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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무능한 적국 왕자였다-193화 (193/232)

193화

말이 나온 뒤에야 사울은 꽤나 감정적인 발언을 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지금은 이보다 냉정하게 대처할 수가 없었다.

“……!”

카스텔은 적잖이 놀란 듯 눈빛이 변했다.

착한 제자가 이런 모습을 보일 줄 몰랐던 것일까.

아니면 사울이 꽤나 격렬한 감정을 억누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일까.

사울은 그런 카스텔에게 냉정히 말했다.

“선생님에게는 항상 신세를 많이 지고 있어요. 하지만 내게 지나친 간섭을 하는 건 삼가도록 해요.”

“…알겠습니다.”

아마 카스텔은 하고 싶은 말이 더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대화를 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결국 카스텔은 말없이 사울의 방을 나섰다.

홀로 남은 사울은 한숨을 내쉬었다.

‘슬슬 카스텔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하나.’

돌이켜 보면 정말 묘한 관계다.

전생의 자신을 죽인 사람이 지금은 스승이자 최측근이 되어 있으니까.

처음에는 말 그대로 실컷 이용할 생각이었다.

카스텔을 스승으로 삼아 강해질 만큼 강해진 뒤, 버릴 때가 되면 냉정하게 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사제 관계를 맺은 탓일까.

생각처럼 상황이 흘러가지 않았다.

카스텔은 자신을 제자이자 주군으로 아끼고 있다.

그런 카스텔을 냉혹하게 버리고, 죽일 수 있을까.

따지고 보면 카스텔이 전생의 자신을 죽인 건 자신의 임무이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사지로 몰아넣어 죽게 만든 자들과는 달랐다.

전생의 자신도, 지금도 전장에서 수많은 적들을 죽인 사울이다.

카스텔도 다를 게 하나도 없다.

빛의 교단에서도 전장에서 적을 죽이는 것을 죄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럼 카스텔을 용서해야 할까.

그것도 쉽지는 않았다.

전생의 원한을 풀기 위해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리고 카스텔을 복수의 대상으로 생각해 왔다.

한 번 누군가를 용서하기 시작하면 계속 용서하게 될 것 같다.

아직 진짜 원수인 가멜다 왕국의 안소니 백작은 얼굴도 못 보았다.

진짜 죽일 놈이 건재한데 벌써부터 용서를 생각해서야 되겠는가.

“그건 절대로 안 돼.”

사울은 다시 한번 스스로를 다잡기로 했다.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놈이 있다.

그 원수를 만나기도 전에 마음이 풀어져서는 안 된다.

제대로 된 복수는 시작도 안 했는데 원한을 잊는다거나 용서 따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결국 카스텔도 복수의 대상이다.

언제가 되었든 그녀에게도 책임을 물을 것이다.

그 모든 게 끝난 뒤 여동생에게도 자신의 정체를 밝히면 모든 게 끝나는 것이리라.

‘그러고 보니 그 아이는 복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어머니와 여동생 모두 죽은 줄 알았기에 그 사람들에게 복수에 대해 물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머니와는 달리 여동생은 아직 살아 있다.

말을 잘 꾸미면 어떻게든 아미스에게 복수에 대해 물어볼 수 있을지 모른다.

지금의 아미스를 보건대, 대답은 뻔할 것이다.

최소한 복수를 긍정하지는 않을 게 분명했다.

“젠장.”

사울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죽은 줄 알았던 여동생이 나타난 건 더없이 기쁜 일이다.

하지만 여동생의 존재는, 또 여동생이 하는 일은 자신을 너무나도 큰 혼란에 몰아넣었다.

한 가지는 확실했다.

지금까지 쌓아올린 것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는 없다는 것.

자신의 전생을 망친 자들은 어쨌든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

그동안 해 온 모든 일들을 없던 것으로 하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렸으니까.

* * *

사울은 쓸데없는 생각을 지울 겸, 일에 몰두하기로 했다.

다행이라 해야 할지 할 일은 충분했다.

킬리안과 가멜다 왕국 귀족과의 연결 고리를 밝히는 것.

그 일에 전념하는 것만으로도 매일 잠잘 시간이 부족할 정도였다.

먼저 사울은 루시아에게 도움을 요청하고는, 지금 할 수 있는 일의 조사에 들어갔다.

아미스에게 정보를 요청하고, 또 대신전에서 찾을 수 있는 정보라면 모조리 모았다.

그동안 대신전에서 머무르며 인맥을 쌓은 보람이 있어 여기저기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나아가 사울은 카멜 산의 협조도 구하기로 했다.

“카멜 산에도 정보를 요청해야겠어.”

“카멜 산에 가멜다 왕국과 킬리안과의 연결 고리에 대해 말씀하실 겁니까?”

“그럴 수는 없지. 피닉스 문제를 조사할 필요가 있으니 정보를 요청한다고 해.”

“알겠습니다.”

영리한 아르멜은 사울의 생각을 곧바로 알아챘다.

피닉스와 어둠의 세력, 킬리안은 모두 연결 고리가 있다.

즉 가멜다 왕국의 귀족과도 연결 고리가 있을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면 피닉스를 조사하는 게 킬리안을 조사하고, 귀족을 조사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연결 고리를 찾지 못할 수도 있지만, 시간 낭비는 아니다.

피닉스 같은 불순분자에 대해 알아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니까.

사울은 카멜 산에 ‘전쟁을 틈타 피닉스가 준동할 것을 대비한다’는 이유로 피닉스에 대한 정보를 요청했다.

카멜 산에서도 사울의 요구를 선선히 들어주었다.

난민과 탈영병을 받아들이기로 한 이상, 반대급부로 다르센 왕국 왕자의 요구는 어느 정도 들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리라.

덕분에 사울은 대신전에 앉아서 수많은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다.

아미스에게는 킬리안과 가멜다 왕국 귀족에 대한 정보를, 카멜 산에서는 피닉스에 대한 정보를 모았다.

그 외에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정보망을 동원하여 킬리안, 피닉스, 어둠의 세력에 대한 정보를 닥치는 대로 모았다.

대신전도 카멜 산도 킬리안, 피닉스, 어둠의 세력을 경계했기에 정보를 얻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그 정보들을 분석한 결과, 사울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분명 피닉스와 어둠의 세력은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수많은 정보를 분석하고 조합한 결과, 그들은 움직이고 있었다.

* * *

사울은 일행을 불러 모았다.

공적인 일이라 최근에는 보기가 다소 거북해진 카스텔도 함께 불렀다.

모두들 모인 가운데, 사울은 그동안 검토한 문서 더미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무래도 중립 지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평화롭게 돌아가는 게 아닌 것 같아요.”

모두들 사울과 함께 정보를 분석하고 몇 차례 의견도 주고받았다.

그래서 사울이 말하지 않아도 알 건 다 알고 있었다.

“네, 전하.”

아이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무엇보다 이종족 사이에서 피닉스가 점점 세력을 넓혀 가고 있다는 게 마음에 걸립니다.”

“맞아요, 이미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단계는 넘어섰어요.”

“그렇습니다. 분명 전쟁 전까지 피닉스는 자신들과 관련된 자가 아니면 접촉마저 피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쟁을 기점으로 점점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은 극소수지만, 이종족 마을에서 피닉스에 동조하는 자들까지 하나둘 나오고 있다고 하니까요.”

이종족의 세상을 꿈꾸는 피닉스.

그들의 존재 자체는 비밀이 아니다.

하지만 이종족이 많이 거주하는 중립 지대에서도 피닉스에 동조하는 자들은 드물었다.

뭐 하는 자들인지 정체마저 불분명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전쟁이 재개된 후 피닉스에 동조하는 자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었다.

하지만 대신전이나 카멜 산에서는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가랑비에 옷 젖듯 조용히, 또 천천히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울은 가벼이 넘길 일이 아니라 여겼다.

“아이나.”

“네, 전하.”

“내가 피닉스라면 중립 지대에만 이런 일을 하진 않을 거예요. 두 왕국도 목표로 삼겠지요. 내 말뜻, 알아듣겠나요?”

“아버님의 영지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모른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요, 중립 지대의 불온한 움직임도 큰 문제지만, 만에 하나 홉킨스 영지에서 불온한 움직임이 있다면 더 큰 문제예요. 물론 영주의 능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최근 영주도 전쟁 지원을 위해 많이 바쁘다면서요?”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문제예요. 전쟁 준비에 전념하느라 영지 관리에 빈틈이 생길 수 있고, 그 틈을 피닉스 같은 자들이 노릴 수도 있어요. 나아가 그자들이 킬리안이나 어둠의 세력과 연결되어 있고 나아가 가멜다 왕국과 연결되어 있다면, 그리고 그 불온 세력들이 홉킨스 가문 영지에 뿌리를 내리기라도 한다면…….”

물론 사울의 말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것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 벌어질지 모르는 일이다.

사울의 말뜻을 분명히 알아들은 아이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님과 연락하며 긴밀히 알아보겠습니다.”

“그럼 이종족에 대한 것, 그리고 홉킨스 가문 일은 그대에게 맡기겠어요.”

“네. 전하.”

이어 사울은 아르멜에게 물었다.

“킬리안이나 어둠의 세력 쪽은 특별한 움직임이 없나?”

“이틀 전 보고 드린 그대로입니다. 어둠의 세력은 아무런 움직임이 포착되지 않았고, 킬리안은 그저 자기 사업을 확장시키려는 움직임 정도만 포착되고 있습니다.”

“그런가. 가멜다 왕국 쪽은?”

“대신전에 머무르고 있는 녀석들은 요즘 카멜 산과 접촉하는 모양입니다. 듣기로 지금까지의 모든 행동을 용서하고 또 무역 특혜를 보장하는 대가로 자기들 편으로 끌어들이려 한다는군요.”

“쓸데없는 짓을 하는군.”

용서나 무역 특혜 따위로 움직일 카멜 산이 아니다.

카멜 산이 독립 세력이 된 지도 어언 이백 년.

그동안 쭉 두 나라의 전쟁에서 엄격히 중립을 지켰다.

그것이 대족장 세네카의 뜻이자, 카멜 산을 이끄는 상층부 대부분의 뜻이기도 하다.

고작 ‘용서’나 ‘무역 특혜’ 따위로 200년 넘게 이어진 고집을 버리겠는가.

“만에 하나라는 게 있으니 가멜다 왕국 쪽의 움직임도 계속 주시하도록 해.”

“네, 전하.”

“그리고…….”

사울의 시선이 카스텔을 향했다.

얼마 전 일 이후 대하는 게 예전만큼 편하지는 않다.

하지만 지금은 공적인 자리다.

“선생님 쪽은 어때요?”

사울의 질문에 카스텔은 표정 없는 얼굴로 대답했다.

“계속 조용히 알아보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았지요?”

“네, 전하.”

카스텔에게는 특별한 임무가 내려졌다.

독자적으로 움직이며, 마법을 통해 상대의 정신을 주무르며 정보를 빼내는 임무 말이다.

어찌 보면 대단히 까다로운 임무였다.

홀로 움직이며 흔적도 남기지 않고, 또 상대에게 크게 위해를 끼치지 않고 마법을 통해 각종 정보를 얻어야 했으니까.

그래서 일이 빠르게 진행되지는 않았다.

카스텔이 게을러서가 아니라 홀로 신중하게 움직인 탓이다.

그러나 덕분에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정보를 모았다.

주로 중립 지대의 주민들을 상대로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모으기 어려운 정보들까지 모았다.

“이번에는 피닉스와 직접 접촉한 자들을 만나 보았지요?”

“네, 그들에게서 피닉스에 대한 정보를 들었습니다.”

“어떻던가요?”

“약간의 소득이 있었습니다. 제가 만난 자들 중 한 명이 피닉스와 악마 토끼풀 판매자가 만나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사실이라면, ‘약간의 소득’이 아니다.

아직 명확한 증거가 없는 피닉스와 킬리안의 연결 고리에 대한 증거일 수도 있으니까.

“좀 더 자세히 말해 봐요.”

“지금까지 나온 정보는 그게 전부입니다. 그자는 자신이 목격한 것을 제게 모두 말했고, 그 이상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자가 거짓말은 한 건 아니겠지만, 착각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렇군요. 역시 증거가 더 필요할 것 같으니 계속 수고해 줘요.”

“네, 전하.”

말을 마친 카스텔의 무표정한 얼굴은 전과 조금도 다른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사울은 알 수 있었다.

저 무표정한 얼굴, 그리고 감정이 없어 보이는 눈동자에 서린 희미한 감정을.

사울을 원망하는 건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의아함에 가까워 보였다.

사울이 변했다는 것도 깨달았고, 자신을 향한 사울의 감정이 복잡하다는 것 역시 깨달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유는 절대 알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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