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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무능한 적국 왕자였다-210화 (210/232)

210화

버서커의 난동에 던칸도, 가신들도, 휘하 병력들도 가만있지 않았다.

“저자들을 모조리 베어라!”

영주 저택 안팎에서 치열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던칸은 이럴 때를 대비해 철저한 준비를 해 둔 상태였다.

언제 왕국에서 자객 등을 보낼지 몰라 영주 저택 안팎에 최정예의 병력을 주둔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그 최정예의 병력도 버서커의 힘을 넘어서지 못했다.

“으아악!”

“괴, 괴물이다!”

정예들이 기세등등한 외침이 겁에 질린 비명으로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버서커라 불린 자들은 하나하나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일반 병사들은 물론, 뛰어난 전사인 영주 던칸도 맞서기 버거웠다.

“빌어먹을!”

던칸은 영주의 체면도 잊고 욕설을 퍼부었다.

냉정을 되찾으려 해도 상황이 너무 예상 밖이었고, 또 급박했다.

다급한 가운데 검을 휘두르던 던칸은 뒤늦게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이 괴물들은 분명 오늘 전투의……!’

던칸은 오늘 공성전 중 망루에서 아군을 지휘했다.

그리고 아군이 왕국군 중군을 습격하는 것도 보았다.

왕국군 중군을 습격한 병력의 절반은 영주군 휘하의 결사대였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카멜 산에서 보내온 지원군이었다.

한 번 별동대를 파견한 것 외에는 별다른 도움도 연락도 없어 영주의 부하들이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 한 번의 도움은 적에게 큰 위협이 되었다.

그 사울 왕자도 카멜 산의 별동대의 공격에 꽤나 고생한 모양이었으니까.

별동대 중에서도 압도적인 기세를 자랑한 자들이 있었다.

멀리서 보았고, 자세한 정보는 듣지 못해 그자들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소수의 병력이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하며 적들을 밀어붙이는 건 보았다.

사울이 이끄는 중군을 붕괴시키는 건 역부족이었지만, 잠시나마 큰 곤경을 겪게 만들었다.

던칸은 뒤늦게 깨달았다.

지금 자신들을 공격하는 ‘버서커’들이 그자들과 같다는 것을.

“이 괴물 놈들!”

“영주님을 지켜라!”

던칸도, 가신들도 최선을 다해 싸웠다.

검을 잘 다루지 못하는 칼랜드마저도 벌벌 떨리는 손으로나마 검을 빼 들고 섰다.

킬리안은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았다.

함께 움직이면 순식간에 결판이 날 것임에도, 팔짱을 끼고 상황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림자처럼 뒤따르는 제온도, 칼립소도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전투는 한동안 이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영주 쪽이 밀렸다.

저택의 소란에 지원 병력이 속속 도착했음에도, 버서커를 당해 내지 못했다.

얼마 후.

킬리안이 제온과 칼립소를 돌아보며 말했다.

“구경은 여기까지다.”

“알겠습니다, 두목.”

킬리안도, 제온과 칼립소도 움직였다.

실과 화살, 단검 세례가 영주와 휘하들을 덮쳤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기울어 가던 저울추를 완전히 기울게 하는 데 충분했다.

“으윽!”

“아버님!”

킬리안이 날린 실이 던칸을 베고 지나갔다.

놀란 칼랜드가 어설픈 솜씨로나마 아버지를 지키기 위해 던칸의 앞을 막아섰다.

“칼랜드!”

던칸이 뒤늦게 말리려 했지만 한 발 늦었다.

칼립소가 던진 단검이 칼랜드의 몸을 꿰뚫었다.

급소를 맞은 듯, 칼랜드는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허물어졌다.

“킬리안! 크억!”

킬리안의 실이 던칸을 다시 덮쳤다.

칼랜드처럼 즉사하진 않았지만 몸을 일으키지도, 놓친 검을 다시 잡지도 못했다.

킬리안은 쓰러진 던칸을 내려다보며 빈정거렸다.

“너무 억울해할 건 없습니다.”

“네 이놈……!”

“머잖아 영주님의 길동무가 많이 생길 겁니다. 그러고 보니 영주님에게는 따님이 있었지요. 이름이… 맞아. 아이나. 그 따님에게도 갚아야 할 게 있으니, 꼭 영주님 곁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약속하지요. 가능한 고통스럽게 보내드리겠습니다.”

“이놈이… 으악!”

할 말을 마친 킬리안은 실을 날렸다.

피를 뿜으며 쓰러진 던칸의 시체를 바라보던 킬리안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제 저택에서 울려 퍼지던 비명 소리도 서서히 가라앉았다.

죽을 자들은 다 죽고, 아직 새로운 지원군은 나타나지 않았다.

상황을 파악한 킬리안은 명령을 내렸다.

“저택은 정리된 것 같고, 다른 곳은?

제온이 대답했다.

“지금쯤 준비가 끝났을 겁니다.”

제온의 대답을 들은 킬리안은 저택 밖으로 눈을 돌렸다.

다른 곳보다 고지대에 위치한 영주의 저택에서는 사제타의 밤 풍경이 잘 보였다.

얼마 후, 도시 곳곳에서 섬광이 비쳤다.

성밖에서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킬리안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섬광을 본 킬리안의 미소가 짙어졌다.

“다 끝났군.”

“이제 철수 준비를 하시지요.”

“그러지. 날이 밝으면 한바탕 뒤집어질 테니, 그때까지 기다리다 빠져나간다.”

킬리안은 뜻 모를 소리와 함께 소수의 부하들만 데리고 영주 저택을 떠났다.

* * *

“성의 분위기가 이상하다고?”

“네, 전하.”

새벽부터 급한 보고를 받은 사울은 제대로 옷을 갈아입을 새도 없이 장막을 나섰다.

아직 해도 제대로 떠오르지 않아 주변은 어둑어둑했다.

하지만 사울은 어렴풋이 보이는 성벽에서 심상찮은 분위기를 읽었다.

“적 병사들이 우왕좌왕 하는군.”

“네, 전하. 곳곳에서 적들의 저러한 움직임이 관측되고 있습니다.”

사울처럼 급한 연락을 받은 카스텔과 아르멜, 몇몇 장교들도 달려왔다.

“어떻게 생각해요?”

먼저 카스텔이 의견을 냈다.

“우릴 속이려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카스텔은 부대를 이끄는 전략이나 전술에 크게 능통한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전장에서 싸운 경험과 동물적인 감각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런 카스텔이 거짓이 아니라는 ‘예감’을 받았다면, 신뢰할 만했다.

사울의 생각도 비슷했다.

“확실히 어설프게 우릴 속이려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지금 저런 연극을 해 봤자 적들에게 실익도 없을 테니까.”

잠시 성을 지켜보던 사울이 명령했다.

“일단 아침부터 공격을 할 수 있도록 태세를 갖춰요.”

“네, 전하.”

공성전이 벌어진 지 이제 이틀째다.

아직 병사들이 지칠 시간은 아니라 금방 전투태세가 갖춰졌다.

이쪽의 움직임이 뻔히 보일 것임에도 여전히 성의 움직임은 혼란스럽기만 했다.

곧바로 방어 태세를 취해도 부족할 판에 병사들부터 우왕좌왕하더니 마침내 뜻밖의 사태가 벌어졌다.

“성문이 열렸군.”

어제처럼 다시 왕국군의 중군을 노리기라도 하는 것일까.

그건 아니었다.

성문에서 나온 건 백기를 든 일단의 무리들이었다.

정돈된 부대가 아닌, 혼란스럽게 뒤엉킨 무리들이 백기에 의존하여 목숨을 구걸하러 나온 것이었다.

아직 공성전이 벌어진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았다.

반란군이 불리한 싸움이었지만, 불과 이틀 만에 무너지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저 백기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일단 저들과 접촉해 봐라.”

“네, 전하.”

사울의 명령에 왕국군에서도 일단의 부대가 백기를 들고 나온 자들에게 접근했다.

그런 일이 벌어지는 와중에서도 열린 성문은 닫히지 않았다.

사울 역시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성문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어떻게 되었나?”

“적들은 항복을 청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젯밤 영주가 살해당했답니다.”

“뭐라고?

던칸 영주가 죽었다.

확실히 그렇다면 지금 적들의 혼란은 설명이 되고도 남았다.

문제는 난데없이 반란군의 수장인 영주가 왜 죽었냐는 것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건가?”

“어젯밤에 영주 저택에서 알 수 없는 전투가 있었고, 그 결과 영주가 사망했답니다!”

알 수 없는 전투.

내분이라도 일어난 것일까.

사울이 보기에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공성전이 길어지거나 성이 넘어가기 직전이 되면 자신의 목숨을 건지려는 자들과 끝까지 싸우려는 자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반란군을 그 정도까지 몰아세우지는 못했다.

대체 무슨 일일까.

고민하던 사울에게 전령이 달려왔다.

“전하, 남쪽 성문에서도 백기를 든 자들이 항복을 요청해 왔습니다!”

사울은 생각을 정했다.

“항복해 온 자들은 무장을 해제시키고 구금하라. 그리고 성으로 병력을 진입시켜라.”

“네, 전하.”

성문을 열고 성안에 병력을 숨겨 두고 있다 방심하고 들어올 때 기습을 하는 전략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 * *

먼저 소수의 선발대가 성안을 살피고 돌아와 보고했다.

“전하, 이미 반란군은 무너진 상태랍니다.”

“틀림없는가?”

“그렇습니다. 항복을 표명하는 자들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알았다. 저항하는 자는 베고 항복하는 자는 받아들여라.”

“네, 전하!”

사울은 절반의 병력은 성밖에 남겨 두고, 나머지 절반의 병력과 함께 입성했다.

성문을 넘어 간 순간 사울은 반란의 끝을 확실히 체감했다.

“엉망진창이군.”

저항하는 자들도 거의 없었다.

성안의 절반은 우왕좌왕했고, 나머지 절반은 마음을 정해 항복하는 꼴이었다.

항복하는 자는 살려 준다는 명령이 알려지자 항복하는 자들이 더욱 늘었다.

공성전이 오래되지 않아 병사들도 냉정을 유지했다.

명령을 거부하고 약탈 따위를 하는 자들도 거의 없었고, 덕분에 사제타 성의 분위기는 빠르게 가라앉았다.

아직 포기하지 못한 몇몇이 난동을 부리기도 했지만, 빠르게 진압되었다.

사울은 영주의 저택으로 향했다.

적지 않은 병력을 대동하고 저택으로 향한 사울을 막아서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덕분에 큰 문제없이 영주의 저택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엉망이군.”

영주의 저택에 도착한 사울의 첫마디였다.

사울에게도 익숙한 곳이다.

사울의 대외 활동은 사실상 이곳, 영주의 저택에서 시작되었다.

그런 곳을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다시 찾아왔으니, 이보다 아이러니한 일도 없을 것이까.

사울은 저택 안으로 발을 들였다.

곳곳에서 피 냄새가 풍겼고, 나뒹구는 시체들도 보였다.

당장 눈에 띈 시체들의 상태는 하나같이 끔찍했다.

창칼, 마법, 심지어 공성 병기 따위에 맞아 죽은 시체에 익숙한 사울의 눈으로 봐도 끔찍했다.

“마치 짐승에게 공격당한 것 같군.”

죽은 자들은 대부분 창칼에 베이거나 철퇴, 화살 따위에 맞아 죽지 않았다.

말 그대로 갈기갈기 찢기거나 박살이 났다.

“생존자는 없나?”

“수색 중입니다.”

수색 결과 생존자에 앞서 새로운 점이 발견되었다.

‘찢기거나 박살이 난’ 것과는 다른 상대적으로 멀쩡한 시체들이었다.

“이자들은 창칼에 맞았군.”

“이 시체는 몸에 상처도 없는데? 왜 죽은 거지?”

상대적으로 멀쩡한 시체들도 하나같이 피투성이었다.

시체를 살핀 사울은 ‘멀쩡한 시체’들이 찢겨지고 박살난 끔찍한 시체들을 만든 장본인임을 알았다.

‘정리하면 저택에서 전투가 있었고, 한 패거리가 다른 패거리를 무참히 살해하고, 자신들도 벗어나지 못한 채 죽은 것 같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다행히 상황을 증언해 줄 생존자가 없지는 않았다.

싸우는 대신 숨어 있다 운 좋게 살아남은 저택 하인과 부상을 입고 죽은 척한 덕분에 살아남은 경비병.

생존자는 두 명뿐이었다.

“사, 살려 주십시오.”

두 생존자는 벌벌 떨면서 목숨을 구걸했다.

자신들의 생살여탈권을 쥔 사울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사실대로 이야기하면 너희들의 목숨은 살려 주겠다.”

“제발 살려 주십시오.”

“대체 무슨 일이 있었지?

“그, 그게…….”

하인 쪽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눈치였다.

반면에 부상을 입고 살아남은 경비병은 상황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키, 킬리안이었습니다.”

사울의 눈이 커졌다.

“킬리안 비셔스 말인가?”

“그, 그렇습니다.”

“놈이 무슨 짓을 했다는 말인가?”

“저도 잘은 모릅니다. 킬리안이 왔다는 말을 들었고, 괴물 같은 놈들이 날뛰고 있다고 하였는데 그게…….”

또 킬리안의 소행이라는 말인가.

“우선 영주를 찾아요. 혹시 살아 있다면 반드시 생포하도록.”

“네, 전하.”

오래잖아 영주가 발견되었다.

보고를 받은 사울은 영주가 발견된 저택 회의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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