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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무능한 적국 왕자였다-200화 (200/232)

200화

강적 상대로 무작정 달아나기보다 싸운다.

위험한 전략이지만, 무작정 도망치는 것보다 합리적인 전략이기도 했다.

싸울 채비 없이 달아나다가 적에게 따라잡히거나 포위당하기라도 하면 더 큰 낭패를 당할 수 있으니까.

결정한 사울은 일행에게 말했다.

“싸울 준비를 해요.”

“뭐라고?”

첩자가 즉각 반발했다.

“죽고 싶나? 저들의 머릿수가 훨씬 많고 실력도 상당해 보이는데 싸우자고?”

“이대로 쫓기다가 적들에게 포위당하기라도 하면 상황이 더 어려워져요.”

“포위당할 걱정보다 싸우다 죽을 걱정부터 하라고!”

첩자가 반발하는 건 당연했다.

무엇보다 사울과 일행의 정체를 모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길게 설명할 시간은 없다.

사울은 일행에게 말했다.

“싸워서 적의 기선을 제압하는 게 낫겠지?”

“네.”

첩자 외에는 누구도 사울의 말에 반대하지 않았다.

“이런 정신 나간……!”

당장이라도 욕설을 퍼부으려던 첩자를 카스텔이 나서 제지했다.

“얌전히 있어라.”

“!!!”

말투만 반말로 바뀐 게 아니다.

얼굴은 복면으로 감췄지만, 그 속에 흐르는 무시무시한 기운을 첩자는 알아보았다.

“이게 무슨…….”

“설명할 시간은 없다. 살고 싶으면 우리를 따라라.”

“아, 알겠소.”

첩자의 태도가 정중해진 덕분에 일을 진행하기가 수월해졌다.

먼저 사울은 주변 지형을 살폈다.

지금 있는 곳은 탁 트인 곳이라 소수가 다수를 상대하기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멀지 않은 곳에 골짜기로 접어드는 입구가 있었다.

머릿수가 많은 적이 넓게 포진하여 포위하는 전략을 쓰긴 어렵고, 그렇다고 이쪽에서 강력한 마법을 시전해서 아군이 휘말릴 만큼 좁지는 않다.

“저곳으로 가요.”

“알겠습니다.”

모두들 사울과 비슷한 생각을 한 듯 반발 없이 움직였다.

“빌어먹을. 단단히 잘못 걸렸군.”

첩자 역시 투덜거리면서도 사울 일행과 행동을 같이했다.

사울 일행은 멀지 않은 골짜기 쪽으로 말을 몰았다.

그러자 적들도 가만있지 않았다.

휘파람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시위 소리가 울렸다.

“화살이다!”

화살 세례가 쏟아졌다.

말 위에서 쏘는 것이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정확한 사격이었다.

가만있다가는 말도 사람도 무사하지 못할 판이라 사울은 즉각 방어에 나섰다.

사울이 친 마법 방어막이 일행 모두의 등 뒤를 가로막았다.

화살은 물론, 적의 움직임도 잠시나마 막기 위해 특별히 크고 튼튼하게 방어막을 쳤다.

화살이 방어막에 부딪치며 탁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정도면 잠시나마 화살은 물론, 적의 움직임도 차단할 수 있을 것이다.

덕분에 사울 일행은 무사히 목표로 잡은 골짜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울 일행은 골짜기 안 깊은 곳까지 들어갔다.

첩자를 만나러 오면서 거친 곳이라 지형도 낯설지 않았다.

유리한 지형을 선점한 것이었다.

오래잖아 적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수십 명은 되어 보이는 무리들.

고작 첩자 한 명을 잡아가거나 죽이러 온 것이라기엔 너무 많은 전력이다.

아마 지금 같은 상황을 대비한 것이리라.

휘파람 소리와 함께 다시 화살 세례가 쏟아졌다.

사울도 늦지 않게 마법 방어막을 쳤고, 화살은 다시 막혔다.

“빨리 도망쳐야 하지 않겠소?”

첩자가 정중한 말투로 재촉했지만, 이미 결정을 한 사울은 거부했다.

“무작정 도망쳤다가 따라잡히면 의미가 없으니까요.”

“젠장……!”

첩자 혼자 따로 도망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자신이 없는 듯, 결국 첩자 역시 사람 키 정도의 짧은 창을 들고 적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바로 그때였다.

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사울이 친 마법 방어막이 산산조각 났다.

방어막이 깨진 것 자체는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잘 버티던 방어막이 단 한 번의 공격에 깨졌다는 점이었다.

그것도 화살 한 발에.

적이 공성 병기를 가져온 게 아니라면, 마법의 힘이 분명했다.

마나의 힘을 사용하는 궁수가 그렇게 드문 것도 아니니까.

‘엘프인가? 확실히 엘프 중에서는 마나를 다루는 궁수가 많으니…….’

생각하던 사울은 막강한 마나의 기운을 느꼈다.

아마 마법 방어막을 깨트린 공격이 다시 날아오려는 것이리라.

방금 전과 같은 수준으로는 막기 어렵다.

사울은 마나를 쏟아부어 범위는 좁히고, 강도는 훨씬 높은 마법 방어막을 쳤다.

다시 화살이 날아왔다.

보통 화살을 뛰어넘는 속도로 날아오는 화살이 은은히 빛나는 게 보였다.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화살은 사울이 친 방어막에 박혔다.

박힌 화살은 일반 화살과는 생긴 게 확연히 달랐다.

‘석궁 화살… 인가?’

엘프는 석궁보다는 일반 활을 선호한다.

속사에 유리하고, 마나 등을 실어 날리기도 좀 더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날아온 석궁 화살에는 마나가 실려 있었다.

얇은 마법 방어막은 물론, 튼튼한 판금 갑옷도 일격에 꿰뚫을 만한 위력이었다.

석궁으로 저런 위력을 낼 정도면 쏜 사람은 분명 대단한 실력자일 것이다.

“적이 만만치 않으니 무자비하게 공격해야겠습니다.”

카스텔의 말에 사울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요.”

저쪽이 노리는 건 최소한 첩자의 생포, 그리고 그와 함께 있는 사울 일행의 전멸일 것이다.

아마 이쪽에 있는 게 사울 왕자와 그 일행임을 모르고 하는 일이겠지만, 지금은 따져 봐야 의미가 없다.

생사를 건 전투를 피하거나 막기엔 늦었으니까.

먼저 카스텔이 두 손을 뻗었다.

몇십 가닥의 검푸른 빛이 뻗어 나가 말을 타고 달려오는 적들을 덮쳤다.

“으악!”

본격적인 전투를 알리듯, 누군가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와 함께 적들도 일제히 말에서 내렸다.

적들은 한 덩이로 뭉치지 않고 흩어졌다.

바람에 흩날리는 모래알처럼 무작정 흩어지는 건 아니다.

강력한 마법사의 존재를 알고, 그에 맞서기 위해 나름대로 통일된 움직임을 보였다.

‘역시 만만치 않군.’

아무래도 지금 나타난 적들은 카멜 산 소속, 그것도 상당한 실력자들로 보였다.

개개인의 전투력만 뛰어난 게 아니라 집단으로 행동하는 데도 능숙한 정규군이나, 그에 준하는 녀석들이 아닐까.

어설픈 기선 제압 따위로 물러날 녀석들이 아니다.

실질적으로 큰 피해를 입히거나, 아예 전멸시켜야 할 것이다.

사울은 마법 검에 마나를 모으며 첩자 쪽을 살폈다.

전투태세를 취한 자세를 보건대 실력은 상당한 모양이었다.

삐익!

이전보다 더 크고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마도 일제 공격 신호인 모양이었다.

사울도 지지 않고 적들을 공격했다.

사울 쪽에는 화살 세례가, 적들에게는 마법 세례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날카롭고 강력한 공방이 오갔다.

하지만 어느 쪽도 섣불리 상대에게 달려들지는 않았다.

양쪽 모두 상대가 만만치 않은 적임을 깨달은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문득 적의 공격이 멎는가 싶더니,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큰 소리로 외쳤다.

“멈춰라!”

앞장선 건 드워프였다.

그의 손에 복잡한 기계 장치가 설치되어 있는 큰 석궁이 들려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를 본 사울은 내심 크게 놀랐다.

‘…저건!’

어디선가 본 적 있는 것 같은 무기다.

무기만 낯익은 게 아니었다.

복면을 쓰고 있지만, 드워프의 체형이나 행동거지도 이상하게 낯이 익었다.

“…….”

앞장선 드워프도 비슷한 생각을 한 것일까.

순순히 첩자를 넘기라는 말을 하려는 듯 호기롭게 나섰으면서 막상 사울 일행 앞에서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다른 일행도 눈앞의 복면을 쓴 드워프의 정체를 알아본 모양이었다.

“전하. 저자는…….”

아이나의 말에 사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아요.”

사울은 드워프의 이름을 외쳤다.

“모데아!”

솔직히 아니기를 바랬다.

눈앞의 드워프가 정말 모데아라면, 사태가 정말 심각하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나쁜 예감일수록 잘 맞는다던가.

“…….”

드워프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차마 자신의 정체를 밝힐 수 없거니와 어설픈 거짓말이 통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역시 모데아인가.’

생각이 맞았다고 기뻐할 때가 아니다.

모데아는 카멜 산의 우두머리, 대족장 세네카의 호위대장이 아닌가.

그런 모데아가 이 자리에 나타났다는 건…….

‘역시 세네카가 날 공격하고, 외교 공관까지 공격한 건가.’

단언할 수는 없다.

눈앞의 드워프가 정말 모데아라 해도 그것이 세네카가 이번 일을 주도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사울이 보기에 그럴 가능성은 극히 높았다.

세네카 몰래 그의 호위대장과 다른 자들이 이번 일을 벌였을 가능성과 세네카가 주도하여 이번 일을 벌였을 가능성.

둘 중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건 후자였으니까.

“네가 모데아가 아니라면 당장 복면을 벗어라!”

사울의 일갈에도 드워프는 복면을 벗지 않았다.

사실상 자백을 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침묵 속에서 모데아가 겨눈 석궁이 사울 쪽을 향했다.

과연 모데아는 이쪽의 정체를 눈치챘을까.

가능성은 적지 않았다.

사울이 모데아를 금방 알아본 건 그와 함께 싸워 본 경험 덕분이었다.

모데아 역시 사울은 물론, 그 일행이 싸우는 광경도 직접 보았다.

사울이 모데아의 정체를 눈치챘듯, 저쪽에서 사울의 정체를 눈치챘어도 이상할 건 없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는 게 있지 않은가.

저쪽에서 사울의 정체를 눈치채지 못했다면?

결심한 사울은 복면을 벗었다.

의아한 표정의 첩자를 뒤로 한 채 사울은 다시 한번 외쳤다.

“모데아! 나를 못 알아보진 않겠지?”

“…….”

“나는 다르센 왕국의 사울 왕자다! 당장 공격을 멈추지 않으면 카멜 산이 우리 왕국에 선전 포고를 한 것으로 받아들이겠다!”

모데아는 말로 대답하지도, 복면을 벗지도 않았다.

대신 석궁의 방아쇠를 당겼다.

웬만한 마법 방어막은 뚫어 버릴 수 있는 강력한 힘이 실린 화살이 똑바로 사울을 노리고 날아왔다.

미리 대비한 덕분에 어렵지 않게 막을 수 있었다.

‘역시 말로는 해결할 수 없겠군.’

사울은 모데아에게 반격했다.

동시에 다른 일행들도 일제히 적들을 공격하거나 사울을 지키기 위해 움직였다.

“모조리 죽여라.”

여전히 복면을 쓴 드위프의 명령에 그의 일행들도 일제 공격에 나섰다.

사울이 신분을 밝혔음에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강력한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사울 일행도 지지 않고 맞섰다.

상대가 모데아라면, 또 그가 이끄는 정예 부대라면 어설프게 맞설 수 없다.

필사적으로 상대를 공격하고, 스스로를 지켜야 했다.

“아이나! 그대는 저 첩자를 지켜요!”

“알겠습니다!”

사울은 자신의 호위 역할을 맡은 아이나를 첩자 관리로 돌렸다.

그 또한 쉬운 임무는 결코 아니다.

적의 공격에서 첩자를 지켜야 하며, 최악의 경우에는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첩자를 베어야 한다.

그렇게 첩자 쪽을 맡긴 사울은 전력을 다해 달려오는 적들을 상대했다.

두 패로 나누어진 적의 절반은 화살이나 마법을 쏘고, 나머지 절반은 사울 등을 노리고 달려왔다.

모두들 흩어진 채로 움직였지만, 동시에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게 아니라 통제가 유지된 채로 움직였다.

한두 명 날려 버리는 것으로는 무너뜨리기 힘들 만큼 결속이 탄탄했다.

“압도적인 공격이 필요합니다.”

카스텔의 말뜻을 사울은 확실히 알아들었다.

“그럼 내가 선생님을 돕지요.”

“부탁드립니다.”

카스텔은 큰 공격을 준비했고, 사울은 그런 카스텔의 곁에 섰다.

그런 카스텔의 모습에서 무언가를 느낀 듯, 모데아는 곧바로 석궁을 겨누었다.

시위 소리와 함께 막강한 힘이 실린 화살이 카스텔을 향해 날아왔다.

동시에 사울은 깨달았다.

카스텔은 화살 쪽에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무리 카스텔이라도 저 정도의 화살을 맨몸으로 받으면 살아남기 어렵다.

말 그대로 자신의 목숨을 온전히 사울에게 맡긴 것이었다.

순간 사울은 묘한 기분을 느꼈지만, 지금은 여유롭게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사울은 강력한 마법 방어막 여러 개를 동시에 쳤다.

분명 모데아는 단순한 사격은 물론 속사에도 능했다.

언제 어떻게 예상치 못한 사격을 할지 모르니, 미리 철저히 대비하는 게 현명했다.

덕분에 사울이 친 방어막은 날아오는 화살을 완벽하게 막아 냈다.

그리고 그동안 카스텔은 ‘큰 것’을 날릴 준비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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