱀은 꼬리를 저으며 승한을 향해 다가왔다. 얼굴을 높게 들고, 천천히. 하지만 워낙 몸집이 크다 보니 천천히 다가오는 것처럼 보여도 꽤 빨리 다가왔다.
으득-.
승한은 이를 강하게 깨물어 두려움에 굳어버린 몸을 풀었다. 순간적으로 정신이 차려지며 몸에 잔뜩 들어가 있던 힘이 조금 빠져나갔다.
‘방법은 있을 거야.’
거대한 갈색 뱀.
분명 죽일 방법은 있다. 승한은 단 하나, 뱀을 보며 위안을 가지는 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