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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무능한 적국 왕자였다-171화 (171/232)

171화

사울은 별동대를 총동원해 포위망 돌파에 나섰다.

이번에는 사울 쪽이 우위를 점했다.

거센 공격에 결국 포위망 한쪽이 뚫렸고, 사울은 아예 뚫린 쪽에 새로운 진지를 만들었다.

요새와 별동대와 분리되어 조나단과 연락조차 못 하는 일이 없도록 한 것이었다.

제르넬 요새에서도 가만히 앉아만 있지는 않았다.

수시로 원군이 나와 별동대를 도왔다.

덕분에 요새와 별동대의 연결은 끊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가멜다 왕국군이 공성 병기를 설치하고 요새를 향한 공격 태세를 갖추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그렇게 공성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성문을 부숴라!”

“와아아아!”

가멜다 왕국군 진영에서 공격 명령과 함께 병사들의 함성 소리가 천지를 뒤흔들었다.

본격적인 전투의 시작이었다.

요새 근방에서 그 상황을 보고 있던 사울은 로타에게 말했다.

“단 한 명의 적도 성벽을 넘지 못하도록 하세요.”

“물론입니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요새는 물론, 전하의 목숨도 지키겠습니다.”

“음.”

요새는 튼튼하고 수비 병력도 부족하지 않다.

하지만 적이 마음대로 요새를 두들기게 놔둔다면 뒷일을 장담할 수 없다.

특히 제르넬 요새는 평지에 위치하고 있어 많은 병력을 운영하는 것도, 공성 병기를 쓰는 것도 자유롭다,

우월한 병력을 바탕으로 요새를 치는 입장에서는 큰 이점이고, 수비 측에서는 큰 약점이었다.

그러니 별동대가 나서 적의 공격과 공성 병기의 운영을 최대한 방해할 필요가 있다.

일단 적의 움직임은 예상대로였다.

사울은 세워 둔 전략대로 움직이기로 했다.

적이 요새를 집중적으로 공격하지 못하도록 최대한 방해하는 작전이었다.

“진군하라!”

사울의 외침과 함께 별동대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최소한의 병력만 남겨 둔 채, 대부분의 별동대가 한 덩이가 되어 진군했다.

첫 번째 목표는 별동대의 움직임을 막기 위해 파견된 적 부대였다.

“적진을 돌파하라!”

양측의 머릿수는 비슷했지만, 병력의 질은 별동대 쪽이 우위였다.

적장 세드도 별동대를 전멸시키는 것보다는 한동안 움직임을 막는 것 정도를 기대했으리라.

그 사실을 깨달은 사울은 거세게 공격했다.

공격이 이어지자 결국 버티지 못한 적들이 물러났다.

“후퇴하라!”

눈앞의 적들을 물리친 사울은 병력을 이끌고 공성 병기 쪽을 공격하려 했다.

하지만 공성 병기에 접근하는 건 쉽지 않았다.

튼튼한 요새를 빨리 깨트리려면 마법이나 공성 병기를 이용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마법 전력은 ‘검은 마녀’가 있는 다르센 왕국군 쪽이 우위다.

결국 공성 병기를 잘 지키고, 제대로 활용하는 게 다르센 왕국군이 요새를 빠르게 깨트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놈들이 병기에 다가가지 못하도록 하라!”

드넓은 평지에서 별동대와 적군의 술래잡기가 시작되었다.

머릿수가 부족한 별동대는 기동력을 이용해 피할 수 있는 싸움은 피하며 공성 병기를 파괴하려 했다.

반대로 가멜다 왕국군은 많은 병력을 이용해 별동대를 궤멸시키려 했다.

양쪽 모두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사울은 별동대의 지휘를 로타에게 맡기고, 직접 싸우는 데 전념했다.

로타의 전투 경험이 적지 않고, 특히 기동전에 자신이 있다고 하여 내린 결정이었다.

잘못된 결정은 아니었다.

로타는 별동대를 지휘하고 독려하며 자신의 몫을 해냈다.

하지만 공성 병기를 파괴하지는 못했다

로타의 지휘하에 별동대는 화려하게 움직이며 적들을 농락했지만, 정작 공성 병기를 파괴하지는 못한 것이다.

“자리에서 벗어나지 마라!”

“요새를 공격하는 데 전념하라!”

공성 병기와 그들을 호위하는 병력은 철통같이 자리를 지켰다.

별동대가 그들을 혼란스럽게 하거나 꾀어내기 위해 몇 번이나 도발해 보았지만, 좀처럼 넘어오지 않았다.

결국 당장 공성 병기를 파괴하는 것을 포기한 로타가 사울에게 말했다.

“전하, 목표를 바꾸는 게 낫겠습니다!”

“내 생각도 그래요.”

사울의 눈에 공성 병기가 요새를 두들기는 광경이 보였다.

마법으로 보강된 투석기가 집채만 한 돌을 날리고, 성벽을 기어오르기 위한 사다리가 몇 대나 요새로 향했다.

거대한 돌덩이에 성벽이 무너지고, 운 나쁜 수비군은 깔려 죽기도 했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공성 병기를 때려 부수고 싶다.

하지만 공성 병기를 지키는 적들의 방비가 너무 굳건했다.

무리하다가 머릿수가 많은 적들에게 포위되면 전멸로 이어질 수 있다.

“하는 수 없지요. 우리는 적들을 최대한 휘젓는 데 집중하도록 해요.”

“네, 전하.”

“지휘는 계속 경에게 맡기겠어요.”

“알겠습니다!”

별동대는 전략을 바꿨다.

공성 병기는 내버려 두는 대신, 다른 병력이 자유로이 요새를 공략하지 못하도록 최대한 방해하는 전략이었다.

바뀐 전략에 따라 별동대는 더욱 바쁘게 움직였다.

적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입힐 수 없다면, 최대한 적진을 혼란스럽게 해야 했다.

적군도 이를 파악하고는 별동대를 포위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양쪽 모두 목표를 이루지 못한 가운데 계속된 전투는 날이 저문 뒤에야 끝났다.

* * *

전투를 마친 가멜다 왕국군의 분위기는 썩 밝지 못했다.

“아군 피해는?”

“사상자를 모두 합치면 오백 명 정도입니다.”

보고를 받은 세드 메로빙거 자작은 눈살을 찌푸렸다.

한 번의 전투에서 전 병력의 10분의 1을 잃었다.

공성전의 특성상 출혈은 피할 수 없지만, 예상보다 손실이 컸다.

“병력의 10분의 1을 잃을 동안 특별히 얻은 것은 없군.”

“…….”

전투에 참전한 세드의 아들 아론 메로빙거가 의견을 냈다.

“아버님, 이제 하루가 지났을 뿐입니다. 병력 손실에 조심하면서 계속 두들기면 결국 요새를 부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론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몇 달, 심지어 몇 년을 끌기도 하는 게 공성전이다.

본격적인 공성전을 벌인 지 하루 만에 상황이 어렵다고 이야기하는 건 지나치게 비관적인 소리일 수 있다.

하지만 세드의 표정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무슨 말인지 안다. 하지만 제르넬 요새도, 또 적 별동대도 만만치 않다는 게 문제다. 어느 한쪽이라도 쉽게 무너진다면 다른 쪽도 금방 무너뜨릴 수 있겠지만, 어느 한쪽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면 결국 우리가 먼저 지칠 테니까.”

다른 기사가 의견을 냈다.

“자작님, 일단 시간을 끄는 게 어떻습니까?”

“시간을 끌면 적들이 알아서 무너질 것이라 생각하는가?”

“꼭 적들이 무너지진 않더라도, 주변 전황이 우리에게 유리하게 돌아갈 수도 있지 않습니까.”

세드가 고개를 저었다.

“다른 곳의 전황이 변수가 될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마라. 지금 이 지역에서 이 제르넬 요새보다 중요한 전선은 없다. 또 우리는 다소 무리하여 국경을 돌파하여 여기까지 왔지. 만일 우리가 무너지면 다른 곳까지 무너질 것이다. 다른 지역의 전황에서 도움을 받을 생각을 할 게 아니라, 하루빨리 제르넬 요새를 점령하여 다른 지역을 도울 생각을 해야 한다.”

“…….”

또 다른 기사가 의견을 냈다.

“두 왕자가 적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조나단 왕자는 요새에 있으니 쉽게 공격하지 못한다 해도, 사울 왕자는 노려 볼 만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군. 설령 요새를 빨리 점령하지 못한다 해도 사울 왕자를 생포하거나 죽일 수 있다면 그 또한 큰 공이라 할 수 있지.”

“잠시 요새 공격을 미루고 다시 한번 저 별동대를 기습해 보는 게 어떻습니까? 사울 왕자를 목표로 말입니다. 아니면 자객을 보내서라도…….”

세드는 한마디로 기사들의 의견을 물리쳤다.

“사울 왕자 곁에는 검은 흉성이 있다. 군대로 별동대를 공격하면 요새의 조나단이 아군의 빈틈을 노릴 것이고.”

“검은 흉성…….”

검은 흉성 카스텔.

전성기에 비해 명성은 퇴락했지만,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이번 전장에서 똑똑히 보여 주었다.

다시 회의가 재개되었고, 더 이상 그럴듯한 의견은 나오지 않았다.

한 방에 전황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지금으로선 그런 방법은 없는 것 같다.

그때, 회의장에 전령이 찾아왔다.

“자작님!”

“무슨 일인가?”

“급보입니다!”

찾아온 전령조차 내용을 알지 못하는 급보.

편지를 뜯어 본 세드의 눈이 커졌다.

“이게 사실인가?”

“저는 그저 소식을 전달할 뿐입니다.”

“알겠다. 물러가거라!”

아론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버님, 무슨 일입니까?”

“좋은 소식이다.”

“네?”

“흉성을 상대할 괴물이 온다는구나.”

* * *

요새 공성전은 며칠간 이어졌지만, 첫 번째 날처럼 격렬하지는 않았다.

가멜다 왕국군이 신중하게 움직였고, 다르센 왕국군 역시 함부로 움직이지 않았다.

첫날 공성전에서 피해를 입은 가멜다 왕국군이 신중하게 움직이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울은 그렇게만 볼 문제가 아니라 여겼다.

“이상하군. 적들이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 같아.”

로타도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아직 적들이 지치지는 않았을 것인데, 움직임이 지나치게 소극적입니다. 전하 말씀대로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원군을 기다리는 걸까요?”

“적 원군에 대한 정보는 없었습니다.”

한두 명이 움직이는 것이라면 모를까, 수백 수천의 원군이 움직이는 건 숨길 수 없다.

적의 행동은 분명 원군이라도 가디라는 것처럼 보이는데 정작 원군의 움직임은 전혀 없었다.

시간을 끄는 게 적에게 유리한 상황도 아닌데 말이다.

“믿는 게 있지 않고서야 저렇게 시간을 허비할 리는 없어요.”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대체 놈들이 무엇을 믿고 있는 것인지…….”

사울은 혹시 다르센 왕국군이 요새에 수작을 부린 게 아닌지 의심했다.

하지만 요새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분명 무언가가 있는 데, 그 무언가를 알 수 없다…….’

적의 계략을 알 수 없다면, 무슨 문제가 생겨도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전투가 재개되었다.

그런데 오늘은 지난 며칠과는 달랐다.

“적의 주력이 별동대를 향하고 있군.”

지난 며칠간 적 주력은 제르넬 요새를 향했다.

덕분에 별동대는 적진을 휘저으며 날뛸 수 있었다.

하지만 적 주력이 별동대를 향한다면 날뛰는 게 아니라 자중해야 한다.

“전군, 적의 공격에 대비하라!”

명령을 내리면서도 사울은 무언가 이상한 예감을 느꼈다.

‘대책 없이 우릴 공격해 봐야 적 피해만 늘어날 뿐이야. 그런 무모한 행동을 할 리는 없어.’

무언가 계략이나 숨겨진 의도가 있는 것 같은데 그 실체를 알 수가 없다.

지금은 철두철미하게 지키면서 적에 맞서 싸우는 방법뿐이었다.

방어 태세를 갖춘 별동대.

그런 별동대를 덮쳐 오는 적의 주력군.

아군의 전략이 부족하지만 시간을 끌면 요새에서 지원이 올 것이다.

조금만 버티면 된다.

바로 그때였다.

“전하.”

문득 카스텔이 사울에게 다가왔다.

“큰일입니다.”

카스텔의 입에서 ‘큰일’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건 드문 일이었다.

“무슨 일인가요?”

“놈이 온 것 같습니다.”

“놈이라고요?”

“네, 마검사가 온 것 같습니다.”

마검사.

사전에서 이 단어는 ‘마법을 쓸 줄 알거나 마나를 다룰 줄 아는 검사’로 설명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사울 역시 마검사다.

하지만 지금 율렌 섬에서는 따로 마검사라 불리는 자가 한 명 있었다.

율렌 섬의 최강자로 꼽히는 남자.

한때 최강이라 불린 카스텔에게 패배의 굴욕을 안겨 준 자.

“베일……?”

“그렇습니다.”

가르시아 남매의 동생 베일 가르시아.

현재 율렌 섬의 최강자로 꼽히는 자.

그 괴물이 전장에 나타났다는 말인가.

사울은 황급히 모든 신경을 집중시켰다.

확실히 적 쪽에서 강대한 기운이 희미하게나마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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