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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무능한 적국 왕자였다-205화 (205/232)

205화

냉정하지만, 당연한 요구다.

왕자가 반역자의 딸과 교류하는 건 설령 그 딸이 결백하더라도 충분히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사울은 아이나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

“누님.”

루시아가 사울의 말을 잘랐다.

“아이나에게 공을 세울 기회를 달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거냐?”

“…….”

정확한 지적이라 사울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루시아는 여전히 냉정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지금은 전시다. 전쟁에 방해가 될 수 있는 요인은 배제해야 해.”

“…그럼 아이나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당분간 내가 관리하도록 하겠다.”

“그럼 감금 생활을 면치 못하겠군요.”

“아이나의 잘못은 아니지만, 그 정도로 끝나는 걸 다행으로 알아라.”

루시아라면 아이나를 당장 죽이거나, 이유 없이 제거하려 음모를 꾸미진 않을 것이다.

아이나로서도 루시아의 관리하에 있는 게 가장 나을 수도 있다.

만에 하나 반역자들과 얽힐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마음을 다 정리했나?”

“작별 인사를 할 시간을 주십시오.”

“그러지.”

루시아의 눈짓에 카스텔은 지금껏 시전하던 마법을 끝낸 뒤 자리를 비워 주었다.

심문실에는 사울과 아이나, 단둘만이 남았다.

“…….”

마법의 여파로 식은땀에 젖은 채 의자 위에 늘어진 아이나.

지쳐 쓰러진 그녀의 모습을 보면, 또 그녀가 앞으로 치를 고난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다.

‘홉킨스 가문이 반역자들에게 이용만 당하고 살아 있거나, 하다못해 반역자들에게 맞서 싸우다 목숨을 잃은 것이라면…….’

물론 그 또한 아이나에게는 괴로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진짜 홉킨스 가문이 반란을 일으킨 것보다는 차라리 나았다.

홉킨스 가문이 반란의 주동자라면, 아이나는 말 그대로 인질이나 다름없는 신세니까.

본인이 반란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고 루시아가 이를 보증했으니 반란죄로 함께 처벌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반란이 실패한다면 홉킨스 가문이 박살 나는 것을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반란이 성공한다면 ‘이용 가치가 없어진 인질’로서 험한 꼴을 당할 가능성이 높다.

“…….”

천천히 아이나가 눈을 떴다.

“전하.”

“일어났나요?”

“네.”

“심문은 모두 끝났어요. 누님도 그대가 결백하다는 걸 알아주셨고요.”

“그렇습니까.”

아이나도 바보가 아니라 자신의 상황을 잘 알았다.

사울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도 짐작한 듯, 눈을 감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아이나의 모습에 사울은 더욱 마음이 아팠지만, 할 말은 해야 했다.

“당분간 그대는 루시아 누님 곁에 있어야 할 것 같아요.”

“루시아 왕녀님의 뜻입니까.”

“그래요. 나 또한 지금은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처럼 전하를 보필할 수는 없을까요?”

“솔직히 나도 그렇게 하고 싶어요. 가능한 상황이었다면 무리해서라도 그렇게 했을 테고요.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게 되었어요.”

아이나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만큼 자신이 어려운 상황에 빠졌으며, 사울로서도 힘써 주는 데는 한계가 있음을 깨달은 것이었다.

“네, 전하.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혹시 제 가족들이 무고하다면 꼭 지켜주십시오.”

아이나는 아직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못했다.

아바마마가, 오라버니가 반란을 일으킨 게 아니라는 희망을.

사울은 그들이 실제로 반란을 일으켰을 가능성이 극히 높다고 생각했지만, 그와는 별개로 아이나의 간절한 부탁을 외면할 순 없었다.

“물론이에요. 그대 가족들이 실제로는 죄가 없거나 참작할 만한 부분이 있다면 변호를 하겠어요. 하지만 정말 최악의 상황이라면… 나로서도 손쓸 수 없음을 알아주었으면 해요.”

정말 반란을 일으킨 게 사실이라면 토벌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사울이 나서 아이나의 가족들을 토벌해야 할지도 모른다.

왕실에서 사울 만큼 홉킨스 가문과 영지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

“…….”

아이나는 더 입을 열지 못했다.

사울도 쉽사리 위로의 말을 하지 못했다.

지금으로선 무슨 말을 해도 위로가 될 것 같지 않았다.

“그대와 그대 가족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좋은 방향으로 일이 풀리길 바랄게요.”

“…감사합니다, 전하.”

그렇게 사울은 심문실을 나섰다.

문밖에서는 루시아와 카스텔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나는 어떻더냐?”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다행이다. 자신을 위해서라도 현실을 받아들이는 게 나을 테니.”

“누님께서는 이번 일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미 말했듯 나 역시 아이나의 결백은 믿는다. 그만큼 홉킨스 가문이 치밀하게 움직였다는 뜻이겠지. 능력도 있고 왕실과 가교가 될 수도 있는 가문의 소중한 구성원을 이용하여 왕실을 방심시키고, 반란을 일으킨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역시 누님께서는 홉킨스 가문이 주도하여 반란을 일으켰다고 확신하시는군요.”

“네 생각은 다른 거냐?”

사울도 반론을 제기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들어온 정보와 정황을 종합해 보면 역시 홉킨스 가문의 주도하에 반란이 일어났다고 보는 게 가장 합리적이었다.

다른 쪽으로 생각하려 해도, 그럴 만한 증거나 정황은 전혀 보이지 않았으니까.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네게 이번 일을 맡긴다면 너무 가혹한 처분이겠느냐?”

“반역자 토벌 말인가요?”

“그래, 물론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여럿 있겠지. 카멜 산에 관련된 문제도 이래저래 알아보고 손쓸 것투성이니까. 하지만 반란 처리보다 급하진 않다. 다른 곳도 아닌 홉킨스 가문이다. 이미 홉킨스 가문 영지는 통째로 반란 세력의 손아귀에 떨어진 것 같고, 머잖아 그들의 뒤를 봐주는 자들도 마각을 드러낼 게다.”

“영주가 반란을 주도했든 아니든, 흑막이 있다고 확신하시는군요.”

“십중팔구 그렇다고 본다. 그러니 홉킨스 가문에 대해 잘 알고, 흑막이 나타나도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가 이 일을 해결해야 한다. 내가 보기엔 네가 그 적임자라고 생각하고.”

확실히 그랬다.

지금 상황에서 무엇보다 급한 건 반란을 토벌하는 것이며, 여러 상황을 볼 때 그 적임자로 사울 만한 사람은 없다.

사울의 개인감정이나 동료와의 관계 따위를 내세울 때가 아닌 것이다.

결국 사울은 받아들였다.

“알겠습니다, 누님.”

루시아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는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게 너무 큰 짐을 지운 것 같구나.”

“알고 있습니다. 이게 다 조국의 승리를 위한 것이니까요.”

“그렇게 생각해 준다니 고맙구나.”

그러면서 사울은 속으로 다짐했다.

‘그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그리고 아직 못다 한 복수를 완수하기 위해.’

* * *

거의 항상 사울과 함께 움직이던 아이나가 일행에서 빠졌다.

한술 더 떠 아이나의 아버지와 오빠를 토벌하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

사울은 동요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토벌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며칠간 페로 요새에서 머무르며 정보를 모았고, 또 함께 출병할 병력을 기다렸다.

신경 쓰이는 건 누가 반란군의 뒷배를 봐주느냐였다.

사울이 이끌 병력은 물론, 그 외에도 몇 개의 부대가 반란군 토벌을 위해 홉킨스 가문 영지 주변에 집결하고 있다.

당장 동원할 수 있는 병력만 따져도 반란군의 두 배가 넘었다.

영주 가문이 직접 일으킨 반란이라 현지 사정에 밝고, 결속이 굳다 해도 전력 차이가 너무 심했다.

누군가 뒷배를 봐주던가, 혹은 전쟁 상황이 급변하여 왕국이 반란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지 않는 한 반란군의 패망은 확정적이다.

반란을 일으킨 게 누구든, 생각을 할 줄 안다면 그러한 가능성을 염두하고 움직였을 테고 말이다.

“뒷배를 봐주는 자가 있다면 가멜다 왕국 아니면 카멜 산이겠지요.”

사울의 말에 루시아도 동의했다.

“그럴 것이다. 그중에서도 카멜 산 쪽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구나.”

“무언가 새로운 정보가 있습니까?”

“이걸 보거라.”

루시아가 내민 문서를 받아 든 사울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가멜다 왕국에서도 소요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요.”

“그래, 단순한 소요를 넘어, 예상치 못한 대규모의 소요가 이어지고 있다는구나. 우연한 사건들이 아니다. 누군가 기름을 뿌리고 불을 지른 모양이다.”

“누님께서는 홉킨스 가문의 반란은 물론, 지금 가멜다 왕국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소요까지 모두 카멜 산의 소행이라고 보시는 겁니까?”

“지금으로선 그게 가장 합리적인 추론이지.”

사울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다르센 왕국도, 가멜다 왕국도 적국에 공작을 하는 것보단 자국의 안정을 우선시했다.

다르센 왕국 내부에서 반란을 일으키는 공작을 성공시켰으면서, 정작 자국에 반란에 버금가는 대규모의 소요 사태가 일어나도록 방치한다?

가멜다 왕국 왕실이나 귀족들이 그렇게까지 어리석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정말 카멜 산의 소행이라면, 대체 어떻게 그렇게까지 큰 힘을 얻었으며, 나아가 무슨 의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알아내는 게 우선일 테고요.”

“그래, 내 생각이 맞다면 반란 토벌 중 카멜 산에서 마각을 드러낼 게다. 그리고 홉킨스 가문을 돕겠지. 반란 토벌은 물론, 흑막의 정체도 함께 찾아내야 한다. 그게 사울, 네 임무다.”

“명심하겠습니다.”

“아르멜은 계속 붙여 주마. 그리고 내 휘하의 최정예 요원들도 여럿 붙여 주지. 반란군 토벌과 정보 획득. 두 가지 모두 성공해야 한다.”

“네, 누님.”

며칠 후.

사울은 기존의 일행들, 그리고 아이나 대신 카멜 산 출신의 사오니엘과 함께 일단의 병력을 데리고 페로 요새를 떠났다.

이미 각지에서 몰려든 토벌군이 집결한 가운데, 사울과 휘하 병력이 마지막으로 도착했다.

“어서 오십시오, 왕자 전하.”

“모두들 반가워요.”

사울과 카스텔을 제외하면 토벌군 중 유명한 거물은 없었다.

하지만 대부분 실전에서 잔뼈가 굵고 기본 이상의 실력을 가졌다고 검증된 자들이었다.

사울은 아군, 그리고 적군의 현황을 살펴본 뒤 회의를 열고 모두에게 밝혔다.

“이번 전투는 크게 두 가지 목표가 있어요. 하나는 반란군을 토벌하고 이 갈레트 지방을 홉킨스 가문이 아닌 왕실이 관리하도록 하는 것. 이건 모두들 알고 있겠지요.”

회의장에 모인 모두가 수긍했다.

정말 홉킨스 가문이 주도하여 반란을 일으켰다면 반란에 참여한 자들은 모조리 베어야 한다.

설령 그들이 주도한 게 아니라 해도, 영지 관리를 못 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어느 쪽이던 반란 토벌과 함께 갈레트 지방은 홉킨스 가문 영지가 아닌, 왕실의 땅이 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목표가 있어요. 나와 내 누님은 누군가 반란군의 배후에 있다고 확신하고 있어요. 그 배후의 정체를 밝혀야 해요. 그러지 않으면 비슷한 일이 또 생길 수 있으니까.”

사울의 말에 한 기사가 질문했다.

“배후라면… 역시 가멜다 왕국 말씀이십니까?”

“그럴 수도 있지만 지금으로선 아닐 가능성이 더 높아요.”

“가멜다 왕국이 아니라면…….”

지금 율렌 섬에서 다르센 왕국에 정면으로 맞서는 반란의 배후 노릇을 할 만한 세력은 많지 않다.

가멜다 왕국이 아니라면 카멜 산이나 대신전 정도뿐이다.

“대신전에서 반란을 조장할 리는 없겠지.”

“설마 카멜 산이?”

모두들 웅성거리는 가운데, 사울이 손을 들어 모두를 진정시키곤 말했다.

“가능성은 열려 있어요. 가멜다 왕국의 소행일 가능성도 있고, 혹은 카멜 산이나 또 다른 세력일 가능성도 있지요. 그러니 모두들 열린 마음으로 생각하고 탐구하며 알아낸 게 있으면 기탄없이 나에게 보고하도록 해요.”

“알겠습니다, 전하!”

“아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한동안 홉킨스 가문에서 머무른 적이 있어요. 아마 이 자리에서 나보다 그들을, 그리고 홉킨스 가문 영지를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러니 날 믿고 내 지휘에 따라 줘요. 내가 잘못된 명령을 내렸다면 내가 모든 책임을 지겠지만, 내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 책임은 명령에 불복한 자가 져야 할 거예요.”

사울은 아직 젊디젊은 자신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자가 있을까 일부러 강하게 나갔다.

다행히 효과는 있었다.

“명심하겠습니다, 전하!”

이미 사울의 명성은 드높았고, 또 루시아가 사울 명령에 잘 따를 만한 인재들을 선별해 보내주었다.

모두들 사울의 수족처럼 움직일 테고, 일이 잘되든 잘못되든 모두 사울의 책임이다.

새삼 사울은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

어쩌면 이 토벌전이야말로 이번 전쟁, 그리고 자신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전기가 될 수도 있다.

실패는 용납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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