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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무능한 적국 왕자였다-228화 (228/232)

228화

사울은 재빨리 머릿속을 정리했다.

베일이 세네카를, 마리안이 모데아와 제온을 상대하고 있다.

하지만 킬리안과 칼립소를 상대하는 자들은 따로 없다.

그렇다면 자신이 그 역할을 맡아야 할 것이다.

“킬리안.”

검을 겨눈 사울은 킬리안의 상태가 정상이 아님을 깨달았다.

킬리안도, 또 칼립소도 얼굴에 표정이 없었다.

얼굴에도 또 눈빛에도 어떤 감정도 없이 공허하기만 했다.

분명 둘 다 감정이 풍부했던 녀석들인데 말이다.

‘어떻게 된 거지? …그렇군.’

사울은 금방 깨달았다.

지금 저들은 정상이 아니며, 그 원인은 세네카에게 있음을.

결국 저들도 세네카의 꼭두각시였던 것이다.

‘세네카, 너는 왜 이렇게까지?’

결국 율렌 섬을 뒤흔든 수많은 혼란의 배후에 세네카가 있었던 것이다.

대체 왜, 그리고 이렇게까지 한 것일까.

의문 속에서 사울은 검을 들었다.

카스텔이 그런 사울에게 말했다.

“전하께서 킬리안을 맡아 주십시오.”

“선생님은요?”

“저 다크 엘프를 처리하고 마리안을 도운 후, 베일을 돕겠습니다.”

합리적인 제안이었다.

세네카와 정면으로 부딪친 베일이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았으니 말이다.

카스텔이라도 빨리 합류하는 게 나을 듯했다.

“알겠어요.”

“조심하십시오.”

“걱정 말아요.”

결국 사울이 킬리안을 상대하게 되었다.

사울은 킬리안 쪽으로 검을 겨누었다.

“…….”

킬리안은 표정 없는 얼굴로 사울을 응시했다.

특유의 광기 어린 눈빛도, 냉소나 분노도 없이 인형처럼 딱딱한 표정으로 사울을 바라보기만 했다.

“킬리안.”

“…….”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사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킬리안이 손을 뻗었다.

몇 번이나 겪어 보았지만,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날카로운 실 공격이 사울을 덮쳤다.

사울은 검을 휘둘러 실을 처내며 말을 마저 했다.

“이 자리에서 너와의 악연을 끝내겠다!”

“…….”

사울의 몸 주변에 불덩어리가 떠올랐다.

여러 개의 불덩어리가 동시다발적으로 킬리안을 덮쳤다.

킬리안은 마나가 깃든 실로 마법 공격을 모조리 막아 냈다.

뿐만 아니라 마법과 함께 덮쳐 온 사울의 검격도 막아 냈고, 거기에 반격까지 했다.

예상한 일이라 사울 역시 큰 문제없이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사울과 킬리안은 몇 차례 더 공방을 주고받았다.

역시 킬리안은 만만치 않았다.

공허한 얼굴에 자아마저 날아간 듯 보였지만, 실력만은 여전했다.

하지만 사울이라고 실력이 줄어든 건 아니다.

계속해서 성장한 끝에 여기까지 왔고, 이제 와서 킬리안과 1:1 대결을 두려워할 이유는 없었다.

카스텔도 그 사실을 알고 사울에게 킬리안을 맡긴 것이었다.

사울은 공세를 취하며, 한편으로는 킬리안의 공격을 막아 내며 전투를 이어 나갔다.

사울의 검과 마법과 킬리안의 실이 수십 차례나 서로를 노리고 오갔다.

“으악!”

그러던 중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아군의 것은 아니다.

바로 카스텔과 싸우던 칼립소의 것이었다.

적의 비명 소리에도 사울은 눈도 돌리지 않았다.

킬리안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충복이 비명을 내질렀음에도, 관심 없다는 듯 사울을 향한 공격을 이어 나갔다.

얼마 후.

마침내 사울은 승기를 잡았다.

자신의 검격을 킬리안이 실로 막은 순간, 이어 날린 얼음의 창이 킬리안을 덮쳤다.

사울의 공격을 막고 반격을 시도하느라 모든 힘을 다 쓴 킬리안은 뒤이어 날아오는 마법 공격을 막을 힘이 없었다.

“……!”

얼음 창이 킬리안의 몸을 꿰뚫었다.

그 순간 킬리안의 눈빛이 달라졌다.

입에서 피를 토하며, 눈을 부릅뜨며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제정신이 돌아왔나.’

죽기 직전에 제정신이 돌아온 모양이었다.

킬리안은 사울을 노려보다 문득 피식 웃었다.

“정말… 허망하군.”

힘겹게 내뱉은 이 한마디가 킬리안의 유언이 되었다.

“…….”

수없이 싸워왔고, 사울을 방해했던 숙적의 최후.

하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는 사울의 마음은 후련함이나 통쾌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용서할 수 없는 놈이며 죽어 마땅하지만, 그 또한 꼭두각시에 불과했으니까.

킬리안의 죽음을 확인한 사울은 눈을 돌렸다.

멀지 않은 곳에 널브러진 칼립소의 시체가 보였다.

그리고 베일과 카스텔이 함께 세네카와 싸우는 광경이 보였다.

또 마리안과 모데아, 제온의 전투가 계속되고 있었다.

사울은 일단 마리안과 합류하기로 했다.

그런 사울 곁에 또 한 명의 동료가 다가왔다.

아이나였다.

“전하.”

“무사했군요.”

“네.”

“우선 마리안을 도와 저들을 쓰러뜨리고, 모두 함께 세네카를 공격하도록 해요.”

“알겠습니다.”

사울은 아이나와 함께 마리안에게 합류했다.

모데아와 제온도 상당한 실력자였지만, 수적 우위에도 마리안에게 밀리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사울과 아이나가 끼어들었으니 버틸 수 있을 리 없었다.

곧 모데아도, 제온도 최후를 맞이했다.

“이제 남은 건 세네카뿐인가.”

세네카 쪽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베일과 카스텔이 함께 싸우고 있음에도, 확연히 밀리는 게 눈에 보였다.

마리안이 자신의 활을 들어 세네카를 겨누었다.

건틀렛에 장착된 자그마한 활.

무기라기보다는 장난감에 가까워 보일 만큼 작고 초라했지만, 겉보기와는 달리 대단히 위협적인 무기다.

마리안이 시위를 당겼고, 화살이 날아갔다.

한 번 시위를 당기고 쏘았을 뿐인데 여러 발의 화살이, 그것도 각기 다른 궤도와 속도로 세네카를 덮쳤다.

세네카는 그런 마리안의 공격을 인지했을 것임에도 눈에 띄는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마리안이 날린 화살은 세네카를 꿰뚫지 못했다.

조준도, 화살이 날아가는 궤적도 정확했지만 날아가는 도중 가로막혔다.

마법 방어막이었다.

그사이 사울은 마리안, 아이나와 함께 베일과 카스텔 곁으로 갔다.

“선생님.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카스텔과 베일 몸 곳곳에 상처가 보였다.

반면에 세네카는 상처 하나 입지 않고 멀쩡했다.

베일은 세네카에게 불과 얼음이 휘감긴 검을 겨누며 말했다.

“저런 괴물은 처음이오.”

“우리 모두가 힘을 합친다면 어떨까?”

“해 봐야지. 어차피 못 이기면 다 같이 죽을 테니까.”

베일은 이길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만큼 세네카의 힘이 어마어마하게 강했던 것이다.

“세네카…….”

세네카는 거대한 마나의 흐름 한가운데서 모두를 응시하고 있었다.

베일과 카스텔 두 명을 상대했음에도 상처 하나 없이, 하다못해 지친 기색도 없었다.

그야말로 괴물이다.

모두가 힘을 합친다 해도 이길 수 있을까.

“전하.”

아르멜이 최정예 병력 몇을 이끌고 다가왔다.

“다른 곳은 어떻게 되었나?”

“모두 제압했습니다.”

“그럼 세네카만 쓰러뜨리면 모든 게 끝인가?”

“그렇긴 합니다만…….”

세네카를 제외한 모든 적이 제압되거나 쓰러졌다.

세네카 혼자서 군대와 맞서는 상황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미 아군의 승리가 확정된 것과 다름없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세네카를 쓰러뜨리지 않는 한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사울이 목소리를 높였다.

“세네카!”

“…….”

“이 자리에서 널 쓰러뜨리고 이 모든 것을 끝내겠다!”

세네카는 대답 대신 손을 뻗었다.

검푸른 마나 덩어리가 광범위하게 흩어지며 사울 일행 모두를 노렸다.

사울과 일행 모두가 방어에 나섰다.

각자 자신의 몸을 지키며, 동시에 곁의 동료들을 지키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쾅! 쾅!

수십 대의 공성 병기가 한꺼번에 성벽을 때리는 듯한 엄청난 굉음이 잇따라 울려 퍼졌다.

사울은 힘겹게 공격을 막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감탄했다.

이 정도의 공격을 혼자서 받았다면, 뼈도 못 추렸을 것이다.

적이 가진 악의나 사악함과는 별개로, 감탄밖에는 나오지 않을 만큼 어마어마한 힘이었다.

물론 적에게 감탄하고만 있을 순 없다.

쏟아지는 공격을 막던 사울과 일행 모두의 머릿속에 한 가지 계획이 세워졌다.

‘저 무자비한 마법 세례를 뚫고 공격할 수만 있다면…….’

확실히 세네카의 힘은 어마어마했다.

힘 대 힘의 정면 대결로는 주변에 있는 아군 모두가 힘을 합쳐도 불리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쪽에는 여러 명의 실력자들이 있다.

그것도 각기 다른 능력을 가지고, 다양하게 움직일 수 있는 실력자들이다.

이 점을 잘 활용하여 이 마법 세례를 뚫고 세네카를 직접 공격할 수만 있다면…….

모두의 생각이 일치된 가운데, 카스텔이 사울에게 말했다.

“저와 베일이 세네카의 공격을 모두 받아 보겠습니다.”

“그 틈을 노려 나와 다른 사람이 공격하라는 말이지요?”

“네, 전하.”

이 무지막지한 힘을 둘이서 받아야 하는 카스텔과 베일.

그리고 마법 세례를 뚫고 직접 세네카를 공격해야 할 사울과 다른 사람들.

어느 쪽이든 큰 위험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전략이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최선의 전략으로 보였다.

“알았어요.”

모두의 의견이 빠르게 모아졌다.

먼저 카스텔과 베일이 한꺼번에 세네카에게 몸을 날렸다.

기회를 엿봐 전력을 다한 두 사람의 공격에 세네카도 무시하지 못하고 두 사람에게 전력을 집중시켰다.

“지금이다!”

세네카가 카스텔과 베일에게 신경을 쓰는 사이, 다른 모두가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각자 할 수 있는 최고의 공격, 그리고 최고의 방어를 함께 준비하면서 말이다.

“…….”

세네카는 여전히 무표정했기에 감정을 읽을 수 없었다.

위기를 느낀 것일까, 혹은 같잖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사울은 일말의 불안감을 느꼈지만,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번 공격으로 세네카를 쓰러뜨리고 이 싸움을 끝내기를 바랄 뿐.

세네카의 주력 공격은 여전히 카스텔과 베일을 향했지만, 다른 자들도 무시하지는 않았다.

혹은 마나로 만들어진 칼날이, 혹은 마법으로 만들어진 불과 물, 혹은 바람과 땅의 세례가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하나하나가 무시할 수 없는 위력이 실린 막강한 공격이었다.

“으아악!”

“크윽!”

아르멜이 데려온 정예 몇 명이 쓰러졌다.

연합군에 소속된 기사나 마법사 중에서도 최고 수준의 실력자였지만, 세네카의 공격을 이기기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모든 아군을 쓰러뜨리진 못했다.

몇몇은 쓰러졌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이 더 많았다.

사울 또한 쏟아지는 마법 세례를 피하고 막으며, 마침내 세네카에게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

“……!”

검을 겨눈 세네카와 사울의 눈이 마주쳤다.

이 지경까지 왔음에도 세네카는 눈살 한 번 찌푸리지 않았다.

사울은 커지는 불안감을 떨쳐 내곤, 전력을 다해 준비한 마법을 시전하며 검을 뻗었다.

“죽어라!”

“끝장내 주마!”

사울 외에도 적지 않은 자들이 세네카의 공격을 넘어 그의 몸을 노렸다.

하나하나 막강한 힘이 실린 창칼과 마법, 화살 세례가 한꺼번에 세네카를 덮쳤다.

그 와중에도 세네카의 주력 공격은 여전히 카스텔과 베일을 향했고, 때문에 자신을 향한 공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해냈다!”

누군가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 말대로 몇몇 공격이 세네카의 몸을 관통했다.

그중에는 사울이 날린 검도 있었다.

마법으로 세네카를 공격하며 빈틈을 만든 뒤, 직접 검을 찌르는 전략을 펼친 게 주효했다.

“…….”

검에 찔리고, 기타 마법과 무기 세례에 세네카의 몸은 순식간에 만신창이가 되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즉사를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세네카는 죽지 않았다.

“……!”

자신의 칼에 맞은 세네카의 눈빛을 본 순간, 사울은 깨달았다.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세네카는 살아 있고, 심지어 멀쩡하다고.

사울은 황급히 세네카의 몸에서 검을 뽑은 뒤 방어 태세를 취했다.

사울뿐만이 아니었다.

몇몇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멍하니 있었지만, 다른 자들은 본능적인 불길함을 느끼고 방어 태세를 취했다.

“정신 차려라! 세네카는 죽지 않았다!”

사울이 언성을 높이자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자들도 뒤늦게 방어 태세를 취했다.

그 직후.

“이제 끝내도록 하지요.”

나지막한 말과 함께 세네카가 양손을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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