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화
자신의 앞에 선 사울을 바라보던 세네카가 조용히 말했다.
“당신의 존재는 예상 밖이었습니다.”
“상관없다. 어쨌든 널 쓰러뜨릴 테니까!”
세네카에겐 묻고 싶은 것도, 듣고 싶은 것도 정말 많다.
하지만 지금은 세네카를 쓰러뜨려야 했다.
설령 풀지 못할 수수께끼가 남는 한이 있더라도.
세네카도 길게 말할 생각은 없었는 듯, 공세를 이어 나갔다.
사울을 향해, 그리고 다른 자들을 향해 강력한 공격을 퍼부었다.
“공격을 멈추지 마라!”
“어떻게든 놈을 쓰러뜨려라!”
다르센 왕국과 가멜다 왕국의 수많은 실력자들이 물러서지 않고 세네카를 공격했다.
공격이 오갈 때마다 두 왕국의 실력자들이 여럿 쓰러졌고, 세네카는 큰 상처를 입었다.
세네카의 뼈와 살이 분리되고, 다시 붙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재생은 점점 느려지며 세네카의 몰골은 눈 뜨고 보기 어려울 만큼 처참해져 갔다.
무서울 만큼 아름답던 얼굴도 처참히 뭉개졌고, 팔다리도 그저 형체만 간신히 구분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세네카는 쓰러지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산산조각 나 흩어져 버릴 것 같은 몰골로 버티고 선 채 연합군에 대한 공격을 이어 나갔다.
결국 세드가 동원한 병력의 절반가량이 죽거나 부상을 당해 더 이상 싸울 수 없게 되었다.
사울 또한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고, 다른 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르멜처럼 전투 도중 큰 부상을 입고 후송된 자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세네카는 쓰러지지 않았다.
끔찍한 몰골을 유지한 채로, 연합군을 향한 공격을 이어 나갔다.
연합군 또한 엄청난 피해를 입었음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괴물 한 명이 쓰러지느냐.
그를 쓰러뜨리러 온 군대가 전멸하느냐.
치열한 전투 끝에, 전장의 분위기가 변했다.
“전하.”
“나도 느꼈어요.”
사울은 카스텔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깨달았다.
조금 전부터 눈앞의 고깃덩이, 세네카는 공격을 퍼붓지 않았다.
그 대신 자신을 지키기 위한 강력한 방어 마법을 시전하고 그 속에 틀어박혔다.
마법으로 만들어진 방어막 속에서 세네카의 몸이 천천히 재생되는 모습이 보였다.
그 와중에도 주변에 어마어마한 마나가 소용돌이치는 게 느껴졌다.
지금까지와는 달랐다.
둘 중 하나가 쓰러지길 기다려 공세를 퍼붓는 게 아니라, 무언가 큰 것을 준비하는 분위기였다.
지금 세네카가 할 수 있는 큰 것이라면…….
“대체 무엇을 노리는 것일까요?”
“무언가 강력한 마법을 쓸 생각일 겁니다.”
“그렇겠지요. 그 강력한 마법이라는 게 대체…….”
그때 세네카 주변에서 소용돌이치던 마나가 더욱 날뛰었다.
지금까지가 소용돌이였다면, 이제는 태풍이었다.
“모두, 물러서라!”
사울을 비롯한 모두 세네카 주변에서 물러섰다.
그 직후 세네카 주변에서 뿜어져 나온 마나가 주변을 초토화시켰다.
막강한 마나의 힘이 수백, 수천 개의 검푸른 촉수가 되어 막강한 기세로 모든 것을 쓸어버리기 시작했다.
저 촉수로 다시 한번 아군을 공격하는 게 세네카의 노림수일까.
‘그게 아니야.’
사울은 깨달았다.
저 촉수는 지금 세네카가 하려는 짓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저 촉수를 움직이는 마나보다도 훨씬 거대한 마나가 세네카를 중심으로 요동치고 있었다.
지금 상황에서 저 정도의 거대한 힘으로 할 만한 일이라면…….
“한 번에 우리들을 모조리 쓸어버릴 생각입니다.”
카스텔의 말에 사울도 동의했다.
“맞아요. 놈은 분명 그것을 노리고 있어요. 이대로 밀고 당기기 싸움을 하면 결국 질 것 같으니,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한 번에 폭발시켜 우리 모두를 쓸어버릴 생각이 분명해요.”
말하자면 최후의 수단이다.
문제는 그 최후의 수단이 세네카의 승리, 그리고 아군의 패배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었다.
“우리가 막아야겠지요?”
“네, 전하. 지금 세네카가 준비하는 마법을 막지 않으면, 이곳의 모두는 끝장입니다.”
모두가 끝장날 것이라는 카스텔의 단언.
사울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실력이나 운이 좋든 나쁘든, 세네카가 준비하는 저 마법이 완성되는 순간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아군이 할 일은…….
사울은 검을 든 채 아군을 돌아보았다.
모두들 사울, 그리고 카스텔과 같은 것을 느낀 모양이었다.
저 마법을 막아 내면 이기고, 그렇지 않으면 진다는 것을.
사울은 여기 모인 연합군의 대장으로서 다시 한번 명령했다.
“모두 공격하라!”
사울의 명령에 싸울 수 있는 모두가 다시 한번 움직였다.
사울 또한 세네카를 향해 돌진했다.
그런 모두를 막아선 것은 세네카가 만들어 낸 촉수였다.
수백, 수천 가닥의 촉수가 미친 듯이 날뛰며 세네카에게 접근하려던 모두를 공격했다.
“물러서지 마라! 으아악!”
아군을 독려하던 장교가 촉수에 맞아 죽고, 그에 호응하여 움직이던 기사까지 촉수에 맞아 나동그라졌다.
사울 역시 몇 번이나 날아오는 촉수에 맞을 뻔했지만, 살아남았다.
미친 듯 날뛰는 촉수 한가운데 커다랗게 빛나는 구체가 보였다.
세네카가 시전한 강력한 방어 마법이었다.
아마 저 속에서 세네카는 무시무시한 파괴 마법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온 이상,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모두들 알고 있었다.
저 구체를 깨고 세네카를 쓰러뜨려야 한다.
사울도, 다른 이들도 구체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놈을 끄집어내라!”
틀어박힌 세네카를 끄집어내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그가 만든 촉수는 계속해서 미쳐 날뛰며 접근하는 모든 것을 죽이려 했다.
또 그를 보호하는 방어막도 어마어마하게 튼튼했다.
웬만한 성문도 무너뜨릴 수 있는 위력의 공격이 쏟아졌지만, 세네카의 방어막은 뚫리지 않았다.
“공격하라!”
세드의 지원도 계속되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또 멀리서 마법으로 세네카 공격을 계속 지원했다.
마침내 철옹성 같던 세네카의 방어도 점점 무너지기 시작했다.
미친 듯 날뛰던 촉수의 움직임도 점점 둔해졌다.
사울은 이것이 세네카의 또 다른 계략은 아님을 알아보았다.
‘약해지고 있어.’
분명 세네카는 약해지고 있다.
이대로라면 방어막을 때려 부수고 끝장낼 수 있다.
“좋아! 조금만 더 힘을 내라!”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베일이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그가 쥔 불과 얼음의 검은 여전히 강력한 힘을 뿜어내고 있었다.
베일뿐만이 아니었다.
수많은 강자들이 세네카 한 명을 상대하기 위해 한발도 물러서지 않고 계속 싸웠다.
그 끝에 마침내 방어막이 붕괴되고, 세네카의 모습이 드러났다.
“…….”
다시 드러난 세네카의 몸은 어느 정도 재생된 상태였다.
몸 곳곳이 부서지고 무너졌지만, 얼굴은 거의 완벽하게 재생되었다.
그런 세네카의 눈빛은 죽지 않은 채였다.
‘아직, 아직이야.’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사울은 검을 치켜들며 공격과 방어를 함께 준비했다.
“……!”
세네카가 눈을 번득이며 손을 뻗었다.
그러자 주변에서 태풍처럼 휘몰아치던 마나가 일제히 반응했다.
불, 물, 바람, 땅.
이 세상을 구성하는, 그리고 마법의 기본이 되는 4대 원소.
주변에 휘몰아치던 어마어마한 마나가 4대 원소로 변했다.
그리고 세네카를 노리는 모든 자들에게 쏟아졌다.
“이건 또 뭐야!”
“으아악!”
다시 한번 쏟아지는 마법 세례에 또다시 여럿이 죽고, 쓰러졌다.
“큭!”
사울도 날아드는 돌덩이에 한쪽 팔을 맞았다.
막거나 피하려 최선을 다했지만, 한쪽 팔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극심한 통증이 느껴지는 게 아무래도 팔이 부러진 듯했다.
다행이라 해야 할지, 사울은 이럴 때 도움이 되는 마법을 배웠다.
다친 팔을 회복시킬 순 없지만 고통을 잊게 할 수는 있다.
“…….”
사울은 비교적 최근에 익힌 ‘감각 차단’ 마법을 사용했다.
부러진 팔의 통증은 물론 감각까지 사라졌다,
이제 한쪽 팔밖에는 쓰지 못하겠지만, 한 팔로도 싸울 수는 있었다.
오래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마법 세례가 계속해서 주변 사람들을 공격하고, 또 공격했다.
“…….”
사울은 세네카의 눈에 핏발이 선 것을 보았다.
그도 필사적이고, 나아가 절박했다.
어떻게든 이 자리에서 자신에게 맞서는 모두를 죽여 버리겠다는 의지가 얽혔다.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연합군 역시 필사적이었다.
마법 세례에 동료가 쓰러져도, 시체를 넘어 세네카를 공격했다.
마법 세례를 뚫고, 다시 세네카에게 공격이 쏟아졌다.
공격이 적중당할 때마다 세네카의 얼굴이 움찔거렸다.
온몸이 산산조각 날 공격을 수십, 수백 번 받고도 평온하던 때와는 달랐다.
이제 세네카도 한계다.
끝까지 밀어붙이면 이길 수 있다.
“세네카! 죽어라!”
누군가 내지른 분노 어린 외침과 함께, 강력한 마법 공격에 세네카를 덮쳤다.
이어 카스텔이 세네카를 향해 몸을 날렸다.
카스텔의 전력을 다한 마법 공격이 세네카를 덮쳤다.
“세네카!”
그때껏 버틴 아이나의 도끼가 세네카에게 날아갔다.
“죽어라!”
베일이 자신에게 날아드는 모든 공격을 뚫고, 불과 얼음의 검을 세네카에게 꽂아 넣었다.
그런 베일의 등 뒤로 날아든 마리안의 화살도 세네카를 꿰뚫었다.
그럼에도 세네카는 아직도 죽지 않았다.
세네카의 눈이 다시 한번 번득이며 손을 휘둘렀다.
“크아악!”
이번에야말로 세네카를 끝장냈으리라 믿고 방심한 것일까.
베일은 세네카의 반격을 막거나 피하지 못했다.
베일의 몸이 멀리 날아가는 것을 본 마리안이 놀라 외쳤다.
“베일! 악!”
베일에게 정신이 팔린 마리안 역시 세네카의 반격을 받고 쓰러졌다.
“…….”
정말 저 세네카란 이름의 괴물은 불사신인 것일까.
‘그렇지 않아.’
이제 정말 세네카도 한계다.
한 번만, 단 한 번만 결정타를 넣을 수 있다면 끝장낼 수 있다.
사울은 아직 멀쩡한 손으로 검을 고쳐 잡았다.
마침 카스텔이 세네카를 공격했고, 세네카도 그런 카스텔에 맞섰다.
물론 카스텔이 밀렸고, 마침 곁에 있던 아이나도 지원에 나섰다.
거기에 세드의 지원 덕분에, 카스텔도 쉽사리 밀리지 않았다.
“전하!”
카스텔이 사울에게 곁눈질을 하며 외쳤다.
지금 세네카의 공격을 막게 도와 달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사울은 그럴 마음이 없었다.
“선생님.”
사울은 카스텔에게 미소를 보내며 검을 고쳐 쥐었다.
“……!”
사울이 무슨 일을 하려는 지 깨달은 카스텔의 표정이 변했다.
사울은 카스텔이 제지하기에 앞서, 몸을 날렸다.
지금 세네카는 카스텔을 상대하는 데 온 힘을 쏟아붓고 있다.
덕분에 세네카는 빈틈 투성이었고, 그에게 결정타를 날릴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은 딱 한 명뿐이었다.
사울.
사울은 기꺼이 그 역할을 맡기로 했다.
가장 위험한 역할이라 하더라도.
사울은 조용히, 그리고 빠르게 세네카를 덮쳤다.
세네카도 그런 사울의 존재를 뒤늦게 알아챘다.
사울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공격을 헤치며 모든 힘과 마력을 검에 집중시켰다.
아마 자신에게는 이 기회가 마지막일 것이다.
사울은 지금껏 익혀 온 모든 마법과 검술 실력을 쏟아부었다.
단 한 번의 공격.
그것에 모든 것을 집중했다.
그런 사울의 몸에 수차례나 세네카의 공격이 스쳐 지나갔다.
몸 곳곳에 통증이 느껴졌고, 개중에는 꽤나 심각한 것도 있었다.
그럼에도 사울은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세네카!”
사울의 일갈과 함께 그의 검과 마법이 세네카의 몸을 꿰뚫었다.
“크… 윽!”
세네카의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것만으로는 치명상이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일격을 허용한 세네카는 순간 집중력을 잃고, 지금껏 시전하던 마법을 중단했다.
그 직후 카스텔의 막강한 일격이 세네카를 덮쳤다.
“……!”
세네카가 카스텔의 일격을 허용했다.
그 결과, 세네카의 몸 대부분이 사라졌다.
머리와 몸 일부만 남은 처참한 몰골로 세네카의 몸이 널브러졌다.
‘드디어……!’
빛이 사라진 세네카의 눈을 본 사울은 깨달았다.
이제 세네카는 회복할 수 없다.
이 몰골이 되었는데 회복할 수 없다면, 살아날 수도 없다.
이제 세네카는 죽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