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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무능한 적국 왕자였다-231화 (231/232)

231화

“……!”

세네카도 똑같은 것을 느낀 것일까.

세네카의 눈이 번득였다.

동시에 아직 그가 다룰 수 있던 막대한 마나가 폭풍처럼 주변에 몰아쳤다.

이건 최후의 발악 같은 게 아니다.

세네카가 다루던 막강한 힘이 순간 갈 길을 잃으면서, 마구잡이로 폭주하는 것이었다.

그만큼 위력적이었지만 정교한 공격과는 거리가 있었기에 피하거나 막는 게 어렵지는 않았다.

딱 한 명을 제외하면.

“전하!”

카스텔이 다급하게 외치며 달려나가려 했지만, 한발 늦었다.

세네카가 최후의 발악으로 만든 마법의 폭풍에 사울, 그리고 세네카가 함께 휩쓸렸다.

큰 부상을 입은 데다 전력을 다한 직후였던 사울은 세네카의 마나의 폭주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전하!”

마나의 폭풍에 휩쓸린 사울의 귀에 카스텔의 외침이 들렸다.

카스텔의 외침 소리도, 의식도 점점 흐려지는 가운데 사울은 나지막이 말했다.

“…미안해요. 선생님.”

그리고 사울의 의식은 점점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전생에 목숨을 잃었던 그때처럼.

* * *

“으음…….”

천천히 눈을 뜬 사울은 온몸을 덮쳐 오는 고통에 비명을 지를 뻔했다.

힘겹게 눈을 돌리니 만신창이가 된 채 널브러진 자신의 몸뚱이가 보였다.

완전히 부러진 채 덜렁거리는 한쪽 팔.

힘을 줘도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두 다리.

피투성이에 여기저기 큰 상처가 보이는 몸뚱이까지.

숨이 붙어 있는 게 다행인 중상이었다.

“…살아 있는 건가?”

행운의 여신이 자신에게 미소를 지어 준 것일까.

아니, 그게 아니다.

사울은 의식을 완전히 잃기 직전 무언가를 느꼈다.

자신을 감싸는 듯한 무언가를 말이다.

사울은 힘겹게 고개를 돌렸다.

멀지 않은 곳에 세네카의 모습이 보였다.

머리와 몸뚱이만 남아있는 처참한 몰골이었지만, 아직 죽지는 않았다.

사울은 의식을 잃기 직전 자신을 감싼 힘을 떠올렸다.

그건 분명 폭주하는 마나 속에서 누군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일을 한 사람은…….

“세네카.”

사울이 힘겹게 이름을 부르자 세네카는 작게 웃었다.

아무래도 아직 의식은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

사울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이 난장판이 된 가운데, 멀리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긴……?”

“생명수 밖입니다. 카멜 산의 중턱쯤이겠지요.”

세네카가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모든 것을 잃고 죽음을 앞둔 자치고 그의 목소리는 평온해 보였다.

“네가 날 살렸나?”

“그렇습니다.”

“어째서?”

“나는 곧 죽을 텐데, 당신 하나 더 죽인다고 아무 의미 없으니까요.”

“날 미워하지 않나?”

“밉습니다. 결국 당신이 내 계획을 망쳤으니. 하지만 감정 때문에 한 일이 아니니까요.”

죽음을 앞둔 세네카의 표정은 언뜻 평온해 보였지만, 한편으로는 간절해 보였다.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다.

사울은 그런 세네카에게 말했다.

“묻는 것에 답해 줄 수 있겠나?

”네. 아직 시간이 조금은 있을 테니까요.“

”정말 네가… 날 이렇게 만들었나?“

사울 인생의 최대 수수께끼에 대한 질문을 받은 세네카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당신은 아주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당신 같은 존재를 여럿 만들려 시도했지만, 성공한 건 오직 당신뿐이었지요.”

“왜 날 이렇게 만들었지?”

“원한을 품은 채 죽은 자가 고귀한 신분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후 원한에 미친 그를 제가 조종한다… 그런 계획이었습니다. 잘되진 않았지만요.”

“날 조종한다고?”

“전생의 원한에 미친 왕자가 왕국을 뒤흔들면 우리가 바라는 혼란을 만드는 데 유용하리라 생각했습니다. 당신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는 게 나의 가장 큰 실책이었지요.”

자신이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다시 태어난 건 결국 세네카의 꼭두각시가 되기 위한 안배였다.

어이없는 진실에 사울은 허탈하게 웃었다.

“나 말고도 수많은 자들에게 수작을 부렸겠지. 결국 율렌 섬의 혼란은 네가 다 일으킨 건가?”

“그렇진 않습니다. 300년 전쟁을 제가 일으킨 게 아니고, 킬리안이나 안소니 백작도 제가 만든 존재는 아닙니다. 어둠의 세력도 마찬가지입니다. 각자 자신의 생각과 목적을 가지고 움직였을 뿐입니다. 저는 그저 뿌려진 기름에 불을 질렀을 뿐.”

“결국 그게 목적이었나? 300년 전쟁을 틈타 율렌 섬의 이종족, 그리고 모든 불온 분자들을 모아 혼란을 일으키고, 두 왕국을 멸망시키는 것?”

“그렇습니다. 두 왕국을 멸망시키고, 방해가 되는 인간들은 버서커를 이용해 모조리 전멸시키고 이 율렌 섬을 이종족을 위한 곳으로 만들려 했습니다. 모든 것은 그를 위함이었습니다.”

사울은 다시 물었다.

“왜 그렇게까지 하려 했지? 카멜 산으로는 부족했나?”

“네.”

“…….”

“율렌 섬의 이종족이 해방된 건 어디까지나 300년 전쟁 덕분이었습니다. 두 인간 왕국이 오랫동안 치고받는 가운데 이종족과의 전쟁까지 감당할 수 없었고, 그 덕분에 나와 이종족은 자유를 얻었습니다. 수많은 희생를 치른 끝에 말입니다.”

“그럼 두 나라의 전쟁이 끝나면, 다시 이종족을 박해할 것이라 생각한 건가?”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지요. 그래서 전쟁을 부채질하고, 이용했습니다.”

“…….”

어리석다고 생각하면 지극히 어리석고, 미쳤다고 보면 한없이 미친 짓거리다.

이종족을 위해 율렌 섬 대부분의 인간을, 아니, 모든 인간을 쓸어버리려 했다니.

킬리안이나 안소니 백작 등도 결국 그러한 생각을 품은 세네카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났다니.

그러나 사울은 세네카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 같기도 했다.

힘들여 얻은 이종족의 자유를 다시 빼앗긴다고 생각하면, 눈이 뒤집힐 법도 했으리라.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든 세네카가 한 짓은 정당화할 수 없다.

“넌 실패했다. 이제 네가 한 짓이 무슨 결과를 만들지 알고 있나?”

“알고 있습니다. 나는 실패했고, 나로 말미암아 율렌 섬의 이종족은 다시 박해받겠지요.”

“…….”

“그게 내가 당신을 살려 준 이유입니다.”

“…….”

“나와 내 뜻을 알고 동조한 자들을 용서해 달라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네가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한 자들과 이 일에 관여하지 않은 이종족은 용서해 달라?”

세네카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울은 그런 세네카를 복잡한 심정으로 바라보았다.

무슨 이유가 있었든 용서할 수 없는 녀석이다.

사정을 알고 그에게 동조한 자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종족 대부분이 이 일에 관여하지 않았거나, 아무것도 모르고 ‘대족장’을 따랐을 뿐이다.

그들까지 박해하는 건 정당한가.

고민 끝에 사울이 말했다.

“내가 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사울의 말에 세네카가 힘없이 웃었다.

“당신이라면 죄 없는 이종족에게까지 참화가 미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겁니다.”

“정말 뻔뻔하군. 죄는 네가 지었는데, 그 뒷감당은 나더러 하라니.”

하지만 사울은 세네카에게 말했다.

“약속할 수는 없지만 내가 살아난다면 노력은 하지. 죄 없는 이종족이 박해받는 건 원치 않으니까.”

“당신을 살린 보람이 있군요.”

“…….”

“이제 나는…….”

세네카의 말이 끊어졌다.

빛을 잃은 채 퀭하게 굳은 그의 눈을 본 사울은 깨달았다.

세네카는 죽었다.

“…….”

사울은 힘없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해를 보니 정오에 가까운 모양이었다.

사울은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결국 모든 건 저 미친 엘프 때문이었고… 살아남는다면 그 모든 것을 수습해야 하는 건가. 후훗.”

왠지 나쁘지만은 않은 기분이었다.

아니, 후련했다.

인생 최대의 수수께끼도 풀렸고, 새로운 삶의 의미까지 얻은 기분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전하!”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울은 힘겹게 고개를 돌렸다.

몇 명의 병력과 함께 달려오는 카스텔의 모습이 보였다.

“선생님.”

한달음에 달려온 카스텔의 얼굴은 피로 젖어 있었다.

그리고 흘러내리는 눈물이 피를 씻어 주었다.

그러고 보니 카스텔의 눈물을 보는 건 처음인 것 같다.

“괜찮아요.”

카스텔은 눈물 젖은 표정으로 언성을 높였다.

“어디가 괜찮다는 말입니까!”

“살아는 있으니까.”

“…….”

그래도 사울이 살아 있음을 알고 안도한 카스텔은 더 말하지 않았다.

“여기 세네카다!”

“조심해라!”

세네카를 발견한 병력들이 당황했지만, 카스텔은 놀라지 않았다.

“세네카가 또 살아날 일은 없겠지요.”

“네. 이번에야말로 확실히.”

카스텔은 휘하 병력에게 명령했다.

“어서 전하를 모셔라!”

“네!”

곧 사울은 들것에 실렸다.

조금만 움직여도 온몸이 비명을 질렀지만, 지금은 그 통증마저 반가웠다.

살아 있다는 분명한 증거였으니까.

사울은 카스텔에게 말했다.

“선생님.”

“네, 전하.”

“우리는 살아남았고 또 이겼어요.”

“그렇습니다.”

“선생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아요. 그리고 앞으로 할 일도 정말 많고요.”

“알고 있습니다.”

사울은 그런 카스텔에게 말했다.

“앞으로도 선생님이 계속 나와 함께해 주면 좋겠어요.”

앞으로 쭉 함께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 달라.

카스텔은 사울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그리고 그런 사울의 말을 거절하지 않았다.

“물론입니다. 전하.”

카스텔이 들것에 실린 사울의 손을 부여잡았다.

다친 몸이라 그것만으로도 아팠지만, 사울은 카스텔의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아니, 이렇게 손을 마주할 수 있어 행복했다.

“정말 고마워요. 선생님.”

그렇게 사울은 들것에 실려 이송되었다.

후방으로 이송되며 사울은 많은 것들을 보았다.

카멜 산의 절반이 초토화되었고, 수많은 인간과 이종족이 죽고 다쳤다.

그리고 패배한 이종족들은 포로가 되었다.

연합군은 큰 피해를 입었지만, 이성을 잃지는 않았다.

포로들은 포로로서 대우를 받았고, 주민들을 향한 무자비한 약탈이나 폭력도 없었다.

그 광경을 본 사울은 세네카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나와 내 뜻을 알고 동조한 자들을 용서해 달라곤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네가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한 자들과 이 일에 관여하지 않은 이종족은 용서해 달라?’

사울은 이미 죽은 세네카에게 마음으로 말했다.

‘세네카. 나는 널 평생 용서하지 않을 것이며, 네가 한 짓도 잊지 않겠다. 하지만… 너의 마지막 바람은 들어주마.’

그렇게 후송된 사울은 자신보다 먼저 실려 온 아르멜과 만났다.

“전하. 이렇게 다시 뵈어서 다행입니다.”

“그러게 말이다.”

아이나도 사울을 찾아왔다.

아이나 역시 적잖은 부상을 입었지만, 몸을 움직일 수는 있을 정도였다.

“그대나 나나 무사하다 할 순 없지만, 이렇게 살아남아서 정말 다행이에요.”

“말씀대로입니다. 전하.”

그리고 뜻밖의 문병객이 찾아왔다.

가르시아 남매, 그리고 세드였다.

사울은 가멜다 왕국의 문병객들에게 농담을 건넸다.

“날 끝장내러 왔나?”

베일도 농담으로 받았다.

“지금이야말로 가장 좋은 기회겠지.”

사울도, 다른 사람들도 농담임을 알았기에 분위기가 심각해지지는 않았다.

사울은 베일, 그리고 마리안과 세드에게 물었다.

“이제 그대들은 어떻게 할 생각이지?”

마리안이 대답했다.

“폐하와 함께 우리 왕국을 되찾아야지요.”

세드도 말했다.

“이 모든 사태의 배후에 있던 세네카가 죽었으니 왕국의 반란군 놈들도 오래 가지 못할 거요. 버서커도 더 나타나지 않는다면 반란도 무사히 진압할 수 있을 거요.”

“그다음은?”

사울의 질문에 세드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아마 귀국에게 많은 것을 기대야 하겠지.”

사울의 생각도 같았다.

이번 사태로 다르센 왕국도 엄청난 피해를 입었지만, 가멜다 왕국은 거의 기둥뿌리까지 뽑혔다.

다르센 왕국이 마음만 먹으면 가멜다 왕국의 숨통을 끊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울은 그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겼다.

삼백 년 전쟁의 원한이 쉽게 사라질 수는 없다.

하지만 양국 모두 엄청난 피해를 입었는데, 무리해서 타국을 점령하고 지배하는 건 쉽지 않다.

아바마마도 그 정도는 알고 있을 테니 아마 다른 방법을 동원하지 않을까.

“적이 된다면, 다시 싸울 뿐이오.”

베일의 말에 사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겠지. 하지만 한동안은 그럴 일이 없을 것 같군.”

“그렇게 생각하시오?”

“그래. 내가 그렇게 만들 생각이다.”

할 말을 마친 모두들 물러갔다.

홀로 남은 사울은 후련한 마음으로 눈을 감았다.

자신의 삶의 수수께끼가 풀렸고, 율렌 섬을 멸망으로 몰고 갈 뻔한 사태까지 해결했다.

이젠 미래를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보다 행복하고 건설적인 미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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