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화
온몸에 크고 작은 상처를 입고, 신체 일부는 잘려 나가기까지 한 끔찍한 몰골이었지만 놀랍게도 세네카는 멀쩡해 보였다.
뿐만 아니었다.
세네카의 주변에 다시 한번 거대한 힘이 소용돌이쳤다.
이렇게 큰 상처를 입었음에도, 죽기는커녕 약해지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세네카의 주변에 마법 구체가 둘러쌌다.
심상찮은 느낌에 마법 구체를 부수려 공격하는 자도 있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내 세네카가 손을 뻗었고, 지옥이 펼쳐졌다.
세네카의 주변을 감싸고 있던 구체가 흩어지며, 사방팔방에 마법 세례를 날렸다.
혹은 매직 미사일 같은 구체의 마나 덩어리로.
혹은 마나로 만들어진 창칼의 형상으로.
혹은 불이나 물, 혹은 바람과 땅의 형상으로.
어느 쪽이든 하나같이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마력의 기운이 세네카를 둘러싼 모두를 덮쳤다.
“마, 막아… 으아악!”
어마어마한 위력의 공격에 많은 실력자들이 제대로 대응조차 못 하고 죽어 나갔다.
기사가 휘두른 검과 방패도, 마법사가 시전한 마법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개중 실력이 조금 떨어진다는 이유로, 혹은 운이 나쁘다는 이유로 여럿이 죽거나 쓰러졌다.
모두들 가리고 가려 뽑은 실력자들이었음에도 세네카의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무력했다.
“…….”
지옥 같은 시간이 끝나고, 사울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몸을 살폈다.
아니, 살아있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죽지는 않았다.
몸 곳곳에서 또렷하게 느껴지는 통증이 아직 사울이 살아 있음을 말해 주었다.
치명상이나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수준의 부상을 입지도 않았다.
검을 지팡이처럼 써 힘겹게 몸을 일으키려던 사울의 눈에 세네카의 모습이 보였다.
멀지 않은 곳에서 자신을 응시하는 세네카는 평온하고, 또 멀쩡했다.
만신창이가 된 몸은 어느새 회복된 듯 상처 하나 없었다.
‘이건… 이길 수 없겠는데.’
사울은 전생 때 자신이 죽음을 맞이했던 순간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의 절망을 느꼈다.
이런 괴물을 어떻게 이길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죽기는 싫다.
죽는다면 눈 감고 가만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마지막까지 검을 휘두르다 죽으리라.
사울은 이를 악물고 검을 치켜들었다.
동시에 사울의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하!”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달려온 건 다름 아닌 카스텔이었다.
카스텔도 적잖은 부상을 입었지만,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사울에게 달려왔다.
세네카는 그런 카스텔에게 손을 뻗었다.
살과 근육 대신 뼈만 남은 세네카의 손에서 뻗어 나간 검푸른 기운이 카스텔을 덮쳤다.
카스텔도 급히 움직이면서도, 공격을 막기 위해 몸을 놀렸다.
하지만 세네카의 힘은 카스텔을 압도했다.
세네카의 마법을 견뎌 내지 못한 카스텔의 몸이 멀리 날아갔다.
“…….”
절망적인 가운데서도 사울은 검을 들었다.
그런 사울에게 세네카가 나지막이 말했다.
“당신의 존재는 정말로 의외입니다.”
“…무슨 소리지?”
“당신은 나의 안배로 만들어지고, 태어난 존재였는데 말입니다.”
“그게 무슨…….”
순간 사울은 깨달았다.
세네카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설마 내가 예전의 기억을 갖고 있는 게…….”
본능적인 자제력으로 ‘전생’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세네카는 사울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그렇습니다. 당신의 기억은 바로 이 내가 안배한 것입니다.”
“어째서?”
“알려 주고 싶지만, 길게 설명할 시간이 없는 게 안타깝군요. 그럼.”
세네카가 손을 뻗었고, 사울은 그에 맞서 검을 치켜들며 이를 악물었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세네카의 저 공격으로 자신은 최후를 맞게 되지 않을까.
바로 그때.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공격해라!”
호령과 함께 마법 세례가 세네카에게 쏟아졌다.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사울도 휘말릴 뻔했지만, 간신히 마법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게 무슨?”
놀란 사울의 눈에, 어느새 몰려온 한 무리의 군대를 보았다.
군대를 지휘하는 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적이었던 세드였다.
“전하, 괜찮으십니까!”
사울은 대답할 겨를도 없이 재빨리 몸을 피했다.
세네카가 그런 사울을 공격하려 했지만, 다시 세드가 지휘했다.
“신호를 보내면서 계속 공격하라!”
세드가 이끄는 일단의 마법사들이 세네카를 공격했다.
수십 명의 숙련된 마법사들의 일제 공격은 세네카를 해치지는 못했지만, 세네카의 마법을 방해할 정도는 되었다.
덕분에 사울은 세네카의 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힘겹게 몸을 추스른 사울의 눈에 자신 쪽으로 다가오는 카스텔의 모습이 보였다.
멀지 않은 곳에 아이나, 아르멜 등 익숙한 얼굴도 보였다.
“어떻게 된 거예요?”
사울의 질문에 카스텔이 대답했다.
“중군에 있던 세드가 제때 지원을 온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아르멜도 보고를 해 왔다.
“후방의 군대까지 움직여 카멜 산의 잔여 병력의 움직임을 막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 카멜 산의 잔여 병력까지 세네카를 돕는다면 정말 희망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후방의 군대가 제때 움직여 막아 주었다면, 그럴 걱정은 없다.
“이제 정말 세네카만 쓰러뜨리면 된다는 말이군.”
대부분의 실력자들이 세네카를 상대하기 위해 돌격했지만, 세드는 중군 쪽에 남겨 두었다.
이럴 줄 알았던 건 아니지만, 만일을 대비해 남은 병력의 지휘를 일임했다.
그 선택이 사울의 목숨을, 나아가 다른 모두를 구한 것이었다.
“계속 공격하라!”
세드의 지휘 아래에 마법 공격이 이어졌다.
세드의 지휘는 참으로 놀라웠다.
세드가 직접 이끌고 온 수십 명의 마법사들은 지금 상황에서 최대한 효율적으로 세네카를 방해하여 사울 등이 한숨 돌릴 수 있게 만들었다.
거기에다 몇몇은 ‘마법 신호’를 보냈다.
그 마법 신호를 본 후방에서도 공세에 나섰다.
“저 신호에 맞추어 공격을 퍼부어라!”
세드와 함께 오지 못하고 중군에 남아 있던 마법사들도 공격을 시작했다.
먼 거리에서 신호를 보고 움직이는 탓에 공격의 정확도는 낮았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세네카를 방해하는 것만으로도 천금 같은 도움이었다.
“세드에게 감사의 인사를 해야겠군.”
카스텔이 그런 사울에게 말했다.
“감사 인사는 살아남으셔야 할 수 있습니다.”
“알고 있어요.”
이런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이 기회를 노려 세네카를 쓰러뜨리느냐, 혹은 죽느냐이다.
“세네카를 공격하라!”
사울이 다시 명령을 내렸고, 모두들 그런 사울의 명령에 따라 세네카를 공격했다.
그동안 함께 싸워 온 사울의 동료들도, 가르시아 남매와 세드 등 다르센 왕국 사람들까지 함께 움직였다.
아무리 세네카라도, 다시 한번 혼자서 군대와 싸우는 건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수많은 공격이 쏟아지는 가운데, 몇 번이나 공격을 허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세네카는 피해를 받지 않는 듯했다.
뼈와 살이 분리되는 상처를 입어도 금방 상처를 회복하고, 아군을 공격해 왔다.
“이런 괴물을 봤나!”
“으아악!”
점점 연합군의 피해가 늘어갔다.
세드가 새로 데려온 마법사 병력도 어느덧 절반 가까이 죽거나 다쳤다.
그런 마법사를 호위하기 위해 함께 온 기사들 중에서도 적잖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 와중에 세네카의 뼈와 살이 분리되고 다시 붙길 수십 차례.
그럼에도 세네카는 쓰러지지 않았다.
그야말로 불사신을 보는 듯했다.
‘하지만…….’
점점 지쳐 가던 사울이었지만,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세네카의 힘이 점점 약해지고 있음을.
그런 사울의 생각을 확인시키듯 카스텔이 말했다.
“세네카의 힘에도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맞아요. 세상에 불사신이란 없는 법이니.”
적이 공격을 버티고, 또 버티면 이쪽에서 두들기고 또 두들긴다.
끝없이 두들겨 회복 불능으로 몰아놓은 후 결정타를 내리꽂는다.
그러면 이길 수 있을지 모른다.
아니, 지금으로서는 그 방법뿐이다.
사울은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를 명령을 내렸다.
“놈이 지쳐 간다! 놈이 쓰러질 때까지 끝없이 공격해라! 나 또한 마지막까지 물러서지 않겠다!”
“와아아아!”
연합군 모두가 환호성을 내지르며 세네카를 공격했다.
세네카도 지지 않고 그런 연합군에 맞섰다.
가까이에서 자신을 공격하는 자들은 물론, 멀리서 신호를 보고 공격해 오는 마법사들도 예외 없이 세네카의 공격을 받았다.
전투는 점점 치열해졌다.
어느새 세드가 데려온 병력 절반이 전장에 쓰러졌다.
멀리서 신호만 보고 공격하던 부대도 세네카의 공격이 덮쳤고, 역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죽어라! 세네카!”
피투성이가 된 베일이 세네카에게 달려들어 검을 휘둘렀다.
상처 입고 지쳤지만, 여전히 어마어마한 힘이 실린 공격이 세네카를 덮쳤다.
그런 동생 뒤에서 마리안도 활을 쏘았다.
한 발, 한 발에 강력한 몬스터도 단숨에 쓰러뜨릴 수 있을 법한 화살 세례가 쏟아졌다.
이번에도 세네카는 큰 상처를 입었다.
그것도 몸이 부서지고 쪼개지는, 보통 사람은 죽고도 남을 만큼 큰 상처였다.
하지만 상처 입은 몸으로 반격하여 베일을 다시 한번 날려 버리는 괴력을 보여 주었다.
사울과 카스텔도 다시 세네카를 공격했다.
죽을 때까지 공격하느냐, 그 전에 이쪽이 쓰러지느냐.
어차피 남은 건 둘 중 하나다.
사울과 카스텔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세네카를 공격하고, 또 날아오는 공격을 방어했다.
함께 싸운 경험이 많은 덕분에, 이제는 말하지 않아도 죽이 척척 맞았다.
그럼에도 세네카는 역시 강적이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몇 번이나 죽었을 상처를 입고도 곧바로 반격해 왔다.
그때마다 공격을 막고 피하는 데 전념했지만, 역시 한계는 있었다.
“큭!”
신음과 함께 사울의 몸이 크게 뒤로 밀려났다.
막는다고 막았음에도, 세네카의 공격을 완전히 막지 못해 또 한 번 몸에 내상을 입었다.
사울의 몸은 이미 한계에 가까웠다.
몸 곳곳에 피가 흐르고, 또 금방이라도 피가 목구멍을 타고 올라올 것 같았다.
하지만 세네카도 점점 지쳐 가는 게 눈에 보였다.
그가 가진 마력도, 또 상처를 입은 몸이 재생되는 속도도 점점 느려져 갔다.
예상대로 세네카에게도 한계라는 건 분명 존재했던 것이다.
누가 먼저 한계에 도달하느냐.
끝없는 소모전 끝에 마침내 양쪽 모두 점점 한계에 도달했다.
“계속 공격하라!”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독려의 외침과 그에 호응하는 목소리가 점점 작아져 갔다.
연합군 모두가 지쳐 갔고, 또 숫자도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선봉, 그리고 중군에 이르기까지 세네카를 상대할 수 있는 전력은 모조리 쏟아부었기에 더 이상 투입할 전력도 없었다.
그만큼 세네카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뼈와 살이 분리되는 상처를 입어도 금방 복구되던 그의 육체는 더 이상 재생되지 않았다.
혹은 뼈가, 혹은 근육이, 심지어 내장 일부가 드러나 보이는 끔찍한 몰골이었다.
하지만 눈빛만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양쪽 모두 쏟아부을 수 있는 것은 모조리 쏟아부었고, 지칠 대로 지쳤다.
사울도 세네카도 깨달았다.
이제 최후의 충돌만이 남았음을.
“이번 공격으로 모든 것을 끝낸다.”
사울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사울은 다시 한번, 마지막 힘을 짜내어 검을 겨누며 명령했다.
“공격하라!”
세네카도 지지 않고 양손을 펼쳤다.
이번에야말로 모조리 끝장내겠다는 듯, 다시 한번 어마어마한 위력의 마법이 시전되었다.
“으아악!”
“지지 말고 공격해라!”
역시 연합군에서 적잖은 사상자가 나왔다.
하지만 이번 공방전이 마지막이다.
이번에 밀어붙이면 이기고, 반대로 밀리면 질 것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연합군 모두가 이를 악물고 세네카를 공격했다.
세네카의 몸에도 점점 상처가 늘어갔다.
몸이 거의 부서져, 그나마 멀쩡한 얼굴 쪽을 제외하면 그야말로 고깃덩이에 가까운 몰골이 되었다.
사울도, 다른 동료들의 상태도 크게 나을 건 없었다.
움직이지 못할 정도의 부상을 입은 자들은 모두 쓰러졌고, 움직일 수 있는 자들도 모두 피투성이였다.
그리고 사울은 다시 한번 세네카 앞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