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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무능한 적국 왕자였다-225화 (225/232)

225화

“전군, 돌격하라!”

양쪽에서 모두 공격 명령이 떨어지고, 수만의 병력이 함성을 내질렀다.

“와아아아!”

“키에에엑!”

이성이 남아 있는 병사들의 외침과, 미친 짐승과 다를 바 없는 버서커들이 함께 외쳤다.

그리고 수만의 병력이 전장에서 부딪쳤다.

“카멜 산까지 밀어붙여라!”

“침입자들을 몰아내라!”

“키에에엑!”

양측에서 독려의 외침이 오가는 가운데, 버서커 특유의 날카로운 외침 소리가 전장을 뒤흔들었다.

사울과 연합군은 여러 번 버서커와 싸운 적 있다.

그에 맞춰 파훼책을 내놓았다.

“버서커의 돌격을 막아라!”

“선봉 부대는 철저히 방어에 전념하라!”

버서커의 돌격에 마주한 부대들은 일제히 명령대로 방어에 나섰다.

무기와 방패를 들어 방어 태세를 취하고, 마법사들이 병사들을 도왔다.

그 결과, 다소 희생은 있었지만, 보통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신체 능력을 가진 버서커 무리의 돌격을 막아 내는 데 성공했다.

“지금이다! 모두 공격하라!”

버서커의 돌격을 막은 가운데, 중군과 후방에 있던 궁수와 마법사가 일제히 버서커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미쳐 날뛰는 버서커도 비 오듯 쏟아지는 화살이나 마법 세례에는 별수 없었다.

괴성을 지르며 버서커들이 쓰러지는 가운데, 연합군의 공격은 계속되었다.

방어에 전력하여 적의 돌진을 막아 내고, 기세를 꺾은 뒤 중군과 후방에서 공격해 적의 숫자를 줄여 나갔다.

“적 숫자가 줄었다!”

“돌격하라!”

버서커 숫자를 줄이는 데 성공한 연합군은 본 병력으로 부딪쳤다.

숫자가 크게 줄었음에도, 버서커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죽지 않은 자들은 멀쩡하든, 혹은 마법과 화살 세례에 큰 상처를 입었든 개의치 않고 연합군의 공세에 맞섰다.

여전한 버서커의 기세를 때려 부순 건, 더 강력한 힘이었다.

“크아아악!”

전장을 질주하던 한 무리의 버서커와 한 마법사가 마주했다.

선봉에서 움직이던 검은 마녀, 카스텔이었다.

버서커가 카스텔에게 달려들었고, 카스텔은 손을 뻗었다.

검푸른 빛이 말미잘처럼 여러 가닥의 촉수가 되어 버서커들을 꿰뚫었다.

한 번의 마법에 열 명도 넘는 버서커가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멀지 않은 곳에서는 가르시아 남매도 활약했다.

“불쌍한 놈들. 모조리 신의 곁으로 보내 주마!”

베일의 불과 얼음의 칼날. 그리고 마리안의 화살이 적들의 숨통을 끊어 나갔다.

세 명 모두 무리는 하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적에게는 재앙 그 자체였다.

사울은 중군에서 그 모든 광경을 바라보았다.

혹은 아군을 지휘하거나 보호를 받으며, 혹은 마법으로 직접 아군 지원에 나섰다.

지금까지는 순조로웠다.

무엇보다 걱정했던 적 버서커를 예상보다 빠르게 소진시켰다.

어느새 버서커는 전멸하다시피 하였음에도 연합군에는 큰 피해가 없을 정도였다.

‘지금까지는 순조롭군. 하지만…….’

확실히 순조로웠지만, 지나치게 순조로웠다.

카멜 산이 짜낼 수 있는 모든 것을 짜낸 것 치고는 이상하게 약해 보였다.

이 전투에서 패하면 최소한 대족장과 그를 따르는 일파는 전멸할 것이며, 어쩌면 카멜 산 세력이 모조리 일소될 것임에도.

사울은 산 쪽을 살폈다.

카멜 산에도 적지 않은 방어 병력이 머무르고 있다고 들었다.

그 방어 병력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 게 신경 쓰였다.

카멜 산을 버리지 않는다 해도, 전략상 유의미한 행동을 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것인데.

‘전력을 아끼려는 건가.’

세네카는 카멜 산으로 연합군을 끌어들여 전멸시킬 생각인 것일까.

하지만 아무리 지형적으로 유리하다 해도, 병력이 부족한데 연합군이 산을 포위하도록 하는 건 좋은 전략이 아니다.

만에 하나 산 위에서 패하면 문자 그대로 전멸을 면할 수 없을 테니까.

‘세네카는 그 모든 것을 고려하면서 어떤 흉계를 꾸미는 것일까. 아니면…….’

예상외로 잘 풀리는 전황이 의아했지만, 그렇다고 이겨 가는 싸움을 포기할 순 없었다.

사울은 계속 전투에 참여하면서 적의 상황을 주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버서커는 전멸했다.

카멜 산의 다른 병력도 점점 무너지기 시작했다.

“후퇴하라!”

마침내 카멜 산의 병력이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본 사울도 명령을 내렸다.

“카멜 산을 포위하면서 군을 정비한다. 서둘러라!”

“알겠습니다!”

연합군은 굳이 쫓겨난 적들을 추격하기보다는, 카멜 산 포위에 전념했다.

카멜 산 전체를 포위하는 튼튼한 포위망이 만들어진 가운데, 사울은 군사 회의를 소집했다.

“아군과 적의 피해는 어떤가?”

“아군 피해는 사망자와 당장 전투에 참여할 수 없는 부상자를 합쳐 약 2천 정도입니다.”

“적의 피해는?”

“버서커는 거의 전멸했습니다. 그 외의 적 병력 또한 상당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추정치지만 절반이 죽거나, 생포되었고, 나머지도 큰 부상을 입은 모양입니다.”

한 번의 전투로 적의 주력군에 회복이 어려울 만큼의 큰 피해를 입혔다.

분명 대승이라 할 수 있었지만, 마냥 승리를 기뻐할 때는 아니었다.

사울은 선봉에서 앞장서 적들을 상대하던 카스텔에게 물었다.

“선생님이 보기에 적들의 동태가 어떠하던가요?”

“예상보다 약했고, 너무나도 쉽게 무너졌습니다.”

사울은 카스텔과 함께 선봉을 맡은 가르시아 남매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했다.

“그대들이 보기엔 적들의 동태가 어떠하던가?”

마리안이 먼저 대답했다.

“카스텔의 말대로예요. 너무 쉽게 무너졌어요.”

베일마저도 비슷한 의견을 냈다.

“적들이 우리 상상 이상으로 무능하던가, 무언가 꿍꿍이가 있다는 뜻이오.”

“역시 그런가.”

사울은 회의에 참석한 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적들이 우리 생각보다 더 무능하다면 다행이겠지만, 내가 아는 세네카는 그렇게 무능한 자가 아니다.”

아이나가 의견을 냈다.

“전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물러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어쩌면 적들이 그것을 바랄지도 모릅니다.”

“맞아요. 결판을 내기 전에 물러설 순 없어요. 카멜 산을 향한 포위망을 굳히고, 개미 한 마리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해요. 문제는 이제부터 산을 올라야 한다는 것.”

카멜 산에는 대규모의 산성 같은 게 만들어지진 않았다.

하지만 공격하기 쉬운 구조는 결코 아니었다.

몇 번 드나든 적 있는 사울은 카멜 산의 구조를 잘 알고 있었다.

높고 험한 길도 많으며, 곳곳에 만들어진 거주지에서 시가전이 벌어질 가능성도 큰 구조다.

성벽 같은 건 없을지 모르나, 그 못지않은 난관이 예상되었다.

몇 번 손님으로 방문했을 때와는 다르다.

그때는 마법으로 조종되는 나뭇가지 등을 이용해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기대할 수 없다.

사울은 물론, 전 병력이 산을 타고 올라가 산 정상에서 기다리고 있을 세네카와 맞서야 하리라.

“힘들겠지만 정공법 이외의 방법은 없을 거예요. 다행인 건 어떤 길을 이용해야 할지는 파악되었다는 것.”

카멜 산은 폐쇄적인 구조였지만, 첩자와 사오니엘 같은 귀순자를 통해 내부 구조를 자세히 파악할 수 있었다.

그 정보를 토대로 산으로 오르는 진군로를 파악했다.

지금 회의에는 사오니엘을 비롯하여 카멜 산 사정에 밝은 자들도 몇 참석해 있었다.

사울은 그들에게 진군로를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이 길로 진군하면 문제없겠나?”

“이미 말씀드렸듯 확신할 수는 없소. 단지 그나마 안전하고, 또 파괴할 수 없는 길이라 이 길을 권했을 뿐이오.”

“알았다.”

사오니엘이 점찍은 진군로는 카멜 산에서 물자 수송로로 쓰는 길이었다.

몇 갈래의 물자 수송로로 나누어 진군하면서 고지대를 점거한 적과 싸워야 한다.

피해가 클 건 자명했지만, 다른 방법은 없었다.

“그럼 내일 아침에 출병하는 것으로 하겠어요.”

“네, 전하.”

전투의 첫 고비는 무사히 넘겼다.

하지만 아직 첫 고비일 뿐이다.

* * *

다음 날 아침.

“모두 진군하라!”

연합군은 일제히 카멜 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인간 놈들을 막아라!”

“인간 놈들이 카멜 산에 발을 들이도록 하지 마라!”

카멜 산의 반격도 거셌다.

고지대를 점검한 이종족 부대가 각 종족이 가진 특기와 기술을 총동원하여 산을 넘는 연합군을 공격했다.

“마법사들은 모두 지원에 나서라!”

“오늘 안에 산 정상에 다다라야 한다!”

산 위아래에서 화살과 마법, 창칼과 바윗덩이가 오갔다.

어제와는 달리, 오늘 전투에서는 연합군의 피해가 컸다.

그렇다고 물러설 수는 없었다.

첫 번째 시도에서 실패하면 더더욱 피해가 커질 뿐이다.

보급품도 많지 않기에, 최대한 빨리 카멜 산을 점령할 필요가 있었다.

가능하면 하룻밤 사이에 카멜 산 정상에 오른다.

이것이 사울의 계획이었고, 다른 이들도 동의했다.

사울은 총력전을 펼쳤고, 스스로 직접 산 위로 올랐다.

사울이 있는 부대는 물론, 다른 부대들도 몇 개의 진군로를 택해 각각 산을 올랐다.

“적들을 물리치고 진군로를 확보하라!”

“적들이 더 오르지 못하도록 하라!”

양쪽에서 내지르는 독려의 외침 소리에 귀가 멍멍할 정도였다.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하고, 많은 피가 흐르는 전장.

불과 두어 시간 만에 어제 하루 종일 싸운 것보다 더 많은 연합군 사상자가 발생했다.

하지만 성과는 있었다.

어제 입은 피해가 워낙 큰 탓인지, 오늘도 밀리는 건 카멜 산 쪽이었다.

고지대를 선점하고, 적재적소의 위치에서 온갖 수단을 동원해 아군을 공격했음에도, 진군을 막지는 못했다.

“인간 놈들이 대족장님께 향한다!”

“막아라!”

사울은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이종족 병사들의 모습에서 절박함을 느꼈다.

아마 저들은 지금 자신들의 패배가 곧 율렌 섬 이종족의 패배라 생각하는 것이리라.

틀린 말은 아니다.

지금 산 정상에 있을 대족장 세네카는 율렌 섬 이종족 모두를 대표하는 자다.

그가 죽으면 이종족의 구심점이 사라지는 것이고, 이종족들은 패배하는 것이다.

수백 년 전처럼 이종족이 인간의 노예가 되는 일은 없겠지만, 이종족에게 뼈아픈 패배라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물론 그것이 전투를 그만둘 이유는 되지 못했다.

무슨 대가를 치르는 한이 있더라도 세네카와는 결판을 내야 한다.

그를 위해 카멜 산까지 왔고,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있으니까.

그러는 사이 마침내 목적지인 정상이 가까웠다.

본래라면 정상으로 향하려면 복잡한 길을 따라가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마법사들은 길을 만들어라!”

“알겠습니다!”

이럴 때를 위해 마력을 보존해 온 마법사 수십 명이 나섰다.

지금껏 마력을 보존해 온 마법사들이 일제히 마법을 시전했고, 지형을 바꿨다.

“무너진다!”

복잡하게 얽혀 있던 나무가 무너지고, 흙과 돌이 주변에 엉겨 붙었다.

이러한 ‘마법 공사’ 끝에, 정상으로 향하는 길이 만들어졌다.

“전하! 다 되었습니다!”

“…….”

기존의 나무 통로는 파괴하고, 나무, 흙, 돌 따위가 얽혀 들어 새로운 길이 만들어졌다.

이제 산 정상은 코앞이었다.

“세네카는 아직인가.”

“아직 그를 보았다는 보고는 없습니다!”

“그렇군. 모두 주의하며 진군하라!”

연합군은 다시 진군하기 시작했다.

사울이 이끄는 부대도, 다른 진군로를 택한 부대도 나름대로 길을 만들어 정상으로 향했다.

그리고 마침내 목적지에 도달했다.

“생명수로군.”

생명수.

백 명도 넘는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이 있고, 대족장 세네카의 처소도 있는 카멜 산의 상징과도 같은 나무.

몇 번이나 보았을 때처럼 지금도 생명수는 살아 있었다.

그냥 살아 있는 게 아니라,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저 나무가 우릴 공격하는 게 아닐까?”

“그럴지도 모르니 조심해.”

병사들이 수군거렸다.

사울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 여겼고, 더욱 주의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다행이라 해야 할지, 생명수가 거대한 나뭇가지를 들어 연합군을 공격하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사울이 이끄는 부대도, 또 다른 부대도 천천히 생명수 주변에 몰려들었다.

어느새 연합군은 산 정상에 위치한 생명수를 포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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