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0 / 0223 ----------------------------------------------
3. 네 번째 꿈
승한은 이번에는 왼쪽 벽에 손을 대고 걷기 시작했다. 왼쪽 갈림길에도 역시 스컬레톤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세 갈림길 다음에는 두 갈림길 그 다음으로는 네 갈림길이었다.
“……이번에도 틀렸나?”
네 갈림길 중, 승한은 왼쪽을 선택했다. 이대로 계속해서 걷다 보면 당연하게도 다시금 세 갈림길이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네 갈림길에서 다시 세 갈림길이 나타날 때까지는 십 분도 걸리지 않았다. 승한은 금방 세 갈림길이 나타날 것이라 생각하며 어떻게 해야 미로를 탈출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하지만 승한을 기다리고 있던 길은 세 갈림길이 아니었다.
“어라?”
승한은 다시 나타난 갈림길에 깜짝 놀랐다. 이번에 나타난 갈림길은 총 여덟 개였다. 지금껏 오른쪽 길과 같은 구조를 보여주던 길이 다른 구조를 보이기 시작했다.
좋아해야 할지, 아니면 가야할 길의 종류가 늘었다는 사실에 슬퍼해야 할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일단 왔던 길을 되돌아온 게 아닌 이상, 미로를 헤매는 건 아니라고 볼 수 있었다.
‘문제는 스컬레톤이 여덟이나 된다는 건데.’
만약 현실에 나타난 것과 같은 종류의 스컬레톤이라면 별다른 문제가 아닐 것이다. 승한은 지금 자신의 상태라면 무장하지 않은 스컬레톤 수십 마리가 덤벼도 충분히 상대할 자신이 있었다.
문제는 스컬레톤들이 무장을 하고 있을뿐더러, 하나하나가 현실에 나타난 스컬레톤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 넷까지는 그러 어렵지 않았지만 여덟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선택할 수 있는 건…….’
승한은 결국 앞으로 나아갔다. 처음에 비해 조금은 능숙해진 자세로 검을 들어올리며 승한은 스컬레톤을 향해 달려들었다.
“다 덤벼, 이 개뼈다귀들아!”
어차피 돌아갈 길도, 도망칠 방법도 없었다.
**
까앙-!
파악-!
승한의 검이 스컬레톤이 들고 있는 방패 위를 후려쳤다. 나무로 된 방패 위에 강철을 덧씌운 방패는 승한의 검을 막아냈지만, 그리 단단하지는 않은지 방어해낸 자리가 움푹 찌그러졌다.
하지만 상대는 스컬레톤 한 마리가 아니었다. 상대는 총 여덟. 그 중 넷은 이미 쓰러뜨렸지만, 아직도 넷이 남아있는 상태였다.
“후우웁!”
승한은 검을 잠시 떼었다가 힘을 더욱 강하게 주어 검을 크게 휘둘렀다. 승한을 향해 달려들던 네 마리의 스컬레톤이 그 힘에 튕겨져 뒤로 날아갔다.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몰아쉰 승한은 쉬지 않고 가까이 있는 스컬레톤을 향해 달려들었다. 체력적인 한계가 명확한 승한과는 달리, 스컬레톤들은 지치지도 않고 수도 더 많았다. 시간을 길게 끌어서 좋을 게 하나 없었다.
콰드득-.
승한이 내려친 검이 스컬레톤의 투구를 찌그러뜨렸다. 그대로 두개골이 함몰되는 스컬레톤을 보며 승한은 쓰러뜨린 스컬레톤을 발로 걷어차 멀리 떨쳐냈다.
‘남은 건 셋.’
[강인함]능력이 3레벨까지 올라 스컬레톤들의 투구를 뚫고 두개골에 직접적인 충격을 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승한은 [강인함]능력의 레벨이 아직까지도 1레벨에 머물러 있었다면 과연 스컬레톤들이 착용한 투구를 부술 수 있었을까 싶었다.
수가 줄어들수록 상대하기는 점점 쉬워졌다. 처음 여덟마리의 스컬레톤들이 한꺼번에 덤볐을 때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눈을 굴리면 스컬레톤들이 휘두르는 검이 보였다.
‘방패를 빼앗길 잘 했어.’
승한은 왼 손에 들고 있는 스컬레톤의 방패를 단단히 쥐었다. 처음 한 마리의 스컬레톤을 쓰러뜨리고 든 생각이 바로 방패를 빼앗아 몸을 보호하자는 것이었다.
방패의 무게는 생각보다 제법이었다. 안쪽이 나무로 되어있어서 방어력 자체는 높지 않았지만,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긴 미로를 움직일 때는 방패같이 무거운 장비는 되도록 줄이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해서 처음엔 챙기지 않았는데, 막상 어려운 전투에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임 포인트를 더 얻으면 하나 구하긴 해야겠어. 좀 더 단단한 거로.’
승한이 들고 있는 방패는 이미 여기저기가 찌그러져 있었다. 대신할 방패는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스컬레톤들의 것으로 많았지만, 스컬레톤이 세 마리밖에 남아있지 않은 이상 굳이 더 챙길 필요는 없었다.
끼기기기긱-.
스컬레톤 한 마리가 관절을 비틀며 다가왔다. 한 마리가 움직이자 다른 두 마리도 약속이나 한 것처럼 함께 움직였다.
승한은 가장 가까이 있는 스컬레톤을 향해 빠르게 달렸다. 짧은 거리를 준비도 없이 내달렸는데, 그 속도가 엄청났다.
“넌 이거나 처먹어!”
쉬익-, 콰직-!
승한이 왼 손에 들고 있던 방패를 집어던졌다. 꽤나 강한 충격에 방패를 얻어맞은 스컬레톤은 그대로 뒤로 나자빠졌고, 승한의 검은 다른 한 마리의 스컬레톤의 두개골을 부서뜨렸다.
승한은 뒤쪽에서 느껴지는 스산한 느낌에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금속이 허공을 가르는 섬뜩한 소리가 지나가고, 승한이 왼 손을 뻗어 바로 뒤쪽에 있는 스컬레톤의 앙상한 다리뼈를 움켜쥐었다.
쉬이익-.
빠악-.
스컬레톤의 몸을 한 손으로 번쩍 들어 올린 승한이 그대로 스컬레톤의 몸통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리곤 머리부터 바닥에 처박힌 스컬레톤의 머리를 발로 걷어찼다. 우드득, 소리와 함께 투구 속에 뼈가 으스러졌다.
“후우우.”
네 마리의 스컬레톤을 처리하는데 걸린 시간은 앞서 네 마리의 스컬레톤을 처리할때와는 달리 금방이었다. 여덟 마리를 한꺼번에 상대할 때는 아무래도 조심스러웠지만, 네 마리 정도는 이제 수월했다.
‘슬슬 싸우는 것도 익숙해 지네.’
승한은 싸우면 싸울수록 점점 더 검을 휘두르며 싸우는 요령을 터득하고 있었다. 스스로가 느낄 만큼 빠르게 싸우는 법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처음 승한은 두 마리의 스컬레톤을 만나고, 이전에 만난 스컬레톤보다 까다롭다고 생각했다.
그 다음 만난 네 마리의 스컬레톤을 상대하면서는 꽤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방에서 덤벼드는 스컬레톤들을 상대로 무섭기도 했다.
하지만 몇 차례 더 스컬레톤들과 싸우고, 여덟 마리의 스컬레톤들과 싸워 보니 이젠 스컬레톤이 몇 마리라도 그리 어렵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것 같았다. 검을 어떻게 휘둘러야 다음 공격이 자연스러울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움직여야 할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승한은 경험이라는 무기를 손에 넣고 있는 중이었다.
스컬레톤들을 상대하느라 떨어진 체력을 회복하고자 승한은 잠시 벽에 기대 앉았다. 문득 주머니에 있는 물약을 마시면 체력도 회복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큰 상처가 아닌 이상 아껴두기로 했다.
‘남색이나 보라색 문에서 사용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승한은 가능한 체력을 많이 회복하고자 삼십 분 정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었다. 호흡도 정상으로 돌아오고, 스컬레톤이 떨어뜨린 방패도 하나 챙겼다.
승한은 왼쪽 벽을 길잡이삼아 걷기 시작했다. 오른쪽 길과는 달리 여덟 개의 갈림길이 나왔는데, 승한은 제발 자신의 생각이 맞기를 바랐다.
얼마나 걸었을까?
“어?”
승한은 멀리 한 마리의 스컬레톤이 서 있는 것을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여러 마리가 아닌, 단 한 마리의 스컬레톤이 나온 건 처음이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스컬레톤은 지금까지 만난 스컬레톤과는 느낌이 달랐다. 아래에는 마찬가지로 뼈밖에 없는 말을 타고 있었는데, 한 눈에 보기에도 무거워 보이는 중갑을 입고 한 손에는 기다란 창을 들고 있었다.
‘뭐 하는 녀석이지?’
스컬레톤은 그 자리에 고정이라도 된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있다가 승한의 발소리를 듣기라도 한 듯 고개를 들었다. 스컬레톤의 텅 빈 눈을 바라보던 승한의 시선이 그 뒤쪽으로 옮겨졌다.
‘문이다!’
말을 타고 있는 스컬레톤의 뒤쪽 멀리 파란색 문이 보였다. 왼쪽 벽에 손을 대고 쭉 이동한게 맞는 선택이었다.
‘생각보다 탈출 방법은 간단했는데…….’
푸쉬이-.
스컬레톤이 타고 있는 말의 입에서 김이 뿜어져 나왔다. 어떻게 뼈밖에 없는 말이 김을 뿜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승한은 영 느낌이 좋지 않았다.
“문제는 저 녀석인가?”
미로를 통과한 것까지는 좋았다. 시간을 더 낭비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던전의 중간 중간에 배치되어 있는 스컬레톤들이었다. 처음에는 두 마리, 그 다음엔 네 마리, 그 다음엔 여덟 마리, 그리고 마지막에는 말을 타고 있는 기사 스컬레톤이었다.
점차적으로 난이도가 올라가는 문도 그렇고, 던전의 형식도 그렇고, 지금 만난 스컬레톤이 앞서 만난 여덟 마리의 스컬레톤보다 상대가 더 까다로울 확률이 높았다.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미로의 탈출구를 발견했는데 미로의 보스가 나타났다.
‘대체 남색과 보라색 문에서는 뭐가 나오려고.’
승한의 걱정은 깊어지지 않았다.
두두두두두두-.
스컬레톤이 탄 말과 함께 스컬레톤이 들고 있던 창 끝이 승한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승한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스컬레톤을 정면으로 마주봤다. 말의 이동속도와 함께 다가오는 창의 위력은 승한이 막아내기 버거울 게 뻔했다.
쉬이이익-!
스컬레톤의 창이 승한의 옆을 지나쳤다. 아무리 승한의 다리가 빠르다고 해도 달리는 말, 그것도 괴물 말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정면으로 힘 싸움을 할 수도 없으니,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옆으로 구르는 수밖에 없었다.
‘무시하고 문을 여는 건…….’
승한은 멀리 보이는 파란색 문을 힐끔거렸다. 스컬레톤을 상대하지 않고, 곧장 문 밖으로 나가버리면 되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 고개가 저어졌다.
‘열리지 않을지도 모르지.’
스컬레톤으로부터 등을 보이고 도망쳐야한다는 위험부담을 안기엔 문이 열릴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문이 나타난 상태에서는 반드시 문이 열렸지만, 미로의 보스가 뻔히 살아있는데 열린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가능한 위험부담을 제거한 뒤에 문을 여는 게 안전했다. 결국 승한은 눈앞에 있는 기사 스컬레톤을 쓰러뜨리는 수밖에 없었다.
“저 말을 어떻게 해야 되는데…….”
달려오는 말의 속도에 맞춰 휘둘러지는 창은 승한이 정면으로 상대하기 버거웠다. 중세 시대의 기사들이 괜히 말을 타고 창을 휘둘렀던 게 아니었다.
기사 스컬레톤은 마치 중세 유럽의 기사들과 닮아있었다. 승한은 어쩌면 현실에서 본 스컬레톤들이 과거에는 보통 시민이었고, 무장한 스컬레톤들이 병사, 그리고 눈앞에 있는 스컬레톤이 기사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쓸데없는 생각.’
승한은 잠시 떠오른 생각을 떨쳐버렸다. 과거에 무엇이었던 간에 지금 당장은 살아 움직이는 뼈 괴물밖에는 되지 않았다. 승한은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검을 움켜쥐었다.
“그래, 와라.”
기사 스컬레톤은 다시 한 번 말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그러자 뼈밖에 없는 말은 뼈 말굽으로 바닥을 쓸더니 다시금 승한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승한은 피하지 않았다. 창끝이 눈앞을 가리는 그 순간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