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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무능한 적국 왕자였다-174화 (174/232)

174화

이에 사울도, 또 카스텔과 아이나도 즉각 방어 태세를 갖추었다.

“죽어라! 사울!”

카스텔이 아닌 사울을 노린 집중 공격.

한 치의 빈틈이라도 보이면 사울은 살아남을 수 없다.

그 사실을 깨달은 사울과 카스텔 그리고 아이나는 오로지 방어에 전념했다.

베일은 더 이상 여유롭게 행동하지 않았다.

폭풍처럼 공격을 퍼부으며 어떻게든 사울 하나라도 죽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크윽!”

한 번 베일의 공격을 받을 때마다 사울의 몸에 상처가 늘어났다.

방어에 전념하고 있음에도, 그리고 카스텔과 아이나도 사울을 지키기 위해 온 힘을 다함에도 베일의 공세를 완전히 막을 수 없었다.

이대로 가면 결국 사울이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전하를 구하라!”

일단의 기사와 마법사들이 전투에 끼어들었다.

요새에서 나온 병력들, 그중에서도 마나를 다룰 줄 아는 기사와 마법사들이 일제히 전장에 난입하여 사울의 지원에 나선 것이었다.

“쥐새끼 같은 놈들!”

결국 베일은 검을 돌려 난입해 온 기사와 마법사들을 공격했다.

덕분에 사울은, 그리고 아이나와 카스텔은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전하, 괜찮으십니까?”

“그대들은?”

“조나단 왕자님께서 보내셨습니다!”

“고맙군.”

한숨 돌린 사울은 기사와 마법사들과 함께 위한 진형을 새로이 구축했다.

곁으로 보기에는 역으로 베일을 포위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베일을 쓰러뜨리는 걸 기대할 수는 없었다.

“네놈들이 날 쓰러뜨릴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으아악!”

베일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기사가 쓰러지고, 마법사가 죽어 나자빠졌다.

마나를 다룰 줄 아는 실력자들이 진형을 짜 최대한 효율적으로 움직였음에도 베일을 상대하는 건 어려웠다.

아무리 진형과 전략을 잘 짜도 베일 같은 괴물에게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었다.

전체적인 전황도 사울 쪽에 유리하지 않았다.

가멜다 왕국군은 사울이나 카스텔의 제거에만 집중하지 않았다.

별동대 전체를 전멸시키기 위해 군사를 끌고 왔다.

다르센 왕국군도 지지 않고 맞섰다.

요새에서 보낸 구원군은 사울과 별동대 모두를 구하기 위해 움직였다.

하지만 적의 공세가 만만치 않았다.

베일이 공세를 퍼부을 때마다 사울을 구원하러 온 기사와 마법사들이 죽어 나갔다.

또 기세에 밀린 별동대도 점점 밀리는 판국이었다.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한 사울은 결정을 내렸다.

“물러나야겠어요.”

“알겠습니다.”

지금 사울이 물러난다는 건 별동대 전체가 물러난다는 것을 뜻한다.

요새 주변에 별동대가 따로 머무를 곳은 없으니, 모두 요새로 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렇게 사울은 휘하 병력과 함께 후퇴하기 시작했다.

“어딜 도망가느냐!”

베일은 눈을 치켜뜨며 사울을 쫓기 시작했다.

그런 베일을 가로막은 기사와 마법사 여러 명이 쓰러졌다.

하지만 사울을 지키기 위해 모여드는 병사들은 전력은 점점 불어났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으려는 베일을 제지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가르시아 자작! 멈추시오!”

가멜다 왕국의 지휘관 세드였다.

“이미 사울 왕자나 검은 흉성을 치기에는 늦었소! 지금은 별동대를 요새 밖에 남기지 않는 데 집중할 때요!”

베일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이대로 물러가기에는 아쉬웠지만, 세드의 말에 반박할 만한 논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힘으로 세드를 몰아붙일 수도 없었다.

무력도, 명성도 베일 쪽이 우위지만, 자신과 같은 자작 작위를 가지고 있으며 이 전장의 지휘관인 세드의 말을 일방적으로 무시할 수는 없다.

“빌어먹을!”

결국 베일은 사울의 추격을 단념했다.

대신 눈에 보이는 적들을 베어 넘기며, ‘별동대 섬멸’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전하를 지켜라!”

“으아악!”

별동대가 적의 기세에 밀리는 가운데, 사울은 로타와 재회했다.

“전하, 무사하십니까?”

“살아는 있어요.”

“…안타깝지만 퇴각해야겠습니다.”

로타도 사울과 생각이 같았다.

더 버티다가는 별동대가 전멸할 수도 있기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다행히 후퇴가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성문 주변의 움직임을 볼 때, 후퇴하는 별동대를 맞아들이기 위한 준비도 끝난 모양이었다.

“후퇴해요.”

“네, 전하. 모두 후퇴하라!”

사울과 로타의 명령에 별동대 전체에 후퇴 명령이 내려졌다.

적의 기세에 밀릴지언정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지지는 않은 별동대는 후퇴 명령에 일제히 요새 쪽으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대열을 유지하며 후퇴하라!”

“적들을 모조리 없애라!”

후퇴하는 별동대.

그런 별동대의 꽁무니에 따라붙어 계속 공격을 퍼붓는 가멜다 왕국군.

다급한 상황 속에서 요새의 병력도 별동대 지원에 나섰다.

“성문을 열어라! 또 적의 침입에 대비하라!”

“적이 아군을 따라붙지 못하게 하라!”

성벽 위에서 화살과 마법 세례가 쏟아지며 가멜다 왕국군을 공격했다.

덕분에 별동대는 대열을 유지한 채 무사히 성문까지 퇴각할 수 있었다.

“더 이상 공격하기는 어렵겠군.”

전장 상황을 살펴보던 세드는 후퇴를 결정했다.

별동대를 전멸시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요새 안으로 쫓아 보내는 데는 성공했다.

피해 역시 적 쪽이 더 컸으니 어느 정도 전과를 거둔 싸움이라 할 수 있다.

무리하다 역공을 당하는 건 어리석다.

“더 이상 적을 쫓지 마라!”

세드의 명령이 가멜다 왕국군에 빠르게 전달되었다.

가멜다 왕국군도 요새에서 물러나고, 그렇게 치열한 전투는 끝났다.

요새 주변에 주둔하고 있던 별동대는 요새 안으로 쫓겨 들어갔다.

승패로 따지면 가멜다 왕국군의 승리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승자인 가멜다 왕국군도 마냥 만족할 수는 없는 결과였다.

* * *

“부상이 가벼운 자들은 치료 후 복귀하라. 중상자들은 저 천막으로 후송하라!”

“적들이 야습을 해 올지 모르니 경계를 늦추지 마라!”

기존 병력에 별동대까지 합류한 제르넬 요새는 이전보다 더 북적이고, 훨씬 바빠졌다.

치열한 전투를 치른 만큼 사상자도 많이 발생했다.

죽은 자들을 수습할 여유는 없어도 부상자는 최대한 수습해야 했다.

지휘관급도 여럿 죽거나 다쳤다.

특히 사울이 입은 부상은 상당했다.

마지막에 베일이 사울을 노리고 집중 공격을 퍼부은 탓이었다.

상처를 참고 움직이던 사울은 요새에 발을 들여놓기 무섭게 쓰러졌다.

“전하, 조금만 참으십시오.”

“으윽……!”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드러내는 건 왕자로서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요새의 그 누구도 사울을 비난하지 않았다.

사울의 온몸은 상처투성이였다.

칼로 베이거나 냉기에 당한 상처에 불길에 휩쓸려 입은 화상까지.

치료 마법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목숨을 건지기 어렵거나, 목숨을 건져도 장애가 남을 만한 중상이었다.

다행히 제르넬 요새에는 실력 좋은 치료 마법사가 여럿 있었다.

“지금 바로 치료를 시작하겠습니다.”

급히 불려온 마법사가 치료 마법을 시전했다.

하얀 마법의 빛이 사울의 몸을 감쌌다.

치료 마법은 특히 상처를 고치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

가벼운 부상이었다면 그 자리에서 상처가 아물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울의 상처가 워낙 크고 깊었기에 상처가 빨리 아물지는 않았다.

그래도 고통은 빠르게 줄어들었고, 사울의 표정도 평온해졌다.

“전하, 괜찮으십니까?”

“음.”

치료 마법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제 큰 문제는 없으실 겁니다.”

“내 몸이 완전히 회복될 수는 있겠나?”

“물론입니다. 며칠 쉬시면서 치료를 계속 받으시면 빠르게 회복될 겁니다.”

사울은 새삼 치료 마법의 존재에 감사했다.

치료 마법이 아니었다면 몇 달은 자리보전을 했을 테고, 완치도 어려웠을 것이다.

치료 마법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 혜택을 제대로 누릴 수 있는 왕자인 게 정말 다행이었다.

“사울!”

조나단도 사울을 찾아왔다.

“몸은 괜찮으냐?”

“네. 형님 덕분에 살았습니다.”

조나단은 마검사와 맞서다 큰 부상을 입은 사울에게 생색을 낼 생각은 들지 않았는지 손까지 내저으며 말했다.

“아니다. 네가 열심히 싸운 덕분에 피해가 크게 줄었다.”

“전황은 어떤가요?”

“피해는 좀 있었지만, 그래도 살아남은 자들은 모두 요새 안으로 들어왔다.”

“결국 요새와 별동대와 함께 움직이는 작전은 더 쓸 수 없게 되었군요.”

“그건 그렇지. 하지만 절망할 필요는 없다. 아직 요새는 굳건하고, 지원군도 요청했으니까.”

“그렇군요…….”

지친 사울은 자기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사울이 잠든 것을 확인한 조나단은 치료 마법사에게 동생을 잘 돌보라 명령한 뒤 밖으로 나갔다.

다른 병실에는 카스텔과 아이나가 치료를 받고 있었다.

두 사람이 입은 상처도 적지 않았지만, 사울보다는 부상이 심하지 않았다.

보통 사람과 신체가 다른 카스텔은 벌써 어느 정도 회복이 된 상태였다.

“둘 다 괜찮은가?”

“네, 전하.”

카스텔은 일어서서 간단히 예를 표했지만, 아이나는 침대에 누운 채로 조나단을 맞아야 했다.

“다행히 사울도 괜찮다더군. 아니, 괜찮은 건 아닌가? 아무튼 치료 마법사가 밤낮으로 치료하면 며칠이면 몸을 추스를 수 있다고 했다.”

아이나의 표정이 밝아졌다.

“정말 다행입니다.”

반면에 카스텔은 표정 없는 얼굴로 말했다.

“전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조나단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전투를 지켜보았다. 마검사 베일… 정말 듣던 대로, 아니, 그 이상의 괴물이더군.”

아이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저도 정말 놀랐습니다. 세상에 그런 괴물이 있을 줄이야…….”

“카스텔이 몸만 멀쩡했다면 놈이 그렇게 날뛰지 않았을 텐데.”

카스텔은 아무 말도 하지 않다 뒤늦게 물었다.

“전황은 어떻습니까?”

“쉽지는 않다. 최소 일주일은 우리 힘만으로 버텨야 할 것 같다.”

“일주일입니까.”

“그래. 설마 마검사까지 나타날 줄은 몰랐던 거지. 놈만 아니었으면 일주일 정도는 충분히 버틸 수 있었을 테지만.”

“그럼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버틸 수 있는 데까지는 버텨야지. 하지만 최악의 경우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최악의 경우.

물론 요새 함락을 뜻한다.

“아무튼 둘 다 몸조리 잘해라. 조만간 치료 마법사들도 다시 보내마.”

“네, 감사합니다. 전하.”

인사를 한 건 아이나 뿐, 카스텔은 여전히 입을 열지 않았다.

카스텔을 잘 아는 조나단은 굳이 무례를 지적하지 않고 그냥 병실을 나갔다.

조나단이 나가자 아이나는 조심스레 카스텔에게 물었다.

“카스텔 씨, 기분이 좋지 않은가요?”

“기분이 좋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렇군요. 하지만 조나단 왕자님은 우리를 도와주셨어요. 그분이 아니었으면 우리도 사울 왕자님도 무사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압니다. 그분께 화가 난 게 아닙니다. 제 자신에게 화가 났을 뿐입니다.”

아이나는 그런 카스텔의 눈치를 살피다 나지막하게 말했다.

“아직 카스텔 씨의 몸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으니까요. 회복된다면 분명 명예를 회복할 기회가 있을 거예요.”

“제 명예 따윈 어찌 되든 상관없습니다.”

“네?”

“제가 있었음에도 전하께서 무리하셨다는 게 화가 납니다. 그리고 저보다 전하께서 더 많이 다치셨다는 것도 화가 납니다. 그리고 놈과 다시 만나도 이길 수 없다는 것도 화가 납니다.”

“…….”

사실 분한 건 아이나도 마찬가지였다.

이유도 카스텔과 비슷했다.

자신의 실력에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음에도 상대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 분했다.

그리고 마땅히 지켜야 할 사울이 자신보다 더 큰 상처를 입고 쓰러진 게 분했다.

하지만 분한 마음만으로 해결되는 건 없다.

아이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말했다.

“하지만 우린 살아남았어요.”

“…그렇지요.”

“우리도 살아 있고, 전하도 살아 계시고, 또 아직 전투에서 진 것도 아니니까요. 아직은 만회할 기회가 있을 거예요.”

그제야 카스텔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가씨 말씀이 옳습니다.”

“네. 힘을 내자고요.”

카스텔은 그런 아이나에게 이렇게 말하려 했다.

‘…전하 곁에 아가씨 같은 사람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하지만 카스텔의 입에서 이 말은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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