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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타임-3화 (3/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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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멈춰버린 시간에서

죽는다!

거세게 뛰는 심장을 주체할 수 없었다. 죽음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가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승한은 덜덜 떨며 한쪽에 있는 식칼을 손에 쥐었다.

마음이 급하니 일단 무기를 찾은 것이다. 손 안에 날붙이가 들어오니 조금은 진정이 되었다.

‘침착하자. 침착하고 도망가면, 살 수 있어.’

빠르게 뛰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며 꿈을 떠올렸다. 투기견과의 싸움, 하이에나로부터 도망치던 경험, 그리고 숲속에서 만난 괴물들과의 싸움까지.

꿈을 떠올리자 조금은 진정할 수 있었다. 현실과 꿈은 분명 다르지만, 꿈에서도 잘 살아남았던 만큼 정신만 차리면 스컬레톤이라는 괴물로부터 살아남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

‘그래, 이거라도 어디냐.’

승한은 손에 쥐고 있는 식칼을 바라봤다.

고기를 자를 때나 사용하는 기다란 칼. 수시로 갈아놓은 덕분에 꽤 날이 서있었다. 꿈속에서는 무기라고 할 만한 것도 하나 없었는데, 여기는 그래도 날붙이라도 하나 손에 쥘 수 있었다.

상황 자체는 차라리 지금이 더 낫다. 승한은 숨을 고르며 주위를 둘러봤다.

스컬레톤이 들어온 입구와 주방을 나가는 입구는 일자로 연결되어 있었다. 즉, 도망칠 수 있는 출구는 스컬레톤의 뒤에 있었다.

녀석을 쓰러뜨리던가, 아니면 주방으로 들어온 순간을 노려 재빨리 도망치던가.

승한은 후자를 염두 해두었다. 싸워 이기는 것보다는 안전하게 도망가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터벅-.

딱딱한 뼈로 이루어진 발이 주방에 들어왔다. 그 순간, 승한의 눈에 시간과 함께 멈춰있는 사장이 보였다.

“조심…….”

터벅-.

스컬레톤은 사장을 무시하고 승한을 향해 다가왔다. 무슨 이유에선지 사장이나 바닥에 쓰러져 있는 은호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녀석의 목표는 오직 승한, 한 명뿐이었다.

‘왜 나만 보는 거지?’

저항하지 못하는 사장과 은호가 공격받지 않는 건 다행이지만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했다. 녀석이 두 사람을 공격한다면 그 틈을 노려 빠져나갈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따다닥-.

스컬레톤의 턱이 빠르게 움직였다. 승한은 본능적으로 녀석이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스컬레톤의 움직임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승한과의 거리를 빠르게 좁혀오며 손에 들고 있는 뼈 몽둥이를 휘둘렀다.

그 순간, 승한 역시 스컬레톤을 피해 움직였다. 움직임이 단순해서 그런지 승한은 생각보다 쉽게 녀석의 몽둥이를 피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많이 쉬운데?’

스컬레톤의 몽둥이를 피하던 승한은 예전보다 훨씬 가벼워진 몸에 놀랐다.

스컬레톤의 움직임이 느리기 때문이 아니었다. 휘두르는 몽둥이를 가볍게 피할 만큼 승한은 운동신경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 운동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어디까지나 취미일 뿐, 승한은 전문적인 파이터가 아니었다.

하지만 스컬레톤을 상대하는 승한은 스스로가 생각해도 놀라울 만큼 몽둥이를 가볍게 피해내고 있었다. 몸이 한결 가볍고, 빨라진 덕분이었다.

‘설마… 그건가?’

승한의 머릿속에 얼마 전부터 꾸기 시작한 꿈이 떠올랐다. 그 중 두 번째 꿈의 보상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두 번째 꿈의 보상은… [민첩함]이었지?’

개꿈이라고 생각했다. 꿈을 통해 능력을 얻는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막상 스컬레톤과 싸우면서 격렬하게 움직여 보니 어쩌면 그 꿈에서 얻은 보상이 현실에 적용이 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오늘 아침까지만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몸이 가볍진 않았다. 시간이 멈춰버린 이 순간, 승한은 자신의 몸이 이전과 달라졌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첫 번째와 세 번째 보상도?’

까앙-!

승한은 스컬레톤의 몽둥이를 식칼로 막아냈다. 단단한 뼈와 식칼이 부딪혔으면 손안이 얼얼해야 정상인데, 별다른 느낌이 들지 않았다.

몽둥이를 막아낸 직후, 승한은 왼손을 꽉 말아 쥐었다. 그리곤 속이 텅 빈 스컬레톤의 가슴을 주먹으로 강하게 후려쳤다.

퍼억-!

스컬레톤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단단한 뼈를 맨 주먹으로 후려쳤는데 주먹에서 느껴지는 통증도 거의 없었다. 단숨에 스컬레톤의 몸을 날려버린 힘도 평소와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이쯤 되면 거의 확신할 수 있었다.

‘첫 번째 보상… [강인함].’

힘이 강해졌고, 몸이 단단해진 느낌이었다. 꿈을 통해 얻은 능력 덕분에 승한은 스컬레톤을 상대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끼기긱-.

승한의 주먹에 얻어맞아 바닥에 쓰러졌던 스컬레톤이 다시 일어났다. 잠시 멍하니 있던 승한은 계속해서 싸우기보다는 도망을 선택했다.

벌떡 일어난 스컬레톤은 집요하게 승한을 쫒았다. 하지만 이미 한 번 출구를 확보한 이상, 스컬레톤보다는 승한의 다리가 더 빨랐다.

빠악-!

그 때, 가게 밖으로 도망가려던 승한이 둔탁한 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승한을 쫒아오며 휘두르던 스컬레톤의 뼈 몽둥이에 가만히 있던 사장이 머리를 얻어맞고 쓰러지고 있었다.

“사, 사장님!”

깜짝 놀란 승한이 멈칫했지만 곧 이를 악물고 고개를 돌렸다. 어차피 스컬레톤이 노리는 건 승한뿐이었다. 여기서 스컬레톤과 싸우느니, 밖으로 나가 스컬레톤을 따돌리고 구조를 요청하는 게 나았다. 만약 시간이 다시 움직이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당장 자신의 목숨이 급한데, 일 년 남짓한 시간 동안 얼굴을 마주친 사람을 위해 목숨을 걸 만큼 승한은 정의롭지 않았다.

뒤에서 쫒아오는 스컬레톤을 피해 승한이 가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 순간이었다.

“……엿 됐다.”

가게 밖을 돌아다니던 스컬레톤 무리를 발견한 승한의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거리에 있던 스컬레톤들의 시선이 승한에게로 모아졌다. 텅 빈 눈들이 자신을 바라보자, 승한은 등줄기가 오싹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몇 마리나 될까? 한가로이 수를 세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당장 뒤에서는 스컬레톤 한 마리가 승한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빠르게 좌우를 살핀 승한은 스컬레톤이 더 적다 싶은 곳으로 뛰기 시작했다. 좁은 가게 안보다는 그래도 탁 트인 거리가 나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스컬레톤들이 승한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앞에서는 물론, 이제는 뒤에까지 그 수가 여럿이었다. 대충 앞에 있는 스컬레톤만 해도 넷이나 되었다.

“으아아아아!”

타다다닥-.

승한은 근처에 있는 자동차 한 대를 발판으로 삼아 높게 뛰어올랐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놀라울 만큼 가볍게 움직여 네 마리의 스컬레톤들을 뛰어넘었다.

따다다다다닥-.

스컬레톤들이 방향을 틀었다. 승한은 망설이지 않고 곧장 거리를 질주했다. 손에 들고 있는 식칼은 혹시 몰라 아직 쥐고 있었다.

‘세상이 멈췄다.’

거리로 나온 승한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시내의 외곽 쪽이라 그리 많은 사람이 다니진 않지만, 그래도 사람이 아주 없지는 않은 않았다. 팔짱을 끼고 있는 연인과 강이지를 산책시키던 남자, 과자 부스러기를 쪼아 먹던 비둘기까지. 가게 안은 물론이고 세상이 전부 정지했다.

움직이고 있는 건 오직 승한과 스컬레톤들뿐이었다. 하나 이상한 게 있다면 스컬레톤들은 거리에 있는 사람들은 무시하고 오직 승한에게만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만만하냐!’

억울함에 속으로 비명을 질렀지만 승한도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세상이 정지했다.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간과 함께 그들의 심장 역시 멈춰있었다.

살아있지 않은 사람은 저들에게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돌멩이나 다름없었다. 스컬레톤들에게 살아서 펄떡거리며 움직이는 승한이 목표물이 되는 건 너무나도 당연했다.

승한은 자신의 뒤를 쫒아오는 스컬레톤들을 피해 달리고, 또 달렸다. 꿈을 통해 얻은 두 번째 보상인 [민첩함]덕분에 스컬레톤들로부터 도망치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큰 길로 접어든 순간.

“……젠장.”

승한은 생각 없이 내달린 것을 후회했다.

좁은 시내 외곽 거리와는 달리, 큰 길에는 더 많은 스컬레톤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따다다다다닥-.

기기기긱-.

살아 움직이는 인간. 스컬레톤들의 텅 빈 눈에 먹잇감인 승한의 모습이 포착되었다. 큰 길을 따라 도망가려던 승한은 이번엔 반대로 좁은 골목으로 뛰기 시작했다.

‘이대로 도망만 가 봤자 소용없어.’

거리엔 이미 스컬레톤들이 깔려 있었다. 어느 거리를 가도 스컬레톤들이 돌아다녔고, 스컬레톤들을 피해 도망 다닐수록 더 많은 스컬레톤들이 따라붙을 것이다.

승한은 갈등 끝에 결심을 굳혔다.

‘싸워야 돼.’

도망간다고 해서 답은 나오지 않는다. 더 많은 스컬레톤들이 몰려들기 전에 싸워야 한다.

한 평생 살던 동네였다. 알바를 하더라도 근방에서 알바를 했고, 자주 돌아다니기도 했다.

눈에 훤하다면 훤할 만큼 지리는 빠삭했다. 급한 와중에 퍼뜩 떠올리지는 못했지만, 스컬레톤들을 피할 만한 괜찮은 장소가 있었다.

“따라오지 마, 이 새끼들아!”

쉬익-.

퍽-!

골목으로 들어온 승한은 한쪽에 배치되어 있는 쓰레기통과 나뒹굴고 있는 부러진 의자 따위를 스컬레톤을 향해 던졌다. 제법 강한 힘으로 던져서 그런지 앞에서 달려오던 스컬레톤 두어 마리가 얻어맞고 바닥에 쓰러졌다.

드르르-.

승한의 앞으로 스컬레톤의 뼈 몽둥이가 굴러왔다. 눈을 반짝이며 승한은 잽싸게 뼈 몽둥이를 주워들었다. 아무래도 손에 들고 있는 짧은 식칼보다는 길고 단단한 몽둥이가 나을 것이다.

몽둥이를 주워든 승한은 골목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골목 끝에는 좁고 가파른 계단이 있었는데, 승한은 거기서 승부를 볼 생각이었다.

높은 고층 건물의 3층까지 단번에 오를 수 있는 비상계단. 고층 건물을 끼고 있는 골목 끝에 위치한 이 계단은 원래라면 이용이 제한되어 있는 장소였다.

하지만 어차피 사람들은 모두 멈춰있어 제제당할 이유가 없었다. 승한은 망설임 없이 계단을 성큼성큼 올랐다.

“후우우.”

스컬레톤들이 일렬로 서서 승한을 따라 계단을 올랐다. 평지를 달릴 때와는 달리 굼뜬 움직임이었는데, 계단 구조에서는 빨리 움직일 수 없는 모양이었다.

승한의 눈에 계단을 오르는 스컬레톤들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쭉 일렬로 늘어진 모습에 스컬레톤의 수가 몇이나 되는지 알 수 있었다.

‘서른하나.’

승한은 손에 들고 있는 뼈 몽둥이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리곤 바로 오늘 아침, 꿈을 통해 얻은 세 번째 능력을 떠올렸다.

‘세 번째 능력은… [강화]’

우득-.

승한의 손 안에 있는 뼈 몽둥이가 더욱 단단해졌다. 더군다나 승한의 근육 마디마디가 더욱 견고해지며 힘을 더했다.

첫 번째 능력부터 세 번째 능력까지, 모든 힘을 발휘하자 승한은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눈앞에 보이는 스컬레톤들을 상대로 조금은 자신감이 생겨났다.

이윽고 승한의 눈앞까지 스컬레톤이 도달했을 때.

“저리 꺼져!”

빠악-!

승한의 손에 쥐어져 있던 뼈 몽둥이가 스컬레톤의 머리를 후려쳤다. 두개골이 산산이 부서지며 파편히 사방으로 튀었다.

[10타임 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응?’

승한의 머릿속에 이상한 메시지가 입력되었다. 이게 무슨 뜻인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승한은 다급히 스컬레톤의 몸뚱이를 발로 걷어찼다.

퍼억-.

뒤로 굴러 떨어진 스컬레톤의 몸이 뒤쪽에 있던 스컬레톤들을 향해 쓰러졌다. 앞쪽에 있던 스컬레톤의 몸이 무너지자, 자연스레 뒤쪽에 있던 스컬레톤들도 하나 둘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승한은 계단을 한 걸음 아래로 내려왔다. 그리곤 몽둥이가 닿는 거리에 있는 스컬레톤을 향해 다시금 몽둥이를 휘둘렀다.

빠악-, 빡-!

[10타임 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10타임 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두 마리의 스컬레톤의 머리를 더 박살내자, 같은 메시지가 반복해서 승한의 머릿속에 들어왔다. 대체 타임 포인트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승한은 꿈에서 얻은 능력처럼 분명 어딘가 쓸 데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일단 이 녀석들부터 정리하고 보자.’

생각보다 스컬레톤들과의 싸움은 어렵지 않았다. [강인함], [민첩함], [강화], 이렇게 세 가지 능력도 큰 도움이 됐다. 계단이라는 지형에서 뼈로 이루어진 스컬레톤들의 움직임이 정교하지 못한 것도 한 몫 했다.

하나 둘, 스컬레톤들의 머리가 박살났다. 다른 곳은 때려도 소용없었다. 팔다리가 부러져도 스컬레톤들은 고통을 모르는 듯 계속해서 기어 올라왔다. 정확히 머리를 깨부숴야 움직임을 멈췄다.

올라오는 스컬레톤의 머리를 부수고, 몸통은 발로 걷어차 밀어냈다. 그 과정을 반복하기를 수차례. 지능이 높지는 않은 건지 스컬레톤들은 계속해서 승한을 향해 집요하게 계단을 올랐다.

빠악-!

[10타임 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후우우.”

스컬레톤 하나의 머리를 후려친 승한은 남아있는 스컬레톤의 수를 세었다. 절반 이상을 처리하고, 이제 스컬레톤은 열하나뿐이 남지 않았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

손에 들고 있는 뼈 몽둥이가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싶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좁은 계단이라는 지형을 떠올리지 못했다면? 꿈을 통해 세 가지 능력을 획득하지 못했다면?

아마 지금쯤 스컬레톤들에 의해 죽어 땅을 뒹굴고 있을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다시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난 안 죽어-!”

승한은 이를 악물며 다시 올라온 스컬레톤을 향해 뼈 몽둥이를 휘둘렀다.

그런데 그 순간.

위이이이잉-.

“어?”

승한의 귀에 작은 소리가 울렸다. 그와 동시에 시야가 핑그르르 돌고, 세상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이, 이건 뭐야?’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눈앞에 있던 스컬레톤이 점점 멀어져갔다. 제 모습을 알아보기 힘들 만큼 일그러지던 공간은 점차 자신의 모습을 찾았다.

그 속에서 승한은 어떠한 생각도 하지 못했다. 멈추지 않았던 승한의 시간인 지금 이 순간 거짓말처럼 멈춰있었다.

째깍-.

시계 초침이 움직이기 시작한 순간.

“형! 부추 얼마나 남아있는지 확인 좀 해 주세요!”

“어?”

가게 안. 승한은 대걸레를 쥐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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