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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무능한 적국 왕자였다-178화 (178/232)

178화

“무작정 버티기만 하는 건 좋은 전략이 아니겠지.”

“네, 형님.”

“알겠다. 그럼 아르멜의 의견을 따르기로 하고… 전력은 어떻게 나누어야 하겠나?”

이 또한 사울이 생각해 둔 바가 있긴 했다.

하지만 사울은 조나단의 생각이 궁금했다.

과연 제대로 된 의견을 낼 수 있을지 말이다.

사울은 형님에게 주도권을 넘기겠다는 듯, 겸손한 태도로 말했다.

“지금 이 요새의 책임자는 형님 아니십니까. 저는 형님의 뜻에 따르고 싶습니다.”

“음.”

또다시 한참이나 생각한 끝에 조나단이 말했다.

“사울, 베일을 한 번 더 상대할 수 있겠느냐?”

“형님께서 메로빙거 자작을 공격하시려고요?”

“그래, 카스텔 혼자서 마검사를 막는 건 어렵겠지. 그러니 너와 아이나가 함께 베일을 상대하면, 그사이 내가 전력을 동원해 메로빙거 자작을 죽이고 이 전투를 끝내겠다.”

나쁜 의견은 아니다.

메로빙거 자작을 상대하기 위해 전력을 남문 쪽에 집중시킨다면 상대적으로 서문 쪽의 전력이 빈약해질 것이다.

메로빙거 자작을 죽이기 전 서문이 뚫린다면 이 전투는 지는 것이다.

서문 쪽에서 버티고 있는 베일을 막으려면 카스텔, 그리고 사울과 아이나가 함께하는 게 나았다.

이미 베일을 상대해 본 적 있는 조합이니까.

‘다시 한번 목숨을 걸어야 하는 건가.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최선일 것 같군. 형님에게 베일 쪽을 맡겼다 죽기라도 하면 곤란할 테니.’

생각을 정리한 사울이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선생님과 아이나 생각은 어때요?”

“전하의 결정이라면.”

이렇게 결전을 위한 작전이 세워졌다.

* * *

세드의 회의 참석 요구를 받은 베일의 답변은 간단했다.

“작전 같은 건 그쪽에서 알아서 결정하시오. 내 뜻과 어긋나지 않는 한, 반대하지 않을 테니.”

평시도 아닌 전시에서, 그것도 중요한 작전 회의를 이렇게 물리치는 베일의 태도는 세드의 속을 다시 한번 뒤집어 놓았다.

하지만 강제로 회의에 참석시킬 방법은 없었고, 별수 없이 세드는 부하들과 작전 회의를 마친 뒤 베일을 불렀다.

“작전은 결정되었소?”

“그렇소.”

“어떤 작전이오?”

“남작도 알다시피 시간이 지날수록 저들은 불리해질 거요.”

세드의 말에 베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그럼 적들이 더 불리해지기 전에 무언가 과감한 작전을 펼칠 것이라 생각하는 거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소. 어차피 우리도 몇 달씩 이곳에 머무르지는 못할 테니 버틸 때까지 버티려 들 수도 있지.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소. 겉보기에는 요새 사정이 괜찮아 보이지만, 슬슬 여기저기가 삐그덕대고 있을 테니까.”

“내가 무엇을 하면 좋겠소?”

“적이 언제 움직일지, 또 구체적으로 어떻게 움직일지는 모르겠소. 하지만 나라면 지휘부를 공격해서 아군을 붕괴시키려 할 거요.”

베일도 ‘지휘부’가 자신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내가 아닌 자작이 목표가 될 것이라는 말이군.”

“그렇소.”

“그럼 자작도 서문으로 오는 게 어떻소? 나와 함께 있으면 적들도 함부로 공격하지 못할 텐데?”

이 또한 하나의 방법이었지만, 세드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아군 전력의 대부분이 서문으로 향할 테고, 적들도 이를 눈치채고 서문 쪽에 전력을 집중시킬 거요. 그럼 요새 양쪽을 제대로 공격하기 어려워질 테니 요새를 깨기 더 어려워지겠지.”

세드의 말대로였다.

요새의 서문과 남문 중 더 중요한 곳은 서문이다.

그래서 베일도 서문에서 적을 공격하고 있다.

하지만 서문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지, 남문이 안 중요한 건 아니다.

남문이 깨져도 요새 함락으로 이어질 수 있는 건 마찬가지다.

이에 가멜다 왕국군은 서문은 물론 남문도 공격했고, 다르센 왕국군도 남문 또한 적극적으로 수비했다.

병력이 많은 가멜다 왕국군이 서문과 남문을 한꺼번에 공격해 적 전력을 분산시키고 지치게 한다.

지금 공성전의 기본 전략이었고, 나름대로 효과도 있었다.

당장 성문을 깨지는 못해도 적이 점점 지쳐 가는 게 눈에 보였으니까.

효과를 거두고 있는 전략을 갑자기 바꾸는 건 현명한 일이 아니다.

베일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럼 지금 전략을 유지하며 적의 움직임에 대비하자는 말이오?”

“그렇소.”

“적이 정말 자작을 공격하면?”

“나는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소. 그러니 내가 버티는 동안 자작께서 하루빨리 서문을 깨 주시오. 그럼 우리가 이길 수 있소.”

베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그럼.”

용무를 마친 베일은 곧바로 자신의 진영으로 돌아갔다.

베일을 돌려보낸 세드는 홀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까지 말했으니 저자도 허튼짓을 하지는 않겠지. 문제는 내가 얼마나 버티냐군.”

적의 기습 시기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면 막아 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기습 시기는 예상할 수 없다.

그저 요새가 깨지기 전, 한 번은 적이 과감히 움직이리라 짐작할 수 있을 뿐.

곧 세드는 부대에 명령을 내렸다.

언제고 적이 기습해 올지 모르니 대비를 하라고 말이다.

* * *

다르센 왕국군도, 가멜다 왕국군도 나름대로 필승 전략을 세웠다.

하지만 어느 쪽도 곧장 전략대로 움직이진 않았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공성전은 평소처럼 이어졌다.

요새 성벽을 깨거나, 성문을 열기 위한 공격 측의 분투와 이를 막기 위한 방어 측의 분투의 반복이었다.

며칠이 더 흘렀다.

양쪽 모두 피해가 점점 불어났다.

그렇게 공성전이 시작되고 엿새째가 되던 날.

“서문이 열렸습니다!”

예고 없이 요새 서문이 열리며, 일단의 병력이 튀어나왔다.

조나단, 로타, 아르멜 등이 이끄는 정예 병력이었다.

“적 지휘부를 노려라!”

“노리는 건 세드 메로빙거 자작의 목이다!”

조나단이 직접 이끄는 부대의 기세는 대단했다.

이러한 공격을 어느 정도 대비하고 있던 가멜다 왕국군도 기세에서 밀렸다.

“모든 병력은 수비를 굳혀라! 그리고 신호를 보내라!”

자신을 비롯한 지휘부를 지키며 신호를 보낼 것을 명령한 세드는 요새 서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마 서문 쪽에도 이 사실이 전해졌을 것이다.

과연 베일이 재빨리 성문을 깰 수 있을까.

‘아마 이 전투는 오늘 판가름이 나겠지. 베일 녀석이 잘해 주어야 할 텐데.’

* * *

“자작님! 신호입니다!”

“알겠다. 그 작전을 준비하라.”

베일은 이때를 위해 준비한 작전을 펼치기로 했다.

이 전투에서, 오직 한 번만 시도할 수 있는 작전이다.

첫 번째 시도에서 실패하면 적들도 분명 대비를 할 테니까.

“준비는?”

“모두 끝났습니다!”

베일 주변에 마법사들이 모여들었다.

“지금이다!”

“네, 남작님!”

마법사들이 일제히 마법을 시전했다.

그러자 베일의 몸이 공중에 떠올랐다.

그리고 커다란 구형의 방어막이 떠오른 베일의 몸을 보호했다.

“그럼, 갑니다!”

한 마법사의 외침과 함께 마법사들이 다시금 마법을 시전했다.

그러자 구형이 방어막에 감싸인 베일의 몸이 마치 투석기로 쏜 바윗덩이처럼 튀어 올랐다.

순식간에 베일의 몸이 드높은 성벽 위로 향했다.

“아니……!”

예상치 못한 작전에 다르센 왕국 병사들은 크게 놀랐다.

상상조차 해 본 적 없던 광경 앞에서 어떻게 대응을 할 방법조차 찾지 못했다.

덕분에 베일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성벽 위에 착지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투석기로 쏜 바윗덩이마냥 엄청난 거리를 타고 날아와 내리꽂힌 꼴이었다.

그럼에도 베일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몸 전체를 감싸고 있던 방어막이 베일의 몸을 지켜 준 것이었다.

“고, 공격해라!”

상상도 못 한 광경 속에서, 뒤늦게 정신 차린 다르센 왕국군이 베일을 공격했다.

누구도 베일에게 직접 창칼을 들이댈 생각은 못 했고, 멀리서 활을 쏘고 마법을 날려 댔다.

하지만 그 어떤 공격도 베일 주변의 방어막을 뚫지 못했다.

방어막을 깬 건 외부의 공격이 아닌, 베일 자신이었다.

무사히 성벽 위에 도착했으니 방어막 따윈 방해라는 듯, 칼질 한 번으로 방어막을 파괴했다.

그리곤 쌍검을 휘두르며 다르센 왕국 병사들을 베기 시작했다.

“으아악!”

베일이 착지한 곳은 성문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그만큼 많은 병력이 모여 있었지만, 누구도 베일을 막을 수 없었다.

그들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왔나.”

성문으로 향하던 베일은 ‘그들’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곤 미소 지었다.

* * *

“저렇게까지 할 줄이야.”

베일이 성벽 위로 말 그대로 ‘날아온 것’을 본 사울은 혀를 내둘렀다.

적 지휘부의 공격이 시작되면, 서문 쪽의 공세가 거세지고 베일도 움직일 것은 예상했다.

하지만 저런 방식을 쓸 줄은 몰랐다.

저건 베일 혼자 성벽 위로 안전하게 올려 보낸 뒤, 개인의 힘으로 성문을 열거나 성문이 열릴 때까지 버티며 난리를 치라는 뜻이 아닌가.

실로 무지막지한 작전이다.

그래서 사울도 저건 예상치 못했다.

곁에 있던 카스텔도, 아이나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전하.”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카스텔의 말에 사울도 정신을 차렸다.

“모두, 가요.”

베일과 싸워도 성벽이 막아 주는 가운데 공방을 주고받을 줄 알았는데, 직접 검을 주고받을 판이다.

생각보다 더 위험해졌다고 엄살을 피울 때는 아니다.

요새 서문이 열리거나 파괴되면 모든 것이 끝이니까.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서문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울 일행은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다.

베일 역시 사울 일행의 접근을 감지한 듯 서둘러 움직이진 않았다.

“아아악!”

“후, 후퇴하라!”

그저 성문 주변에서 눈에 띄는 모든 다르센 왕국군을 공격할 뿐이었다.

가까운 병사는 직접 베어 넘기고, 검이 닿지 않는 곳에 위치한 적에게는 가차 없이 불과 얼음 을 퍼부었다.

베일이 검을 휘두르고 불과 얼음을 날릴 때마다 어김없이 아군이 죽고 다쳤다.

반대로 베일에게 효과를 거두는 공격은 단 하나도 없었다.

말 그대로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그 광경을 본 사울은 검을 움켜쥐며 큰 소리로 외쳤다.

“베일!”

베일은 천천히 사울 쪽을 돌아보며 살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사울 왕자! 거기에다 검은 흉성에 애송이 아가씨까지!”

사울, 카스텔, 아이나라는 세 명의 강자.

거기에 주변에 깔리다시피 한 수많은 다르센 왕국 병사들.

말 그대로 독 안에 든 쥐 꼴임에도 베일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자신감이 넘친 나머지 어리석게 행동하지도 않았다.

베일은 곧바로 사울에게 검을 휘두르는 대신, 몸을 돌렸다.

사울이 두려워 달아나는 게 아니었다.

베일은 성문 쪽으로 향했다.

자신의 검으로 성문 빗장을 부숴 버리려는 속셈인 모양이었다.

아무리 베일이 강하다지만, 혼자서 성문 빗장을 부수고 성문을 열 수 있을까?

성문도, 빗장도 마법으로 강화되어 있는 데다 적잖은 병력이 지키고 있는데 말이다.

‘아니, 놈이라면 가능해!’

베일이 아무 방해 없이 성문을 공격할 수 있다면, 안에서 빗장을 파괴하는 게 아니라 밖에서도 성문을 부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할 일은 한 가지다.

“놈을 막아라!”

명령과 함께 사울, 그리고 카스텔과 아이나는 베일을 쫓았다.

하지만 베일도 일방적으로 쫓기진 않았다.

“어리석은 놈들!”

문득 베일이 몸을 돌리며 검을 휘둘렀다.

불꽃과 얼음이 함께 휘몰아치는 폭풍이 사울 일행을 덮쳤다.

“크윽!”

황급히 공격을 막아 낸 사울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알고 있었지만, 역시나 괴물 같은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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