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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무능한 적국 왕자였다-204화 (204/232)

204화

국왕에게까지 보고가 올라갔다는 건, 그만큼 믿을 만한 정보라는 뜻이다.

믿을 수 없는 허튼 정보가 윗선에 올라가는 것을 차단하는 것도 왕국 정보부의 일이니까.

잠시 생각하던 루시아는 아이나에게 물었다.

“아이나, 어떻게 생각하나?

“…….”

“네게 책임을 물으려는 게 아니라 의견을 묻는 거다, 아이나. 지금 이 보고를 어떻게 생각하나?”

아이나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전 믿을 수 없습니다. 아버님과 오라버니가 그런 일을 하셨다니… 홉킨스 가문은 왕국에 충성하고 있단 말입니다!”

가문을 변호하는 아이나를 빤히 바라보던 루시아는 사울에게 물었다.

“사울.”

“네, 누님.”

“넌 홉킨스 가문 사람들과도 잘 알고, 아이나 양에 대해서도 잘 알지.”

“…네.”

“그런 네가 보기엔 어떤가?”

사울로서도 난데없는 소식이었고, 또 예상 못 한 소식이었다.

설마 홉킨스 가문이 반란을 일으킬 줄이야.

홉킨스 가문이 왕국에 진심으로 충성을 바치기 보단, 가문의 안위와 발전을 우선시하고 있다는 것은 사울도 잘 알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왕국의 그늘 아래에서 자신들의 안위를 보장받고, 가능한 힘을 키우려는 자들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시기에, 그것도 은근히 움직이는 게 아니라 대놓고 반란을 일으킬 줄이야.

‘반란 소식은 아마 사실일 거야. 그 정도의 정보가 근거 없이 여기까지, 그리고 아바마마께 올라갈 리는 없어. 영주가 반란에 관련된 게 아니라면 영주와 그 일가가 이미 죽었거나, 혹은 유폐당하고 다른 누군가가 영주의 이름을 팔아 반란을 주도하고 있다는 뜻인데…….’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다르센 왕국에서 홉킨스 가문의 세력이 크다곤 할 수 없지만, 무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특히 이종족과 친밀하고, 중립 지대 및 가멜다 왕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곳이라 지금 같은 전시에서는 특히 의미가 컸다.

그러한 점을 노리고 누군가 홉킨스 가문을 제압하거나 처리하고, 그 이름을 팔아 반란을 일으켰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높지는 않지. 아니, 거의 없어.’

영주 던칸과 소영주 칼랜드 모두 영민한 사람들이었다.

또 홉킨스 가문의 영지 장악력도 확고했고, 부하들의 충성도도 높았다.

왕실에서 파견된 감찰관이 홉킨스 가문의 영향력에 쩔쩔맬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반역자가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영주 가문을 제압하거나 전멸시키고 그 이름을 팔아 반란을 일으킬 수 있겠는가.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던칸 영주가 반란을 일으킨 게 사실이라면… 아이나는?’

영주가 반란을 일으켰다면 그 딸에게도 의심의 화살이 갈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아이나는 사울의 측근으로서, 마음만 먹으면 이런저런 정보를 캐내거나 공작을 할 만한 위치에 있었다.

어쩌면 지금껏 당해 온 어려움의 원인이 아이나에게 있었던 것일지도…….

‘그건 아닐 거야.’

사울은 아이나를 의심하지는 않았다.

대외 활동을 시작한 이래, 거의 언제나 곁에 두었던 아이나다.

조금이라도 수상한 기색을 보였다면 이미 눈치를 챘을 것이다.

아이나는 뛰어난 전사였지만, 남을 속이고 첩자 노릇을 할 만큼 철두철미한 성격은 아니었으니까.

“아이나는 결백하다고 생각합니다. 전 아이나를 믿습니다.”

사울의 말에 조금 밝아진 아이나의 표정은 그다음 말에 금방 어두워졌다.

“하지만 영주가 반란을 일으킨 것 역시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합니다.”

“저, 전하…….”

무언가 말하려던 아이나였지만, 말을 잇지 못했다.

사울에게 실망을 한 것인지 혹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안 것인지.

그런 아이나의 눈빛을 마주하는 것은 편치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른 것도 아닌 반역 사건이라면, 사정을 봐줄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런가.”

루시아는 아르멜과 카스텔에게도 물었다.

“너희들의 생각은?”

카스텔이 먼저 대답했다.

“저 역시 이 보고와 아이나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영주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건?”

“그건 제가 판단할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어 아르멜도 대답했다.

“저도 여기 계신 아이나 아가씨와 보고는 무관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껏 아가씨를 감시하면서 단 한 번도 반란을 도모하거나 영주 가문에 몰래 정보 같은 것을 보내는 건 본 적도 없고, 그 외에 어떤 수상한 낌새도 보인 적 없습니다.”

“그런가.”

들을 의견을 다 들은 루시아가 다시 아이나에게 말했다.

“아이나.”

“…네, 전하.”

“내 동생도 널 믿고, 카스텔도 널 믿고, 심지어 널 감시하는 임무를 가진 아르멜조차도 네가 결백하다고 한다. 이 정도면 너에 대한 의심은 풀 수 있겠지. 반란 사건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

“반란이 벌어진 이상,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

“어떻게 말입니까?”

“내가 직접 심문하겠다.”

그러면서 루시아는 카스텔에게 명령했다.

“카스텔, 날 도와라.”

“마법으로 말입니까?”

“그래.”

카스텔에게 도우라고 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카스텔의 마법으로 아이나의 정신을 건드려 한 점의 거짓도 없이 사실을 밝히겠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아이나가 고통을 겪는다 해도 말이다.

“누님, 그건…….”

“사울,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난 아이나에 대한 의심을 버릴 수가 없다.”

“…….”

루시아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어지간한 사건이라면 이런 조치에 반발할 수 있다.

하지만 반란 사건이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왕국 법에 연좌제가 폐지된 이래, 반역자와 그의 죄 없는 가족을 함께 처형하는 풍습은 사라졌다.

하지만 반역자의 가족이 의심을 받는 건 어쩔 수 없다.

능력 없는 사람도 아니고 아이나처럼 왕자의 측근이라면 더더욱.

정말 내키지 않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다.

아이나가 마음의 상처를 받더라도 이 상황을 빨리 마무리 짓는 게 급했다.

“아이나, 조금만 참아요.”

“…….”

아이나는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카스텔의 심문은 사실상 ‘고문’의 다른 표현이었다.

직접 두들겨 패거나, 물이나 불을 쓰거나, 전격으로 지지지 않을 뿐 정신을 건드려 강제로 자백시키는 건 당사자에게 크나큰 고통을 안겨 주었으니까.

그런 카스텔의 심문을 이제 아이나가 받게 되었다.

물론 상대가 상대인 만큼 지금껏 카스텔의 심문을 받은 자들처럼 무지막지한 대접을 받진 않았다.

꽁꽁 묶이지 않고 얌전히 의자에 앉혀졌고, 일단은 ‘강제적인 힘’을 쓰지도 않기로 했다.

“저항하지 마십시오. 그래야 고통이 적을 겁니다.”

“…….”

“이 모든 건 그대의 진심을 밝히기 위한 것. 저항한다면 억누를 수밖에 없음을 기억하십시오.”

카스텔의 경고에 아이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사울 쪽을 바라보았다.

아이나와 눈이 마주친 사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는 그대의 결백을 믿어요.”

“감사합니다.”

아이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카스텔에게 말했다.

“준비는 끝났어요.”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카스텔의 손끝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와 아이나의 몸속으로 흘러들어 가기 시작했다.

“으윽…….”

눈을 감은 아이나가 식은땀을 흘리며 신음했다.

비록 카스텔이 적에게서 정보를 캐낼 때보다 훨씬 섬세하고, 또 배려해 주었지만 그래도 정신을 건드리는 마법이다.

저항하지 않는다 해도 아무 고통 없이 끝날 수는 없었다.

‘정말 못 할 짓이군.’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울은 속으로 탄식했다.

설마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다.

지금껏 함께 싸워 온 동료이자, 어쩌면 그 이상의 존재일지 모르는 아이나가 졸지에 반역자와 한패라는 누명을 쓰고 조사를 받게 될 줄이야.

비록 카스텔도, 또 루시아도 정중한 태도를 잃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아이나에게 위로가 될지는 의문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아이나의 신음이 멎었고, 카스텔은 루시아에게 보고했다.

“끝났습니다.”

“별다른 저항은 하지 않았나?”

“네, 이런 일이 처음이라 본능적인 저항이 있었지만, 그래도 수월하게 끝났습니다.”

“그렇군.”

루시아는 날카로운 눈으로 질문을 던졌다.

“아이나, 그대는 다르센 왕국에 충성하는가?”

아이나는 곧바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왕국에서 홉킨스 가문을 억누르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조건을 달기는 했지만, 크게 흠잡을 데는 없는 대답이다.

루시아는 다음 질문을 던졌다.

“이번 홉킨스 가문의 반역에 대해 뭘 알고 있지?”

“모두 처음 듣는 이야기였습니다.”

“네 아버지나 오라버니, 혹은 가문의 다른 누군가가 수상한 행동을 보인 적 없는가?”

“제가 아는 한, 전혀 없었습니다.”

루시아의 질문은 계속되었다.

“네가 사울에게 접근하고, 그의 측근이 된 것과 이번 일 사이에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보고 있던 사울이 혀를 내두를 만큼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하지만 말릴 수는 없었다.

이 자리에서 제대로 결백을 증명하지 못하면 아이나는 계속 의심을 받게 될 것이고, 더 가혹한 처분을 당할지 모른다.

이왕 가혹한 처분을 당할 거라면 한 번으로 끝내야 한다.

사울의 안타까운 시선 속에 아이나가 말했다.

“그런 일은 지금까지 생각해 본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만에 하나 아버님이나 오라버니가 반란을 일으킨 게 사실이라면 그분들이 저와 전하, 그리고 우리 관계를 이용하려 했을지 모릅니다.”

거기까지 들은 루시아는 잠시 심문을 멈추고 카스텔에게 물었다.

“지금 아이나가 자신이 아는 사실을 그대로 말하고 있는 게 틀림없지?”

“네, 전하.”

“혹시나 그런 게 아니라면 네가 책임을 져야 할 거다.”

“물론입니다.”

카스텔의 확신에 루시아도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사울을 돌아보며 말했다.

“다행이구나. 아이나는 이번 반란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것 같으니.”

사울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아이나는 결백하다고.”

“아이나가 결백하다고 이번 일이 끝난 건 아니다.”

“그건 알고 있습니다.”

아이나를 향한 반역 혐의는 벗겨졌다 해도 그녀가 반역자의 딸이라는 건 바뀌지 않는다.

물론 왕국 법에 연좌제는 폐지된 지 오래고, 설령 반역자의 자녀라도 직접적인 불이익은 받지 않는다.

하지만 왕자의 몸으로 반역자의 딸과 이전처럼 친하게 지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반역자의 딸과 임무를 수행하는 건 더더욱 어려울 테고.

“이제 어쩌실 겁니까?”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다 얻은 다음 생각해 보자꾸나.”

“알겠습니다.”

루시아는 심문을 재개했다.

사실상 아이나가 아는 홉킨스 가문에 대한 모든 중요한 정보들이 낱낱이 밝혀졌다.

개중에는 별것 아닌 것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밝혀지면 홉킨스 가문의 처지가 곤란해질 법한 정보들도 있었다.

다행이라 해야 할지, 반란에 관련된 정보는 전무했다.

루시아는 다양한 각도로, 또 날카로운 질문을 연신 던졌지만 그때마다 아이나의 대답은 비슷했다.

“모릅니다.”

“아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 심문이 끝났다.

루시아는 그때껏 지켜보고 있던 사울을 돌아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홉킨스 가문은 이 아가씨를 내버려 두고, 자기들끼리 반역을 꾸민 것 같군.”

“그런 모양입니다. 다행이라 해야 할지.”

“네 마음이 편치 않겠구나.”

“그럴 수밖에요.”

루시아는 안타까워하는 사울에게 냉정히 말했다.

“이젠 나도 아이나가 결백하다는 것을 믿는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그녀와 관계를 끊거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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