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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다시 움직인 시간에서
다음 날, 승한은 승아, 어머니와 함께 집을 지켰다. 혹시라도 스컬레톤을 비롯한 괴물들이 다시 나타날 경우를 대비해서였다.
다행히 괴물들은 다시 나타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휴가를 쓴 승아와는 달리, 승한은 다니던 학교 수업을 처음으로 결석했다. 알바 자리에도 하루 쉬겠다고 연락을 넣어뒀다. 자신이 없을 때 혹시라도 승아와 어머니가 괴물로부터 공격당할 수도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아무 일 없이 월요일이 지나갔다. 괴물이 다시 나타나지 않자 혼란에 빠졌던 사회는 조금이나마 안정을 찾았다. 집 안에 틀어박혀 있던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화요일. 승아는 버스를 타고 출근했고, 승한의 어머니도 다니던 금은방에 출근했다. 승한은 학생의 본분대로 학교에 나갔다.
“사람 참 없네.”
강의실은 썰렁했다. 조금 일찍 도착한 탓도 있었지만 평소에 비해 학생이 적어도 너무 적었다.
“승한이 왔냐? 살아 있었네?”
최학준. 승한의 대학 동기로, 승한과 같은 학번에 함께 복학한 친구였다. 승한이 다니는 대학교에서 유일하게 동기가 아니라 친구라고 생각하는 녀석이었다.
“그럼, 죽었겠냐?”
“너 그날 알바였잖아. 가뜩이나 시내 쪽은 괴물이 많이 나타났다던데,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지.”
“그런 녀석이 연락 한 통 없냐?”
“나야 가족들 챙기기 바빠서. 야, 그리고 너도 연락 한 통 없는 건 마찬가지 아니냐?”
“그거야 뭐… 그렇긴 하네.”
승한도 가족들을 챙긴다고 다른 친구들에게 연락을 못 해본 건 마찬가지였다. 평소에도 스마트폰을 잘 확인하지 않긴 했지만, 괴물이 나타난 와중에 친구들 챙길 여유가 어디 있겠는가?
“나도 어제 안 나오긴 했지만 오늘도 결석하는 애들이 꽤 되는 것 같은데. 하여튼 겁은 많아요.”
“그럴 만도 하지. 시내 한복판에 갑자기 괴물들이 나타났는데, 집 밖에 나오기가 안 무섭겠냐?”
“그런데 승한이 너 이 짜식, 겁 많은 놈이 어떻게 집 밖엘 기어 나왔데?”
“겁이 많기는.”
솔직히 말해 승한은 다시 스컬레톤들이 튀어나와도 큰 상관은 없었다. 덩치가 큰 뼈 괴물을 만난다면 모를까, 스컬레톤들 정도는 충분히 쓰러뜨릴 자신이 있었다. 문제는 승한의 가족들과 다른 친구들이었다.
“그 얘기 들었냐? 오늘 안교수님 강의는 결강이라더라. 그 교수님 참, 평소에 말은 번지르르하게 하시면서 괴물들 무섭다고 집에 틀어박히시고 말이야. 사유는 또 교수님 몸이 좋지 않으시단다.”
“그럴 수도 있지, 뭐. 그러는 넌 안 무섭냐?”
“나?”
“그래. 괴물들 못 봤어?”
“봤지. 근데 도망치기는 별로 안 어렵던데? 뼈다귀들이라 그런지 발이 그렇게 빠르지도 않고.”
학준은 고등학교 때 육상부 출신이었다. 평소에도 운동을 자주 즐겨하다 보니 발이 빠르고, 체력도 좋았다. 스컬레톤들의 발이 그렇게 빠르지 않으니 학준이라면 충분히 도망칠 수 있었을 것이다.
“하긴, 너라면.”
“그래도 무섭긴 무섭지. 그럼 뼈밖에 없는 것들이 멀쩡히 살아 움직이는데 안 무섭겠냐? 어제 오늘 그 놈들이 더 안 나타나서 다행이지.”
만약 하루 사이에 스컬레톤들이 세상이 다시 나타났다면 아수라장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이 순간, 각종 사이비 종교에서는 세상의 종말이 다가왔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을 믿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하긴, 신을 믿지 않는 승한도 그 말이 그럴듯하게 들렸으니 귀가 얇은 사람들이야 오죽할까.
학준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곧 교수가 강의실에 들어왔다. 항상 빽빽이 채워졌던 강의실은 곳곳이 비어있었다. 평소에도 종종 결석을 하던 학생들이 있었는데, 오늘 같은 날은 결석하는 학생들이 훨씬 더 많았다.
듣는 둥, 마는 둥 강의 시간이 흘러갔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버스를 타고, 학교에 와서 강의를 듣는다. 평소와 너무나도 똑같은 하루였다.
마치 그 날이 꿈이었던 것처럼. 승한은 문득 창밖을 바라봤다. 늦가을의 먹구름이 밀려오고 있었다. 일기예보에서는 비가 온다더니,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았다.
‘5일 남았군.’
승한은 다음 일요일이 기다려졌다.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했다.
‘이번에도… 꿈을 꾸려나?’
승한이 얻은 세 가지 능력.
[강인함], [민첩함], [강화].
이 능력들은 지난 3주간 승한이 매주 일요일마다 꾸었던 꿈을 통해 얻을 수 있었다. 각 스테이지마다 하나씩 수행해야 하는 미션이 있었고, 그 미션을 완벽하게 수행했을 때 꿈에서 깨어나며 능력이라는 보상을 얻었다.
그 전까지는 그 능력을 사용할 수 없었지만 시간이 멈추며 스컬레톤들이 등장한 순간, 승한은 그 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 [강인함]과 [민첩함]을 통해 승한의 육체 능력이 기존보다 월등히 강해졌고, 누가 알려주지 않았음에도 몸과 물건을 [강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
지난 3주간의 패턴대로라면 분명 이번에 돌아오는 일요일에는 4번째 꿈을 꾸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번엔 또 다른 4번째 능력을 얻게 되겠지.
‘타임 포인트(Time Point)는 대체 뭐지?’
스컬레톤들, 그리고 거대한 뼈 괴물을 쓰러뜨리고 얻은 타임 포인트는 착각이 아니었다. 따로 기억하려고 하지 않아도 승한은 스컬레톤들과 괴물을 쓰러뜨려 획득한 타임 포인트의 수치를 알 수 있었다.
‘610타임 포인트.’
스컬레톤 하나가 10타임 포인트, 거대한 뼈 괴물이 300타임 포인트를 주었다. 승한이 쓰러뜨린 스컬레톤의 수가 서른하나라는 소리였다.
아무 이유 없이 제공되는 포인트는 아닐 것이다. 분명 어디에 쓸데가 있을 텐데, 그걸 모르겠다.
“그럼 오늘 강의는 여기까지 하고, 다들 몸조심하길 바란다.”
교수도 강의에 집중이 되지 않는지 수업이 평소보다 일찍 끝났다. 강의 시간을 빽빽이 채우거나 종종 정해진 시간을 넘기기도 하던 교수였는데 말이다.
교재와 강의 자료를 챙긴 승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제나처럼 승한의 옆으로 학준이 다가왔다.
“알바 언제 가냐? 시간 되면 농구 한 게임 할래? 어차피 안교수님 강의도 휴강인데.”
“됐다. 잠시 집 들렸다가 바로 일 나가야 돼.”
“한 시간도 안비냐?”
“다음에 하자. 정 심심하면 성동이나 병관이에게 연락 해 보던지. 걔들이야 바로 학교 밑에서 자취하니까 연락만 하면 금방 아니냐?”
“괴물이 무서워서 집에 틀어박혔는데, 나오란다고 나올까?”
“괴물이 무서워서 안 나오더라도, 농구 하자면 나오지 않을까? 뭐, 아님 말고지만. 그나저나 너도 참 대단하다. 이 와중에 농구가 하고 싶냐?”
승한은 당분간 아르바이트 시간 외에는 집에 있을 생각이었다. 괴물이 나타나 떠들썩한 와중에 농구 게임을 하자는 학준의 대범함에 고개를 젓고는 승한은 곧장 집으로 향했다.
집에는 아직까지 아무도 없었다. 승한의 누나인 승아나 승한의 어머니, 두 사람 다 직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퇴근 시간쯤에는 승한이 저녁을 먹고 아르바이트를 가 있을 시간이었다.
‘알바를 그만 둬야 하나.’
학비 부담에 평일, 주말 가릴 것 없이 아르바이트를 하곤 있었지만 만약 괴물이 다시 한 번 나타난다면 아르바이트가 문제가 아니었다. 여자가 둘 뿐인 집안에 가족들을 지킬 사람이 한 명은 필요했다.
물론, 괴물이 다시 나타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강의를 들으러 학교에 간 것도, 당장에 알바를 그만두지 못하는 것도 다 이대로 괴물이 나타나지 않을 경우를 생각해서였다. 괜히 괴물들이 나타나지 못한다고 지레 겁을 먹었다가 다시 나타나지 않으면 낭패가 아닌가?
결국 승한은 간단히 끼니를 때우고 집을 나섰다. 가게에 도착한 승한을 사장이 힘없이 반겼다.
“왔냐?”
“가게가 썰렁하네요.”
“이 사단에 누가 고기나 처먹으러 오겠냐?”
“오다가 보니까 사람들이 라면이나 통조림 같은 것도 사 가더라고요. 전쟁 나는 줄 알았다니까요?”
“됐어. 그 놈들이 라면이나 통조림 먹을 때, 우린 고기나 구워먹으면 되는 거지.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잖냐?”
시내 거리도 썰렁하더니, 가게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은성은 그날까지 알바를 쉬었고, 저녁 무렵쯤 항상 복작거리던 가게는 그날 손님을 한 팀도 받지 못했다.
쏴아아아아-.
가게 밖으로 빗줄기가 쏟아졌다. 내내 먹구름이 껴 있던 하늘이 폭우를 쏟아 붓기 시작한 것이다.
늦가을 무렵에 내리는 비치고는 꽤 많이, 그리고 오래 내렸다. 승한은 가게 문을 살짝 열어놓고 문틈 사이로 비가 내리는 경치를 지켜보았다.
그렇게 세상은 변할 듯 변하지 않고, 닷새라는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스컬레톤이라는 괴물이 등장하고, 세상은 혼란에 빠졌다. 하지만 그리 수가 많지는 않았고 경찰들이나 군인들이 들고 있는 총이 통했기에 그리 위협적이진 않았다. 소수 등장하는 거대한 뼈 괴물도 마찬가지로 총으로 심장을 쏘면 금방 쓰러뜨릴 수 있었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며 세상은 안정을 찾았다. 스컬레톤과 같은 괴물이 계속해서 등장할 것이라는 사람들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스컬레톤들의 등장 이후, 괴물들은 더 이상 등장하지 않았다.
주말이 시작되는 토요일. 승한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가게에 나갔다. 수요일까지만 해도 드물었던 손님은 목요일 이후부터는 하나 둘 찾아오기 시작하더니 금요일에는 만석이 될 정도였다.
“수고했다, 승한이, 은성이!”
사장의 얼굴도 밝아졌다. 하루 종일 손님들 상을 내가고 불판을 갈고, 설거지에 청소까지, 쉴 세 없이 일한 은성은 진이 빠져 의자에 풀썩 주저앉았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손님이 나갔으니, 더 이상 눈치 볼 사람도 없었다.
“아, 힘들어.”
“항상 주말에는 이랬잖아.”
“지난주에 그 사단이 났었는데, 사람들이 고기를 다 먹으러 오네요.”
“고기는 세상이 망하는 날에도 맛있지 않겠냐?”
“아뇨. 하루 종일 고기 굽는 냄새만 맡았더니, 이젠 질려요.”
“그래도 막상 입에 넣으면 맛있을 걸?”
승한은 은성과 대화를 나누면서도 정리를 마무리했다. 쓰레기 한 봉투를 꾹꾹 눌러담는 승한을 보며 은성이 혀를 내둘렀다.
“형, 지치지도 않아요? 하루 종일 쉬지도 않던데, 진짜 대단하네요.”
“언제 내가 쉬는 거 봤냐?”
“성실한 건 알았는데, 그래도 손님 없을 때는 요령껏 쉬지 않았어요? 근데 오늘 보니까 손님 없을 때도 그렇고 일을 아주 찾아서 하던데. 덕분에 평소보다 좀 편하긴 했지만…….”
승한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을 회피했다. 힘드냐는 물음에 답을 하자면, 전혀 힘들지 않았다.
평소에는 집게로 불판을 갈거나 하루 종일 서서 걸어 다니면 일이 끝날 때쯤에는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갔다. 특히 이른 아침부터 출근하고 밤 늦게 퇴근하는 손님이 많은 주말에는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스컬레톤들이 등장하고 세 가지 능력은 얻은 이후로는 어떤 일에서도 별로 힘들다는 느낌은 없었다. 얼마 전에는 강의가 끝난 후 학준을 비롯한 친구들과의 농구 게임에서도 평소보다 훨씬 더 높은 기량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이미 예전과는 다른 몸이지.’
승한은 자신의 능력을 확실하게 자각하고 있었다. 이 상태면 웬만한 격투기 대회에 나가도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기술적인 문제에서는 한참 부족하겠지만 말이다.
“그럼 저 이만 퇴근해 보겠습니다.”
“그래, 가 봐! 아, 내일은 못 나온다고 했지?”
“네. 일이 좀 생겨서요.”
“그래라. 은성이 친구가 땜방으로 온다고 했으니, 쉬고 월요일에 보자.”
뒷정리를 마친 승한은 다른 때보다 일찍 퇴근했다.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한 승한에게 사장은 조금 일찍 퇴근한다고 뭐라 하지 않았다.
승한은 일요일 하루 일이 생겨 쉬어야겠다고 사장에게 미리 말을 해 두었다. 기다리던 날이 왔다는 생각에 집으로 향하는 승한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드디어… 일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