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사울은 일단의 병력과 함께 가멜다 왕국의 외교 공관이 있는 곳으로 출병했다.
경계를 철저히 한 덕분인지 이동 도중 가멜다 왕국의 방해를 받거나, 몬스터 따위의 습격을 받지는 않았다.
그렇게 도착한 가멜다 왕국 외교 공관은 이미 전투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적잖은 병력이 지키고 있음은 물론, 경계 태세도 엄격했다.
“저쪽도 싸울 준비를 마쳤다면, 역시 정공법으로 뚫어야겠군.”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
사울이 예상한 그대로였다.
이쪽에서 전력을 투입하여 공격하면, 저쪽에서도 전력을 투입하여 맞서는 형태의 전투가 될 것으로 예상했으니까.
결국 창과 방패 중 더 강한 쪽이 이길 것이다.
“우리 공관은 별일 없지?”
“네, 어떤 특별한 움직임도 포착되지 않았습니다. 아마 저들은 우리의 공격을 막아 낸 뒤, 역공을 하려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적을 공격하려다 내 집이 공격받는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쓸 수 있는 전력은 한계가 있으니까.
그 쓸 수 있는 전력을 거의 다 모아 이번 전투를 준비했다.
차이가 있다면 이쪽은 일방적으로 공격을, 저쪽은 일방적으로 방어를 한다는 것.
보통 전장에서는 공격하는 쪽보다는 방어하는 쪽이 유리한 경우가 많다.
양쪽의 병력에 큰 차이가 없고, 또 방어하는 쪽이 지형적으로 유리하다면 더더욱 그렇다.
눈에 보이는 것만 따지면 이쪽이 불리한 듯 보이기도 했다.
불리한 형세를 뒤집으려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전투 준비를 마친 사울은 마지막 회의를 열었다.
“모든 게 예상대로예요. 병력은 저쪽이 좀 더 많고, 또 우리의 공격을 예상하고 만반의 경계 태세를 갖추어 놓았지요. 뿐만 아니라 적들 중에는 실력 있는 이종족 용병도 여럿 포함되어 있어요.”
설명을 하며 사울은 지도 한 곳을 짚었다.
평원 한가운데 건물 여러 채가 있는 곳.
바로 가멜다 왕국의 외교 공관이었다.
“가멜다 왕국 녀석들은 이곳을 공관으로 쓰고 있어요. 그들이 중립 지대에서 하는 모든 일들이 이곳을 중심으로 돌아가지요. 이곳을 파괴하고 그들의 전력에 최대한 많은 피해를 입힌다면 그것만으로도 중립 지대에서의 가멜다 왕국 세력은 절반 이상 사라지는 셈이에요.”
여기까지는 모두가 다 아는 이야기였다.
문제는 어떻게 적의 구심점을 파괴하느냐이다.
사울은 떠나기 전 마련해 온 전략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계획은 간단해요. 대부분의 병력이 적 병력과 맞서는 사이 소수의 정예가 따로 움직여 적 부대 깊숙한 곳에 쳐들어가 큰 피해를 입히고, 이후 혼란에 빠진 적을 일소한다.”
그때 이곳까지 따라온 외교관이 조심스레 물었다.
“전하.”
“네. 다른 의견이 있나요?”
“작전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전하께서 ‘소수의 정예’에 함께하신다는 것인데…….”
사울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이미 말했듯, 나와 내 휘하의 실력자들이 소수 정예 병력과 함께 움직일 거예요.”
“역시 그건 너무 위험합니다. 전하께서는 중군에 남아 계시는 게 어떻습니까?”
외교관이 사울의 의견에 반대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 작전을 세울 때도, 출병할 때도 반대했다.
그래서 사울은 반대 의견을 들을 때마다 한 말을 되풀이했다.
“이미 전쟁은 시작되었어요. 나는 왕자로서 책무를 다해야 해요.”
“그렇지만…….”
“어차피 전장에 선 이상 안전한 곳은 없어요. 걱정 말아요. 지금까지 나와 생사를 함께 해 온 일행들이 함께할 테니까.”
카스텔도 사울 편을 들었다.
“어차피 결정된 일. 나 카스텔이 전하를 지키겠습니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곧이어 아이나도 말했다.
“저도 전하를 지키겠어요.”
지금 이 천막 안에서, 아니, 부대를 통틀어 사울, 카스텔, 아이나보다 강한 사람은 없다.
외교관은 이번에도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사울은 아르멜에게도 명령했다.
“너는 본대의 지원을 맡도록. 할 수 있겠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르멜도 소중한 전력이지만, 사울은 데리고 가는 대신 본대 쪽을 맡겼다.
한쪽을 사울이 직접 챙기는 만큼 다른 쪽 역시 능력 있고 믿음직스러운 사람이 필요했다.
그렇게 모든 의논을 마친 사울은 자신과 함께할 병력을 모았다.
“다 합쳐 스물 남짓인가. 적의 총 병력은 어느 정도랬지?”
“300명 정도입니다.”
적은 300명이고, 아군 병력은 200명이 조금 넘는다.
그중 20명 정도를 별동대로 삼아 적 한가운데로 데려가고, 나머지 병력은 적의 주 전력과 상대해야 한다.
항상 그렇듯 이번에도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게 분명했다.
사울은 자신의 장비를 다시 한번 살폈다.
항상 차고 다니는 마법 검.
최근에 얻어 유용하게 쓰고 있는 마법 보석 반지.
지금은 모든 게 완벽했다.
“출발한다!”
사울의 명령과 함께 병력은 두 패로 나누어져 이동하기 시작했다.
* * *
탁 트인 평원 한가운데 옹기종기 모인 십여 채의 건물들.
건물과 주변 곳곳에 목책을 세우고, 병사들이 주둔한 채 주변을 경계하는 광경이 보였다.
잠시 군사들을 멈추고 적진을 살핀 사울이 중얼거렸다.
“역시 철통 경계로군.”
작은 마을 정도의 규모에 불과한 곳을 지키는 데 300명이면 충분한 병력이 투입된 셈이다.
그런데 적지 않은 병력임에도, 최대한 효율적으로 배치한 것 같았다.
절반 정도는 공관 주변을 둘러싸고 지키고 있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건물 안팎에 배치되어 있는 것으로 보였다.
목표인 외교 공관을 파괴하려면 밖에 배치된 병력을 뚫고, 건물 안에 배치된 병력과 시가전까지 벌인 뒤에야 가능한 상황이었다.
공관 주변에는 몸을 숨길 만한 나무 한 그루 없어 잠입 역시 불가능했다.
저런 철통 경계를 뚫으려면 장기전이 유리할 수도 있다.
견제나 도발로 적의 경계 태세를 무너뜨리거나, 시간을 끌어 집중력을 흐트러뜨린 뒤 움직이는 전략 말이다.
하지만 그럴 여유는 없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움직일 수 있는 병력을 싹싹 긁어모아 전투에 나선 것이니까.
지금은 속전속결이 최선이었다.
“그럼 잘 부탁합니다.”
사울의 말에 본진 대장 역할을 맡은 외교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전하.”
대장 역할을 맡은 외교관은 왕국 기사 출신이었다.
경험과 실력을 겸비했다니 기본은 할 것 같았고, 아르멜도 붙여 주었으니 최소한 바보짓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본대, 그리고 사울이 이끄는 별동대로 나뉜 다르센 왕국군이 다시 진군했다.
공관 쪽에서도 이쪽의 움직임을 파악한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 수비하는 측은 크게 두 가지로 움직일 수 있다.
나와 싸우느냐, 버티느냐.
가멜다 왕국군은 버티는 쪽을 택했다.
적군의 움직임이 없는 것을 확인한 사울은 혀를 찼다.
‘적들이 나와서 싸워 주면 좀 더 수월했을 테지만… 역시 기대할 수 없겠군.’
이쪽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 줄 만큼 어리석은 자들이 아니다.
그렇다면 위험을 감수하는 수밖에 없다.
모든 준비를 마친 사울이 명령했다.
“공격하라!”
사울의 명령에 다르센 왕국군이 두 갈래로 나누어 진격했다.
가멜다 왕국군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쏴라!”
공관에서 화살과 마법 세례가 다르센 왕국군을 향해 쏟아졌다.
예상했던 공격이었기에, 가멜다 왕국군도 대응에 나섰다.
사울이 이끄는 별동대에서는 사울과 카스텔이, 본대에서는 마법사들이 공격을 막았다.
마법 방어막과 화살, 마법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쏴라!”
다시 적진에서 공격이 날아왔다.
이번 공격은 조금 전과는 달랐다.
평범한 화살 세례처럼 보였지만, 위력이 상당했다.
‘보통 궁병의 솜씨가 아니군.’
사울은 자신이 친 마법 방어막을 통해 느껴지는 충격이 달라진 것을 느꼈다.
일반적인 궁병이 쏘는 화살보다 배 이상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보통 궁사는 이렇게 강한 사격을 할 수 없었다.
즉, 마나를 다룰 줄 아는 특별한 궁사여야 이런 공격을 할 수 있었다.
적 무리에 간간이 보이는 엘프 병사들처럼 말이다.
‘엘프 용병의 솜씨인가.’
‘강력한 화살 공격’은 사울이 이끄는 별동대 쪽에만 쏟아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본대보다도 별동대의 섬멸에 집중할 전략인 모양이었다.
별동대에 사울과 카스텔이 있으니 적들로서는 현명한 판단을 내린 셈이다.
하지만 사울 입장에서도 나쁜 상황은 아니었다.
적 전력이 이쪽에 집중되었다면, 역으로 그것을 파괴하여 단숨에 전황을 유리하게 만들 수 있다.
재빨리 상황을 파악한 사울은 카스텔에게 명령했다.
“내가 공격을 막을 동안 선생님은 적 전력을 줄여 주세요.”
“네, 전하.”
이어 사울은 아이나에게도 명령했다.
“나는 방어 마법에 전념하고, 또 적진에 도달하면 공격에 집중하겠어요. 그대는 나를 지켜 줘요.”
“네, 전하.”
사울은 별동대 전체를 적 공격에서 지켜 주고, 카스텔은 전력을 다해 적을 공격하며 아이나는 사울의 신변을 지킨다.
지금 상황에서 별동대가 내놓을 수 있는 최고의 공격 전략, 나아가 방어 전략이었다.
먼저 사울과 함께 방어 마법을 시전하던 카스텔이 손을 뗐다.
동시에 사울이 카스텔의 몫까지 방어 마법을 시전했다.
사울이 쥔 마법 검이, 손가락의 마법 보석 반지가 동시에 빛났다.
막대한 마력이 투입된 마법 방어막은 카스텔이 함께 시전할 때만큼 강력하게 유지되었다.
방어막이 유지되는 것을 확인한 카스텔은 목표를 포착했다.
현재 가장 위협적인 공격을 하는 건 적진의 엘프 궁수들이다.
마나가 실린 화살을 쏘아 대는 저들을 방치하면 방어막이 뚫리고, 나아가 사울까지 저격당할지 모른다.
카스텔이 양손을 뻗쳤다.
곧 반구형으로 별동대를 감싸고 있던 방어막의 윗부분에 검푸른 덩어리 수십 개가 떠올랐다.
하나하나가 강력한 위력을 가진 마나 덩어리가 카스텔의 손짓과 함께 유성처럼 날아가 적들을 폭격했다.
“으아악!”
적진에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는 와중에도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사울 역시 방심하지 않고 계속 방어막을 유지했다.
방어막이 유지되는 가운데, 적을 향한 마법 폭격이 이어졌다.
수차례의 폭격 끝에 적진의 엘프 궁수는 숫자가 크게 줄어들었다.
그를 증명하듯, 아군을 노리고 날아오는 화살 공격도 점점 수그러들었다.
결국 사울의 별동대가 본대에 앞서 먼저 적의 코앞에 닿았다.
“적들을 공격하라!”
“와아아!”
사울은 마법 방어막을 거두었다.
그런 사울을 노리고 몇몇 적들이 다가왔다.
“#$%@#4%@#$5!”
저희들의 언어를 지껄이며 달려온 건 코볼트였다.
쿠루굴의 부족과는 달리 가멜다 왕국과 손을 잡은 코볼트 용병들은 다르센 왕국군의 제지를 뚫고 순식간에 사울에게 접근해 왔다.
하필 카스텔은 다른 적들을 공격하기 위해 사울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고, 남은 건 아이나였다.
선두의 코볼트가 사울에게 창을 뻗었다.
아이나가 그런 사울의 앞을 가로막으며 방패를 휘둘렀다.
창과 방패가 부딪치며 불꽃이 튀었다.
막지 못했다면, 꼬챙이에 꿰인 고기 신세가 되었으리라.
아이나가 공격을 막은 직후, 사울이 마법 검을 뻗었다.
검집째로 잡은 마법 검의 보석이 빛나며 전격이 뻗어 나갔다.
몇 줄기로 갈라지며 뻗어 나간 전격은 절묘하게 아이나의 몸을 피하며 코볼트들을 가격했다.
“꽥!”
비명과 함께 코볼트 몇 마리가 단숨에 쓰러졌다.
그 광경에 아이나는 속으로 감탄했다.
‘역시 전하시군.’
불이나 물, 얼음, 흙 등에 비해 전격은 다루기 까다로운 주문이다.
번개를 자기 뜻대로 조종해야 하는 것이니 말이다.
사울이 조금만 실수했어도 자신도 함께 당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질 법했지만, 아이나는 개의치 않았다.
예전보다 더 실력이 늘어난 사울이라면 실수하지 않을 것이다.
적을 공격하는 역할은 주로 사울에게 맡기고, 자신은 방패 역할에 충실하면 된다.
아이나는 눈앞의 적을 상대하는 데 집중했다.
그런 아이나의 듬직한 모습에 사울도 안심하고 계속 공격 마법을 시전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신과 아이나의 안위를 지키는 것.
그 다음으로 중요한 건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적을 쓰러뜨리며 진군하는 것이다.
두 가지를 기억한 사울은 계속 마법 검을 휘두르며 마법을 시전해 나갔다.
이럴 때를 위해 얻은 마법 보석 반지도 큰 보탬이 되었다.
더 강한 마법을 시전할 수는 없지만 마법을 여러 번, 그리고 오랫동안 시전할 수 있다는 건 전장에서는 굉장한 장점이었다.
마침내 별동대는 사울, 카스텔, 아이나 등의 활약에 힘입어 적의 방벽을 부수고 공관 근처에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