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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무능한 적국 왕자였다-208화 (208/232)

208화

사울의 군대도 적군의 움직임에 즉각 반응했다.

“전하를 지켜라!”

천 명에 가까운 병력이 사울을 둘러싸며 인의 장벽을 만들었다.

전투 초기라 사기도 높고 체력도 충분한 중군의 장벽을 뚫고 사울을 노리는 건 지극히 어려웠다.

더군다나 병력도 사울 쪽이 더 많았으니 더더욱.

상식적으로 사울이 위해를 당할 리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사울은 방심하지 않았다.

누가 봐도 실패할 일을 굳이 할 만큼 적들은 무모하지 않고, 전력이 넘쳐나는 것도 아니다.

전력이 부족한 와중에도 이런 일을 시도한다는 건 숨겨진 목적이 있다는 뜻이다.

또한 목적이 무엇이든, 그것을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으니 시도하지 않겠는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주의해라.”

“네, 전하.”

사울은 언제든 직접 싸울 수 있게 마법 검을 뽑아 들었다.

아르멜, 그리고 사오니엘이 사울의 곁에 섰다.

마침내 중군의 병력과 적 별동대, 정체불명의 무리가 부딪쳤다.

“반란군이다! 모두 베어라!”

“뚫고 들어가라!”

세 무리가 내지르는 함성 소리가 전장을 뒤흔들었다.

대범하게 쳐들어 온 만큼, 적의 기세는 높았다.

병력으로는 열세임에도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중군을 들이쳐 인의 장벽을 뚫으려 했다.

왕국군도 만만치 않았다.

지금 상황에서는 각자의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게 우두머리인 사울의 안위임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날카롭게 몰아치는 적들의 기세에 굴하지 않고 머릿수를 살려 사울을 지키는 데 최선을 다했다.

덕분에 화살 하나, 마법 한 발, 사울에게 직접 닿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사울은 ‘별동대’보다 ‘정체불명의 무리’에 주목했다.

양쪽 모두 적이며, 자기들끼리 한 편이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별동대는 예측이 가능했지만, 정체불명의 무리는 예측이 어려웠다.

모두들 복면 따위로 정체를 숨기고 있기에 더더욱 알기 어려웠다.

“사오니엘, 저자들의 정체를 알겠나?”

사오니엘이 뜸을 들이다 대답했다.

“엘프, 드워프, 오크… 등이 보이오.”

“그게 전부인가? 무언가 특별한 존재가 보이진 않나?”

“잘 모르겠소.”

쳐들어온 양쪽 모두 정예들이다.

피해로 따지면 머릿수가 많은 아군의 피해가 더 커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중군을 많이 죽인다고 저절로 이길 수 있는 게 아니다.

사울의 목을 베든 큰 상처를 입히든 하다못해 중군을 붕괴시키기라도 해야 전략적으로 의미가 있다.

의미 없는 소모전이나 견제 따위에 병력을 쏟아부을 만큼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다.

‘처음부터 내가 있는 중군에 쳐들어왔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야. 내 목을 노린다거나, 혹은 그 못지않은 중요한 이유가.’

“으아악!”

생각하던 사울의 귀에 요란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한 명이 아닌 여러 명이 동시에 내지르는 비명 소리는 시끄러운 전장에서도 유독 크게 울렸다.

사울은 비명이 들려온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법으로 먼 곳도 또렷이 볼 수 있는 그의 눈에 적들의 ‘비장의 카드’가 보였다.

“저건…….”

전투에 미친 자, 광전사.

그렇게밖에는 볼 수가 없었다.

복면을 쓴 정체불명의 무리 중 일부가 말 그대로 미친 듯이 날뛰며 사울 쪽으로 돌진해 왔다.

날아오는 창칼도, 화살도, 마법도 두렵지 않다는 듯 엄청난 기세와 속도로 몸을 날리는 것이었다.

‘광전사’들은 기병이 아닌 보병임에도, 어지간한 기병 못지않은 속도로 달려왔다.

보통 인간이나 이종족을 명백히 뛰어넘는 신체 능력이었다.

심지어 광전사들에게 강력한 마나의 기운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지금 저들의 가공할 움직임은 순전히 저들의 신체적 능력에서 나오는 게 분명했다.

비상식적이게도 말이다.

한 무리의 광전사들이 앞장서 돌진했고, 나머지 복면을 쓴 무리들이 뒷받침을 해 주었다.

머릿수는 많지 않았지만, 앞장선 광전사들의 엄청난 기세에 왕국군은 당황했다.

“전하를 지켜라!”

“으아악!”

중군 일부가 붕괴되는 것을 본 사울은 긴장했다.

지금 중군의 병력으로 광전사의 기습을 막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갑작스레 지원군을 요청하면 전장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전하.”

사울 곁에 있던 아르멜이 명령을 기다렸다.

먼저 사울은 사오니엘에게 물었다.

“사오니엘, 저 괴물들에 대해 아는 게 있나?”

“모르겠소. 나도 처음 보는 것들이오.”

사오니엘도 모른다면 지금은 저 ‘광전사’의 정체를 알 방법이 없다.

유일한 방법은 맞서 싸우는 것뿐.

중군과 미리 요청한 원군만 가지고 적들과 맞서느냐.

추가 원군을 요청하느냐.

사울은 결정했다.

“이대로 버틴다.”

“원군을 더 부르지 않으실 겁니까?”

“지금 원군을 더 부르면 전장 전체가 어그러질 수 있으니까. 적이 노리는 것도 아마 그것일 테고.”

“알겠습니다.”

아르멜도, 사오니엘도 더 말하지 않았다.

준비한 것만으로 전장에서 살아남고, 이겨야 한다.

“적들을 전하께 접근시키지 마라!”

적의 기세는 막강했지만, 중군 전체를 붕괴시킬 정도는 아니었다.

광전사들의 앞을 막아선 병사들은 버티지 못하고 쓸려 나갔지만, 한 명이 쓰러지면 두 명이, 두 명이 쓰러지면 네 명이 앞을 막았다.

중군이 무너지거나 병력이 다 소진되지 않는 한, 광전사들은 사울에게 접근하기 어려웠다.

결국 광전사들의 기세는 여전했지만, 진격 속도는 확실히 느려졌다.

덕분에 사울도 손을 쓸 기회를 얻었다.

“@#$%@#$%[email protected]%”

사울의 입에서 주문이 흘러나왔다.

큰 것 한 방을 노리는 것이었다.

얼마 후, 사울이 준비한 ‘큰 것’이 완성되었다.

사울의 머리 위에 떠오른 날카로운 얼음 조각.

셀 수도 없이 많은 얼음 조각들이 사울의 머리 위에서 명령만을 기다렸다.

“아이스 스톰!”

수많은 날카로운 얼음 조각들을 적에게 날려 공격하는 마법, 아이스 스톰.

위력은 강하지만, 공격 마법 중에서도 난이도가 높기로 악명 높다.

수많은 얼음 조각들을 정확히 조종하며, 효과적으로 적에게 쏟아붓는 건 대단히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사울이라면 할 수 있었다.

마법 시전에 필요한 막대한 마나는 반지의 도움을 받아 해결했고, 얼음 조각을 조종하는 건 그동안 쌓은 경험과 기술로 충당했다.

어마어마한 양의 얼음 조각이 적들 쪽으로 날아갔다.

아군의 머리 위는 그냥 지나친 얼음 조각들이 적들에게는 용서 없이 쏟아졌다.

“크아아악!”

마법으로 제련되어 강철처럼 단단하고 창끝처럼 날카로운 얼음 세례가 적들을 무자비하게 찢어발겼다.

갑옷을 입었어도, 방패나 무기를 휘둘러도 얼음 조각을 버텨 내진 못했다.

신체 능력이 뛰어나고 기세가 무시무시한 광전사들도 마찬가지로 얼음 조각에 육체가 찢기는 건 버티지 못했다.

쏟아지는 얼음 조각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피바다만 남았다.

얼음 조각이 쏟아진 건 순식간이었지만, 그 여파는 대단했다.

어림잡아 기세 좋게 달려오던 광전사의 절반 이상이 죽거나 큰 상처를 입고 쓰러졌다.

“우와아!”

“왕자 전하의 마법이다!”

적들의 죽음은 아군의 기쁨이다.

환희에 찬 외침과 함께 왕국군은 기세 좋게 남은 적군에게 달려들었다.

적들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순식간에 절반 이하로 줄어든 광전사도, 그를 뒷받침하던 병력들도 후퇴하기는커녕 계속 돌진해 왔다.

마치 돌아가 봤자 살아날 길이 없는 자들처럼.

“…….”

사울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그런 적들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 공격으로 사실상 이곳의 승패는 가려졌다.

적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중군을 붕괴시키거나 사울의 목을 베진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의미 없이 전멸하느니, 후퇴하여 남은 전력이라도 보존하는 게 옳다.

방금 전까지 적의 기세가 워낙 거셌던 탓에, 후퇴가 불가능할 만큼 포위망이 갖춰지진 않았으니까.

실제로 영주군으로 구성된 것으로 보이는 적 별동대는 후퇴하려는 기미가 보였다.

하지만 이종족으로 구성된 정체불명의 무리들, 나아가 광전사들은 단 한 명도 후퇴하려는 낌새가 없었다.

부대를 지휘하는 지휘관도, 휘하 병력도 말 그대로 마지막 한 명까지 싸우다 죽으려는 모양이었다.

“지독한 놈들입니다.”

“그렇군. 적들이 끝까지 싸우겠다면, 우리도 끝까지 싸워야지. 항복하는 자는 받아들이되, 그렇지 않으면 모조리 베어라.”

“네, 전하.”

명령을 내리면서도 사울은 적 누구도 항복하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

결국은 전멸시켜야 끝낼 수 있을 것이다.

“항복하지 않는 자들은 모조리 죽여라!”

사울의 명령이 지체 없이 시행되는 가운데, 사울 또한 마법을 준비했다.

조금 전처럼 큰 마법을 시전하기는 어려웠지만, 그보다 규모가 작은 마법으로 꾸준히 적을 공격하고 아군을 도왔다.

상황이 점점 불리해짐에도 적들은 여전히 물러서지 않았다.

동료의 시체를 넘어 중군을 뚫고, 사울을 베려 했다.

적 병력이 점점 줄어들었음에도, 여전한 기세의 광전사와 병력들을 막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적 별동대와 기타 병력들 역시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전황이 완전히 결정된 건 원군이 도착하면서였다.

“전하! 원군입니다!”

“이제 끝났군.”

앞서 사울이 보낸 ‘1단계 신호’를 보고 소수의 원군이 달려왔다.

비록 소수였지만, 전력이 부족한 가운데 기세만 믿고 달려드는 적들을 제지하는 데는 충분했다.

“모조리 쓸어버려라!”

“한 놈도 왕자 전하께 접근시키지 마라!”

마침내 적들의 기세도 꺾였다.

아니, 기세가 꺾이지 않은 모든 적병들이 쓸려 나갔다.

결국 사울을 노린 적들은 전멸했다.

살아남은 적 별동대는 뒤늦게 철수하려 했다.

“적 별동대를 쫓아라.”

“네, 전하.”

“포로를 잡을 수 있으면 잡아라.”

저 별동대는 전멸한 광전사나 정체불명의 무리와는 다르다.

광전사 등이 말 그대로 목숨을 버린 자들이라면, 저들은 위험한 임무를 맡았을지언정 목숨까지 포기한 자들은 아닌 듯했다.

그렇다면 포로로 잡을 수 있을지 모른다.

사울의 생각은 적중했다.

별동대의 추격에 나온 왕국군은 소수의 포로를 붙잡는 데 성공했다.

붙잡히기 전 정체불명의 독을 먹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없었다.

중군의 공격을 막아 낸 사울은 다시 공성전이 한창인 사제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공성전은 계속되고 있었다.

사제타 성 밖에서는 왕국군이 성벽을 기어오르거나 성문을 때려 부수려 했고, 성 위에서는 반란군이 왕국군을 쏘고, 베며 결사적으로 저지했다.

공성 병기와 수성 병기, 마법이 동원된 공격도 쉬지 않고 오갔다.

역시 하루아침에 함락시킬 수 있을 만큼 만만한 성은 아니었다.

“오늘은 이쯤 하는 게 좋겠군.”

사울의 생각에 아르멜도, 다른 장교들도 반대하지 않았다.

그렇게 첫 번째 날의 공성전은 끝났다.

* * *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전하.”

카스텔의 안부 인사에 사울은 작게 웃었다.

“선생님에게 그동안 많이 배운 덕분이에요.”

“네, 하지만 절 부르시는 게 나았을 겁니다.”

“내 몸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을 함락하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선생님은 계속 성의 공격에 집중해 주세요. 최악의 경우가 아니라면.”

“…알겠습니다.”

안부 인사나 하려고 카스텔을 부른 건 아니다.

사울이 손짓하자 한 무리의 포로들이 끌려왔다.

중군을 공격하다 실패한 반란군 무리였다.

“선생님도 알겠지만 오늘 날 공격한 적들은 크게 세 무리예요. 저기 영주군으로 구성된 별동대. 그리고 복면으로 정체를 숨겼던 이종족 무리. 그리고 그중 일부 ‘광전사’들.”

“이종족이나 광전사들은 전멸했습니까?”

“선생님도 잘 아는 그 수법에 당한 것 같아요. 독 말이에요.”

마법이든, 물리적인 방법이든 포로에게 정보를 얻을 방법은 많다.

그래서 이종족과 광전사들은 애초에 포로가 되지 않도록 미리 독을 먹었다.

임무에 성공하고 귀환했다면 해독제라도 먹을 수 있었겠지만, 그렇지 못했기에 전멸했다.

하지만 영주군으로 구성된 별동대는 달랐다.

위험한 임무에 나섰을지언정, 포로로 잡히느니 독을 먹고 죽겠다는 광신적인 행동은 하지 않았다.

덕분에 치열한 전투 중에서도 열 명이 넘는 포로를 잡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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