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더니 무능한 적국 왕자였다-206화 (206/232)

206화

“현재 반란군의 숫자는?”

“이종족 병력까지 합쳐 약 2천 정도인 것 같습니다.”

“아군은 다 합쳐 5천 정도이지?”

“네, 전하.”

홉킨스 가문이 다스리는 갈레트 지방에서 일어난 대대적인 반란.

예상대로 반란군의 숫자는 많지 않았다.

다만 아군 숫자가 두 배라고 마냥 안심할 순 없었다.

대개 공격보다는 수비하는 쪽이 유리한 법이니까.

갈레트 지방 같은 곳은 더더욱 공격하는 쪽이 불리했다.

이종족이 많이 살고, 지역색이 강한 편이었으니까.

비록 사울이 홉킨스 가문과 갈레트 지방에 대해 어느 정도 안다지만, 현지인만큼 잘 알지는 못했다.

그래서 대부분 현지인으로 구성된 반란군에 비해 확실히 불리했다.

“어떤 부대든 섣불리 움직여서는 안 돼요. 적이 공격해 오면 반격해야겠지만, 그 이상 움직이는 건 명령이 없는 한 허락하지 않겠어요.”

“네, 전하.”

“적 병력 중 이종족이 적지 않다는 건 큰 문제예요. 우리 같은 인간에게 익숙한 전장이라면 이종족이라 두려워할 건 없지요. 하지만 숲이나 산, 황무지 같은 곳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요.”

“그렇습니다. 숲에서는 엘프를, 황무지에서는 오크나 고블린 같은 종족의 움직임을 일반 병사들이 대응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전력은 왕국군의 우위지만 꼭 유리하다고 단언하기는 어려운 상황.

거기에다 반란군에게는 분명 뒷배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 뒷배에 대해 알아내야 하고, 또 물리치는 것 역시 사울의 임무다.

‘어쩌면 카멜 산과 일전을 벌여야 할지도 몰라.’

정말 카멜 산이 반란의 배후에 있고 지금도 돕고 있다면 이 정도의 전력으로도 충분하다 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은 이 전력만으로 싸워야 했다.

이곳저곳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기에 이 이상의 전력을 모으는 건 힘들었다.

“전 부대가 함께 움직여야겠어요. 진군 속도는 다소 느려지겠지만.”

사울의 의견에 한 기사가 다른 의견을 냈다.

“전하, 제 의견을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다른 의견이 있나요?”

“신중하게 진군해야 한다는 전하의 말씀은 물론 옳습니다만, 부대를 나누지 않고 함께 움직이면 반란 진압에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겠습니까?”

“부대를 나누어 각지의 반란군을 제압하면서 빠르게 진군하자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기사 한 명만의 의견은 아니었다.

기사의 말에 회의장의 여럿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사울 생각에도 터무니없는 의견은 아니었다.

평화로운 시기라면 천천히, 그리고 확실히 반란을 제압할 만한 여유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전쟁 중이다.

하루빨리 반란을 진압하고 가멜다 왕국과의 전쟁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사울은 자신의 생각을 밀고 나갔다.

“일리 있는 의견이지만 내 생각은 달라요. 우리의 임무는 반란 토벌이 전부가 아니에요. 이번 반란의 배후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아내야 하고, 또 최대한 전력을 보존하면서 반란을 토벌해야 해요. 병사 한 명, 창칼 한 자루가 아쉬울 때니까. 서두를 수 있다면 서두르는 게 좋겠지만 서두름으로써 나쁜 결과를 만드는 것보다는 시간이 걸려도 최대한 피해를 줄이고, 동시에 큰 전과를 거두어야 해요.”

사울의 말에 적잖은 기사들이 동조했다.

“으음…….”

“확실히 그렇군.”

이렇게 대체적인 전략은 정해졌다.

전군이 함께 신중히 진군하는 것으로.

이어 구체적인 전략이 만들어졌다.

사울을 비롯한 여럿의 의견이 오간 끝에 전략이 확정되었다.

“그럼 전군을 이동시키며 차근차근 적의 영역을 잠식해 가며 사제타까지 진군하는 것. 이것을 기본 전략으로 삼겠어요.”

“네, 전하.”

사제타.

갈레트 지방의 중심 도시이자 영주의 저택이 있는 곳.

반란의 중심지 역시 사제타였고, 반란군들도 사제타와 그 주변에 전력을 집중시킨 상태였다.

정면 대결이라면 두려울 게 없다.

반란군은 머릿수도 적고, 왕국군보다 정예라 할 수도 없었으니까.

게다가 사제타를 제외하면 제대로 된 성벽과 성문을 갖춘 요새화된 도시도 없다.

사제타 역시 난공불락이라고는 할 수 없다.

비록 도시를 둘러싼 성벽과 성문이 있다지만 왕국 수도인 레디아와 비교하면 보잘것없었다.

성벽 높이도 레디아의 절반이 안 되었고, 물샐틈없을 만큼 철저히 관리되거나 공격이 대단히 까다로운 구조의 성도 아니었다.

언뜻 생각하면 질 가능성이 거의 없는 전투다.

또 다른 누군가 개입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문제는 그게 누구든, 반드시 개입을 할 것이라는 점이지.’

그렇게 회의를 마친 사울은 자신의 일행과 따로 모였다.

이런 자리에선 항상 함께이던 아이나가 빠졌고, 대신 사오니엘이 함께 했다.

“…….”

사오니엘은 아직 사울과 회의를 하는 게 낯선 듯 이래저래 주저하는 모습이었다.

사울은 그런 사오니엘에게 먼저 질문했다.

“무슨 이야기가 오갔고, 앞으로 아군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모두 들었지?”

“…네, 전하.”

사오니엘은 조금 전 회의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사울이나 루시아는 사오니엘을 믿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많기 때문이었다.

대신 이 자리에 오기 전 회의장에서 오간 이야기와 결정된 것들을 들려주었다.

“나는 홉킨스 가문의 반란 배후에 카멜 산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데, 네 생각은 어떤가?”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보오.”

“정말 카멜 산이 반란의 배후에 있다면 그들이 이번 전투에서 어떻게 나올 것이라 생각하나?”

사오니엘은 카멜 산 출신이다.

최근까지 카멜 산에서 꽤 높은 지위에 있었고, 또 왕국 첩자 노릇을 하며 잔뼈가 굵은 다크엘프다.

지금 사울로서는 누구보다 중요한 책사였는데 역시 사오니엘은 사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대족장님이라면 결코 반란군의 멸망을 좌시하진 않을 것이오.”

“쓰고 버리는 장기짝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 않나?”

“일개 영주가 왕국을 상대로 반란을 준비하고, 이렇게 나오기까지 많은 준비를 했을 것이오. 정말 대족장님이 영주를 도왔다면, 상당히 많이 도와주었겠지. 그런 정성을 들여 놓고 쓰고 버리진 않을 것이오. 대족장님은 치밀한 분이오. 정말 이 반란의 배후에 대족장님이 있다면, 반란군을 최대한 오래 살려 두면서 많은 것을 얻어 내려 하겠지.”

사울도, 함께 있던 카스텔과 아르멜도 동의했다.

“그럼 어떤 형태로든 우리와 카멜 산이 맞닥뜨릴 가능성도 크겠군.”

“그럴 것이오. 정말 카멜 산이 반란의 배후라면.”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솔직히 말하면… 모르겠소. 이제 대족장님이 무엇을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소. 대체 뭘 위해 이렇게까지 하시는 건지…….”

사오니엘도 대놓고 말하지 못할 뿐, 이번 반란의 배후에 카멜 산과 세네카가 있다고 확신하는 모양이었다.

역시 문제는 왜 이런 짓을 하는 것이냐,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나올 것이냐다.

사울은 고뇌하는 사오니엘을 달래 주었다.

“세네카의 생각은 알 수 없지만 지금 그는 카멜 산, 나아가 율렌 섬의 이종족 모두를 구렁텅이에 빠트리려 하고 있다.”

“그게 내가 당신들을 돕는 이유요.”

“약속하지. 네가 우릴 도와 이번 일을 빨리 마무리 짓는다면 나 또한 그에 보답하겠다. 죄 없는 이종족이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사오니엘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사울은 다른 일행에게도 물었다.

“다른 의견은 없나요?”

아르멜이 대답했다.

“전력으로 따지면 분명 아군 쪽이 우위입니다. 또 아군 몰래 적들이 전력을 증강시키거나 지원을 받는 데는 한계가 있겠지요.”

“그래서?”

“힘으로 부족하면 계략을 쓸 겁니다. 특히 아군의 수뇌부를 직접 공격할 가능성이 적지 않습니다.”

왕국군의 수뇌부.

바로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 그중에서도 사울을 뜻했다.

“맞는 말이야. 내가 반란군이거나 그 배후에 있는 자라도 병력으로 맞설 수 없다면 왕자에게 자객을 보내든 기습을 하든 할 테니까.”

카스텔이 말했다.

“제가 전하 곁을 지키겠습니다.”

“그게 좋겠어요. 당분간 다른 임무 없이 나와 다른 수뇌부를 지키는 일에 전념해 줘요.”

“네, 전하.”

* * *

왕국군은 정해진 전략에 따라 움직였다.

곧바로 적의 중심부를 치는 게 아니라, 중심부로 향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모든 위험 요소를 제거하며 천천히 진군하는 방식이었다.

그만큼 진군 속도는 빠르지 않았다.

특히 병력을 나누지 않고 한 덩이로 움직이는 것이라 더더욱 진군 속도는 느렸다.

대신 전력을 집중한 만큼 마주친 적들은 확실히 분쇄할 수 있었다.

“전방에 적군입니다!”

“숫자는?”

“200명 정도입니다!”

“알아서 물러날 가능성이 크지만, 도발해 오거나 공격해 오면 적극 응전 하도록.”

“네, 전하!”

진군 중 여러 번 반란군과 마주쳤지만 제대로 된 전투는 거의 벌어지지 않았다.

왕국군의 기세에 눌린 듯 그대로 퇴각하거나, 도발이나 공격을 해 왔지만 큰 피해 없이 격퇴되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다.

왕국군은 홉킨스 가문 영지의 상당 부분을 잠식했고, 피해도 거의 없었다.

전황이 순조롭게 흘러가자 부대 내에서 다른 의견도 나왔다.

“전하, 아무래도 적들이 아군에게 위압당한 것 같습니다.”

“시간을 끌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이대로 단숨에 사제타로 가시는 게 어떻습니까?”

사울은 이러한 기사들의 요구를 물리쳤다.

“홉킨스 가문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아요. 손 한 번 못 써 보고 허무하게 끝날 반란이라면 시도조차 하지 않았겠지요.”

갈레트 지방을 호령하던 홉킨스 가문이 주도한 반란이며, 카멜 산이 배후에 있을 가능성도 크다.

당장의 전황과는 별개로 결코 방심할 수 없는 이유였다.

방심하며 함부로 움직이는 순간, 큰 피해를 보거나 패할 수도 있다.

사울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왕국군이 홉킨스 가문 영지 깊숙이 들어가면서 적들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많은 숫자의 군대로 맞부딪치는 게 아니라, 좀 더 은밀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으로

“전하! 정찰병들이 기습을 당해 절반이 사망했습니다!”

“후방을 지휘하던 기사가 암살당했습니다!”

반란군들이 지형을 이용해 여러 형태로 기습을 가해 온 것이었다.

사울이 있는 중군은 철통 경계를 서고 있어 건드리지 않았지만, 그렇지 못한 곳은 어디든 공격 대상이 되었다.

특히 소수의 병력으로 움직이는 정찰대나 이런저런 이유로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장교나 기사들이 주된 목표가 되었다.

이에 사울은 새로운 대비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선생님이 사오니엘과 함께 적들을 사냥해 주세요.”

사울의 명령에 카스텔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전하께서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이대로는 진군이 어려워질 거예요. 모두들 내 명령에 따르고 있으니, 나 또한 다소 위험을 감수해야지요.”

“…알겠습니다.”

카스텔 혼자, 혹은 소수의 병력만 붙여 주어도 되는 일이다.

하지만 사울은 굳이 사오니엘을 함께 붙여 주었다.

겁 없이 대군에 기습을 해 올 정도의 실력자라면, 카멜 산과 관련이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었다.

그렇게 카스텔과 사오니엘은 소수의 병력과 함께 ‘사냥’을 떠났다.

사울은 여전히 중군에서 경계를 유지하며 진군을 계속했다.

카스텔이 빠지긴 했지만, 적잖은 병력으로 단단히 경계하는 탓인지 적들도 사울을 노리진 못했다.

며칠 후.

진군하던 사울에게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선생님이 포로를 몇 잡았다고?”

“네, 전하. 아군 기사를 공격하던 적들을 생포했답니다.”

“그 포로들은?”

“살아남지는 못했지만, 정보를 얻는 데는 성공했답니다.”

이번 적들도 독약을 이용해 병력을 관리했다.

미리 정체불명의 독약을 먹이고, 임무에 실패하면 해독제를 주지 않음으로서 적에게 붙잡힌 포로가 자살하지 않고 오랫동안 살아남는 사태를 방지하는 수법이었다.

이에 카스텔은 적을 붙잡기 무섭게 무자비한 정신 제압으로 정보를 캐냈고, 효과는 있었다.

그렇게 카스텔이 보낸 보고를 다 읽은 사울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