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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무능한 적국 왕자였다-224화 (224/232)

224화

중군에서 전황을 살핀 사울이 중얼거렸다.

“당장은 순조롭군.”

세드가 받아 말했다.

“계속 순조롭게 진군하며 카멜 산에 도착하기만 해도 바랄 게 없을 것이오만.”

“쉽지는 않겠지.”

사울의 예상대로 진군은 쉽지 않았다.

카멜 산에 가까이 갈수록 앞을 막는 적들의 방해 공작도 점점 치열해져 갔다.

“아군이 독 늪에 빠졌다고?”

“네. 마법으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수색을 게을리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철저히 확인했습니다만, 워낙 교묘히 숨겨진 터라…….”

지리에 훤한 카멜 산에서는 온갖 방법으로 연합군을 괴롭혔다.

적이 요충지를 선점하고 소수의 병력으로 버티는 전략은 어렵잖게 대응할 수 있었다.

카스텔에 가르시아 남매라는 강자들이 나설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외에도 온갖 기상천외한 방해 공작이 잇따랐다.

독을 이용한 함정.

지형을 절묘하게 활용한 부비 트랩.

숨어 있다가 아군 요인을 저격하고 이내 사라지는 저격수들까지.

그야말로 최소한의 인원과 자원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며 진군을 방해했다.

이럴 땐 진군 속도를 낮추고, 신중하게 움직이는 게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겨를이 없었다.

“전하! 후방에서의 보고입니다!”

“무슨 일이지?”

“버서커 무리가 움직이고 있다고 합니다!”

“숫자는?”

“천 명은 되어 보이는 무리가, 그것도 여럿이랍니다!”

버서커 천 명이라 해도 가벼이 볼 수 없는데 그런 무리가 여럿이다.

“놈들이 어디로 움직이고 있지?”

“절반은 카멜 산 쪽으로, 나머지 절반은 대신전으로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반갑지 않은 소식이었다.

대신전을 수비하고 주변 영역을 지키고 관리하기 위한 병력은 남겨 두었다.

하지만 수천에 달하는 버서커의 공격을 막아 낼 정도는 아니었다.

연합군의 주력군은 모두 카멜 산 공격에 참여했으니까.

전혀 뜻밖의 소식은 아니다.

카멜 산에서 이렇게 움직일지 모른다는 생각은 했고, 대책도 세워 두었다.

문제는 예정대로 대책이 잘 돌아가느냐이다.

다행히 얼마 후, 또 다른 전령이 도달했다.

“전하!”

“무슨 일인가?”

“드레이크 러셀 백작님이 이끄는 부대가 대신전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그런가!”

바로 사울이 기다리던 소식이었다.

드레이크 러셀 백작은 가멜다 왕국 최고의 군인으로 꼽히는 명장이다.

6년 전쟁 때도 큰 활약을 했고, 나이가 든 지금도 여전히 막강한 실력을 발휘하며 큰 활약을 펼치고 있는 명장이었다.

“백작이 이끄는 병력은?”

“정예병 1만을 이끌고 왔다고 합니다.”

“그 정도면 충분해.”

다르센 왕국 최고의 명장이 이끄는 1만이라면, 카멜 산이 대신전에 무슨 수작을 부리든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마 대신전 주변을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대신전 뿐만이 아니라 율렌 섬 전체에 카멜 산의 공작이 이어지고 있어. 백작이 아무리 명장이라지만 대신전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벅차겠지.’

지금 보유한 병력만으로 카멜 산을 무너뜨려야 한다.

사울은 새삼 결의를 굳혔다.

“계속 진군한다!”

“네, 전하!”

진군은 계속되었다.

사울은 최대한 병력을 보존하면서 빠르게 진군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말로는 쉬울지 모르나. 실제로는 어려운 일이다.

카멜 산의 방해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다행히 이쪽에도 길잡이는 있었다.

대신전에서 중립 지대 사정에 밝은 성기사와 이종족을 최대한 보내 준 덕분이었다.

카멜 산에 가까워질수록, 그들의 도움이 컸다.

“진군로를 어떻게 잡으면 되겠는가?”

“우측 길은 평탄해 보이지만 조금만 가면 늪지대가 나옵니다.”

“좌측 산길은?”

“당장은 험해 보이지만, 군대가 진군할 만한 길은 있습니다. 꽤 큰길이라 길을 무너뜨려 막는 건 어려울 겁니다.”

데려온 성기사와 이종족의 조언을 들은 사울은 결정했다.

“좋다. 그럼 좌측 길로 향한다.”

들은 대로 좌측 길은 쓸 만한 진군로였다.

척박한 산지이지만, 꽤 큰길이 나 있어 수만의 대군이 이동하는 데도 큰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카멜 산의 방해가 들어왔다.

“전하, 적의 매복입니다!”

“침착하게 대응하라! 현재 선발대에는 가르시아 자작이 가 있나?”

“네, 전하!”

가르시아 남매도, 카스텔도 천하무적은 아니다.

진군 내내 쉬지 않고 계속 싸울 수는 없다.

이에 사울은 아군 중 최강의 실력자 세 명을 돌아가면서 최전선에 배치시켰다.

돌아가면서 휴식을 취하게 하여 체력을 보존토록 한 것이다.

합리적이지만, 위험을 감수한 전략이기도 했다.

아무리 가르시아 남매라도, 또 카스텔이라도 비슷한 실력자의 도움 없이 선봉에 나서는 건 위험 부담이 컸다.

물론 함께 행동할 정예 병력을 붙였지만, 비슷한 수준의 실력자의 도움을 받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는 컸다.

결국 선택의 문제였다.

효율과 위험성을 고려하면서 바람직한 선택을 내리는 것 말이다.

사울은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위치에서 선택을 했고, 모두들 그 선택을 따랐다.

다행히 그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전하, 가르시아 남작이 적들을 물리쳤답니다!”

“알았다. 주의를 살피며 계속 진군하도록.”

보고를 받은 사울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전방을 맡고 있는 건 마리안이었다.

동생보다 냉정, 침착하지만 전투 실력은 동생보다 다소 떨어지기에 혼자 활약하는 건 다소 걱정되었다.

그렇지만 다행히 임무를 다해 주었다.

진군은 계속되었다.

소규모의 방해는 선발대가, 대규모의 방해는 전군이 나서 제지하며 계속 움직였다.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마침내 연합군은 카멜 산의 코앞까지 도달했다.

“전하! 저기 카멜 산입니다!”

“그래. 정말 오랜만이군.”

여전히 카멜 산은 거대하고, 또 아름다웠다.

하지만 카멜 산 주변에 수많은 병력이 주둔하고 있었다.

연합군은 여전히 3만에 가까운 전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진군 중 약간의 전력 손실이 있었지만,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병사들의 사기도, 또 체력도 전투를 이어 나가기에 충분했다.

그렇다면 적 상태는 어떨까.

“적 병력은?”

“약 1만 5천 정도로 보입니다.”

“1만 5천이라.”

머릿수로는 이쪽이 두 배는 더 많다.

하지만 전력으로 치면, 오히려 카멜 산 쪽이 유리하다 볼 수도 있었다.

1만 5천의 병력 중 5천은 버서커다.

거기에다 저쪽은 산을 끼고 있지 않은가.

그것도 야트막한 언덕 따위가 아니라 규모도 크고, 수많은 이종족이 거주하고 있는 산이다.

사실상 산을 무대로 공성전을 치러야 할 것이다.

연합군과 카멜 산의 병력이 진형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여기까지 왔군.’

사울은 양 병력의 움직임을 바라보며 마음을 굳혔다.

생각해 보면 참으로 기묘한 운명이었다.

전생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적국이었던 나라의 왕자로 환생했다.

그리고 복수를 위해 성장하리라 다짐하며 수많은 일들을 해 왔고, 여기까지 왔다.

이 전투에서 이기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그게 무엇이든 사울의 삶, 나아가 율렌 섬 전체의 운명이 크게 바뀔 것이다.

중요한 건 살아남고, 또 승리하는 것이다.

살아남지 못하면, 또 승리하지 못하면 전생 때처럼 모든 것이 허망하게 사라질 것이다.

“이겨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마음을 다잡던 사울은 낯익은 기척에 시선을 돌렸다.

“선생님.”

“…….”

말없이 카스텔은 사울에게 예를 표했다.

“전투 준비는 끝났나요?”

“네, 전하.”

사울은 전장과 카스텔을 번갈아 보며 작게 웃었다.

“생각해 보면 선생님과 만나고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어요.”

“네, 전하.”

“선생님에게는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선생님이 없었다면 이렇게 강해지지도 못했을 테고,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테니까.”

사울의 인사에 카스텔도 말했다.

“감사해야 할 건 저입니다.”

“그래요?”

“전하께서는 저에 대해 알고 계시지요. 제 과거에 대해.”

“알고 있어요.”

카스텔의 과거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소수다.

그리고 사울은 그 과거를 정확히 아는 소수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카스텔은 말하자면 ‘만들어진 존재’다.

태어나기론 세상의 다른 피조물처럼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나왔지만, 정체불명의 부모는 카스텔이 태어나기 무섭게 어디론가 버렸다고 들었다.

그렇게 버려진 카스텔은 다르센 왕국의 유력 귀족 가문인 스펜서 가문으로 들어갔다.

스펜서 가문에 입양되거나, 하다못해 하녀로 들어간 것도 아니었다.

명문 마법사 가문인 스펜서 가문은 인체 실험에 빠져 있었다.

다르센 왕국도, 가멜다 왕국도 엄히 금지한 인간이나 이종족을 이용한 인체 실험의 실험체로 쓰기 위해 사라져도 찾을 사람 없는 고아들을 모았고, 카스텔도 그중 하나였다.

그리고 카스텔은 가장 뛰어난 실험체로서, 20년 넘게 스펜서 가문 저택에서 감금당한 채 온갖 실험에 시달렸다.

그 결과 카스텔은 어마어마한 힘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스펜서 가문이 그 힘을 감당할 수 없는 날이 왔고, 그날이 스펜서 가문의 최후였다.

오랜 기간 실험체로 고통받던 카스텔은 자신의 막대한 힘으로 스펜서 가문 저택에 있던 모두를 남김없이 죽여 버렸다.

20년 넘게 카스텔을 실험체로 삼으며 온갖 짓을 자행한 스펜서 가문 구성원 모두가 정말 고통스럽게, 그리고 잔혹하게 죽었다.

현장을 본 사람들이 ‘지옥의 풍경’이라 할 만큼 말이다.

그렇게 복수를 마친 카스텔이 일시적으로 힘이 다해 쓰러진 것을 왕국군이 찾아냈고 카스텔은 왕실의 비호 아래 들어갔다.

‘실험체’ 카스텔이 위험한 존재라며 없애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젊은 시절의 마렌 왕이 카스텔을 비호한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후 카스텔은 몇 년간 왕실의 보호를 받으며 인간다운 모습을 갖춰 나갔고, 6년 전쟁에서 대활약을 하며 ‘검은 마녀’ 혹은 ‘검은 흉성’이 되었다.

“생각해 보면 선생님도 참 고생이 많았지요. 아바마마의 명령을 받을 때도 그렇고, 날 따라다닐 때도 그렇고.”

“저는 단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스펜서 가문을 멸망시킨 이후론 말입니다.”

“그런가요.”

“네. 전하의 아버님께서는 절 살려 주신 은인입니다. 그리고 전하는… 제가 살 이유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내가요?”

“그렇습니다.”

카스텔이 사울을 안았다.

갑작스러운 일에도 사울은 당황하지도, 카스텔을 물리치지도 않았다.

“가르시아 남매에게 패하고 저는 정말 불안했습니다. 이제 쓸모없는 존재가 된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네. 전하 덕분입니다. 전하를 가르치면서 전 삶의 의미를 되찾았습니다.”

“…나도 마찬가지예요.”

“네?”

“선생님을 만나기 전부터 내 삶의 의미는 있었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해 준 건 선생님이에요.”

카스텔은 사울의 말뜻을 알아채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울은 피식 웃으며 카스텔에게 말했다.

“이번 전투가 끝나면 할 말이 참으로 많을 것 같아요.”

“그렇습니까…….”

“자. 그럼 함께 싸우도록 해요. 모두 살아남고 또 이겨야지요.”

사울의 말에 카스텔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 목숨을 바쳐 전하를 지키겠습니다.”

“그런 말은 하지 말아요.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하니까.”

“네, 전하.”

* * *

카멜 산 인근 벌판에 수만의 군대가 집결했다.

3만에 달하는 연합군, 그리고 1만 5천 가량의 카멜 산 군대.

언뜻 보기에는 연합군이 두 배로 유리해 보였지만, 실상은 달랐다.

카멜 산의 군대 선봉을 맡은 건 악명 높은 버서커였다.

게다가 카멜 산을 지키는 병력이 따로 남아 있었다.

이에 사울은 지금까지 들어온 정보를 분석하고, 의논 끝에 전략을 결정했다.

“모든 전력을 동원하여 최대한 빨리 적을 제압하고 카멜 산까지 밀어붙이겠어요.”

“네, 전하!”

위험 부담이 큰 작전이지만 지금으로서는 최선책이었다.

장기전도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택하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중립 지대가 적의 안마당이나 다름없는 탓에 보급이 쉽지 않았다.

다행이라 해야 할지, 적들도 단기전을 바라는 이쪽의 의도대로 움직였다.

수만의 대군이 앞마당에서 오랫동안 활개 치게 놔둘 수 없었는지, 결전을 서두르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카멜 산 인근 벌판에서 모든 준비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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